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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끊임없이 비가 내립니다.
정말 지겹다는 생각이 들도록 비는 쉬지 않고, 구질구질 이어지고 있습니다.
"앵두가 다 익어가는디, 이번 주말이 절정일 거 같고만... 더 늦기 전에 따다가 술을 담가!" 하는 김 선생님의 전화에,
나는 '夢想?'에 와 있던 제자를 데리고 선생님 댁에 갔습니다.
차가 없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가야만 했는데, 원래는... '정자리'까지 걸어가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너무 비가 내려서, 산장아저씨께 부탁해... 거기까지는 트럭을 타고 갔습니다.
그랬더니, 버스 출발시간까지 30분 정도가 남아, 우리는 비를 피하려고 한 식당의 처마 밑으로 들어갔는데... 무료해서, 거기서 나는 하모니카를 불었습니다.
그 아래 냇가엔 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고, 이미 풀들은 모두 범람한 물에 한 쪽으로 쓰러져있는 모습이드라구요.
그래서 그 상황에 맞거나, 또 비에 관한 노래를 떠올리며 불었습니다.
'냇물아 흘러흘러' 하는 동요로 시작을 하다가, 내 젊은 시절의 노래인 '비의 나그네' '어제 내린 비' '봄비'... 같은 노래들을 떠올리며 그 멜로디를 따라 불었는데, 느낌은 처량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각자 가방을 메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어디 멀리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길 떠나온 나그네들이 비를 피해 어느 처마 밑에서 부는 하모니카.
"하모니카가 참 좋은 악기군요, 선생님..." 하고, 우두커니 옆에서... 하모니카를 듣고 있던 제자가 말하드라구요.
그래서,
"00아, 우리 여행하다(?) 돈 떨어지면... 나는 하모니카 불고, 너는 그 모자 벗어 군중들에게 돈을 받아가며 다녀도 되겠다. 안 그래?" 하면서 웃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 댁에 도착했는데,
비가 너무 내려 앵두를 딸 엄두조차 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게 되었고... 언제나처럼 하룻밤이 술이 취해, 훌쩍 지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아침 나절에 잠깐 비가 멈춰 줘, 우리는 앵두를 딸 수 있었는데요,
그리 크지 않은 나무에 얼마나 많은 앵두가 달렸던지... 정말 평생 그렇게 많은 앵두가 달린 나무는 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그 나무는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앵두나무와는 다른, 뭔가 개량종 같았는데요,
딴 앵두를 반절 정도는 선생님 댁에 놔두고, 우리는 댓병(팻트 병)으로 하나씩 담긴 앵두를 각자 들고 다시 '夢想?'으로 돌아왔습니다.
원래는 오늘 제자를 데리고 '강진 장' 구경을(별로 볼 것은 없지만) 시켜준 뒤, 서울로 보낼 예정이었기에,
정읍에서라도 바로 서울로 보낼 수 있었는데,
"00아, 내가 내일 아침에 전주에 나갈 일이 있으니... 그때 함께 전주에 나가, 너는 서울 가는 버스를 타고 올라가도 되잖겠냐?" 는 내말에,
"그래도 돼요?" 하더니, 좋아라 따라왔던 것입니다.
머리를 식히러 온 녀석은, 이런 분위기에서 나와 며칠을 보내는 것이... 싫지 않은가 보았습니다.
비를 맞아 옷과 신발이 다 젖어 걸으면서까지도......
버스에서 내려 정자리부터 걸어 돌아오는데, 아직도 가는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 사이에 물이 불어, 호수는 정말 꽉 찬 느낌이드라구요.
며칠 동안 끊임없이 내리는 비의 양이 적지 않았던 거지요.
그래서 호수 수위가 높아져, 산장할머니가 갈아 놓은 수수밭도 아랫부분은 물에 잠겨있지 않았겠습니까?
"수수밭이 물에 잠기믄, 수수를 먹지 못허는디..." 하고 걱정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산장 할머니가 어젯밤에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하는 생각이 아니 들지가 않았답니다.
그렇게,
'장마'라고는 하나, 아... 웬 놈의 비가 이리 내리는지......
방이고 몸이고, 모든 게 끈적끈적하고... 눅눅하기만 합니다.
오죽했으면, 새삼스럽게... '장마'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기까지 했는데,
여태까지 나는 한자 단어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장마'는, 한글로만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니,
''장마'가 순수한 한글인가?'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아무튼 지금은 잠깐 멈춰있는데, 비는 계속될 거라는 예보입니다.
집 주위엔 온통 풀들만 무성하게 자랄 뿐, 모든 게 축축하기만 합니다.
장마철입니다.
비가 신물이 날 정도로 지루하게 이어지는 장맙니다.
그 것도, 시골에서의 장마라... 옷마다 신발마다 다 젖어가는, 정말 직접 피부로도 느끼는 진한 장마인 것입니다.
7 . 7
# 여름 이야기 I
비가 계속 오니까 몸이 끈적끈적하고 컨디션도 별로입니다.
나름대로는 판판하게 골라놓았던 마당도 물에 패어 골이 지고, 코스모스와 봉숭아도 굵은 빗줄기에 쓰러지기까지 했습니다.
그 비를 맞고도 봉숭아는 하얀 꽃 잎 몇 개를 내 놓았더군요. 굵은 빗방울에 금방 떨어질 텐데......
그렇게 여름인데, 땅이 척박해선지... 국화와 분꽃은 아직도 별로 크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옆집 지붕에 다 닿아가던 나팔꽃도, 끈에 달려있던 잎이 위 아래가 바뀌어 뒤집어지고... 도라지 줄기도 흙 속에 파묻힌 것이 몇 포기 눈에 띕니다.
제일 왕성한 것은 축대 사이에 심었던 '달개비'입니다.
오는 비에 하루가 다르게 번져 왕성한 야생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몇 개 핀 꽃은 왜소하기만 해서,
'조화도 이뤄지지 않은 꽃을 괜히 심어놓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가 하면, 마을 여기저기에도 조금씩의 변화가 있습니다.
산장 집의 복숭아나무에 붙어 있던 복숭아는 오가던 손님들이 다 따먹어 열매는 흔적도 없고(나도 두 개 정도 따 먹었지요.),
푸르던 자두가 어두운 보라색으로 익어가고 있어서, 그 집을 오가면서는 한움큼씩 따먹습니다. 아직 맛이 달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시큼한 게 먹을 만은 합니다.
그 동안 끈질기게 피고 지던 밝은 주황색의 석류꽃도 많이 떨어지고, 몇 개 석류 형태를 갖춘 열매가 달려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감을 비롯한 사과 배의 나무에도 꽃이 지고 열매가 조금씩 커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옥수수는 사람 키보다 훨씬 커서, 열매를 맺어... 곧 먹을 수 있다고도 하고,
그 동안 늦자라던 한국 재래종 고추도 이젠 조그맣게나마 열매를 맺고 있고,
호박 넝쿨도 커다란 잎을 자랑하며 제법 뻗어 노란 호박꽃을 숨겨 피우고 있습니다.
들, 참깨며, 수수 등, 밭작물이 지루한 빗속에서도 모두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요?
글쎄요... 요즘, 뭐에 정신을 뺏기고 사는지, 산만한 상탭니다.
손님들이 올 때마다 술을 마시는 것도 모자라, 또 다른 곳에 찾아가면서까지도 술......
마치, 술에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처럼 나는 요즘 술을 마시고 다닙니다.
밤도 새면서 말입니다.
그러니, 후텁지근한 날씨에... 이래저래 어리벙벙한 상태지요.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면 시커멓게 타 있는 것도 그렇지만, 그 사이 주름살이 두어 개는 더 늘어있는 듯도 하고......
이렇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작금의 내 삶이 썩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포기할 것은 포기해 가면서, '인생 타령'을 하고 있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갑자기 폭우로 변해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를 무덤덤하게 바라보면서도,
'오늘은 뭐 재밌는 일이 안 생기려나?' 하고, 마음 한 쪽에선 일도 없이...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는 나는,
어쩌면... 병에 걸려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7 . 8
그러고 보면, 기로의 건강이 좋아진 건 분명했다.
본인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까지 술을 마셔도, 별 탈이 없는 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야!' 하면서,
'시골에 살아서 그러겠지?' 하고는 있지만,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공기가 좋은 곳에서 사는 것도 이유일 수 있고, 먹는 게 좋아서도 가능할 것이었다. 게다가, 아무래도 서울에서 살 때 보다 스트레스거나 이런저런 압박을 덜 받다 보니... 효과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기로는 현재 상태가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다.
'이러다가 언제 또 다시 병원에 실려갈지 모르는데......'
오랜만에 기로는 전주에 나갔다.
물론 제자를 서울로 돌려보낼 일도 있었고, 은행에 들를 일도 있었다.
그 일을 한 뒤, 압핀과 끈을 사가지고 바로 버스에 올라... ' 夢想?'으로 돌아왔다.
전주에 가는 길에도 반장과 만나 같이 갔는데, 전주에서 일을 다 보고 버스 정류장에 가니... 거기에 반장이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어서, 돌아오는 것도 함께 했던 것이다.
그렇게 오늘은 '막은댐'에서 반장과 함께 걸어오는데 보니, 어제보다 호수가 더 넓어보이는 것이었다.
며칠 제자와 함께 지냈던 기로는, 혼자 밥을 해 먹으면서는,
'녀석이 가니, 뭔가 훵한 느낌이구나!' 했는데, 특히 설거지를 깨끗이 해주던 녀석이 가버린 뒤라...
'설거지하는 게, 이렇게 힘든가?' 하고도 있었다.
비가 안 올 듯하더니, 결국 밤에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때로는 많이......
하도 눅눅해서 방에 보일러를 넣었는데, 오히려 후텁지근해서... 기로는 창을 열어야만 했다.
모처럼 낮잠을 잤기 때문인가?
밤에도 정신이 맑아, 기로는 작업 방에서 드로잉 하나를 해서 벽에 붙여놓았다.
제목은 '미궁(迷宮)'.
그러면서야 그나마 마음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었고, 빗소리에 잠이 깨었는데,
새벽 4 시였다.
"따다다닥......"
비가 퍼붓듯 쏟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루까지 들이치고 있었다.
그러자 창호지 문의 아랫부분이 젖어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짙은 색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게다가 천둥까지 치기에, 기로는 바쁘게... 컴퓨터 전원을 끄고 연결선도 뽑았다.
다음 날 아침, 기로는 밭에 올라가 보았다.
그런데 토마토 몇 개가 빨갛게 익어있는 것이었다.
"비오는 중에도 익어 있네?" 하고 혼잣말까지 하는 반가움에 토마토를 따면서는,
'아, 내 손으로 직접 가꾼 토마토를 처음 수확해 보네!' 하기는 했지만,
비가 너무 와선지 토마토의 잎이 노랗게 썩어가는 모습이기도 했다. 게다가 열매는 생각보다 많이 작았다.
'토마토 샐러드를 해먹으려면, 가능한 큰 게 좋은데......'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그러면서는,
'장마가 개면, 주먹만 한 큼직한 토마토를 맛볼 수 있을까?' 하면서 내려왔다.
저녁 무렵에 집 주인인 범상의 전화가 왔다.
"야, 호수에 물이 많이 불었냐?" 하는 물음과 함께, "내가 지금 가서 배에 찬 물을 빼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로는,
"마침 잘 됐다. 오는 길에, 우리 격이 약 좀 사와라." 하고 부탁을 했다.
요즘, 격이가 뒷 다리 부분을 자꾸만 핥기에 낮에 살펴보니... 털이 빠져나간 부분에 제법 큰 물집이 잡혀있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그걸 발견하면서 기로는,
'아이, 얼마나 가려울까?' 하다간, '내일은 전주에 나가 약을 사와야겠다.' 했었는데,
범상의 전화가 왔던 것이다.
그러더니 얼마 뒤에 다시 전화가 왔는데,
"야, 여기 동물병원인데... 직접 얘기해 봐라. 개가 어떤 상황인지..." 하기에,
기로가 통화를 해 보니,
"개에 진드기거나 좀이 낀 것 같아요."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범상이 연고와 내복약을 사와서,
기로는 비닐장갑을 끼고 격의 물집이 잡힌 부위에 연고를 발라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범상은, 라면을 끓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야, 다 저녁 때에... 무슨 라면이야?" 하고 기로가 묻자,
"나는, 점심도 컵라면으로 때웠다..." 하고 힘없이 말하는 것이었다.
"왜? 00(범상 아들) 엄마하고 다퉜냐?" 하고 기로가 묻자,
"그게 아니고... 내 작업장 이사 때문에, 하루 종일... 비를 맞고 일을 했는데..." 하고 짜증스럽게 말을 하다가, "에이, 무슨 놈의 팔자가... 맨날, 그렇게 일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면서, "그래서... 내 인생이 하도 서글퍼서... 그냥 차를 몰고 드라이브나 할까 하다가, 여기로 온 거다." 하고, 라면을 맛있게 먹는 것이었다.
그런 범상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로는,
'니가 말은 그렇게 하고 있다마는, 틀림없이... 00 엄마하고 다툰 모양인데?' 하면서도,
그런 걸 구체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부부 관계란 다 그런 것 아니던가?
그래도 또 며칠 지나면 범상의 성격 상, 그리고 범상 처의 성격상(그녀도 사람이 참 순수하고 선하다.)... 헤헤 웃으며 함께 올 것이니까.
'게다가 이혼해서 혼자 사는 주제에, 아무리 친구라지만... 남의 부부관계에 대해, 뭐 궁금해 하고... 또 그런 얘기를 물어본단 말인가...... 아무리 부부가 함께 산다고는 해도, 어느 순간엔... 또 너무나 타인으로 느껴질 때가 어디 한 두 번일까......' 하면서,
"어쨌거나 넌, 저녁에... 돌아갈 거 아냐?" 하고 기로가 묻자,
"그래야, 내일 또... 일을 하지..." 하는 범상에게,
"그러니, 내가 술을 마시자고 할 수도 없고......" 하고는, "어서 배에 물이나 빼! 내가 좀 거들어 줄 게!" 하면서 범상을 일으켜 세웠다.
어차피 차를 운전하려면 술을 마셔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비는 시도 때도 없이 퍼붓다가 약해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 비는, 하루나 이틀정도...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예보가 있었다.
# 노화(老化)(?) 현상
며칠 전부터 다리에 이상한 증상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서 있을 때는 멀쩡한 다리가, 앉으려 하면... 무릎 윗 부분이 뻐근하고 약간의 통증이 오는 겁니다.
무릎 자체의 관절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앉으려고만 하면 부드럽게 다리를 구부릴 수가 없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서 있다가 다리가 굳어져서, 잘 굽혀지지 않는 것 같은 증상입니다.
그러니 저절로,
"아이구구......" 하면서 다리를 구부리며 앉거든요.
'웬 일일까?' 하면서,
'이런 것도 결국은 노화(老化)(?)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오늘 왔던 친구에게 그런 증상을 얘기했더니,
"야, 무슨 벌써부터... '노화현상'이야?" 하면서, "그 건 운동부족일 거야!" 하고 웃어넘기드라구요.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넌, 나처럼 육체적인 일을 하지 않으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아니겠냐?" 하드라구요.
그렇지만 그의 대답에 동의할 수 없었던 나는, 최근의... 눈의 변화(요즘엔 잔 글씨는 읽을 수 없음)와, 얼굴의 주름 등에 관한 얘기를 꺼내며,
"내가 가지고 있는 증상은, 어쩌면... 자연스런(?) 노화현상일 거야." 하고 강조했는데요,
정말, 그럴까요?
정확한 진단은 아니라지만, 아마... 그럴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다가, 김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런 얘길 했더니,
"그러믄,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기로도 춤을 춰봐."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혼자서도 춤을 잘 추시거든요. 그러면서는,
"어쩌믄... 운동부족일지 모르니, 흥겨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몸 동작을 크게 하면서 춤을 춰봐!" 하고 강조하시드라구요.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도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나는 그러지 못할 거라서요......
글쎄요, 내가 지금 시골 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쨌거나 몸을 제법 움직이는 삶일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운동부족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통나무집에 왔다갔다 하는 일과, 밭에 오르는 일, 비가 잦아서 요즘은 뜸하지만... 배를 타고 노를 젖는 일...을 빼면, 특별히 운동하는 것은 없으니까요.
물론, 음악을 크게 틀어놓으면... 흥에 겨워 혼자서 엉덩이를 씰룩거릴 때도 없지는 않습니다.
나에게 그 일은 굳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거든요.
특히, 스페인의 '룸바'나, 라틴 아메리카의 '살사' 풍의 음악에는... 저절로 몸이 흔들어지기도 하니까요.
근데요,
그런 행위마저도... 뭔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사실이, 썩 내키지가 않는 겁니다.
'늘 하던 짓도, 멍석을 깔아놓으면 못한다.'는 말처럼요......
아무튼,
이제 내 입에선... '노화(老化) 현상'이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옵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요......
게다가 나는, 그런 걸 별 동요 없이 받아들일 자세는 되어있는 사람이랍니다.
굳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도 않거든요.
그리고 노화현상을 피하거나 젊음을 연장하기 위한 그 어떤 특별한 대책을 세우고 실행하려는 자세도 아니라서,
지금 상황이 정확한지 아닌지를 모를 뿐... 그 게 노화현상이라고 해도 받아들이는데에 별 문제는 없다는 것입니다.
어쩌겠습니까? 나이 들어가며 생기는 자연스런 신체의 변환데요......
삶을 연장한다거나, 젊어지고 싶다거나... 그런 것은 나와는 먼 얘기입니다.
다만, 사는 만큼은 깨끗하게 살다 가고 싶다는 것 뿐인데요,
병원에 실려가서, 남들에게 힘든 꼴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내 행위는 아이러니지요.
깨끗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노화현상에 대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어쨌거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도, 아무 것도 모른 채 태어났듯이... 죽는 것도 별 무리 없이(의식 없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입니다.
7 . 9
습도가 높아, 잠자는 것도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꾸는 꿈마저도, 어째... 계속 악몽만 꾸는 것 같은 요즘이다.
계속 내린 비로 호수의 물은, 물가 느티나무의 기둥을 덮고도... 약간의 나뭇잎만 내 보일 정도로 불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이런 비바람 속에서도) 코스모스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분홍 꽃이었는데, 이파리 틈에서 살짝 삐져나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넌, 왜 이리 빨리 피는 거냐? 아직 가을이 오려면 멀었는데......'
꽃을 보면서도, 반가움 보다는 뭔가 모를 걱정이 앞서는 기로였다.
잠시 비가 개는 듯하자, 반가운 마음에 기로는 배를 타기로 하고... 산장집 쪽으로 갔다.
그런데 호수로 접어드는 길엔 호박 넝쿨이 얼마나 무성한지, 다니기도 불편했다.
어저께 범상과 함께 큰 배의 물을 퍼내면서 노 젓는 배의 물도 퍼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물이 또 얼마나 찼는지... 그 물만 퍼내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겨우 배에 올라 노를 저었는데, 호수는 넓어있었고, 잔잔했다.
언뜻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많이 올 비는 아니어서... 기로는 반대편 절벽이 있는 곳으로 노를 저어갔다.
그런데 호수의 수위가 높아져서, 그전에는 아래서 올려다보던 나무들이, 물에 잠겨있거나... 바로 손에 잡힐 곳에 있다 보니, 그것도 새로운 기분이었다.
그래서 노 젓기를 멈춘 뒤, 기로는 하모니카를 불었다.
오랜만에 속이 시원하도록......
기로가 몇 곡의 하모니카를 부는 동안에도 멈출 줄 모르고 비는 계속 오락가락댔다.
저녁 무렵에 기로가 서울 누님의 전화를 받고 있는데,
방충망을 통해... 박 만석이 '夢想?'쪽으로 오는가 싶더니, 집을 한 번 살펴보다가(기로를 찾는 듯)... 바로, 배 있는 곳으로 가서... 노를 저어 큰 배 쪽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 기로가 배를 타고는, 호수에 물이 너무 불어서... 박 만석이 사용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으로, 노 젓는 배를 '夢想?' 쪽 가까운 언덕에 대 놓았었기에,
전화를 끊고는 바로 나가 큰 소리로,
"산장 아저씨, 저는.. 오늘 같은 날은 배를 사용하시지 않을 줄 알고... 여기다 대놓았는데요." 하고, 다소 미안하다는 어조로 말을 하자,
"응, 괜찮여... 긍게, 앞으론... 여기다 대 놓고 타..."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리 집 쪽으로 배를 타러 갈라믄, 호박 넝쿨이 너무 벌어서, 가기도 나쁘고 호박에도 상처를 줄 염려가 있응 게..." 하는데,
기로가 보기엔, 어째...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기에,
"근데 왜, 오늘따라... 힘이 없어 보이시네요?" 하고 여전히 큰 소리로 말하자,
"그려?" 하더니, 갑자기 박 만석은... 힘을 내어 노를 휙휙 젓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배도 갑자기 쑥쑥 나가고 있었는데,
'아이구! 저 양반은 좌우간......' 하며 기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
기로는 밤에, 요즘... 장마로 호수에 물이 불어 잠긴 느티나무에서 힌트를 얻어, ‘물에 잠긴 나무’라는 제목의 드로잉을 해서 벽에 붙였다.
그러면서 보니, 작업방의 벽면이 꽉 채워지고 있어서...
'흠, 머잖아 벽면에 그림들로 꽉 차겠구나......' 하면서, '내 비어있던 마음도, 이런 식으로 채워지는 것 같네......' 하고 흐뭇해 했다.
물론 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거세게 비가 내린다 해도, 내 일만 할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하다.' 하는 기로의 행복은,
장맛비와는 전혀 상관없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