▷원릉(元陵),제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능
며칠동안 떡방앗간 시루에서 김이 오르듯
안개와 수증기가 온 땅을 뒤덮고
겨울답지 않은 고온이 계속되더니
오늘은 창 밖의 한강이 가까이 다가와 보인다.
강이 잘 보이고 시야가 투명한 것은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끼가 있다는 증거이다.
바깥 날씨가 쌀쌀한가 본다.
여름에 쓰기 시작한 동구릉 탐방을 아직도 끝내지 못하였다.
남편과 나는 책이나 드라마를 통하여 친숙했던
조선 왕들의 무덤을 둘러보며 역사 공부도 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사색을 하던 시간들이 좋았었지만
막상 이곳에 소개하고 보니 내 자신이 읽기에도 재미가 없다.
그래도 마무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 계속하기로 한다.
원릉은 21대 임금 영조(1694~1776) 와 계비 정순왕후의 쌍릉이다.
1776년(정조 즉위) 3월 5일 영조가 승하하였다.
영조는 무려 52년(1724~1776)에 이르는 긴 재위 기간 동안
여덟 차례에 걸쳐 산릉원을 조성하거나 천장하는 등
산릉제도에 관심이 컸다.
원비 정성왕후가 잠든 서오릉의 홍릉을 자신의 자리로 정해
쌍릉으로 조영하기를 바랐으나,
정조는 영조가 승하한 그 해 7월 27일 건원릉
서쪽 두 번째 산줄기에 그를 안장하고 원릉이라고 했다.
원릉을 조성한지 29년이 지난 1805년(순조 5)에는
61세의 나이로 승하한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를
원릉의 옆에 모셨다.
(원릉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 나란히 있는 쌍릉이다.)
※일화
영조는 무수리에게서 태어난 숙종의 서자이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궁궐 외곽의 초라한 집에서
일찍 세상을 떠나 빈(嬪)의 대우도 받지 못했고,
양주땅 고령산 기슭에 묻혔는데, 그 묘가 매우 초라하였다.
궁중예법에 따라 능호나 원호를 붙일 수도 없었다.
이 사실이 늘 맘에 걸렸던 영조는 오랜 노력 끝에
어머니의 묘를 간신히 소령원(昭寧園)으로 승격시키는데 성공하였다.
하루는 영조가 미복 차림으로 궁을 나와 산책하던 중에
시골의 나무꾼이 향나무를 팔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영조가 향나무를 어디서 캐온 것이냐고 물으니,
나라님의 모후를 모신 소녕릉이 있는 고령 양주산에서
나무꾼은 능과 원을 구별하지 못하여 능이라고 부른 것이지만,
오랜 세월 어머니의 묘를 능으로 꾸며드리고 싶었던 영조는
그리하여 나무꾼이 팔던 향나무를 비싼 값에 쳐주고,
내면으로는 자신의 출생 신분과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사연 등 평생 큰 아픔을 삭여야 했다.
영조대왕은 사도세자를 죽인 임금으로써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드라마 '이산'에서 이순재가 연기했던 영조와
김여진이 연기했던 정순왕후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작가와 배우들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가
그들의 참 모습과는 거리가 있겠지만
방송에서 많이 다뤄진 인물들일 수록
무덤 앞에 섰을 때 느껴지는 감회가 특별한 것이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