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2012년의 여름 이야기(3)>
◎ 하느님께 드린 약속
주치의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서너 차례 들었기 때문에 내가 입을 검정 옷도 사 두었고, 장롱 위 높은데 보관해 두었던 수의(壽衣)와 영정 사진도 낮은 곳으로 내려놓았다. 그런데 어제 오늘 어머님의 상태는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산소 수치가 높아지며 병세가 호전 되는 기미가 보여 일반 병실로 다시 들어가실 것 같다.
어머님 입원치료 중 겪게 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우렁찬 목소리로 밤낮으로 쉬지 않고 말씀을 하시어, 환자와 다른 보호자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1인실로 옮겨 달라고 부탁해 놓은 지 여러 날이 되었지만 이 병원은 1인실이 잘 나오지를 않는다고 한다.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싶어도 항생제를 투여하고 있는 중에는 병원을 바’꾸는 것이 좋지 않다고 누군가 말해 주었다.
궁여지책으로 간호사실 옆, 집중치료실이 비어 있어 그곳을 쓰고 계신 것인데, 다시 병실로 들어가야 한다면 이만 저만한 고민거리가 아니다. 그리고 이 방도 중환자가 있을 때는 비워주어야 한다. 어제도 어떤 환자가 호흡이 일시적으로 중지되는 응급상황이 발생하여 어머님 침대를 빼어 병실로 갔다가 다시 집어넣는 사태가 벌어졌었다.
폐렴이 어느 정도 나아 퇴원하여 요양 병원으로 가신다 해도 남에게 피해를 안 주고 공동생활을 잘 하실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첫 날부터 어머님을 보살펴 드렸던 간병인은 사흘 만에 그만 두었다. 잠을 통 잘 수가 없었고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항의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간병인도 나를 보면 ” 그 동안 어떻게 사셨어요? 아이들이 ‘머리에서 쥐가 난다’는 말을 하길래 무슨 말인가 했더니 정말 머리에서 쥐가 나네요.” 한다.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 육체적 수고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일로 신경을 쓰느라 머리가 아프다.
그래도 나는 힘들다고 크게 불평을 할 수가 없다. 얼마 전 하느님께 드린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님과 남편의 입원 소동이 있기 전인 지난 6월 아들 프란체스코가 직장건강검진을 제 처와 함께 했는데 며느리 로사의 검진 결과표에 정밀 검사를 필요로 하는 항목이 있었다. 초음파 상에 담도(담관)가 두껍다는 것이었다.
전부터 건강검진 때면 지적되던 것인데 병원에 가지 않고 지내다가 이번에는 마음먹고 아산병원소화기 내과를 찾아갔다. 췌담도 소화기 내과 분야에서 알아주는 명의인 담당교수는 초음파 사진을 본 후 담도가 두껍다는 것은 좋지 않은 현상이라며 CT촬영과 혈액검사를 하게 하였다. 췌 담도에 병이 생기면 얼마나 무서운 것인 가를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을 들은 후 나 혼자 겪었던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져봐도 결코 무사히 통과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때 나는 하느님과 흥정을 하고 말았다.
"어머님을 앞으로 20년을 더 모셔도 좋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불평을 하지 않겠으니 제발 로사가 무사하게 해주세요.” 했다. 한 달 후 어머님의 입원소동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히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던 때였다.
로사의 CT촬영 결과는 선천성 담도 기형이었다. 평생을 기형인 채로 무사히 사는 사람도 있지만 둘에 하나는 암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췌장과 담도를 잘라내고 간에서 만들어지는 담즙을 십이지장으로 직접 연결시켜 주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기에 며칠 동안 잠 못 자고 졸였던 가슴을 쓸어 내렸다.
대학 입시철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 한 학생들 중에는 그 힘든 공부를 두고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라는 말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어머님 때문에 겪고 있는 나의 어려움을 안쓰럽게 보는 형제 친구들에게 ‘어머니를 모시는 일이 가장 쉬워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식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 일만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가장 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하느님께 ‘예’라고 말씀 드리며 내게 주어진 이 상황을 받아드린다.
2012.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