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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도 자 료
도서명 : 우주 끝에서 만나
지은이 : 안지숙
펴낸곳 : 문이당
분야 : 국내소설
발행일 : 2021. 11. 15
판형 : 140×210 / 292면 / 값 14,000원
ISBN : 978-89-7456-540-4 03810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메타버스 공간을 배경으로
게임의 세계를 소재화한 문학적 시도
게임을 매개로 현실과 가상세계를 교차해 가며 인간 욕망의 뿌리를 탐색하고 구원을 천착한 소설
인간의 무의식은 본능의 에너지가 발현한 것으로 흔히 꿈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꿈은 가상현실, 가상공간의 뿌리라 할 수 있으며, 현실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정신과 감정을 간섭한다. 오랜 집필 끝에 안지숙의 장편소설 『우주 끝에서 만나』가 출간되었다. 작가는 ‘세상에 목소리를 내기에 너무나 연약한 소설 하나가 태어나는 데에도 온 우주가 동원되는 거 아닌가 싶다.’고 집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소설은 VR게임을 통해 가상현실인 에덴과 무의식의 영역을 현실 속으로 끌어들여 인간의 욕망 속에 숨겨진 선의와 악의를 조명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종의 기억 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가상현실 속 여정은 현도의 현실적 경험과 편집된 기억의 혼재로 재편성되면서 진행된다. 이 때문에 블랙홀 게임 속에서 페이드아웃 되기까지 현도의 방황은 혼란스럽고, 불안하며, 아슬아슬하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브이알 게임을 개발하는 게임제작회사 마블닷컴과 VR게임 속 가상현실이다. 가상현실 속 세계는 산발적인 기억의 형태로 현실을 소환하고, 그 현실 속에서 가상현실을 편집하는 가운데 주인공 현도의 물성화된 의식은 그 경계를 넘나든다. 물성화된 의식이 경계를 넘나든다는 표현이 다소 애매할 수도 있지만,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산에서 원재가 현도를 잡아주지 않아 사고가 난 것은 현실의 경험이다. 이 경험은 게임 속에서 현도가 원재를 옥상에서 떨어뜨리는 경험으로 변형 반복되는데, 이 가상현실 속 경험은 현도의 현실에서의 경험과 부딪치면서 현도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애초 현도가 만들고자 한 것은 ‘블랙홀 게임’이 아니라 에덴을 콘셉트로 한 ‘에덴 어드벤처’이다.
소설 속 원재는 현도의 진짜 욕망인 에덴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바쳐온 것이다. 그렇다면 에덴은 무엇인가. 현도와 원재 사이를 잇기도 하고, 갈라서게도 하는 에덴의 본질은 무엇이란 말인가. 원재는 현도에게 ‘에덴 어드벤처의 목적지인 에덴은 네가 정말 원하는 에덴이 아닐 거’라고 말한다. 원재는 도덕과 규범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다 행복해질 수 있는 마법 같은 에덴은 존재할 수 없으며, 자신이 누군지 자신의 욕망이 무언지 들여다보아야 정말 원하는 에덴을 찾을 거라고 충고한다. 블랙홀이라는 장치로 설정된 심연을 통과해 도달할 수 있는 자신만의 에덴이 있으며, 알파에덴이라 부를 수 있는 그곳이 사실은 현도가 진정으로 원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원재의 조언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던 현도는 블랙홀의 자장 안에 들어서면서 원재야말로 자신의 블랙홀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원재에게도 현도 자신이 블랙홀이라는걸 깨닫게 된다.
블랙홀이라는 장치로 설정된 심연을 통과해 도달할 수 있는 자신만의 에덴! 알파에덴이라 부를 수 있는 그곳은 인간 본연의 그리움이 뿌리내린 영혼의 고향일지도…
『우주 끝에서 만나』는 게임을 매개로 현실과 가상세계를 교차해 가며 인간 욕망의 뿌리를 탐색하고 구원을 천착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현도는 ‘에덴 찾아가기’를 콘셉트로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며, 개발자인 원재는 ‘에덴 어드벤처’를 겉껍질 삼아 새로운 ‘블랙홀 게임’을 만든다. 어린 시절 친구였다가, 연적이 되었다가, 게임사 사장과 개발자의 관계로 바뀌어 가는 현도와 원재는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이 소설은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메타버스 공간을 배경으로 게임의 세계를 소재화한 문학적 시도란 점에서 한국소설의 영역을 확장한 작품이 아닌가 한다.
- 강동수 소설가·부산문화재단 대표
작가로서 이 소설의 원고를 시작할 때 가졌던 욕심은 인간의 욕망을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자는 거였다. 인간의 욕망 속에 숨겨진 선의와 악의를 조명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싶었다. 가능할까 자신 없어 하면서 가상현실과 무의식의 영역을 현실 속으로 끌어들였고,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체의 실험을 시도했다. 무의식 탐구라는 형태로 진행되는 이 소설에서 현도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와도 같은 원재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어떤 인간이며 무엇을 욕망하며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게 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작품 줄거리
소설의 전체 줄거리는 마블닷컴 사장 현도가 원재를 불러들여 블랙홀 게임을 출시하기까지의 여정을 담는다. 이 여정은 현도가 자신의 직원이자 절친인 원재가 만든 블랙홀 게임 속에 갇히면서 시작되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여러 국면을 회상하고 부딪치는 것으로 전개되다가 게임아웃으로 끝이 난다. 무의식 탐구라는 형태로 진행되는 이 소설에서 현도는 가족과 친구들,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어떤 인간이며 무엇을 욕망하며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게 된다.
영화사에서 나온 현도는 게임제작사 마블닷컴을 차리고 게임업계에서 유능한 개발자로 인정받는 원재를 회사로 끌어들인다. 원재를 끌어들임으로써 현도는 자신의 삶에서 사라졌던 여러 인연들과 다시 엮이게 된다. 이 인연의 관계 속에서도 현도는 여전히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지 못하고, 질투하고 오해하고 망상에 빠지는 행태를 반복한다. 현도의 조급하고 불안한 심리는 회사의 악화된 경제 상황과 맞물려 점점 더 심해지고 거의 정신분열에까지 이른다. 원재는 마블닷컴에 온 지 10개월 만에 에덴 어드벤처 시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사장인 현도는 내내 그 자금을 대느라 허덕인다. 막판으로 오면서 직원 월급 줄 돈도 없고 여기저기 빚을 진 데다 은행 대출조차 받지 못한다. 이런 와중에 자이언트 대표는 서로 윈윈하자며 에덴 어드벤처를 투자대비 1.5배의 금액으로 사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원재는 자이언트의 술수에 농락당하지 말라며 반대한다. 원재가 개발자로 올 때 저작권 일부를 주기로 했으므로 현도는 마음대로 에덴 어드벤처를 팔아넘기기가 곤란하다. 직원들도 사장인 현도보다 원재의 편을 들면서 게임을 넘기지 않는 쪽에 선다. 현도는 원재와 직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등반대회를 제안하고, 산을 오르던 중 원재와 둘이 실랑이하다 벼랑 아래로 떨어진다.
안 지 숙
날 수 없는 날개로 퍼덕거리는 뻘짓 전문 소설가. 바보인 주제에 생각은 많아서 홀로 공중부양하는 바람에 사람들을 헷갈리게 함. 2005년 신라문학상으로 데뷔했으나 몇 년간 청탁을 받지 못하자 데뷔 사실을 잊어버림. 야근을 밥 먹듯 하는 회사를 다니며 소설의 자장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던 찰나 천년동굴에 박혀있던 얼음에 이마를 두들겨 맞고 대오각성 소설을 쓰기 시작.
출간한 작품은 장편소설 『데린쿠유』, 『우주 끝에서 만나』가 있으며, 소설집 『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 공저『모자이크, 부산』이 있다.
2019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지원작 선정
-책 속으로
현도는 옷과 신발을 이것저것 장착해보더니 무사로 변신한다. 복장은 전형적인데 집어 든 무기는 마법 창이다. 순진하고 공격적인 현도가 좋아할 만한 캐릭터다. 종종 잔머리를 굴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몽상가다. 그 사실을 현도 자신은 모른다. 현도가 변신한 아바타는 그 자신과 비슷하다. 브이알 게임의 매력 가운데 하나가 아바타를 통해 자신이 게임 속 캐릭터가 되는 것. 현도는 미림이 만든 조지아 오키프 풍의 배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p.11
세상의 모든 원칙이 선의와 악의를 함께 담고 있다는 것을 안 것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악의는 더 큰 악에 무너지면서 어쩔 수 없이 집어 들게 되는 방책 같은 게 아니었다. 악의는 선의에 그어지는 균열이었다. 원재에 앞서 그것을 내게 가르쳐준 사람은 목사였던 내 아버지였다. --p.75
“너하고 미림이…….”
그럴 줄은 몰랐다는 듯 원재가 목을 빼고서 나를 쳐다보았다. 믿을 수가 없다는, 듣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원재의 얼굴에 떠올랐다. 전혀 몰랐어. 원재가 중얼거렸다. 내 마음을 괴롭히던 미안함이 사라졌다. 원재의 말이, 표정이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다. 나 같은 게 연적이 될 줄은 몰랐다는 말을 원재는 무심코 지껄인 거였다. 나는 원재의 마음을 짓밟고 싶었다. --p.140
원재를 믿지만 나는 그의 선의까지 믿을 수는 없었다. 선의는 동정과 멸시와 자부심이 섞이면서 일어나는 감정의 파동 같은 거였다. 나는 선의 뒤에 가려진 욕망이 어떻게 스스로를 속이는지 알고 있었다. 선의 자체가 욕망인 사람의 선의는 자신의 욕망에 무심하여 자신에게든 상대에게든 상처를 주게 돼 있었다. --p.166
나는 원재를 혼자 두고 개발실을 나온다. 원재는 모니터에 눈길을 둔 채 돌아보지 않는다. 그날 너럭바위에서 원재의 손이 내 손을 고의로 비킨 게 아니라 내가 착각한 거라면…… 원재가 나를 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망상에 불과하다면 어쩌지. 내가 저질러온 실수들, 그에게 저질렀던 잘못이, 미림에게 행한 짓들이 머릿속에서 와글거린다. 내가 미쳐가는 걸까. 무릎에서 힘이 빠지면서 너럭바위 끝으로 밀려났을 때처럼 몸이 휘청 꺾인다. 내가 휘청거릴 때 손을 내밀 사람은 원재밖에 없는데……. --p.200
나는 혼자 남는다. 나는 종종 이렇게 혼자 남는다. 혼자 버려진 듯 남아있던 나는 몸을 일으켜 거리로 나간다. 나는 부서진 수박처럼 참담한 심정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길을 걷는다. 원재가 내 손을 놓은 뒤로 나는 유령처럼 길에서 길로, 먼 기억에서 가까운 기억으로 걷고, 걷고 또 걷는다. 내게 남은 것은 나를 파묻을 빚과 출시를 앞둔 브이알 게임뿐이다. 그게 다다. --p.217
원재야!
원재를 부르는데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원재는 우두커니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원재야, 나 좀…… 나는 팔을 뻗은 채 벌벌거렸다. 내 앞으로 원재가 다가왔다. 내가 손을 내밀 사람은 원재밖에 없었다. 내 앞으로 다가온 손이 멈칫했다. 꽃잎이 바람에 살짝 밀리듯 원재의 손이 옆으로 비껴갔다.
“에덴 어드벤처는 네 게임이 아냐. 내가 만든 내 게임이야.”
원재가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원재야…… 공포와 혼란이 내 목을 틀어막았다. 저건 원재가 아냐. 원재가 나한테 저런 말을 할 리가 없어. 내 속에서 질러대는 소리가 내 안에서 부서졌다. --p.236
나는 관속에 누워있다. 관속에 누운 자세로 손을 가슴에 올리고 죽어있다. 나는 눈물을 흘린다. 버림받고 외롭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돋아난다. 가슴 안쪽에서 올라오는 슬픔이 손바닥에 전해진다. 나는 슬픔을 오롯이 받아낸 손바닥을 쳐든다. 나는 기다린다. 원재가 떠나고, 미림이 떠나고, 내 주변에는 오래도록 아무도 없었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나를 그립게 하는 것들이 손바닥에서 증발한다. 소금처럼 마른 슬픔의 까끌까끌한 알갱이가 살 속으로 파고든다.
눈물이 마르고, 나는 다시 졸렬한 박현도로 살아난다. 빛이 다가온다. 나는 내 얼굴을 난자하는 빛의 난폭함에 항의하듯 눈을 번쩍 뜬다. --p.239
“나는 그냥 별생각 없이 살아.”
원재가 중얼거리며 난간 아래 놓아둔 깡통에 담배꽁초를 던져 넣는다.
“내가 가난해서 미림이하고 헤어졌던 건가?”
문득 원재가 묻는다. 자신도 모르게 질문이 툭 튀어나왔는지 원재는 다소 놀란 얼굴이다. 살면서 그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건가. --p.252
“다른 사람한테서 상처를 입기에는, 네가 좀 오만하긴 하지.”
“내가 물고기로 보이냐. 나도 상처받아 인마.”
원재가 농담 투로 말한다.
“그때, 상처받았냐.”
내가 묻고, 원재는 그때가 언제인지 묻지 않는다.
“말했잖아. 난 별생각이 없는 놈이라고.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들은 그냥 받아들이는 거야.”
안다. 원재는 자신의 상처를 오래된 영수증처럼 구겨서 던지는 녀석이다. 어쩌면 미림을, 원재는 그렇게 던져버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p.255
난간에 허벅지를 걸친 채 거꾸로 매달린 원재가 나를 본다. 왜? 왜 이런 짓을? 순진하게 커진 눈으로 원재가 나를 본다.
너는 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네가 어떻게 나를 모욕했는지 몰라. 네 존재 자체가 나한테 어떤 의미였는지도 몰라. 너는 내 상처와 내 분노를 하찮게 만들고, 내 욕망을 우습게 만들었어. 너는 내 인생을 휘젓고, 나를 하찮고 부끄러운 존재로 만들어버렸어. 너는 네 존재 자체가 죄라는 것조차 몰라. 나는 내 속의 말들을 쏟아붓는다.
“현도야!”
원재가 나를 부른다. 나는 내 몸무게로 원재의 다리를 누르면서 그를 내려다본다. 그가 손을 내민다. 내 속에서 나를 파먹고 튀어나온 그것, 그 괴물을 나는 감당할 수 없다. 블랙홀처럼, 내 악의의 심연은 아뜩하다. --p.263
저것은 에덴인가. 빛인 듯 불인 듯한 덩어리를 노려보는 순간 나는 깨닫는다. 방주를 끌어당기는 저 덩어리의 정체는 에덴이 아니다. 저건 블랙홀이다. 우리는 블랙홀의 자장 속으로 들어왔다. 블랙홀로 출발할 수 있는 전진기지로조차 에덴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 에덴은 없어. 부재해. 부재하는 방식으로만 존재하는 것들이 있지. 부재에 맞서서는 너의 에덴에 갈 수 없어.”
먼 곳을 돌아오는 듯한 원재의 목소리에서 나는 희미한 애정과 조롱을 감지한다. 부재에 맞서지 말고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란 뜻인가. 별생각 없이 산다던 원재의 무심함. 그의 무심한 욕망을 욕망했던 내 이 가난한 허기는 부재에 대한 욕망이었던가. --p.273
그의 삶의 중심으로 원재를 밀어 올리고, 내 기억을 떠넘기고, 달궈진 돌에 데워진 심장을 넘기고, 잘못 날아와 퍼덕거렸던 욕망을 넘기고, 그리움마저 넘기고, 나는 가벼워진다. 공갈빵처럼 텅 비어 가벼워진 나는 에덴과 알파 에덴이 서로의 시원을 지탱하는 신의 시소에 앉는다. 앉아서 세계를 본다. 별을 본다. 무한히 거대한 유리구슬 하나가 쪼개지고, 쪼개진 조각들이 다시 쪼개져 허공에 피운 한 점 꽃들을 본다. 한 점 한 점의 꽃들이 다 별이다. 다 에덴이다. 에덴은 너무 많고 동시에 하나도 없다.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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