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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영광 37코스 역방향 제2부
두우리 해안-두우리염전-염산방조제-월평항-합산마을 입구
20230208
1.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두우리 어촌마을체험관 옆에서 찬란한 해돋이 장관을 감상했다. 장엄하였다. 가슴이 더불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느낌이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솟아오르는 태양과 함께 시작된다. 이때 어떤 음울함이 깃들 수 있는가? 해돋는 아침에는, 활기찬 기분으로 이 세상의 아침 빛을 흠뻑 받아들이는 벅찬 감동만이 넘쳐 흐를 것이다.
어촌마을체험관 앞 쉼터정자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마을회관 방송스피커에서 실뱀장어 어업 관련 이권 다툼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온다. 이 지역의 특산물인 실뱀장어 어업권을 어느 집단에서 단독으로 허가받자 마을 주민들과 갈등이 생긴 것 같다. 인간의 욕심, 이득을 채우려는 인간들의 욕망의 늪이 아름다운 두우리 해안 갯벌에 숨어 있다. 몇 번이나 되풀이되는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하자는 소리에 일출의 뜨거운 감동이 스러져갔다. 이것이 인간의 삶이 펼쳐지는 현장의 모습이요, 욕망의 갈등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현장에서 이 갈등을 극복하고 더 나은 길을 찾아 상승하는 자세가 아름다운 삶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우리 간척지에 광활한 염전들이 펼쳐져 있다. 새벽의 어둠 속에서 송암리 간척지의 염전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는데, 이제 아침의 밝은 빛과 함께 두우리 염전들을 걸으며 인간 삶의 고락을 느낀다. 방조제는 칠산바다의 죽도와 작은 섬으로 이어진 뒤, 방향을 꺾어 북쪽으로 향하여 두우리와 야월리 사이로 깊숙하게 들어온다. 그런 뒤 방조제는 남쪽 칠산바다로 내려간다. 왜 이렇게 방조제를 어렵게 조성하였을까? 이 궁금증을 이렇게 해결했다. 염전과 양식장에 바닷물을 공급하는 염전저수지에 바닷물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염전과 양식장 주변 가까이에 바다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방조제를 칠산바다의 간석지(干潟地) 북쪽 끝으로 이어가서 염전과 양식장 근처로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염전저수지를 마련했다. 이렇게 방조제를 건설하고 염전들과 염전수지를 마련하느라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두우리 드넓은 염전들에 염전을 일구는 고통이 있으며, 더불어 염전들에서 수확하는 소금 결실의 환희가 있다. 삶이란 고통과 환희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서해랑길은 두우리의 염산방조제를 빙 돌아가지 않고, 죽도로 이어지는 방조제 쉼터정자에서 방조제와 헤어져 염전들을 가로지른다. 자동차가 염전 사이로 다닐 수 있도록 농로는 시멘트 도로였다. 꼬불꼬불, 서해랑길은 염전 사이의 농로를 이어간다. 앞에는 야월리의 가음산이 우뚝하다. 가음산에는 중계소 송신탑이 설치되어 있어 이정표가 되어 준다. 서해랑길은 두우리 염전들을 거쳐 가음산을 돌아나가게 되어 있으며, 노랫소리의 산 歌音山은 이 지역에서 요충지가 된다고 판단하였다. 염전은 바닥에 타일을 깐 타일염전, 장판을 깐 장판염전, 옹기타일을 깐 옹기타일염전, 도자기판염전 등이 있다고 하는데, 두우리 염전은 주로 타일염전이었다. 염전을 살피며 농로를 걸어나가 드디어 헤어진 방조제와 만나 이제부터는 방조제 제방길을 따라간다. 제방길에서 방조제를 왜 이렇게 깊숙하게 끌어들였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가음산 아래를 거쳐 칠산바다 쪽으로 나갔다. 칠산바다는 7개의 섬이 있는 바다인데, 왜 칠산(七山)이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칠산바다는 원래 일곱 고을이 있는 육지였는데, 물에 잠겨 섬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칠산바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칠산바다의 염산방조제가 아득하게 이어진다. 인간의 위대한 역사(役事)가 이곳에 있다. 미세먼지 탓에 풍경은 흐릿하여 칠산바다의 섬들은 보이지 않는다. 우뚝한 가음산과 광활한 칠산바다 사이로 이어지는 아득한 염산방조제는 인간 삶의 투쟁,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눈물 겹게, 가슴 뜨겁게 보여준다. 이 풍경이 어떤 풍경보다도 삶의 진실로 다가왔다. 생존하기 위하여, 좀더 풍족하기 위하여 가음도 앞 칠산바다를 간척하여 드넓은 간척지를 개척한 농어민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의 고통에 의해 후손들이 풍족해졌는데 후손들은 지금 어디로 떠났는가? 간척 농지에 이 지역의 주 농산물인 대파들이 겨울을 나고 있는 모습이 이곳 지역민들의 생활태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평항을 거쳐 염산방조제 야월리 북쪽 끝으로 갔다. 그곳에는 북쪽으로 넓은 호수가 있다. 이 호수가 담수호인 줄 알았다. 마을 주민을 만나 알아 보니, 염전저수지이며 염전과 양식장에 소금물을 제공한다고 한다. 저수지 이름을 군유저수지라고 하여 이유를 물었더니 영광군 소유의 염전인 군유염전(군 소유 염전)이 있어 지역민은 군유저수지라고 부른다고 한다. 방조제가 민가 깊숙하게 파고든 이유를 군유저수지가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궁금증을 품고 확정하지 못한, 방조제의 방향 문제를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통쾌하다.
염산면 봉남리로 넘어가 조개산 아래 칠산로5길 아세아물산(주) 입구 앞에서, 길고 멀었던 서해랑길 37코스를 역방향으로 끝마쳤다. 사무치는 그리움이 있다. 불갑천, 송암리 염전들, 창우항, 뒷산, 칠산바다의 달빛, 백바위 해변의 백바위와 백암정, 두우리 해안 하늘을 날아 북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 장엄한 일출의 장관이 가슴에 살아온다. 걸어온 염전들길과 아득한 방조제 제방길, 드넓은 염전과 간척농지, 날구봉, 금호산, 가음산, 조개산, 월평항, 광활한 칠산바다, 이들이 내 생의 아름다운 현장이 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루이 대니얼 암스트롱(Louis Daniel Armstrong, 1901-1971)의 명곡 'What a wonderful world'
I see trees of green, red roses too 초록 나무와 붉은 장미가 보이네요
I see them bloom for me and you 당신과 나를 위해 피어난 꽃들이 보여요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그리고 혼자 생각하죠,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I see skies of blue and clouds of white 파란 하늘과 흰구름이 보이네요
The bright blessed day, the dark sacred night 축복받은 화창한 날, 그리고 어둡고 신성한 밤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그리고 혼자 생각하죠,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The colours of the rainbow, so pretty in the sky 하늘에 떠있는 너무나 아름다운 무지개 색
Are also on the faces of people going by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에도 떠있네요
I see friends shaking hands saying "How do you do?"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는 친구들이 보여요
They're really saying "I love you" 그들은 사실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죠
I hear babies cryin', I watch them grow 아기들이 우는 소리가 들려요 난 아기들이 자라나는 걸 봅니다
They'll learn much more than I'll ever know 그 아기들은 내가 아는 것보다 많이 배우겠죠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그리고 혼자 생각하죠,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Yes,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그래요, 혼자 생각해 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20.5km 중 10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43분 중 2시간 55분
염산면 두우리 들판 너머에서 붉은 태양이 솟아 올랐다.
37코스 시점까지 9.8km 거리가 남아 있다.
어촌마을체험관 옆에서 당두마을을 가늠하였다. 대파밭이 드넓다. 이 지역의 주요 농산물은 대파인 듯.
어촌마을체험관 앞 쉼터정자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한다. 겨울철이어서일까? 어촌마을체험관은 폐쇄되어 버려져 있다.
앞 건물은 배수펌프장이며 뒤에 배수문이 있다. 방조제는 중앙 맨 끝의 죽도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왼쪽으로 꺾어진다.
이 지역의 특산물인 실뱀장어 어업권을 어느 집단에서 단독으로 허가받자 마을 주민들과 갈등이 생긴 것 같다.
섬들이 보여야 하는데 섬들이 보이지 않는다. 칠산바다는 7개의 섬이 있는 바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칠섬이 아니라 칠산일까? 예전에는 육지의 산이었다가 지금은 바다로 바뀌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먼 옛날 칠산바다는 원래 육지이고 일곱 골이 있었다고 한다. 산봉우리가 일곱 개가 있었는데, 그곳에 작은 마을들이 모여 살았다. 그 마을에 마음씨 착한 서씨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웬 나그네가 찾아왔기에 후히 대접해 주었다. 다음날 나그네는 집을 나서면서 후히 대접받은 공을 갚기 위해 한마디 일러주었다. 이곳은 얼마 안 가서 바다가 될 터이니 이곳을 떠나라고 했다. 서씨 노인은 그 말을 듣고 언제쯤 바다가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저 산 밑에 있는 돌부처의 귀에서 피가 흐르게 되는 때 바다가 된다고 하고는 떠났다. 이 말을 들은 서노인은 날마다 아침이면 돌부처의 귀에서 피가 나는지 보러 갔다. 매일 서노인이 정성스럽게 돌부처에게 왔다 갔다하니 동네 사람들은 궁금했다. 왜 그렇게 자주 다니느냐고 물었다. 서노인은 부처님 귀에서 피가 흐르게 되면 이곳이 바다가 된다고 해서 다닌다고 말했다. 그러자 동네사람들은 서노인이 미쳤다고 조롱대기만 했다. 그러던 중 개백정 하나가 몰래 개 잡던 피묻은 손으로 가만히 밤에 가서 부처님 귀에다 피를 바르고 왔다. 이튿날 아침 서노인이 가 보고서 부처님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니 동네사람들에게 어서 피하라고 외치면서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동네 사람들은 오히려 서노인을 비웃으며 아무도 따라나서지 않았다. 한편 서노인은 산으로 올라가다가 소금장수를 만났다. 소금장수는 서노인에게 왜 그렇게 바쁘게 올라가느냐고 물었다. 서노인은 여기가 바다가 되니 높은 곳으로 어서 도망가자고 했다. 그러자 소금장수는 소금지게를 받쳐둔 작대기 밑에까지만 바다가 되니 그만 올라가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로 천둥번개가 치면서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닷물이 점점 밀려들어 마을을 삼키고, 산 위로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불어나던 바닷물이 소금장수의 말대로 작대기 앞에서 멈췄다. 그렇게 해서 서노인의 말을 믿지 않던 마을 사람들은 바닷물에 잠겼고, 일곱 개의 산봉우리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일곱 개의 섬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칠산바다가 되었다는 얘기가 전라남도 영광군 칠산 앞바다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칠산바다의 전설'
염전이 광대하다. 앞에는 염전저수지가 있다.
앞에는 염전저수지, 중앙 끝에 죽도가 흐릿하다. 오른쪽 제방길에 해송숲이 조성되어 있다.
밀려오는 모래를 모으기 위해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다. 모래가 쌓이면 이곳에 숲을 조성한다고 한다.
제방길에 해송 묘목이 조성되어 있다. 제방길은 맨 끝의 죽도로 이어진다.
중앙 뒤에 가음산이 솟아 있다. 염전저수지는 염전에 물을 대는 바닷물이다.
모래밭이 형성되면 뒤의 해송숲처럼 나무를 심는다고 주민이 알려주었다.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왼쪽 농로로 염전을 가로질러 간다. 가음산이 중요한 요충지처럼 보인다.
염산면 두우리 1065 지역으로, 어촌마을체험관 1.5km, 시점 8.3km 지점이다. 서해랑길은 염전 사이 농로를 따라 이어간다.
정면에 가음산이 솟아 있다. 앞의 물은 염전저수지, 서해랑길은 염전 사이 농로를 따라 이어간다.
뒤에 죽도가 보인다. 염산방조제는 죽도로 이어진 뒤 왼쪽으로 꺾어진다.
바닥에 타일을 깐 타일염전이다. 장판을 깐 장판염전, 옹기타일을 깐 옹기타일염전, 도자기판염전 등이 있다고 한다.
염산방조제가 사각형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안에 광활한 염전이 조성되어 있다.
칠산바다 방조제 쉼터정자에서 염전 사이 농로를 따라왔다.
두우리의 광활한 염전 사이의 도로로 차량이 운행되고 있는 것 같다.
영백염전 갯뜨락천일염 방향으로 이어간다. 정면에 가음산이 솟아 있다.
농로가 꼬불꼬불 이어진다. 염전저수지와 염전 사이로 농로가 나 있으며, 서해랑길은 왼쪽으로 이어간다.
서해랑길은 위쪽으로 이어지고 염전과 염전저수지가 양쪽에 자리한다. 이 길을 칠산갯길 중에서도 천일염길이라 이르는 듯.
염전이 이해타산이 안 맞는지 왕새우양식장으로 용도 변경하고 있다.
염산방조제 제방과 재회한다. 서해랑길은 제방길 왼쪽으로 이어간다. 가음산에 중계소 송신탑이 세워져 있다.
염산면 두우리 1124-1 지역으로, 어촌마을체험관 3.3km, 37코스 시점 6.8km 지점이다. 서해랑길은 위쪽으로 이어진다.
앞은 염전저수지인 듯, 왼쪽 뒤에 죽도가 보인다. 중앙에 보이는 건물들은 염전창고이거나 염전 관련 건물인 듯.
바닷물이 깊숙하게 들어온다. 제방이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이곳으로 이어졌다. 염전저수지를 위한 방책인 듯.
방조제 북쪽 끝을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뒤쪽의 산은 금호산이다.
바닷물이 깊숙하게 들어온다. 이렇게 방조제를 조성한 이유는 염전저수지를 만들기 위한 방책인 듯.
칠산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온다. 방조제는 오른쪽으로 굽이돌아 이어진다. 왼쪽 가음산에 중계소 송신탑이 솟아 있다.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빼는 간석지가 펼쳐져 있다. 뒤쪽에 금호산이 펼쳐져 있다.
봄날이 오니 그동안 묵혀 놓았던 염전을 어민들이 돌보기 시작한다. 가음산은 서해 칠산바다의 요충지이다.
양쪽 방조제를 폭좁게 쌓아 간석지 깊숙하게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있다. 서해랑길은 칠산바다를 향해 이어진다.
중앙 뒤쪽에 작은 섬이 보인다. 죽도에서 저 섬으로 방조제가 이어진 뒤 북쪽으로 꺾어 이곳으로 이어진다.
염산면 야월리 693-2 지역으로, 어촌마을체험관 4.1km, 37코스 시점 5.8km 지점이다. 곧바로 가면 염산면 야월리로 이어진다. 서해랑길은 넓은 칠산바다 앞으로 나간다.
중앙 뒤에 보이는 죽도에서 왼쪽 앞 작은 섬으로 방조제가 이어진 뒤 오른쪽으로 깊숙하게 방조제가 이어진다.
방조제를 폭좁게 깊숙하게 끌고 간 이유는 염전과 염전방조제 그리고 양식장을 위한 방책이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염산방조제는 칠산바다로 나간다. 방조제는 오른쪽 작은 섬에서 바로 이곳으로 이어지지 않고 북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간다.
방조제 제방은 아득하게 멀다. 이 제방길을 따라 서해랑길은 37코스 시작점까지 이어진다.
염산방조제가 멀리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간척지는 여러 용도로 쓰이고 있는데 이곳은 왕새우양식장인 것 같다.
염산방조제는 칠산바다를 가로막아 향화도까지 빙글빙글 꼬불꼬불 길게 이어진다. 이 길을 천일염길이라 부르고 있다.
염산방조제 두우리 해안에서 왼쪽 뒤 죽도와 앞의 작은 섬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왼쪽 방조제 제방길을 따라왔다. 배수문이 있는 이곳에서 방조제는 꼬부라져 동쪽으로 올라간다. 가음산이 요충지이다.
칠산바다의 갯벌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가음산이 우뚝하다. 염산방조제 제방 안쪽의 이 간척지는 어패류 종묘 양식장인 듯.
방조제가 앞에서 꺾어졌다. 건너편 왼쪽의 죽도와 작은 섬으로 이어지는 방조제는 북쪽으로 올라간다. 서해랑길은 두우리 방조제 쉼터정자에서 염전 사이의 농로를 걸어 방조제 동쪽으로 나와 방조제 북쪽 끝까지 올라갔다가 칠산바다로 나왔다.
방조제는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아나간다. 갈림목에서 왼쪽은 야월리 월평마을 가는 길이다. 서해랑길은 제방길로 이어진다.
간척지의 논농사지이다. 염산방조제는 가음산을 중심에 놓고 빙 돌아간다. 가음산은 방조제 조성 전에는 가음도 섬이었다.
왼쪽은 염산면 야월리 월평마을 가는 길,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염산방조제 제방길, 칠산갯길 중 천일염길로 이어진다.
염산면 야월리 1038 지역으로, 월평항 1.4km, 37코스 시점 3.7km 지점이다.
가음산에 오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가음산 정상에서는 칠산바다를 비롯하여 이 지역을 모두 조망할 수 있을 것 같다.
염산방조제는 큰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아가고 그 안쪽에 간척농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가음산 아래 월평마을이 간척농지를 향하여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간석지였을 때를 상상한다. 왼쪽 뒤에 조개산이 가늠된다.
조개산이 분명히 보이기 시작한다. 조개산 아래 염산면 봉남리 합산마을 버스정류장 부근이 37코스 시작점이다.
방조제가 월평항에서 왼쪽으로 깊숙하게 야월리와 봉남리 안쪽으로 파고 든다. 이것도 염전저수지를 위한 방책일 것이다.
건너편 제방은 염산면 봉남리 지역으로 서해랑길 36코스 탐방로이다. 방조제를 건너편 봉남리 쪽으로 바로 이었으면 더 넓은 간척지가 생겨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간척지에서 염전과 양식장 농사에 필요한 염전저수지를 조성하기 위해 방조제를 폭좁게 안쪽으로 이어갔을 것이라 추정한다.
서해랑길 36코스 탐방로인 봉남리 지역의 염산방조제가 칠산바다 쪽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다.
월평항은 조석간만의 차가 크기에 만조 때 칠산바다로 나가 어업활동을 한 이후 다시 만조 때 귀항해야 할 것이다.
'칠산갯길 300리' 중 '천일염길'은 백수읍 하사리에서 염산면 옥실리까지 이어지는 총거리 35km의 길을 이른다.
이 지역의 중심산 가음산은 해발 206.2m이며, 가음산 남쪽에 월평마을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예전에 가음도 섬이었다. 간척농지에 이 지역의 주 농산물인 대파를 재배하는 밭이 드넓게 자리하고 있다.
"염산면(鹽山面) 야월(野月)4里 월평(月坪)마을은 1650년 진주 강씨 시조(晉州姜氏始祖) 강이식(姜以式)의 第20대손(代孫) 명환(命煥)이 신안(新安)에서 들어와 살면서 성촌하였고, 가음도의 한 마을로서 마을 형세가 운중만월(雲中滿月)이라 하였으며, 그 후에 달이 수평선 넘어 평평한 곳에 진다고 하여 월평(月坪)이라 칭하였다." - 영광군청
염산방조제의 야월리 북쪽 끝이 왼쪽에 보인다. 서해랑길 37코스 시작점은 오른쪽 조개산 아래 흰 건물 앞이다.
왼쪽부터는 염산면 봉남리 지역이다. 서해랑길 36코스 탐방로는 조개산 아래 봉남리 지역의 염산방조제 제방길이다.
야월리 지역의 염산방조제는 중앙의 북쪽 끝에서 염산면 봉남리로 넘어간다. 뒤쪽에 솟은 산봉은 144.6m봉이다.
오른쪽 월평마을 갈림목에서 염산방조제가 큰 원을 그리며 돌아가고 방조제 안쪽에 드넓은 간척농지가 개척되었다.
염산면 야월리 1-8지역으로, 월평항 0.7km, 서해랑길 37코스 시점 1.7km 지점이다. 맞은편 봉남리의 조개산 아래가 목적지이다. 방조제가 오른쪽에서 둥글게 돌면서 들어간 뒤 돌아나온다. 방조제 안쪽 양식장 건물들은 아세아물산주식회사이다.
야월리 염산방조제는 북쪽 끝 양쪽에 배수문이 설치되어 있다. 배수문 왼쪽부터는 염산면 야월리에서 봉남리로 넘어간다. 뒤쪽의 산은 144.6m 산봉이며 그 오른쪽 두 번째가 날구봉이다. 서해랑길 37코스는 계속 방조제 제방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월평마을에서 방조제 북쪽 끝으로 이어지는 도로명은 칠산로5길이다. 칠산로5길을 따라간다.
야월리 염산방조제 북쪽 끝에서 염산방조제와 월평마을 입구, 바로 오른쪽의 배수문을 보았다. 이곳은 염산면 봉남리 이다.
염산방조제 야월리 북쪽 끝 제방길에서 걸어온 오른쪽 야월리 제방과 걸어갈 왼쪽 봉남리 제방, 그 사이의 간석지(干潟地)를 바라보았다. 아득하게 칠산바다가 들어온다. 방조제 제방을 왜 이렇게 돌렸을까? 이 의문은 뒤돌아서면 풀린다.
이 저수지가 담수호인 줄 알았다. 마을 주민을 만나 알아 보니, 염전저수지라고 한다. 야월리는 염전저수지 바깥에 위치하며, 왼쪽에 야월리 금호산(126.6m)이 가늠된다. 마을은 중앙 오른쪽에 위치한 마을이 송암리 입동마을, 중앙부터 그 왼쪽으로 야월리의 이리마을과 야장마을, 운곡마을이 위치한다고 한다.
"송암(松岩)2里 입동(入冬)마을은 조선 중엽에 김수로왕의 46대손 김계립(金繼立)이 임란을 피하기 위해 전북(全北) 고창(高敞)에서 들어와 살면서 성촌하였다. 김해(金海) 김씨 계립(繼立)의 이름 '입(立)' 자와 마을 '동(洞)' 자를 합하여 '입동(立洞)'이라 부르다가 일제강점기 때 편의상 입동(入冬)이라 기록하게 되었다." - 영광군청
"야월(野月)1里 이리(裡里)마을은 1627년 김수로왕(金首露王) 제62대손 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성촌하였고, 1587년 야장(野庄)과 운곡(雲穀)이 같이 형성된 마을로써 가음도(歌音島) 내에 속한 마을이며, 영광8괴의 하나인 음양수(陰陽水)가 접하는 곳에 위치한 마을로써 처음에는 금호(錦湖)라 칭하다가 바닷물이 만조시에는 솜같이 둥둥 떠있는 형상이라 하여 '솜리'로 부르다가 그 후 이리(裡里)로 불리고 있다. 야월(野月)2里 야장(野庄)마을은 탐진 최씨(耽津崔氏) 최석언(崔錫彦)의 10대조가 나주에서 들어와 살면서 성촌하였고, 1587년부터 불러오는 촌명으로 음양수(陰陽水)가 합류하는 때에 가음도란 섬 안 들판에 마을을 형성했다고 해서 야장(野庄)이라 불렸으며, 바다 가운데 둥근달과 같이 육지가 보이는 지형이므로 야월(野月)이라 칭하다가 그 당시 마을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어 넓은 경지 면적에 비유하여 야장(野庄)이라 불리게 되었다. 야월(野月)3里 운곡(雲谷)마을은 1700년 김해 김씨(金海金氏) 시조 김수로왕 제65대손 실이 전북(全北) 고창(高敞)에서 들어와 살면서 성촌하였고, 초창기에는 가음도(歌音島)로 불렸고 섬의 일부로 구름 속의 반달과 같이 생겼다 해서 운중반월(雲中半月)이라 했으며, 훗날 칠산도(七山島)가 육지로 될 경우 창고가 지어질 것으로 예측하여 운곡(雲穀)이라 하였고, 그 후 운곡(雲谷)으로 개칭되었다." - 영광군청
유일수산은 염산방조제 배수문 뒤에 위치하고 있다.
뒤쪽에 둥그런 산봉이 염산면 봉남리의 해발 128.7m 날구봉이다.
염산방조제 야월리 북쪽 끝 제방길 칠산로5길에서 뒤돌아본다. 야월리의 가음산과 그 아래 송암리의 군유염전저수지가 보인다.
칠산로5길에서 제방길로 들어왔다. 왼쪽에 아세아물산주식회사 양식장이 있다.
짝잃은 외기러기가 어디론가 바쁘게 날아가고 있다. 건물은 어패류 수산종묘 배양시설사업체인 아세아물산(주)으로 지금은 폐업하였다고 마을 주민이 알려주었다.
염산방조제는 아세물산(주) 옆으로 돌아서 칠산바다 방향으로 이어진다.
방조제 제방길을 돌아서 칠산로5길과 재회한다. 아세아물산(주) 종묘양식장 건물과 뒤쪽에 가음산이 보인다.
칠산로5길 아세아물산(주) 입구, 염산방조제가 꺾어지는 지점 앞에 서해랑길 영광 36·37코스 안내도, 칠산갯길 300리 안내도와 이정목이 세워져 있고, 이정목 기둥에 서해랑길 37코스 시작점 표지가 붙어 있다.
서해랑길 36코스 종점이자 37코스 시작지점에, 서해랑길 영광 36·37코스 안내도, 칠산갯길 300리 안내도와 이정목이 세워져 있으며, 이정목 기둥에 서해랑길 37코스 시작점 표지가 붙어 있다.
칠산로5길 서해랑길 36코스 종점이자 37코스 시작지점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가음산과 아세아물산 종묘양식장이 보인다.
칠산로5길 서해랑길 36코스 종점이자 37코스 시작지점이다. 건너편은 아세아물산(주) 건물인데, 폐업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