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동화]봉림대에서 부르는 노래

[동촌]

봉림대에서 부르는 노래

                                  박윤규

1
지난 가을, 봉림 초등학교에 첫발을 디딘 민 선생은 꽤나 실망했다. 학교가 너무 작고 초라했
기 때문이다. 그래도 민 선생은 곧 열심을 냈다. 처음 교단에 선 터라 제자들에 대한 애정이 샘솟
았다. 독립 운동가가 세운 전통 깊은 학교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민 선생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학교 풍경이었다. 교문 앞쪽으로는 송월천이 굽이쳐 흐르
고, 학교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 아늑하기 그지없었다. 도시에서만 자란 민 선생에게는 학
교가 공원처럼 느껴졌다.
특히 민 선생은 학교 뒤편의 봉림대가 좋았다. 거기엔 집채만한 바위들이 무리를 지어 서로
기대거나 누워 있었는데, 마치 고래 떼가 뒹굴며 노는 것 같았다. 그 위쪽엔 폭포가 있고, 폭포수
의 한 줄기는 고샅길을 따라 학교 안 양어장까지 흘러들었다.
‘아, 이런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면!’
봉림대는 민 선생에게 도시의 그 어떤 교실보다도 훌륭한 교실로 보였다. 거기서라면 자연 학
습은 물론이거니와, 교과서 없이도 역사, 글짓기, 미술, 음악을 재미있게 가르칠 자신이 섰다.
단풍이 한창일 무렵, 민 선생은 봉림대에서 야외 수업을 하려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교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들이 바위에서 떨어지거나 물에 빠질 위험이 높다는 게 이유였
다. 몇 번 그런 사고가 있은 다음 봉림대로 통하는 길에 울타리를 치고 철문을 단 거라고 했다.
민 선생은 아쉬운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봄이 되자 봉림대는 더욱 화사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산비탈에는 산수유와 개나리가 샛노란
칠을 하고, 바위 벼랑 틈틈이 진달래가 모닥불처럼 피어났다. 민 선생의 마음도 다시 타올랐다.
“5학년이니 주의시키면 괜찮을 거예요. 야외 수업을 허락해 주세요.”
이참에 교장은 아예 못을 박아 두려는 태도를 보였다.
“어허, 음지에 얼음이 녹지 않아 위험해요. 봉림대에서 수업하려는 생각은 아예 접으세요.”
수꿀해진 민 선생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런 마음을 다시 움직인 건 초여름의 녹음이었
다. 봉림대엔 커다란 오동나무 두 그루가 우뚝 서 있었는데, 멀리서 쳐다보기에도 시원스럽기 그
지없었다. 그 나무그늘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전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봉림대처럼 멋진 곳에서 공부한 기억
이 아이들에게는 소중하게 남을 거예요.”
그리고 민 선생은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 학교가 봉림 초등학교잖아요?”
비온 뒷날 화창하게 갠 날씨 덕이었을까. 잠시 눈살을 찌푸리던 교장은 창 밖으로 펼쳐진 푸
른 하늘과 오동나무 그늘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허 참, 민 선생 고집도 어지간하군요. 좋아요. 하지만 언제나 안전이 우선이에요.”
민 선생은 어린아이처럼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꾸벅 허리를 숙였다.

2
“네 이 놈! 거기 내려오지 못할까!”
난데없는 고함이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렸다.
바위에 걸터앉아 있던 민 선생은 벌떡 일어섰다. 벼랑 위쪽, 산 너머 마을로 가는 고샅길에서
웬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세열이랑 치훈이가 바위 위로 올라갔어요!”
“철규랑 창호는 오동나무에 올라갔대요!”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서야 민 선생은 사태를 알아차렸다. 미술 시간까지는 얌전하던 아이들이
글짓기를 하라고 했더니 딴전을 피운 것이었다.
“감히 어르신의 무덤을 짓밟다니, 너는 조상도 없는 천둥벌거숭이냐!”
숨을 헐떡이며 쫓아온 할아버지가 세열이랑 치훈이를 꾸짖었다.
바위 벼랑 위에 무덤이 있는 줄은 민 선생도 까맣게 몰랐다. 까치발을 해야만 겨우 봉분과 비
석의 끄트머리가 보였다. 아이들이 거기서 솔방울로 전쟁놀이를 했던 것이다. 철규와 창호도 혼찌
검이 났다.
“오동나무는 속이 비어서 뚝 잘도 부러지는데, 어쩌자고 함부로 올라갔단 말이냐!”
민 선생이 공손히 인사를 하며 나섰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이들을 단속하지 못한 탓입니다. 저를 꾸짖으시고 그만 용서해 주세요.”
할아버지가 데면데면하게 대답했다.
“이미 다 꾸짖었는데 뭘 더 꾸짖으란 말이오. 됐소이다. 저 무덤과 이 오동나무는 함부로 해서
는 안 되니 단단히 주의나 시키시오.” 
칠순이 넘은 듯한데도 할아버지는 허리가 꼿꼿했다. 굳게 다문 입술과 눈빛이 옹골찼다.
민 선생은 다시 한 번 사과를 한 다음 벼랑을 올려다보았다. 바위 벼랑 위에 무덤을 만드는
건 상식 밖이었다. 이런 생각 끝에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퍼뜩 머릿속을 스쳤다. 무덤, 오동나무,
그리고 봉림대... 뭔가 곡절 깊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 같았다.
“저, 할아버지.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무덤 쪽으로 올라가려던 할아버지가 몸을 돌려 세웠다.
“제 생각엔, 무턱대고 가까이 못 가게 하는 것보다 무덤과 오동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시
면 아이들이 더 조심할 것 같은데요.”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잠시 하늘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아느냐?”
“오동나무요!”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알은 체를 했다.
할아버지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젓고는 나무껍질을 곰살맞게 쓰다듬었다.
“이건 예사 오동나무가 아니다. 다른 오동나무는 거무튀튀한 회색인데, 이건 아주 깔끔한 초록
색이지. 그래서 푸를 벽(碧)자를 써서 벽오동이라고 한다. 보통 오동나무는 향기도 짙은 보라색
꽃을 피우지만, 벽오동은 아주 소박한 흰노란 꽃을 피우지.”
아이들이 ‘아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민 선생도 비로소 오동나무와 벽오동이 어떻게 다
른지 알았다.
“이 골짜기 이름을 아느냐?”
“봉림대요!”
아이들이 합창하듯 소리쳤다.
“봉림대의 뜻을 아느냐?”
이번엔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눈길을 민 선생에게로 돌렸다. ‘봉림 초등학교
선생이 그것도 몰라’하고 지청구하는 듯했다. 아이들도 민 선생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민 선생은
얼굴이 설핏 달아올랐다. 그토록 봉림대에서 수업을 하고자 했으면서도 한 번도 그 뜻을 헤아려
보지 않았으니.
“봉황이 사는 숲...”
민 선생은 지레짐작으로 간신히 입은 열었으나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절반쯤 맞추셨소.”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민 선생의 스케치북에 커다랗게 한자를 썼다.
“봉황 봉(鳳), 수풀 림(林), 언덕 대(臺), 그러니까 봉림대는 ‘봉황이 깃드는 숲의 언덕’이라는
뜻이니라. 알겠느냐?”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예!’ 소리쳐 놓고는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봉황이 뭐야?”
“봉황 봤어?”
“그거 전설에 나오는 새 아냐?”
할아버지가 소란함을 정리했다.
“봉황은 모든 새들의 조상이자 임금인데,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신비한 새란다. 봉황은 백
년에 한 번 열리는 대나무 열매만 먹고, 반드시 저렇게 푸른 벽오동에만 둥지를 틀고 깃들이지.”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오동나무를 가리켰다.
“그럼 봉황이 오라고 여기 벽오동을 심은 거예요?”
언제나 가만히 듣고 있다가 톡 튀어나오듯 질문하는 문희가 나섰다.
“말귀가 밝구나. 이제 벽오동을 심은 내력을 들려주마.”
할아버지는 봉림대에 얽힌 이야기 타래를 풀기 시작했다.

3
산 너머 마을에 성이 정씨인 선비가 살았다. 그는 많은 공부를 해서 앞일까지 내다볼 수 있었
지만, 과거를 보지 않았다. 벼슬이나 재물이나 명예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평생 공부만 하던 정 선비는 쉰 살을 갓 넘긴 나이에 죽음을 맞았다. 특별한 병도 없이 갑작
스레 자리에 드러누운 것이었다. 당황한 가족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정 선비의 유언이었다.
“내 무덤 자리는 앞산 골짜기 바위 언덕에 이미 보아 두었다. 거기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벽오
동 두 그루를 심고, 봉림대라 이름지어라.”
마을의 훈장 노릇을 하던 아들이 그 뜻을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그 골짜기에 봉황이 나타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훗날 반드시 봉황이 날아드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그 때가 언제인지요?”
“네 아들 대에는 한 쌍의 봉황이 춤추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니라. 그러면 새 세상이 열려 평
화가 가득할 것이다. 혹 봉황이 짝 없이 홀로 나타난다면 손자 대에 그 영광이 나타날 텐데, 마음
이 맑고 간절하여 영혼의 눈을 뜬 사람이라야 봉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 선비는 또 이상한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어도 상을 치르지 말고, 울지도 말아라. 곧 하늘이 무너지는 큰 슬픔이 온 나라를 덮
을 테니, 그때 상을 치르고 곡을 하여라.”
정 선비는 잠들 듯이 고요히 숨을 거두었다.
그 며칠 뒤, 마른 하늘의 벼락 같은 소식이 온 나라를 흔들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것이었다. 그때서야 가족들은 가슴을 치고 울며 상을 치렀다. 그리고 유언에 따라 벼랑 위에 무덤
을 만들고, 오동나무를 심었다.
오동나무가 자라는 동안, 조선은 완전히 일본의 차지가 되었다. 일본인들은 읍내에 학교를 세
워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학교 이름조차 황국 신민(皇國 臣民:천황의 나라, 즉 일본의 백
성)을 기른다는 뜻으로 ‘국민학교’라고 했다.
 “저 놈들이 땅을 삼키고도 모자라 민족의 얼까지 없애려 하는구나.”
정 훈장은 봉림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겨레의 얼을 심는 올곧은 가
르침을 펼쳤다.
일본 관리들은 정 훈장의 행동을 샅샅이 감시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정 훈장이 독립 운동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기에 이르렀다.
깊은 밤, 정 훈장은 아직 어린 두 아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나는 만주로 가서 독립 운동을 하려 한다. 너희 형제는 여기 남아 할아버지의 유언의 이루어
지는 걸 꼭 지켜보도록 하여라.”
“예, 아버지. 꼭 봉황이 날아드는 걸 보겠습니다.”
할아버지의 유언을 익히 아는 형제는 한 목소리로 다짐했다.
두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가 놓은 정 훈장은 그 길로 만주로 떠났다.

오동나무는 눈에 띄게 쑥쑥 자랐다. 그 모습을 보며 정 훈장의 두 아들은 봉황이 오기만 손꼽
아 기다렸다. 봉황이 날아들면 해방이 되고, 아버지도 돌아오실 거라 믿었다. 하지만 오동나무의
키가 벼랑 높이만큼 되도록 봉황은 나타나지 않았다.
“형님, 전 이렇게 앉아 봉황만 기다리며 독립을 바랄 수는 없습니다. 신학문을 배워서 왜놈들
을 무찌를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청년이 된 동생은 서울로 갔다. 몇 년 후에는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형은 기꺼이 뒷바라
지를 하면서 여전히 봉황을 기다렸다.
어느 날 밤, 봉림대에서 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등불을 켜 놓은 듯 빛이 어른거리
기도 했다. 큰아들은 부리나케 봉림대로 달려갔다.
“아! 봉황이다!”
그가 기쁨에 겨워 소리친 순간이었다. 빛을 내뿜으며 오동나무 위를 빙빙 돌던 커다란 새는
별처럼 아득히 치솟아 사라져 버렸다.
큰아들은 할아버지의 무덤 가에서 밤을 꼬박 샜다. 봉황이 돌아올 것만 같아서였다. 하지만 다
음날 해가 중천에 이르도록 봉황은 나타나지 않았다.
“왜 봉황이 한 마리뿐이었을까? 봉황은 평화와 기쁨을 주는 새인데, 왜 슬피 울고 갔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학교 앞 마을로 내려오던 그는 놀라운 광경과 맞닥뜨렸다.
“해방이다! 왜놈들이 항복했다!”
“대한 독립 만세!”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마을 가운데로 모여들었다.
“아, 할아버지 말씀은 틀림없구나! 이제 평화로운 새 세상이 열리겠지.”
큰아들도 사람들과 어울려 춤추며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 어둠이 물러가고 찬란한 광복이 왔
다고 믿었다. 아버지도 곧 돌아오시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았다. 광복과 함께 나라가 두 동강으로 갈라졌다.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다스린다고 하였다. 아버지도 돌아오지 않았고, 아우조차 소식이 없었다. 비로소
큰아들은 봉황이 한 마리밖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를 짐작했다. 하지만 슬픈 울음소리의 의미는
여전히 짚이는 바가 없었다.
그 몇 년 뒤, 깊은 밤에 동생이 불쑥 찾아왔다.
“형님, 함께 북쪽으로 갑시다. 거기야말로 모든 인민이 평등하게 사는 새 세상입니다.”
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록 한 마리뿐이었지만, 분명히 봉황이 오동나무 위를 맴돌다 날아갔다네. 나는 그 봉황이
짝을 지어 와 춤추는 모습을 꼭 지켜볼 거야. 우리가 못 본다면 우리 아들이나 손자는 보겠지.”
“그 봉황은 북쪽으로 간 거예요. 남쪽엔 아직도 친일파들이 권세를 부리지만 북쪽은 인민들이
주인 된 새 세상이에요. 가서 새 세상을 위해 함께 일합시다. 그게 조부님과 아버님의 뜻입니다.”
형을 설득하려는 동생의 눈동자는 뭔가에 사로잡힌 듯 맹렬하게 타올랐다.
“아버지께서 한 쌍의 봉황이 날아와 춤출 때까지 여기를 지키라고 하셨잖나. 아우도 여기서
함께 봉황을 기다리세.”
형은 도리어 동생을 붙잡아 두려 했다.
“형님은 아직도 그 미신 같은 걸 믿으시는군요. 나는 진작부터 봉황 따위는 믿지 않았어요. 형
님과 함께 가려고 믿는 척했을 뿐이에요. 우리는 서로 뜻이 다르니 가는 길도 다릅니다. 더 이상
나를 찾지 마세요.”
동생은 싸늘한 인사말을 돌아섰다.
“아, 마음이 맑고 간절하여 영혼의 눈을 뜬 사람은 봉황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형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동생을 바라보며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4
“바로 그 해 6월에... 전쟁이, 났지.”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멈추고 기침을 했다.
“할아버지도 전쟁에 나가셨나요?”
아이들의 묻자, 할아버지는 손수건으로 입을 닦은 다음 대답했다.
“그럼. 이 땅에 사는 젊은 사람은 내남없이 모두 총을 들어야 했으니까. 내 아우는 북한군 장
교가 되었을 테니, 형제가 서로 원수처럼 총질을 한 거지. 그 악몽 같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비
로소 나는 봉황이 홀로 날아와 슬피 운 까닭을 깨달았단다.”
할아버지는 다시 말을 멈추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아하, 그러니까 지금까지 얘기하신 게 모두 할아버지 얘기네요?”
턱을 괴고 있던 창호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할아버지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바위 언덕 위에 계신 분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시네요!”
대부분 이미 짐작한 일인데, 찬영이는 저 혼자 알아낸 듯 호들갑을 떨었다.
“만주로 가신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어떻게 되셨어요? 아직 살아 계시나요?”
할아버지가 대답을 않자, 철규가 찬영이를 쿡 쥐어박았다.
“이 바보야.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백 살도 넘으셨을 텐데 어떻게 살아 계시겠냐?”
“돌아가셨으면 무덤이 있어야 할 거 아냐. 우리 할아버지 무덤은 증조 할아버지 무덤 아래 있
단 말이야.”
철규와 창호가 다투자 할아버지가 손짓으로 말렸다.
“다투지 마라. 내 아버님은 살아 계신단다.”
민 선생도 아이들도 눈을 크게 치떴다.
“어디 계시는데요?”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엉뚱한 물음을 던졌다.
 “너희 학교 교훈이 뭐지?”
아이들이 전깃줄에 늘어선 참새처럼 한목소리로 재재거렸다.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자!”
할아버지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교훈을 지으신 분이 내 아버지시니, 너희들 마음속에 살아 계신 게 아니냐.”
아이들이 ‘에이’ 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때 문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아이들의 눈과 귀가 문희에게 쏠렸다.
“그럼, 할아버지는 아직도 봉황이 나타나기를 기다리시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잔잔한 웃음을 머금고 문희를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암. 한 쌍의 봉황이 나타나 흥겹게 춤출 날을 기다리고 있단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지. 그걸
보기 전엔 눈을 감을 수도 없지. 암, 그 날, 그 날이 오면...” 
할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며 슬며시 어깨를 돌렸다. 북쪽 먼 하늘을 바라보던 할아버지의 눈길
은 오동나무에 머물렀다. 찡그린 눈자위에 눈물이 어린 듯 햇살이 반짝거렸다.
잠시 후, 민 선생은 손뼉을 쳐 아이들의 눈길을 모았다.
“여러분, 봉황이 날아와 춤추는 날은 언제일까요?”
“통일되는 날이요!”
“그럼, 봉황의 빨리 오기를 비는 마음으로 다같이 노래불러요. 무슨 노래를 부를까요?”
아이들은 벌써 답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소원이요!”
물소리도 낭랑한 푸른 봉림대 그늘에 해맑은 합창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하여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동촌]

짧은 서사구조 속에 격동하는 구한말부터 현대에 이르는 현대질곡사를 다루었다. 가상의 새 봉황을 주요오브제로 활용하면서 통일을 주제로 내세우고 있다. 담임과 아이들의 할아버지와의 만남....그리고 할아버지의 화고담을 통해 드러나는 일제식민지적 삶, 해방, 그리고 6.25...이념으로 갈라진 형제들의 맞섬...간절한 통일에의 꿈...염원과 꿈이 봉황의 기다림으로 드러나며 한반도 굴곡의 역사를 되짚어보게 하는 동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