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부터 교회를 나갔다. 그때는 30대 중반이라 청년부에서 교회 생활을 시작했다.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많던 내가, 많은 형제와 자매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친했던 형들과 누나들과의 모임을 끝으로 교회에 발걸음을 더디 했다. 그렇게 난 교회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는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 교회를 나간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요즘 유기성 목사님이나 김남국 목사님을 통해 개신교인이 어떤 마음과 믿음을 지녀야 하는지 보고 배우고 있다. 그런데 난 아직 깊이 있게 믿지 못할 것이다. 10년이 지났지만 난 초신자에 가까운 신앙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말씀을 ‘제대로’ 따르고 믿기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독실하게 믿는 사람들에게 난 배척되기도 할 것이다.
내가 종교를 믿는 것은 더 잘 사는 방법을 깨닫기 때문이다. 난 법정 스님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나를 더욱 되돌아보게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즉 인생을 살아가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종교에서 얻을 수 있으니 믿는 것이다. 난 이것이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다. 이것이 망령되게 들리는가? 그러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종교는 분명 믿는 사람에게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심어준다. 그렇다고 무신론자의 인생이 틀렸다고 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게 자신과 잘 맞으면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내가 종교를 믿으며 하고 싶은 활동은 한국 사회에서 리더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을 많이 키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난 이런 미션이나 소명이 없었는데, 내 마음속에 자연히 이런 생각이 자라났다. 물론 나도 리더로서 사람들을 훌륭히 이끌고 싶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난 교회 그 자체에만 빠져 있지 않을 것이다. 교회가 좋아서 교회 자체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믿으면 된다. 그렇다고 다른 방식으로 믿는 사람을 배척하지는 말자. 이때 필요한 것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끼리 전쟁을 한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마음이 열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난 세상의 지식과 교회의 지혜를 통합하는 활동을 할 것이다. 난 세상의 지식이 나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믿기 전까지 그렇게 살아왔는데, 내게 나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종교를 믿는 것은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종교인의 문제는 세상의 지식을 마치 잘못된 것처럼 받아들이는 자세에 있다. 좋은 것은 인정하고 함께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유기성 목사님이 자신의 자아를 죽이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을 살아가라 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에게, 나는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기질이 있고, 성격이 있게 마련이다. 즉 특성이 있다는 것이고, 생김새만큼 사람은 모두 다르다. 우리가 이렇게 태어났는데, 사람마다 믿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특히 이것은 선불교 방식이기도 하다. 그들은 만나는 족족 죽이라 했다. 즉 그것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길을 가라 했다.
맑은 마음과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난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난 머리로 계산을 덜 할 것이다. 대신 내 마음이 자연히 이끌리는 대로 살아갈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맞다. 그런데 난 아직 초신자이기도 하고, 그 길이 꼭 한 쪽으로만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예를 들어 등산을 하는데 정상을 향하는 길은 무한대로 많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난 책 읽기를 우연치 않게 많이 하게 되었다. 그래서 글쓰기도 즐기게 되었다. 그러면 난 지식을 많이 쌓는 쪽으로 믿을 것이다. 이것이 내게 주어진 달란트이기도 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자신의 특성을 발휘해서 교회도 다니고, 믿음도 가져야 한다. 법정 스님은 옛날부터 이것을 언급하셨다. 열심히 익히고, 세상과 나누고, 하나 되라 하셨다. 이것을 모두 자기 모양새에 맞게 하라 하셨다.
김신웅 심리상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