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도, 아침 저녁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를 신호 삼아 조금씩 힘을 뺍니다.
아직 남아있는 한 낮의 열기가 가을을 익히는 마지막 사명을 부지런히 감당하고 있는 8월 마지막 주일 오후,
저희는 세종시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흰돌 교회에 다녀 왔습니다.
주일 오후에 교회에 남아 있던 아이들이 우루루 함께 동행해 주었습니다.
그냥, 햇살 가득 받는 교회가 참 눈부시다.... 이렇게만 봤는데,
십자가 아래에 커다란 별의 의미...... 긴 시간 이곳에 아픔을 주었다는 것과,
여전히 그 아픔과 싸우고 계시는 목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왜 더 찬란히 빛났는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추억...], [ 젊은 날의 회상...]과 같은 꽃말을 지닌 "꽃범의 꼬리..."
이곳에 피어난 이 꽃 속에 담겨진 그 젊은 날은 언제일까요....
우리 목사님이 무너질까 걱정하시던 이 교회 건물의 나이는 46년 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이 동네에선 유일한 교회였고, 교인들이 손수 지은 예배당 이라고 합니다.
낮에는 다들 일하시고, 늦은 저녁 교회 앞에 흐르는 강에서 모래를 퍼다 나르며 그렇게 눈물로 기쁨으로 지었을 이 교회,
보기보다 엄청 튼튼하다고 하시네요 ^^
흰돌교회의 역사는 70년이 훨씬 넘었고,
노회에서 허락을 받은 날이 1950. 4. 4 이었습니다만, 안타깝게 교회에 대한 역사 기록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괘도 찬송가 ^^
"흰구름 뭉게뭉게 피는 하늘에, 아침 해 명랑하게 솟아 오른다.." 그 명랑하게 솟아 오르던 햇살은 여전한데,
이 찬양을 부르던 아이들의 목소리는 어디로 갔을 까요....
그 아이들 중 두명이 ㅋㅋ 남아 있네요~ ^^
노후된 교회의 리모델링을 추진하려 하셨으나,
70년된 사택이 주저 앉아서, 급하게 13평 규모로 사택 공사를 진행중에 계셨습니다.
저당 잡힌 재정으로 시작한 공사가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합니다.
이곳은 1층 주일학교 예배당 입니다.
윗층에서 목사님 말씀중에 우당탕탕... 다다다다다.... 쿵쾅쿵쾅....
흡사 천정에서 쥐들이 경주를 하는 것 마냥 우리 아이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그 옛날의 시끌벅적함을 선물해 주었지요~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고..
이 연동면은 70%가 문중땅이라고 합니다. 하여 발전이 다른 곳보다 훨씬 더디게 진행중이지요.
교회 뒷쪽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계획이 있긴 한데, 아직은 정부의 허가를 얻지 못해서 진행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 부지도 반은 문중 땅, 반은 교회 땅...
의자에 앉아 계신 분들 자리가 절반은 교회 땅, 절반은 문중 땅 되시겄습니다 ^^
이 교회에 부임하신지 20년 되신 손성원 목사님.
처음에 교회에 올 때 남아 있던 성도는 9분...
지금은 재적20명에 출석 15명 정도 되십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아픔....
그 아픔은, 이 교회에서 33년 목회하신 전임 목사님이 [새일교회]라는 이단이었다는... (커다란 별이 표식임)
노회에서 권고를 받았음에도, 계속 이단에 몸 담고 있었기에..
하나 둘 성도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그렇게 흩어진 성도들이 개별적으로 교회를 세워 그저 오시겠다는 목사님 교파 따지지 않고 모셔서 세운 교회가 7개.
이 교회 주변에도 그렇게 개척한 감리교회가 있습니다.
그런 아픔 가운데 부임하셔서 얼마나 많은 마음 고생을 하셨을지, 짐작이 됩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전도를 하면 처음에 몇 번은 나오다가 '이단교회'라고 발길을 끊으신다고 합니다.
면단위 지역 교회들의 연합모임도 잘 안되는 상태이고,
불교의 강한 영향력 아래에 있기 때문에 초등학교때는 교회에 보내다가 조금 크면 아이들을 모두 절에 입적시킨다고 합니다
교회학교가 있는 교회가 불과 몇 군데뿐, 그것도 모두 성도들의 자녀로 이루어진 곳...
[믿음의 불모지...]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곁에서 두 아들 키우시며 (대학생과, 군복무중), 함께 등불되어 주신 사모님 ^^
한결아~ 그 맛나고 귀한 땅콩빵 ^^ 목사님 드리려고?
우연히 찍은 이 모습이 마음을 촉촉하게 적십니다.
우리의 윗 세대.. 그리고 다음 세대..
배고팠던 시절 그러나 영적으로는 더 없이 뜨겁고 갈급했던 그때..
풍요로운 시절 그러나 영적으로는 사사시대만큼 어두운 지금...
저희가 잘 이어가겠습니다.
전해주신 생명 잘 이어서, 이 아이들에게 까지 전하는 일... 게으르지 않도록요 .
ㅋ 자꾸만 무거워지는 글 ^^;; (기질탓? ㅋㅋㅋㅋㅋ)
우리 한교리 보믄서 웃어야징~
맛있는 빵을 손에 쥐어 줬다는 건!!!! 먹으라는 건데..
왜 자꾸 이상한 거 "이쁜 짓~ 웃어봐~ 윙크~" 시키는 거예욤???
설마 빵한테 이쁜 짓???? 안 그래도 격하게 싸랑하는 디~
피곤한 어른들~ 그래도 이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은 ㅋㅋㅋ
가끔 요렇게 날려주는 이 미소덕?
찬양 도중에 요즘 봉사로 고민 많으신 ㅋ 한 분이 이 작은 책자를 건네 줍니다.
초큼 크게 출력하믄 글씨도 커 지고 좋겠다믄서... ^^
어느 날 멋진 제본 찬양집이 건네지겠지요? 하핫;;
한시간 남짓, 우리는 무엇을 남기려고 오는 지요....
이유를 묻습니다.
우루루 왔다가 시끌시끌 소리만 남기고 떠난 자리가 더 휑하고 쓸쓸하진 않으실지...
그래도 사모님 손 한번 꼭 잡아드리고, 팔 한번 쓸어 드리고, 촉촉한 눈으로 웃어 드리는 일...
행여, 그 손길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으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그것으로 이 걸음에 힘을 내도 괜찮을 까요?
그리고, 우리가 돌아가서도 기도한다고...
여기서 하시는 귀한 목자의 삶을 기억하고 있다고.. 그러면, 응원이 되실까요?
[ 흰돌교회 기도제목 ]
(교회 주보에 올려진 제목 입니다)
1. 성전 건축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2. 성령이 역사하는 예배를 통하여 말씀과 기도와 전도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소서
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꾼들이 많이 일어나 지역을 섬기며 봉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세종시 동쪽 끝자락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부탁하셨습니다.)
첫댓글 우리가 그날 부른 찬송소리가 10년에 들어 보는 찬송소리라고 하시네요.
아래 층만 보다가 2층에 올라갔을 때, 저는 속으로 '어라? 잘못왔나?' 그랬지요.
이 정도면 우리가 다녀 본 농촌교회 중에서는 아주 좋은 모습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손성원 목사님이 교회 내력을 말씀하실 때, 아하, 그렇구나, 그런 아픔이 있었구나 했습니다.
이전 목회자가 이단교회를 지향하는 처지였으니,
저 별이 새일교회를 상징하거든요. 저 별을 없애 보려고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찍어 봤지만 한쪽만 일그러지게 했을 뿐,
이번엔 참 이상한 상처를 품은 교회를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그저 감사하다고, 10년 만에 들어보는 힘찬 찬송소리에 힘이 난다고, 목사님도 사모님도 그러시네요.
인사로 하시는 말씀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힘을 내셨으면! 찬송 소리, 기도 소리 거기 남겨 두고 돌아왔습니다.샬롬!
사진은 참 곱네요!
글이 언제올라오나했슴다~
기억하고새기고 기도하겠습니다..
똬~~~ ;;;
@민서엄마 ㅋㅋㅋ 작가님 지체하지마셔요~~~ㅋㅋㅋ
@현이 두리 그르니까요..몇번들락날락해쑴돠ㅋ
늘 그렇습니다만, 농촌교회를 방문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갈등하지요.
그런데 방문해서 그 교회 목사님 설명을 들으면 왜 여기 와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요.
그것 참 신기하지요. 샬롬!
이번 농촌 교회 방문은 동행이 많아 더 좋았습니다. 한 사람보다는 두사람이, 두사람 보다는 세사람이 더욱 힘이 되지요. 흰돌교회가 우리의 기도와 응원을 먹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힘을 내시길 함께 기도합니다.
아~멘
@현이 두리 그렇지요! 그냥 자리만 지켜 주셔도 서로가 힘이 되네요! ^^
궤도 찬송가와 주보,... 어릴 때 주일학교 때가 생각납니다..
매주 요절을 외우게 하신 호랑이 노처녀 부장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말순 부장님과 성정이 비슷한...^^
찬양집 크게 바꿔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지역번호가 044로 바뀌었더군요 명칭이 내판장로교회로 T전화에뜨는군요 아무튼 궤도도 찬양집도 안쓰신다네요 OHP로 하신답니다 더욱 부흥되길 기도할께요
연말가기 전에 매듭지을라 했구만~ ^^
@민서엄마 크리스마스선물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