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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차 설악산 널널산행 - 밉상 강요이
[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8)
2008-06-10 14:04:49
[196차] 설악산 널널산행
2008. 6. 10. / 밉상 강요이
산행일 : 2008. 6. 6~7. (1박2일), 맑고 가끔 흐림.
산행길 :
? 1일차 (6/06) : 남교리-12선녀탕 계곡-안산갈림길-대승령-대승폭포-장수대
? 2일차 (6/07) : 장수대-대승령-서북능선-귀때기청봉-한계삼거리-한계령
참석자 : 광용, 세우, 경호, 학희, 규홍, 민영, 은수, 병욱, 재일, 재봉, 문수, 인식, 인섭,
병효. (총 14명)
우선 어설픈 대장의 꾐에 빠져 <설악산 널널산행>에 14명이란 대군이 참가하게 되었음을 참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대장이 미쳐 생각지 못한 코스의 난이도가 우리를 좀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이 점 억수로 미안하게 생각하며, 그래도 남겨둔 서북능선의 마지막 구간(한계삼거리에서 대청까지)을 함께할 날을 기대하면서 지난 이틀 동안의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지금까지 원정산행을 계획하면서 참석자가 10명이 넘은 경우는 별로 없었던 지라 큰 기대는 안 했지만, 6/3(화)에 있었던 세우의 중국 상해 부임 번개모임에서 8~9명이 참석할 거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다음날 확인해 보니 점차 사실로 드러나더라. 몇몇 산우들에게는 호객행위도 하고, 또 다른 몇몇은 참석이 어려울 거라며 꼬리를 내렸다가 떠나기 전야에서야 참석하겠노라고 내게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최종적으로 14명의 대군이 형성되었더라.
1차 집결지 팔당대교북단 Cafe ‘Good Time’에는 7:30 정시에 커다란 승용차 세 대가 모여들고, 길 선택의 문제를 잘 못 풀어 병효 대사가 혼자 좀 늦게 도착한다. 안주인이 있든 없든 커피 타는 데는 전혀 이상이 없는 카페 문을 열고 커피 한 모금으로 텁텁한 입안을 헹군다. 14인의 나무꾼들이 세 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8:00 설악으로 출발이다. 연휴를 맞아 길을 꽉 메운 차량들은 양평을 지나면서 조금 수월해진다.
밀렸던 시간을 보충하려는 듯 홍천을 지나며 가속페달을 맘껏 밟아댄다. 10:50에 도착한 남교리, 12선녀탕 들머리에서 설악산 약초로 담근 더덕동동주 한 사발로 목을 축이고 11:05 산행을 시작한다. 전날 내린 비로 촉촉히 젖은 산길은 가끔씩 발목을 낚아채기도 하지만, 이슬처럼 상큼한 내음은 공해에 찌든 폐포를 깨끗이 씻어주는 듯하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내딛는 발걸음에 물소리 새소리는 제각기 장단을 맞추느라 절로 흥얼거린다.
큰 바위 주변에는 이리저리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고, 자갈과 모래가 뒤엉켜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수해 때 그렇게 큰 난리를 겪었으니 100년 넘은 고목인들 풀인들 바위인들 온전할 수가 있었을까? 그나마 널부러진 나뭇가지 길이를 맞춰 잘라 차곡차곡 쌓아둔 것은 나무꾼의 통행을 가능하게 하려는 몸부림이었나 보다.
물소리가 조금씩 크게 들릴 때쯤, 투명한 옥색 빛깔 웅덩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걸로 보아 12선녀들이 노닐었던 곳인가 보다. 나무꾼은 14명이나 되는데 어떻게 짝을 맞춘다? 30년 전 미팅 때 쓰던 방법을 동원해야 하나? 무슨 폭포라며 이름을 본 적은 있지만 어느 게 어느 건지 알 수가 없다. 사진으로 많이 보아온 복숭아탕 안에는 자갈이 수북이 쌓인 채로 우리들을 맞이한다. 그 위 아래 탕 주변에도 모래, 자갈이 쌓여 있어 2년 전 규빈이와 다녀갔을 때의 깨끗함을 볼 수 없어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어쩌랴! 그 자체가 자연의 일부인 것을…… 단지 ‘인재는 없어야 한다’는 큰 명제 하나 안고 간다.
전에 없던 목재 계단과 데크는 편리해 보이기는 하지만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는 거부감은 지울 수가 없다. 하기야, 저쪽 외설악의 천불동 계곡만 하더라도 철제 계단 하나 설치해 두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그 계곡을 올라볼 수나 있었을까 여기니, <자연과 조화되는 인공물이어야 한다>는 결론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지 싶다.
아직 나무와 페인트 냄새가 가시지 않은 계단길을 오르며 복숭아탕을 지난 자리에서 점심상을 차린다. 호기를 자랑하며 선두로 먼저 올라간 펭귄은 문수 선달이 부르는 무전 호출에 다시 불려 내려와야만 했다. 하나하나 펼쳐보니 성찬이라, 옛날 나무꾼들은 이토록 풍성한 성찬을 맛보기나 했을까? 내가 쫄고 병욱이 옆에 앉게 된 것도 복이라면 복일 터, 각종 산나물에, 돼지볶음에, 재봉 선사의 산딸기술, 물처럼 세우가 갖고 온 포도주는 코르크마개를 도로 밀어 넣고서야 맛을 볼 수 있었던 진풍경도,,,,,,, 다 기억을 못하겠다.
다시 배낭을 정리하고 길을 간다. 1진은 벌써 앞서 나아갔고, 2진으로는 재봉 선사가 선두다. 급해지는 경사 따라 조금씩 힘들어하는 모습에 모두가 힘내라고 응원하는 형식이다. 1박하는 산행에는 처음으로 참가했다는 재봉선사, 이번에 새로 마련한 신발을 처음 신고 설악산행에 나섰고, 지난 번 아들녀석 지리산 종주 때 사준 50리터 배낭도 새것이나 마찬가지다. 다 채우지 못해 조금 헐렁한 저 배낭을 꽉 채워 산행 한 번 해보자며 농을 건넨다. 아뿔싸, 그 일은 예상외로 빨리 이루어지고 말았는데……
대승령이 가까워질 무렵 주변에는 안개가 자욱이 내려 앉는다. 아니! 서북주능선에 올라가면 조망이 일품이라 그렇게 선전해왔는데, 기대를 벗어나나 싶어 안달이 난다. 남설악의 점봉산, 가리봉, 삼형제봉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접어야 하나? 안산갈림길에서 안개가 조금 걷히는가 싶지만 남설악의 조망은 허락하지 않는다.
다시 1 km를 걸어 대승령에 당도, 충분히 휴식한다. 근데 6.25때 썼던 건지 녹 쓴 소총 총열 하나가 방아쇠뭉치까지 달린 채로 땅바닥에 꽂혀 있다. 아마도 그 위에는 철모도 하나 얹혀 있었던 것일 게다. 그 당시 이런 깊은 산골짜기에서도 그 치열했던 상황을 웅변하나 싶어 마음이 찡~하다. 현충일을 맞아 혼자 잠시 눈을 감아 본다.
장수대로 내려가는 경사 급한 길에는 대부분 계단을 설치해뒀다. 전에는 계단 없는 그냥 흙 길이었는데 지난 수해 이후 정비한 모양이다. 비교적 편안하게 1.8 km를 내려오면 우리나라 3대 폭포중의 하나인 대승폭포다. 높이가 88미터라고 하니 엄청나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폭포는 요즘 가뭄에 물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전날까지 내린 비로 비교적 양호한 장관을 볼 수 있어 만족스럽다. 10미터만 더 내려오면 좋았을 걸, 전망대 바로 위에서 포도주 한 병 마시느라 좋은 구경 놓친 산우들이 무려 10명이라, 그 산우들을 데리러 올라간 펭귄은 되려 자신이 포도주에 목을 축이고 내려오니, 세상에 믿을 새(?) 하나도 없더라.
다시 900미터를 계단 따라 내려오면 장수대 통제소다. 이렇게 하여 설악산 1박2일 산행의 1일차 산행을 마친다. 한계령으로 가는 44번 국도 주변에 자리한 이곳에는 지난 수해로 야영장도 폐쇄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잠시 땀을 훔치고, 문수 선달과 세우가 택시 타고 남교리로 가서 차량을 회수해 오기로 한다. 근데 너무 오래 기다린다. 연락해보니 중간에 교통사고가 있어 우리가 그쪽으로 가는 게 낫겠단다. 길 앞에 서 있는 택시 두 대로 나눠 타고 우리가 남교리로 간다. 사고 때문에 비용 쪼메 더 들었다.
일단 속초 중앙시장으로 가기로 하고 설악 올 때마다 들른 적 있는 횟집에 예약을 해둔다. 승용차로 중앙시장으로 이동하고 예약된 횟집에는 미리 상이 잘 차려져 있다. 또 장사님이 갖고 온 51도짜리 술도 선을 보고, 느림보 규홍이가 조용히 제조하는 폭탄을 모두 한 잔씩 마시고, 집안 제사 때문에 일찍 가야 하는 쫄고 병욱이는 안절부절이다. 예약해둔 버스 편을 한 차례 연기하고, 또 저녁 늦게는 이튿날 아침으로 미뤄둔다. 물처럼 세우의 걸쭉한 입담으로 울릉도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학희의 다정다감한 얘기로 분위기를 돋운다. 오늘 산행에서 비시기 날아다녔던 펭귄은 ‘사이드플라이’에서 따온 <비사>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다시 자리를 옮겨 노래방에서는 현충일답게 각자 18번 노래로 흥겹게 놀다가 찜질방에서 잠시 눈을 붙인다. 작년 지리산 피아-뱀사골 산행 후 해본 경험이 있어 목욕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찜질방이 좋겠다는 의견에 한 표…… 결과는 민박이나 여관을 찾아가는 것보다는 경제적일 것이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이튿날, 5시경 차례대로 비시시 눈을 뜬다. 모두들 제대로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쾡~한 모습이다. 차례를 기다려 주차장에 다 모인 시각이 6시15분쯤 되었나? 규홍이와 병욱이는 가야 한다. 병욱이는 집안 제사라 하니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규홍이는 약30년 전에 운명을 달리한 전우를 위해 남아있는 전우들이 매년 모임을 갖는단다. 근무했던 양구로 가서 그 넋을 위로하러 간단다. 참으로 찐~한 전우애다. 잠시 감동이다.
펭귄과 인섭이가 도착하고 두 대의 차량에 구겨 앉아 백담사로 간다. <백담순두부집>에서 아침 먹고, 도시락도 싸 달라고 할 거다. 그 동네에서 제일 오래된 집, 장맛이 일품인 집, 그래서 모든 반찬이 입에 딱 맞는 집이다. 또 하나 소개하면 용대리에서 진부령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어 약 150미터쯤 올라가면 왼편에 있는 <용바위식당>, 이곳 역시 오래된 집이다. 황태구이, 황태국으로 유명한데 거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을 거다. 혹시 지나칠 일 있으면 한번 들러 보시길……
순두부로 식사하고, 도시락 담아 들고, 볼일 좀 보고, 준비 완료하니 7시40분이다. 어제 내려왔던 장수대로 간다. 한계령에서 시작하자는 산우들의 의견에 고개 돌리고 대답을 않으니, 할 수 없다는 찝찝한 표정으로 tv가 켜지고 꺼지고 알아서 한다. 08:05 시작한 2일차 산행, 어제 내려왔던 길인데 뭐 볼 게 있냐는 심정이다. 아무도 말이 없다. 불러도 대답 없는 걸로 봐서 어제 술이 과한 건지, 잠이 모자란 건지……
대승폭포에서 잠시 쉬어간다. 폭포는 어제 모습 그대로 가는 물줄기가 바람에 날린다. 사과 한 입에, 초콜릿 하나, 아무도 말이 없다. 앞으로 더 힘든 산행이 남아 있는데…… 암튼 가야지. 다시 길을 오른다. 잘 다듬어진 계단길이라 2년 전보다는 수월하다. 앞선 산우 발만 보고 오르며, 장수대에서 1시간45분만에 대승령에 닿는다. 지도에 2시간이라 돼있는데 조금 빨리 온 거라고 위로해본다. 하지만 이게 함정이란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는 어제의 길을 이어 능선 따라 동쪽 대청봉 방향으로 간다. 귀때기청봉까지 5.1 Km만 가면 다 간 거나 마찬가지라며 느긋한 표정들이다. 펭귄과 재봉 선사가 조금 힘들어 하는 것 같고, 인섭이는 계속 잠만 자려하고, 다른 산우들은 힘들지만 내색은 않는 듯하다. 괴물 재일이는 재봉 선사가 걱정되어 배낭을 대신 메고 가겠다 하지만 재봉선사는 ‘내가 진짜 힘들면 얘기하께’ 하며 다음으로 미룬다.
다시 길을 떠나고, 오르락 내리락 험한 등로를 따라 나아간다. 예전에 로프가 매여 있었던 등로에는 계단이 설치돼있는데 그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계단 위 전망대에서 남설악의 장관을 보여주겠다던 약속은 공수표가 될 지도 모르겠다. 구름 가득한 하늘이 가리봉을 감싸고 있는 듯하다. 조금씩 밝아지는 주변모습에서 저 구름이 걷히고 나면 귀청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며 위로해 본다. 내설악 쪽으로는 성미 급한 산우들이 벌써 공룡과 용아를 찾아 다닌다. 비교적 조망이 좋은 상태이긴 하지만 용아를 만나려면 아직 많이 남았다.
앞서가던 문수 선달이 등로 옆의 한적한 장소를 찾아낸다. 11시 반에 점심상을 차린다. 아침에 싸온 도시락 펼쳐놓으니 산상 뷔페다. 그 아줌마, 꼼꼼히도 챙겨줬다. 더덕, 깻잎, 돼지볶음, 상추쌈, 김치, 마늘장아찌,,,,, 생선만 빠지고 곧추 갖춘 듯하다. 재봉 선사가 ‘진류푸’ 정상주를 내놓지만 아무도 마시는 이가 없다. 인섭이만 한 잔을 마셨나 보다. 아무래도 어제 술이 좀 과했나 보다.
우리가 가는 반대방향에서 오는 산객들에게 묻는다.
“한계령에서 몇 시에 출발했습니까?”
“새벽에 출발했습니다.”
이런 답은 뭔가 잘못됐다는 뜻일 거라며 그냥 지나친다. 다시 다른 산행팀에게 물어도 거의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뭔가 좀 불안한 기운이 다가온다. 너덜길이니 조심하라는 말을 전하고 길을 재촉한다.
이제부터가 고행의 시작이었으니, 이를 미리 인지한 산우가 없었나 보다. 봉우리마다 이름이 있을 것이나 처음 가는 산길에 그 이름들이 기억에 담겨지질 않는다. 작은 봉우리를 우회하기도 하고 급한 계단길을 오르내리며 다가가면, 뾰족한 돌로 꽉 메워져 있는 너덜길이다. 말로만 들었던 그 길을 가려니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비사’라는 새 별명을 받은 펭귄은 최근에 좀처럼 켜지 않던 tv를 마구 켜댄다. 이러면 ‘비사’를 회수한다는 엄포에도 불구하고 tv는 계속 on/off를 반복한다.
앞쪽으로 귀때기청봉이 바로 바라 보이는 길목에서
“힘들면 그냥 저기 사태 난 길을 따라 엉덩이 썰매 타고 내려가자.”
는 말이 많은 산우들을 더 약 오르게 했나 보다.
“밉상이 저거 진짜로 미워죽겠네. 저거 우째뿌꼬?”
“밉상이 저거 귀싸대기 한 번 맞아야 되겠네.”
“귀청에 가거덩 함 보자. 귀때기를 벌겋게 쌔리줄 끼다.”
거의 반란 직전이다.
뒤따라 오던 재일이가 배낭 두 개를 메고 왔다. 가만 보니 재봉 선사 배낭이다. 그 큰 배낭에 재일이 배낭 작은 넘을 집어 넣는다. 옆구리의 물통 빼고 나니 수월하게 들어간다. 졸지에 재봉선사 배낭이 임신을 해버렸다. 그 큰 배낭 한 번 꽉 채워 산행해 보자던 바램이 하루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ㅎㅎㅎㅎㅎ
“꿈은 이루어진다.”
너덜너덜 힘든 길을 가는데, 힘들어하던 재봉 선사가 날 보고
“뭐~~? 설악산 널널산행? 좋아하네?”
“아~~ 그거? 강원도 사투리로 너덜을 널널이라 칸다 카데. 그래서 설악산 너덜산행, 와? 잘못됐나?”
하며 약을 더 올리니, 힘 빠진 재봉 선사 답변할 가치도 못 느끼는 듯,
“문~디~~ 지랄하네!!”
드뎌 귀청에 당도하여 모두가 모였다. 주변을 조망한다. 아직도 남설악은 구름모자를 쓰고 있고, 내설악에는 용아와 공룡이 겹쳐 보인다. 사진 안내판의 설명이 없었다면 공룡만 보고 용아가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 같다. 대중소청이 선명하고, 봉정암이 코앞이다. 좌우로 이름 붙은 골짜기들이 있지만 어디가 어딘지는 내 능력 밖의 일이라 그냥 고이 접어둔다. 조망의 편안함도 잠시, 나를 불러 정상목 옆에 세운다. 귀싸대기 때린단다. 슬로모션으로 맞은 귀때기가 왜 그리도 아픈 건지? 이것으로 반란은 진압된 것인가?
한계삼거리까지 1.6km, 다시 길을 간다. 이제 내리막인데 이게 본격적인 너덜이다. 차량 회수를 위해 먼저 내려간 문수 선달, 민영 장사, 은수 여행은 이런 길을 날아다녔단다. 민첩하기로 유명한 장사가 너덜의 꼭지점만 디디며 날아가고, 숲에 가린 산길에서는 선달이 날아다녔단다. 아무리 빨리 다녔다 손 치더라도 산우회의 공식기록은 우리의 ‘가민 GPS’에 남아있는 기록이라는 데 이의 없을 줄 안다. 근데 이 기록 언제 확인해보겠노?
속도가 늦은 재봉 선사를 따라 내려간다. 종일 tv를 on/off 반복하는 펭귄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려가면서 길을 잃을 만한 곳에서 기다렸다가 표지기 있는 방향으로 방향을 돌린다. 한계삼거리에서 잠시 쉬어간다. 자기 물은 배낭에 남겨두고 남의 물을 먼저 마시는 아주 경제적(?)으로 행동하는 산우도 있고, 남에게 뺏겨버린 물을 찾아야 한다며 굳이 배낭에 든 물을 찾아 먹는 그런 산우도 있더라. 산행 시작 전에 물이 많이 필요할 테니 미리 준비하라 일렀건만 자기 량을 요량 못하는 산우가 아직 있는 모양이다.
이제 한계령까지 2.3km 남았다. 근데 이 길이 왜 이렇게 힘든 겨? 내려가야 할 길에 오르막이 왜이리 긴 겨? 모두들 궁시렁거리며 투덜투덜 내려온다. 설악루를 지나고 위령비 앞에는 잘 정돈된 꽃다발 하나가 놓여있다. 그 옛날 전투에서 산화한 전우들을 위한 작은 성의표시일 거라 여기며, 시절에 맞게 찾아와서 10시간20분에 걸친 2일차 설악산 서북능선 산행을 마친다.
차량을 회수해온 산우들과 먼저 내려간 산우들의 얼굴이 더 반가운 것은 그 힘든 산행을 무탈하게 완성했다는 뿌듯함 때문이었을까? 참, 어설픈 대장 만나 고생 많이 하게 해서 미안하고, 그 힘든 너덜길을 큰 탈 없이 완성해줘서 너무 고맙다. 12명의 나무꾼은 두 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일단 서울 방향으로 출발이다. 오는 도중, ‘가리산 막국수집’에 들러 막국수와 청국장으로 요기하고 많이 밀릴 걸로 예상되는 길을 달려간다.
힘든 산행 마치고 남들보다 먼저 내려가 차량 회수하느라 남들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한 문수 선달, 민영 장사, 겨울여행 은수, 세우도 너무 고맙소.
오고 가며 운전하느라 너무 힘들었을 재봉 선사, 물처럼 세우, 민영 장사, 느림보 규홍이, 모두 너무 고맙소.
주로 선두를 지키며 여러 가지 안내를 맡은 은수도 너무 수고했심다.
자신은 1박 산행이 처음이라 우기는 - 내 기억엔 주흘산 산행 때도 1박을 한 것 같은데 - 재봉 선사는 처음 신은 신발이 아무 탈 없어서 좋았고, 50리터 배낭 채우기도 바로 그 다음날 실행에 옮기니, 이번 산행은 기억에 남을 거요. 다음날에는 뭉친 다리 풀러 간다며 예봉산을 올랐다는데,,,,, 이제는 다 풀렸소?
너덜길을 날아다녔다는 민영 장사님, 운전하랴, 차량 회수하러 먼저 내려 가랴, 너무 수고 했심다. 며칠간 긴 출장이 있다구요? 잘 다녀오기 바랍니다. 앞으로 맡은 일에도 좋은 일만 가득하소.
울릉도 탐방에 이어 설악산행까지 가뿐하게 완성한 세우, 차량제공에 졸린 눈 부릅뜨며 장거리 운전에 애 많이 썼심다. 고맙고 수고 많았심다.
아마도 30년 전 먼저 간 전우를 위해 매년 그날을 기리며 찾아가는 규홍이, 정말 복 많이 받을 끼다. 고맙다.
집안의 제사 때문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쫄고 병욱이, 하루라도 시간 내줘서 고맙다. 그리고 제사는 잘 모셨제?
‘비사’라는 새로운 별칭을 잘 간직하길 바라며, 펭귄도 수고 많았다. 앞으로 물은 충분히 갖고 다니길 바란다.
늘 안전을 위해 묵묵히 뒷받침해주는 마루 대사님, 고생했심다. 어려운 일정 이틀간의 시간 내줘서 고맙고예……
늘 분위기를 업-시키는 재주를 가진 학희, 설악산 찬가를 다 들으려면 앞으로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까? 무릎에 조금 이상이 왔다는데 게안나?
길 떠나기 직전날밤 10시반에야 참석하겠노라며 연락해온 갱호 곡사, 힘든 산행에 기를 다 뺏겼다며 입이 툭 튀어 나왔다. 그러니까 담에는 니가 대장 하라니까? 수고 많았심다.
요즘 포청 일로 쌓인 스트레스 때문인지, 전날 마신 술 때문인지, 기댈 데만 있으면 눈을 붙이고 보는 김총 인섭이, 이번 산행으로 스트레스 확~~ 날려버렸기 바란다. 수고 했심다.
제일(?) 먼 길을 달려온 괴물 재일이, 배낭 두 개 메는 거는 이제 단골이 된 건가? 암튼 그 힘든 일을 묵묵히 해 주는 당신이 있어 너무 든든함다. 고맙심다. 수고 많았심다.
** 참고로, 각 구간별 시각을 보면,,,,,
1일차
11:05 남교리 12선녀탕 입구
13:29 복숭아탕 위 점심
15:28 안산갈림길
15:58 대승령
17:03 대승폭포
17:34 장수대
2일차
08:25 장수대
09:03 대승폭포
10:19 대승령
15:42 귀때기청봉
17:25 한계3거리
18:50 한계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