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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障壁)
계 용 묵
짚을 축여 왔다. 그러나, 손이 대어지지 않는다. 어서 새끼를 꼬아야 가마니를 칠 텐데 ―그래야 내일 장을 볼 텐데 ―생각하면 밤이 새기 전에 어서 쳐야, 아니, 그래도 오히려 쫓길 염려까지 있는데도 음전이는 손을 대기가 싫었다.
맴을 돈 것같이 갑자기 방 안이 팽팽 돌며 사지가 휘주근하여지고 맥이 포근히 난다. 왜 이럴까 미루어 볼 여지도 없이 그것은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그 생리적인 징후가 또 사람을 짓다루는 것임을 알았다.
가마니를 쳐서 빨간 댕기를 사다 지르고 설을 쇠리라, 그리고 고무신도…… 하고 벼르고 별러 오던 설날, 그 설날은 이제 앞으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내일은 섣달 그믐의 대목 장날이다.
음전이의 마음은 괴로웠다. 조용히 감은 눈앞에는 빨간 댕 기가 팔랑거린다.
콧등에 파아란 버들 이파리가 좌우로 쪽 갈라붙은 분홍 고무신이 보인다. 그리고는 그 댕기를 지르고, 그 신을 신고 뛰어다니며 남부럽지 않게 놀 즐거운 그
날이 ―
그러나, 몸은 점점 더 짓다룬다. 좀 누웠으면 그래도 멎겠지 ? 마음을 늦먹고 자위를 하여 보나 소용이 없다. 머리는 갈라져 오고 아랫배는 결결이 쑤신다. 이번 설에도 댕기를 못 지르나? 새 신을 못 신나? 생각을 하니 이를 데 없이 안타깝다.
“야레 이게 생 어느 때라구 그냥 넘어겠네 ! 너 그르단 괜히 댕기 못 디른다!”
일어날까 일어날까 기다리며 혼자 분주히 새끼를 꼬고 앉았던 오라비는 위협 비슷이 또 재촉이다.
오라비도 음전이보다 못지않게 설이 그립고 기달렸다. 인제 열 일곱 살이니 음전이보다 두 살이 위라고는 해도 아직 애들의 마음이었다. 양말과 조끼를 바
라고 가마니를 치기가 급하였던 것이다.
그들 남매는 한 달 전부터 가마니를 쳐서 설빔을 만들자고 의논을 하고 어머니에게 가마니 열 잎은 저희들이 팜아 쓴다고 벌써부터 승낙을 얻어 놓고는 설 빔부터 미리 마련을 하여 놓고 싶은 생각에 짬짬이 그 기회만을 엿보아 왔다. 그러나, 그들의 앞에는 그만한 촌극의 여유도 던지어지지 않았다. 한 잎을 쳐도 두 잎을 쳐도 쌀을 사 와야 되고 나무를 사 와야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내일 내일 하고 미루어 오는 것이 급기야는 대목장을 앞둔 오늘까지 끌고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제라고 그들에게 있어 살림에 여유가 있었으랴만 이번 명절만은 남과 같이 차리고 놀아 본다고 그들 남매는 어떻게도 성화같이 조를 뿐 아니라 그 어머니 자신으로서도 남 같은 처지를 못 가지고 살아오기 때문에 놀음에까지 주린 자식들이 측은하기 짝이 없어 그것이 난 그들의 원대로 하여 주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여 세말이라 옹색함이 여느 때보다도 더하였건만 그것만은 눈 딱 감고 마음대로 하라고 내어맡겼던 것이다.
옛날부터 백정이라는 천업을 대대 손손이 이어 내려오는 그들은 인생의 저 뒷골목에서밖에 존재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리하여 뭇 사람들과는
자리를 같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인생의 뒷골목 길을 고독하게 눈물로 걸어오
며 언제나 어디를 가나 인가와는 적이 떨어져 박힌 산턱 밑 도살장 근처가 그들의 상주처이었다. 그러니 사람으로서의 같이 타고난 뜨거운 피는 언제나 인간을 그리기에 아니 끓어오르지 못했다. 인간의 정에 주린 그들 ―― 더욱이 뛰놀지 않고는 만족을 얻을 수 없는 아이들은 어느 때나 남과 같이 같은 자리에 섞여서 마음대로 뛰며 놀아 볼꼬? 처지를 한탄하는 천진한 그들의 말없는 한숨은 끊일 날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 아버지도 다시는 곱장칼은 아니 잡으려고 몇 번이나 맹세를 하여 보았으나 달리 직업은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소나 돼지의 목을 땀으로써 받는 보수로 생계를 삼아 오던 그들이라 놀고 먹을 여유인들 있으랴! 아니 아니 하면서도 이미 배운 기술이 그것이다. 배 고프니 그 칼을 던졌다가도 다시 아니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 천업을 놓지 못하고 뜻없는 칼을 그냥 붙들고 오다가 행이든지 불행이든지 그만 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됨에 그 어머니는 굶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백정이라는 누명을 벗고 인간의 따뜻한 품 속에서 서로 정을 바꾸며 살리라, 남편의 3년상을 치르기가 바쁘게 자식에게는 다시 그 곱장칼을 돌려 주지 않기로 애들의 눈에 그 칼이 뜨일세라 땅 속 깊이 내다 묻었다. 그리고 어린 자식 두 남매를 이끌고 옛 소굴을 떠나 자기네의 존재를 모르리라고 인정되는 40리 밖인 이 촌중 끝 빈 주막의 쓰러져 가는 한 채의 오막살이를 있는 세간을 다하여 사 가지고 바로 지난 가을철에 이리로 이사를 왔던 것이다.
처음 계획은 자기네도 남과 같이 농작을 얻어 가지고 소작을 하여 지내리라 은근히 믿고 왔었건만 존재 모를 그들에겐 농작도 그리 수월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이 품 저 품 품을 팔아 가며 짚을 사다가 가마니로 생계를 도모하여 왔으나 그것으로는 다만 세 식구의 목숨을 치기에도 족한 것이 못 되었다. 아니 구차함은 오히려 전에보다도 더한 편이었다.
그러나 지난날의 더러운 때를 벗었다고 아는, 그리하여, 자기네도 인제 한낱 인간으로서의 존재가 인정될 것이거니 하는 인생에 주렸던 끓는 피가 모든 괴로움을 이겨 넘기며 마을을 이루고 사는 이 촌중에서 생후 처음 그들로 더불어 같이 뛰놀며 즐길 수 있다고 믿는 처음 맞는 명절이라 그들 남매는 실로 이 설을 손끝이 닳도록 꼽아 보며 기다려 왔던 것이다.
“야가 아니 상구두 못 니러나?”
다시 재촉하는 오라비의 음성은 좀더 높아진다.
그러나 음전이는 들은 척도 아니한다.
“야아?”
오라비는 꽥 소리와 같이 음전이의 치맛자락을 당긴다.
그래도 음전이는 차마 못 일어나겠다는 듯이 걷어올라간 치맛자락을 다시 당기어 무릎을 감싸고 허리를 떡― 까부라치며 몸을 웅크린다.
“아니 너 지금 밤이 어드케 됐는데 니러나디 않구 이르네? 이르길 !”
오라비는 치맛자락을 다시 더듬어 쥐고 힘 있게 잡아당기었다. 음전이는 더르르 한 바퀴 굴며 제물에 일어나 앉히운다.
“아니 난 머 잘 줄을 몰라서 안 잔대던? 빨리 새끼를 꼬야디 않간 !”
역시 음전이는 아무 대답이 없다.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오라비의 재촉은 너무도 지당하다. 어떻게도 기다리던 이번 설인데 하고 생각할 때 여간 몸이 좀 고달프다고 그것을 못이겨 누워만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음전이는 부스스 일어선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 재우고 삐뚤어진 옷깃을 가뜬히 여미고 나서 짚뭇을 앞으로 마주앉는다.
“볼쎄 니러났으믄 서룬 발은 꽉갔는데 자빠만 제서? 그래! 이거 봐라 난 볼쎄 이거야 이거 ―”
하고 오라비는 꽁무니 뒤로 빼어 사려 놓은 새끼 사리를 힐끗 돌아다본다.
“글쎄 몸이 아픈 걸 어드커간. 밤을 밝히자꾸나.”
하고 음전이는 미안쩍게 짚뭇으로 손을 내민다.
겨울 밤 찬 기운은 밤이 깊어 갈수록 방 안을 엄습한다. 수분이 홈뻑 밴 축인 짚은 곱은 손가락에 서툴리 감겨 돌아가며 물방울이 이따금씩 얼굴에 튀어올라 그러지 않아도 오술거리는 음전의 몸에는 산뜻산뜻 끼치는 촉감이 더욱 더하다.
먼동이 훤히 틀 때에야 겨우 여섯 잎의 가마니가 꾸며졌다.
이것을 오라비에게 지워서 장으로 보내고 난 음전이는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아침을 먹고는 또 말아 두었던 검정 목세루 치맛감을 광주리에서 들어내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바늘을 잡았다.
아프던 배가 좀 나은 것은 다행이었으나 밀린 잠이 사정없이 눈가죽을 무겁게 내려눌렀다. 그러나 오늘 하루밖에 남지 않은 설 준비는 모두 그의 손을 필
요로 하고 있었다. 자기의 치마도 치마려니와 오라비의 대님, 어머니의 버선, 이런 것들이 다 오늘 하루 안에 자기의 손으로 아니 지어져서는 안 될 것들이었다.
오늘은 작은 명절이라고 벌써 어떤 아이들은 새 옷에 새 신까지 받쳐 신고 이 집 마당에서 저 집 마당으로 세 다리 네 다리 춘 줄도 모르고 뛰어다닌다.
처음으로 새 옷을 얻어 입은 아이들은 한없이 기쁜 마음에 그것을 자랑하느라고 저마다 문을 열고 우르르 밀려들어와선 말없이 음전이 앞에 우뚝 마주 서곤 했다.
그러면 음전이는,
“네 입성 거 참 곱구나. 엄메가 해 주던? 누이가 해 주던?”
하고 묻는다. 하면 그들은,
“엄메레 ―”
“누이레 ―”
하고 너무도 기꺼워서 벙글벙글 웃으며 우르르 다시 밀려나간다.
음전이는 그들이 그렇게 기꺼워하는 것을 왜 칭찬을 아니하여 줄꼬 하였다.
옷이 비록 자기의 눈에는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거둘러서 모처럼 즐거움에 뛰는 그들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상하게 하기도 싫었거니와 그 어머니들은 없는 것을 가지고 오죽 애들을 써서 그만큼이라도 지어 입혀서 내세웠을까 할 때에 더욱이 칭찬을 아니할 수 없었다.
음전이는 바늘을 때때로 멈추고 한없이 즐거움에 뛰는 아이들을 해어진 창틈으로 내다본다. 그리고는 자기도 내일은 새 옷을 입고 동무들과 같이 주룽주룽 서서 놀 수가 있겠거니 하니 빨간 댕기·파랑 고무신이 더욱 빛나게 눈앞에 어리운다. 그럴 때면 오늘 하루에 하여야 할 수두룩한 일감이 빳빳한 중한 짐인 것을 다시금 깨닫고는 그러다가 치마가 늦어지게나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에 다시 무릎 위로 눈을 떨어 바늘을 놀린다.
그러면서 발자국 소리가 문 밖에 좀 크게 들리기만 해도 오라비가 돌아오는 것은 아닌가 생각만 하여도 너무나 기꺼운 마음에 잉큼잉큼 가슴을 뛰놓이며 고무신과 댕기를 그려 본다.
그러니· 오라비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기다릴 대로 기다리고 해를 지웠어도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저녁을 먹고 난 음전이는 신작로변으로 오라비 마중을 나섰다. 벌써 날은 어둡기 시작한다. 고개턱에 넘어오는 사람이 가물가물 누구인지 썩 분간이 가지 않는다. 희끈하고 넘어서는 그림자만 있으면 오라비 아닌가 눈알이 빳빳하게 피로를 느끼도록 어둠과 싸우며 어서 오기를 기다려 보는 것이었으.나, 와 놓고 보면 모두 생면 부지의 딴 사람들이다. 아이 오라비는 왜 이리 늦어진담? 가마니를 못 팔아서 그럴까? 가마니는 팔구두 댕기를 못 사서 그럴까? 연유를 알 수 없는 조급한 마음은 그대로 서서 참아 낼 수가 없었다. 어둠을 뚫고 고개턱을 향하여 달리었다.
하아늘두 청 천엔 별두나 많구
요오내 가슴엔 정두나 많다아.
희미하게 고개를 타고 아리랑 타령이 흘러 넘어온다.
오라비가 항상 부르는 노래다.
“거 오래비가?”
음전이는 소리쳐 보았다.
“으어, 음전이 나왔네?”
마주 받는 음성은 오라비에 틀림없다.
음전이는 부리나케 고개턱을 추어올랐다. 오라비는 벌써 고개를 넘어선다.
왕복 70 리를 걷고 났을 오라비 이었건만 조금도 피로한 기색 이 없이 장감을 싸서 들은 신문지 뭉치를 봐라 하는 듯이 내젓는다.
“얼마나 추웠네? 무겁디 않으니?”
장감을 받아들은 음전이는 오라비야 따라오거나 말거나 앞을 서서 분주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방 안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노끈을 끌렀다.
맞잡혀 얹히어서 묶이었던 한 켤레의 고무신이 신문지를 안고 모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타나는 빨간 인조견 모본단 댕기가 한 감.
음전은 댕기보다도 파란 바탕에 분홍꽃이 알숭달숭 돌라붙은 고무신이 더 눈에 띄었다. 자기도 모르게 입이 벌려졌다. 고런 신을 한 번 신어 보면 신어 보면 했더니 정말 신어 보누나 하는 생각에 더할 수 없이 기꺼웠던 것이다.
맞을까? 왜 안 맞어, 겨냥을 해 가지고 갔는데 ― 생각을 하며 급한 마음에 앉은 자리에서 목다리(꿰진 버선)째로 그냥 신어 본다. 그린 듯이 맞는다.
“이거 얼마 쥔?”
“옛낭을 줬다.”
“또 이 댕긴?”
“건, 두낭.”
하고 오라비는 일일이 대답을
하고 오라비는 알알아 대답을 하고 나더니, 또 무슨 딴 말을 할 게 있는데 어머니가 거리끼는 듯이 일번 어머니를 길끗길끗 바라보다가 마침 음전이가 하다 말고 나갔던 설거지를 끝내려고 부엌으로 나가는 눈치를 보자,
“내 족께와 양말꺼지 사구 이잉? 그르커구 말이야, 한낭이 남거든, 그래서 내레 그걸루 옜다 받아라 !”
하고, 사서는 그 자리에서 그냥 입고 나왔다는 새까만 양달리 조끼 주머니에서
박가분(朴家粉) 한 갑을 꺼내어 음전이 무릎 위에 던진다.
음전이는 놀랐다. 반가움보다 놀람이 앞섰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라 꿈인 것만 같았던 것이다. 무릎 위에 와서 턱 하고 떨어져 안기는 분갑을 음전이는 물
끄러미 내려다볼 뿐, 창졸간 뭐라고 말을 해얄지를 몰랐다. 그러지 않아도 분을 한 갑 사다 달래리라 총알같이 별러 왔으나 어쩐지 그것은 댕기 같은 것과는 달리 수줍어서 떠날 때까지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아 필경은 말을 못 내고 혼잣 속으로 종일 분이 마음에 걸려 제 못난 속을 얼마나 꾸짖으며 한탄해 왔는지 모른다. 그렇던 것을 이제 이렇게까지 자기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오라비의 남다른 따뜻한 정을 받아 보니 세상이 자기에게 대하는 냉정은 더욱 차기만 한 것 같았다. 음전이는 기꺼운 마음에도 알 수 없는 감격에 눈 속이 뜨거워 옴을 느꼈다.
“그 댐엔 또 말이야, 요골 좀 보라므나?”
하면서, 샛노란 단풍갑(궐련)을 꺼내어 경례나 붙이듯 귀 곁에 바짝 들어 보인다.
음전이는 그게 무언지 몰라서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이걸 몰라? 골련이야 골련. 멩질날이니 나두 이걸 한 대 푸이야디. 엄메 대주디 말라 너 괘니?”
하고 나서 어느 틈에 벌써 개봉을 해서 피웠던지, 피다 둔 반쯤 탄 꽁다리를 등잔불에 붙여서 삽작 입에다 물고 한 모금이라도 허비하기가 아까운 듯이 첫 모금부터 사알살 들여마시어선 두 콧구멍으로 삐국이 연기를 몰아내며 어머니가 그러다가 들어오지나 않나 해서 나오는 연기를 일변 손을 내저어 이리저리 헤친다.
밤이 새었다. 설이다. 기다리고 기다리 던 설이다.
가마니치기에 어젯밤을 꼬박이 새고 난 밀려온 잠이면서도 음전이는 잠이 깊이 들지를 못하고 새벽부터 깨어서 밝기를 기다리며 오늘 하루의 지날 모양을 이불 속에서 갖가지로 그려 본다.
―― 분홍꽃 버들 이파리 가 콧등에 쪽 갈라붙은 고무신, 금자로 새긴 수복(壽福)이 앞뒤 끝에 달린 빨간 댕기, 그 댕기를 지르고 그 신을 신고 널 터로 간다. 널은 몇이나 놓았을까, 아이들은 얼마나 모일까, 그들도 다 그런 고무신을 신고 수복이 달린 댕 기를 질렀을까, 널을 뛸 땐 무엇보다도 빛나는 것이 댕기다. 뛰어오를 때마다 굽실거리는 머리채와 같이 공중에서 필럭이는 댕기의 빛남, 자기도 오늘은 널 위에서 빨간 댕기를 날려 존재를 알리리라, 자랑을 하리라, 호박데기·여우잡기, 오늘 밤은 놀면서 밝히자 ― 한참 공상이 아름다운데, 푸드득푸드득 홰에서 닭이 내리는 깃부춤 소리가 연달아 들린다. 음전이는 일어남이 늦어진 듯이 사뿟이 이불을 젖히고 일어났다. 창이 희그스름하게 밝았다. 언제 어머니는 또 일어나서 부엌으로 나갔던지 벌써 차렛메가 잦는 구수한 밥물 냄새가 샛문 틈으로 스며든다.
음전이는 세수를 하고 들어와 윗간으로 올라가서 장지를 닫았다. 오라비 보지 않는 데서 조용히 분치장을 하자 함이다. 언제나 감추어 두고 혼자 살근이 꺼내서 보던 몇 조각인지도 모르게 떨어져 나간 조각 거울을 바라지 문턱 위에 기대어 놓고 얼굴을 돌려 비추어 가며 분을 바른다.
그러나, 처음으로 발라 보는 분은 아무리 손질을 해야 골고루 필 줄을 모르고 몇 번이고 고쳐도 얼룩 흔적을 말끔히 없앨 수가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발
라 보지 않던 분바른 얼굴이 여느 때와는 달리 수줍은데, 얼룩 흔적이 더욱 마
음에 키어 어머니가 혼자 밖에서 차례 준비에 배바쁜 줄을 모르지도 않건만 옷을 다 갈아 입고도 나가지 못하고 이리도 문질러 보고 저리도 문질러 보며 맵시를 보다가 필경은 어머니의 독촉을 받고야 부엌으로 내려갔다.
마을 안은 벌써 사람의 물결이다. 울긋불긋하게 가지각색으로 차리고 나선 아이들은 떼를 지어 가지고 세배꾼을 따라 우르럭 우르럭 밀려다닌다.
이것을 본 오라비는 차례가 끝나기 바쁘게 자기도 세배를 다닌다고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세배꾼들은 패거리 패거리 집집마다 드나든다. 그러나 음전네 집에는 누구 하나 세배랍시고 들어오는 아이도 없다. 온대야 대접할 음식도 여투어 놓지 못하였으니 도리어 미안할 노릇이나, 마치 호구 조사나 하듯 가가 호호 한 집도 빠짐없이 온 동네를 들고 나면서도 유독 자기네 집만은 삼짝 빼고들 돌아가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음전이는 마당 끝에 나가 서서 모든 즐거움을 오늘 하루에 못 즐기면 즐길 날이 없으리라는 듯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을 안이 온통 떠나서 이리 돌고 저리 나며 추운 줄도 모르고 설레는 마을 안의 설날 풍경을 멀거니 바라보고 어서 자기도 저 속에 한몫 끼였으면 하는 생각에 마음이 바빴다. 계집애가 아침부터 서둘지를 말고 해나 좀 퍼진 다음에 떠나라는 어머니의 말림도 듣지 않고 음전이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매를 내고 옷고름을 단정히 다시 고친 후 부랴부랴 널 터로 달려갔다.
널을 놓은 집은 이 마을에 세 집이 있었다. 음전이는 그 가운데서 제일 아이들이 많이 모인 배 선달네 널 터로 갔다. 거기엔 자기와 같이 나이 지긋한 처녀들도 수두룩이 모였다. 음전이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의 차림새가 그들보다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그것부터 살펴보았다.
그러나, 50 명은 훨씬 넘을 그 처녀들 가운데서도 몇몇 색시를 내놓고는 별로 자기보다 뛰어나게 차린 처녀가 없다. 아니, 도대체 보자면 오히려 자기보다 못하게 차린 편이 반은 넘을 것 같다. 고무신은 물론, 인조견 댕기 하나 못 사다 지른 아이들이 수두룩한 것이었다.
이것을 보니 음전이는 자기의 옷도 그들과 같이 섞여서 놀기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아니, 도리어 빼고 나서기에 족한 형편임이 한없이 기꺼웠다.
널은 쉬일 새가 없다. 한 패가 내리면 다른 한 패가 제각기 먼저 뛰겠다고 서로 다투어 밀치며 제치며 오른다. 그래 가지고는 취 ― 취 ― 서로 소리를 내어가며 밟는다. 그럴 때마다 공중을 뛰며 내리는 처녀들의 엉덩이까지 츠렁거리는 새까만 탐스러운 머리채가 물결같이 굽실거리며, 그 바람에 팔느락 팔느락 공중에 나부끼는 댕기들은 그들의 이 한때의 더할 수 없는 자랑인 듯하였다.
음전이도 이 널에 비위가 아니 동할 수 없었다. 늠실늠실 마음은 설렌다. 이 많은 처녀들 가운데서 자기의 댕기도 공중에 날려 빛내 보자, 그러므로 자기의 존재도 알려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더욱 음전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멀거니 바라보고 섰던 음전이는 널을 뛰던 한편짝 처녀가 그만 기운이 진해서 맥없이 주저앉는 것을 보자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후덕덕 달려드는 무수한 아이들을 밀어제치고 덤석 널 위로 먼저 뛰어올랐다.
그러나, 저편짝 처녀는 널을 밟지도 아니하고 그대로 서서 마주 바라만 본다.
“니머 세게 말구 응? 난 잘 못 뛰.”
하고 음전이는 사양을 하며 저럭저릭 밟고 있었으나, 그 처녀는 널을 밟지도 아니하고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그냥 서서 음전이를 바라만 보고 있더니,
“아이구 나두 이전 맥이 나서 못 뛰갔다. 누구 여기 올라세 안 뛰간?”
하고 사방을 둘러 살피며 내린다.
이상한 일이었다. 언제까지든지 혼자 도맡아 가지고 뛰려는 듯이 앙탈을 부리며 내려서기를 아까워하던 그 처녀가 이렇게도 사양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웬일이랴! 자기네들의 차례가 오지 않아 그렇게도 널 뛰기를 서로 다투던 처녀들은 누구 하나 음전이와 마주 그 자리에 올라서려고 하지 않는다. 누가 음전이하고 그 널을 마주 서서 뛰나 보려는 듯이 제각기 서로 얼굴을 돌려 가며 살피고 있을 뿐.
음전이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벌써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알았다. 금시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였다. 그러니 그렇다고 다투어서 올라섰던 그
널 위에서 그저 내려서기도 창피한 노릇이다.
“너 나하구 안 뛰간?”
음전이는 자기 곁에서 아까부터 서둘던 제일 허줄하게 차린 아이에게 말을 건네었다. 그러나, 그 처녀는 음전이의 이 말이 자기를 붙잡아 끌기나 하는 듯
이 뒤로 비실비실 피해 가며,
“난 어즈께 너네 마당에 놀러 갔다가 엄메한테 욕꺼지 얻어먹었다야 !”
하고, 되지도 못할 소리를 한다는 듯이 눈을 동글하게 뜬다.
아, 이 모욕 ! 음전이는 정신이 아찔했다. 그들과 자기와의 사이에는 이렇게도 높다란 장벽이 여전히 가로막히어 있는 것이다. 이 한 마당 모인 처녀들이 일제히 약속이나 한 듯이 자기와는 놀음의 상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완전히 벗었다고 알던 옛날의 때(垢), 그것은 그냥 자기의 얼굴에 두드러지게 붙어 있는 듯이 같은 사람으로 대하여 주지 않는다.
섧다 할까 분하다 할까 뭐라고 할 수 없는 아픈 마음에 음전이는 어릿더릿한 정신을 수습할 길이 없이 널 위에 그대로 선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땅바닥만 내려다보다가 멋쩍게 슬며시 내려섰다. 그대로 이 널 위에서 내려선다는 것은 더욱이 자기의 모욕을 말하는 것 같았으나, 금시 터질 것같이 가슴 속에서 들먹이는 눈물을 참아 낼 길이 없어, 그 위에서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그 보다도 오히려 더한 모욕을 사는 것 같았으므로서였다.
“아츰부터 놀레를 못 가서 서둘더니 너 와 발쎄 오네?”
불의에 돌아오는 음전이를 보고 그 어머니는 이상해서 묻는다.
음전이는 열어 잡은 문고리를 채 놓지도 못하고 대답 대신 엉엉 하고 설움을 터뜨린다.
“아니 야레 이게 웬일이가 !”
하고, 어머니는 의아한 눈이 더욱 둥글해진다.
세배를 와 앉았던 남창 아저씨도 까닭을 몰라 역시 의아한 눈이 둥글해서 음전이를 바라만 본다.
이 남창 아저씨라는 이는 이 면의 구역을 맡아 가지고 있는 백정으로서 음전네와는 들도 없는 세교 집안으로, 경사 때이면 서로 빠지는 일이 없이 거래를 하여 온다. 그러나, 오늘의 어머니는 백정이라는 직업을 씻어 버리고 옛날의 때를 씻기 위하여 남 모르게 이 촌중으로 이사를 해 왔던 것이다. 남창 아저씨가 세배라고 찾아온 것도 그리 향그럽지 않았다. 아니, 그가 자기네 집에 드나듦으로 자기네의 옛날의 불미가 드러날 우려가 없지 않아, 짐짓 불안한 생각까지 갖게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음전이는 이 순간, 남창 아지씨를 보자 반가운 정이 전에보다 더욱 샘솟아 넘침을 금할 길이 없었다. 남 아니 오는 세배를 와 준 자기의 집에는 단 한 분의 세배 손님이었다. 거기에 호소할 길 없는 자기의 이 안타까운 심정을 어머니나 오라비를 내놓고는 이 세상에서는 다만 남창 아저씨 하나밖에 더 알아 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음전이는 악에 넘치는 분과, 반가운 정에 참을 수 없이 남창 아저씨의 무릎 위에 달려들어 머리를 내던지고 느낀다.
“아니, 음전아 ! 이게 웬일이가 응? 음전아 !”
영문을 모르는 아저씨는 안기는 대로 음전이를 안을밖에 없었다.
음전이는 말없이 그저 제 설움에 어깨만 들먹인다.
“아, 이년이 이게 글쎄 무슨 지랄이냐? 남창 아저씨 보구 웬 지랄이야 지랄이! 말을 하구나 울나무나. 시원히 이년아 !”
어머니가 답답한 듯이 음성을 높이며 손을 대려고 하니,
“글쎄 아덜이 올에두 나허군 놀디 안을내는데 멀 너울두 너울두…….”
하고, 음전이는 이 설움을 어떻게 참고 견디느냐는 듯이 머리를 이리저리 앙칼
스럽게 아저씨의 무릎 위에 흔들며 비빈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비로소 영문을 알았다. 더 할 말이 없다. 별안간 안색이 흐리더니 바깥으로 나가 버린다. 아저씨도 이에는 위로할 말을 몰라, 저도 모르게 음전의 머리만 만지고 있었다.
“아제야 ! 우리 어드메 멀리루 이새 가서 살자우 응? 아제야 !”
한참만에 음전이는 이렇게 애원을 하며 눈물에 젖은 눈을 든다.
“나는 또 쌈을 했다구. 그까짓 걸 멀 다 개지구 서러워서 그르네? 어서 그체라. 정월 초하룻날 왜 울음으로 쇠갔네 쇠길 !”
하고 아저씨는 달래었다. 그러나, 음전이는 그 모욕을 그대로 참기에는 너무도
서러운 듯이 다시 눈물이 터진다.
“글쎄 아제야 ! 난 여기선 아무래두 안 살래, 안 살래.”
음전이는 설움에 흐득이며, 그러니 이걸 어떻게 살겠느냐는 듯이 오늘 하루의 지난 경과를 눈물과 같이 쏟아 놓는다.
아저씨는 이것을 들어가며 갗가지로 위로를 하여 보았으나, 음전이는 설움을 그쳤는가 하면 다시 생각하고는 느끼고, 또 흐득이기를 한나절이 넘도록 그치지 않는다.
남 다 즐기는 이 하루를 음전네는 애수에 찬 눈물을 이렇게도 짜낸다. 세배를 다닌다고 아침을 먹기가 바쁘게 뛰어나가던 그 오라비도 세배꾼들이 같이 따라다니게를 하지 못힌 다고 풀이 죽어서 이어 들어와서는 불안한 심사에 문 밖에도 나가지 않고 진종일을 방구석에 들어박혔다.
이것들 두 남매의 처지를 생각할 때 어머니의 마음은 미어지는 듯하였다.
“음전아 ! 그만 그치고 일어나 저녁 먹어라. 이놈의 고당을 음전아! 우리 또 떠나자.”
저녁을 들여다놓고 하는 어머니의 말은 음전이를 위로하려고만 해서만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식들이 머리를 들고 사는 것을 보기 위하여 단연히 이 촌중을 다시 또 떠나려고 결심을 하였던 것이다.
“새완(아저씨)! 이 집 얼른 좀 팔아 주우에 ? 새완 !”
아저씨는 돌연한 이 부탁에 뉭큼 놀란다.
“새완! 고롬 이 고당에서야 사람이 어드케 사우? 어드메든지 또 사람 살 곳으루 떠나야디요.”
“엄메야! 정……?”
“정말이디? 이잉야 ! 엄메야 !”
음전이와 오라비는 어머니의 그 떠나자는 말에 새로운 정신이 드는 듯이 일
시에 따졌다.
이 소리에 어머니는 너무도 기에 차 말보다 눈물이 쭈루룩 두 눈으로 앞서 나온다.
“새완 ! 웃는 말이 아니에요. 부디 좀 아덜을 살게 해 주우? 그르니 새완밖에 믿을 사람이 세상에 어디 또 있소?”
“부디 이잉야 ! 아제야 ! ”
“이잉야 ! 아제야 !”
아저씨를 떠내 보내면서도 잊지나 않을까 다시금 그들은 아저씨를 붙들고 제각기 당부를 한다.
음전이는 아저씨를 떨어지기가 싫어서 신작로까지 따라나가 작별을 하였다.
이미 날은 어두웠건만 마을 안 처녀들의 널 뛰는 소리는 끊임없이 터드럭 터드럭 여전히 들려온다.
음전이는 이 소리를 가슴 아프게 들으며 발길을 돌렸다. 저녁 바람은 차갑게
도 가슴에 안기며 음전이의 댕기를 쓸 데도 없이 팔랑팔랑 날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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