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초고 2017810029 미디어문예창작과 정나래
<진정한 행복>
“3월에 웬 눈이람?”
트럭기사는 시나브로 어두워지는 창밖을 보며 투덜거렸다. 3월인데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마을근처를 지나는 도로에 과속 방지턱이 여러 개 있었다. 창밖을 보며 투덜거리던 기사가 뒤늦게 과속방지턱을 발견하고 빠르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순간 트럭이 크게 출렁거렸다.
‘덜커덩 쿵.’
방지 턱을 넘는 트럭에서 물건하나가 떨어졌다. 트럭기사는 물건이 떨어진 줄 모르고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아악!”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여기가 어디지?”
한참 후 정신이 든 나는 눈을 떴다. 트럭 위에서 보았던 잿빛 하늘 그 구름사이로 해가 막 떠오르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트럭은 보이지 않고 가끔 지나가는 차 소리만 들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이곳에 있다니!”
꿈만 같았다. 저 구름을 타고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이 기뻤다.
늘 어디론가 도망쳐버리고 싶은 나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의자다.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을 무릎에 앉힐 수도 없는 의자. 배고픈 사람들을 무릎에 앉혀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주는 음식점의 의자도 아니다.
내 무릎에는 큰 죄를 지은 죄수가 마지막으로 앉아 있는 의자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을 무릎에 앉혀야만 하는 늘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의자다. 그곳을 떠날 수만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 곳이어도 좋겠다고. 평생 기다리는 마음으로 빈 의자로 살더라도 그곳에서만큼은 탈출하고 싶었었다.
방지 턱을 넘던 트럭이 크게 출렁거릴 때 탈출하고 픈 간절한 마음을 담아 온 몸을 힘껏 비틀었을 뿐인데 이렇게 탈출을 하게 것이었다.
“아! 내가 그곳에서 탈출을 하다니... 이건 꿈 일거야.”
그러면서 꿈이 아니길 바랐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로 옆에는 버스정류장이보였고 길 저편으로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있었다, 그 뒤로 작은 마을이 보였는데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따뜻한 실내에서만 지내와서인지 몸이 춥고 겁이 났지만 그 곳에서 나왔다는 기쁨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기도가 이루어지다니...”
다시는 무릎에 앉은 사람의 불안한 마음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아주 작은 꿈 하나가 생겨났다.
“ 내 무릎에서 누군가가 편안하게 쉬어갔으면..... 아니야 더 이상 욕심내면 안 되지 .”
구름이 걷히고 따스한 햇살이 얼굴을 비췄다.
“아! 해님!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해님을 보게 되다니!”
내가 의자가 되기 전, 커다란 나무였을 때, 아침마다 해님을 맞이하던 감동이 떠올랐다. 해님은 점점 솟아올라 내 몸에도 따스한 햇볕이 스며들고 있었다. 내가 어린 나무였을 때 기분 좋을 때마다 부르던 콧노래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흥얼거리고 있었다.
반짝반짝 고운 햇살
보드랍게 나를 어루만지니
아! 포근한 꿈결 같아라
“아! 얼마 만에 불러보는 노래인가!”
내가 아직도 이 노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햇살을 타고 새처럼 날아갈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저만치서 할머니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할머니는 버스 정거장 의자에 허리를 두드리며 앉았다. 나는 할머니와 눈을 맞추고 싶어 고개를 길게 빼고 쳐다보았지만 할머니는 좀처럼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한참동안 차가 오는 방향을 보고 있던 할머니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할머니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게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때 맞춰 달려온 버스가 할머니를 태우고 엔진소리를 내며 떠났다. 버스가 떠나자 그 뒤로 하얀 매연이 상쾌한 공기를 흐려놓았다.
눈발이 그친 3월의 햇살은 따스했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온 몸으로 받으며 멀리 보이는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마을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해는 머리위로 떠올랐다.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사실에 몸은 논에 박혀 있지만 마음은 둥둥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길 반대방향에서 버스가 멈추더니 가져갔던 물건을 다시 꺼내놓듯 할머니를 내려놓고는 매연을 뿜으며 쌩 달려갔다. 할머니 손에는 장터약국이라는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할머니가 내게로 걸어왔다.
어쩌면 내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마음도 잔뜩 부풀어 올랐다. 할머니가 내 앞에 다가오더니 내 몸을 이리저리 만졌다. 할머니의 손길이 두근거리는 마음과 합쳐져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나를 만지던 할머니의 손길도 멈추고 뒷모습을 모이며 할머니가 돌아갔다. 기대가 컸던 만큼 내 마음엔 커다란 실망감이 큰 물결이 파도처럼 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날아갈듯 기뻤던 마음은 휭하니 사라지고 팽팽하던 풍선에 바람이 픽 빠지듯 힘도 빠졌다.
“내 주제에 무얼 더 바라겠어.”
다시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데 ‘드르륵 드르륵‘ 소리가 났다. 눈을 떠보니 저만치서 할머니가 손수레를 끌고 오고 있었다. 할머니는 내 앞에 멈춰 섰다.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쩌면 한 번쯤 누군가를 위해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에 가슴은 다시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끄는 손수레위에서 쳐다본 하늘은 바다 같았다. 내가 어린나무였을 때 엄마가 들려주던 바다의 모습 같았다. 나는 하얀 구름을 타고 푸른 바다 위를 날고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 집에 도착했다. 기와지붕으로 된 작은집에 마당이 있고 마당 끝에는 감나무가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밑에 나보다 작은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이제 친구가 생겨서 심심하지 않겠구나.’
할머니는 나를 작은 의자 옆에 놓으며 말했다.
“ 하하하 진짜 이상하게 생겼다!.”
작은 의자는 나를 보자마자 한마디 툭 던지고는 쌩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영감 이리 나와 보우 .”
할머니가 큰 소리로 부르자 지팡이 짚은 할아버지가 절룩거리며 나왔다.
“영감 이제부터 저 의자에 앉아서 쉬시구려. 이제부터 작은 의자는 내가 앉을테니...... 조금 높은 의자라 영감이 앉기에 좋을거에요.”
할아버지도 할머니처럼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만져보다가 흔들어 보았다. 나는 어지러웠지만 누군가를 위해 다시 살아갈 희망에 힘을 꽉 주면서 참았다.
할아버지가 내 위에 앉았다. 나에게 몸을 맡긴 할아버지의 무게가 나를 지그시 눌렀다. 할아버지의 편안한 숨소리가 내 마음까지 전해졌다.
“아, 의자로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야! 이런 기분이구나.”
그동안 내 무릎에 앉아 삶의 마지막 순간의 마음을 함께 느끼며 나도 덩달아 불안한 세월을 보냈는데, 누군가 나에게 앉아 편히 쉴 수 있는 날을 바라며 기도하곤 했다. 언젠가부터 그 꿈마저 포기한 상태였었다. 그러다가 새로 지은 교도소로 이사를 가던 날 트럭에서 떨어져 오늘 이렇게 할아버지를 내 무릎에 앉힐 수 있게 된 것이다. 꿈만 같았다. 감격스러웠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봄 하늘이었지만 내 마음처럼 파랬다. 그렇게 나는 꿈에 그리던 첫 날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 불평불만이 가득차 툴툴거리던 작은 의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 넌 뭐가 그리 좋아서 매일매일 싱글 벙글이니? 기분 나쁘게!"
"······."
"난 네가 싫어! 내가 그동안 얼마나 귀하게 살았었는데, 지금 감나무 밑에서 너 같은 애하고 같이 지내다니 .”
작은 의자가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냥 모든 게 즐겁구나! 하고 생각해봐. 그럼 너도 즐거워 질거야!”
“잘난 체 하지마! 난 아주 귀하게 살았어. 이렇게 사는 것도 자존심 상한데 어떻게 즐거울 수가 있겠니?”
"······."
“ 이런 처지를 즐거워하는 걸 보면 네가 살던 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궁금해진다.”
작은 의자가 비꼬듯 말했지만 나는 입가에 미소만 지었다. 의자는 나를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종일 등을 돌렸다.
봄이 무르익어 날이 따뜻해지니 땅속의 개미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알 속에 있던 곤충들도 하나 둘씩 밖으로 기어 나왔다.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개미가 내 몸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벌레들도 가끔씩 나를 지나갔다. 그때마다 몸이 간지러웠지만 이정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봄비가 내려 마당의 흙이 튀어 내 다리에 달라붙어 지져 분 해 졌다. 나는 그 흙 내음에 지그시 눈을 감고 물방울에 붙은 흙이 튀어 다리에 붙는 것을 즐겼다.
“ 다유 자존심 상해. 이런 너랑 같이 있다니...”
그 때마다 작은 의자는 나를 이해 못하겠다며 빈정거렸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더 궁금해 했다.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작은 의자가 나를 더 싫어 할까봐 말하지 못했다. 또 다시는 지난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작은 의자는 늘 툴툴대며 불만 이었지만, 그래도 그런 친구가 있어서 외롭지 않고 좋았다.
그렇게 가끔 툴툴대던 작은 의자가 어느 날부터는 아예 나를 본 척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왜 나를 못 본 척 하는 거야?”
"······."
“말 좀 해봐! 내가 그렇게 싫은 거니?”
“흥 네가 어디서 왔는지 물어봐도 대답 안 하는데 그런 너랑 말하고 싶겠니!”
"······."
“벌레가 네 몸을 기어 다녀도 비오는 날 흙이 다리에 튀어도 넌 그냥 헤헤 웃기만하잖아.!”
"······."
“너같이 어디서 온 줄도 모르는 애하고 말하기 싫으니 저리가! ”
“그랬었구나! 벌레가 내 몸을 기어 다녀도, 비바람이 불고 흙이 내 몸에 달라붙어도, 난 지금이 행복해!”
"······."
“누군가를 위해 사는 건 행복한 일이야! 난 그동안 누구를 위해 살아보지 못했어.”
“칫! 지금 잘난 체 하는 거니? ”
나는 고민하다가 내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멋진 의자로 태어났어. 멋진 곳에서 살고 싶은 꿈이 가득 했었지 지친 사람들을 내 무릎에서 쉬게 하면서 살고 싶었어. 그런데 잔뜩 기대를 가지고 간 곳은 으스스하고 어둠이 가득한 곳이었어. 희망이 없는 곳 누군가를 위해 살 수도 없는 곳!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 쳐도 자고 일어나면 적막만 가득했던······."
"······."
내 무릎에 앉았던 사람들은 모두 이슬로 사라졌어. 희망이 없는 그 곳이었지······."
나는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는 그 곳을 벗어날 수 없을거라 생각했었어. 그런 내가 지금 누군가를 위해 살고 있잖아! 나는 매일 매일이 감사해! 내 몸을 비춰주는 햇살도,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내 다리를 간지럽히는 벌레들까지 모두 감사할 일이야!”
"······."
나는 속이 시원했다.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의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한참을 쳐다보더니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내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 들킬까봐 얼른 산을 바라보았다.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기억이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잡은 손에 힘을 꼭 주었다.
햇볕이 따뜻한 오후가 되자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부축하고 나왔다. 그리고는 나와 작은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영감 오늘따라 이 작은 의자가 더욱 편안하게 느껴지네요. 이리와 앉아 보실래요?"
"할멈 이 의자도 오늘은 내 마음까지 편안하게 느껴져요. "
"그러게 말이에요. 이렇게 우리를 위해 종일 나무 밑에 있는 이 의자들이 참 고맙네요. "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무릎에 앉힌 두 의자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