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 런웨이》
제49회 ― 학교 축제
1979년 5월.
졸업식이 끝난 지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래서인지 K예술대학교의 축제는
졸업생들에게도 여전히 ‘현재’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교정에는 형형색색의 깃발이 펄럭였고,
학생들은 천막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운동장에서는 밴드부가 연습을 하고,
미술과 학생들은 벽화를 그리고,
의상디자인과는 작은 패션쇼를 준비하고 있었다.
실습실.
도윤은 목에 호루라기를 걸고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여기 무대 조금만 왼쪽!"
"스피커 테스트!"
"모델 어디 갔어?"
후배들이 웃으며 말했다.
"도윤 선배."
"학생회장 같아요."
도윤은 으쓱했다.
"오늘 사회까지 본다."
"축제는 진행자가 중요해."
강인이 조용히 말했다.
"말할 기회 생겨서 좋겠네."
도윤이 씨익 웃었다.
"오늘은 내 날이다."
점심 무렵.
학교 정문 앞.
버스 한 대가 멈췄다.
가장 먼저 내린 사람은 미송이었다.
연한 하늘색 블라우스에 베이지색 롱스커트.
회사에서 막 퇴근한 듯 단정한 차림이었다.
뒤이어 소희가 내렸다.
흰 셔츠에 남색 스커트.
손에는 양장점에서 가져온 작은 상자를 들고 있었다.
"학교다."
소희가 환하게 웃었다.
"졸업한 지 두 달밖에 안 됐는데."
"왜 이렇게 오랜만 같지?"
미송도 교정을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아직 학생인 것 같은데."
"벌써 졸업생이라니."
멀리서 강인이 두 사람을 발견했다.
순간 얼굴이 환해졌다.
도윤이 먼저 달려갔다.
"선배들!"
소희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잘 지냈어?"
"당연하지!"
도윤은 미송과 소희의 손에 들린 종이봉투를 보며 물었다.
"이거 뭐예요?"
소희가 웃었다.
"후배들 간식."
도윤의 눈이 반짝였다.
"내 것도?"
"아니."
"후배들 거."
도윤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차별이다."
강인이 조용히 말했다.
"넌 후배 아니잖아."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축제 무대.
학생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도윤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기다리고 기다리던!"
"의상디자인과 패션쇼를 시작하겠습니다!"
짝짝짝!
박수가 터졌다.
도윤은 신이 나 있었다.
"오늘 특별히."
"졸업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따끈따끈한 선배님들도 오셨습니다!"
관객들의 시선이 미송과 소희에게 향했다.
도윤이 소개했다.
"지난 졸업작품 최우수상!"
"하미송 선배!"
박수가 터졌다.
미송이 부끄럽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은하양장점의 떠오르는 재단사!"
"윤소희 선배!"
소희도 웃으며 인사했다.
도윤이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참고로."
"아직 두 분 다 미혼입니다."
순간.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소희가 마이크를 뺏으려 달려왔다.
"박도윤!"
도윤은 잽싸게 도망쳤다.
"사회자는 보호받아야 합니다!"
학생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패션쇼가 시작되었다.
은별이 직접 만든 원피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긴장한 표정이었다.
무대 아래에서 강인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은별도 살짝 웃었다.
이어 준혁의 남성복 작품.
수진의 독특한 패턴 디자인.
다정이 만든 귀여운 체크 재킷까지.
관객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미송은 조용히 후배들의 작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들 정말 잘한다."
소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때랑 거의 차이도 안 나는데."
"벌써 더 잘하는 것 같아."
패션쇼가 끝난 뒤.
학생들은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았다.
축제 음식들이 한가득 놓였다.
도윤은 어묵을 먹다가 갑자기 말했다.
"좋다."
"이렇게 다 같이 있으니까."
현우도 회사에서 퇴근 후 합류했다.
"늦었다!"
잠시 뒤 세나도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나도 왔다!"
도윤이 손뼉을 쳤다.
"드디어 전원 집합!"
졸업생 넷.
재학생 둘.
후배들까지.
잔디밭은 금세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재민이 슬며시 은별에게 물었다.
"선배들."
"졸업한 지 두 달밖에 안 됐는데도."
"벌써 어른 같지?"
은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데 또 그대로야."
다정도 맞장구쳤다.
"맞아."
"특히 강인 선배."
"미송 선배만 보면 얼굴 빨개져."
그 말을 들은 도윤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정도가 아니야."
"처음에는."
"'선배.'"
"'네.'"
"'안녕하세요.'"
"그게 하루 대화 끝이었다."
학생들이 폭소했다.
강인이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윤."
"응?"
"너."
"말이 많아."
"축제 사회니까."
"오늘은 봐줘."
노을이 붉게 물들 무렵.
강인과 미송은 교정 벚나무 아래를 천천히 걸었다.
운동장에서는 축제 음악이 들려왔다.
미송이 말했다.
"졸업한 지 두 달밖에 안 됐는데."
"왜 이렇게 오래된 느낌이지?"
강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여긴 그대로라서."
"좋다."
잠시 침묵.
미송이 강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학생일 때는."
"손잡는 것도 눈치 보였는데."
강인이 웃었다.
"지금도."
"조금."
미송은 장난스럽게 그의 팔짱을 꼈다.
"그럼."
"이건?"
강인은 얼굴이 붉어졌다.
"더."
"부끄럽습니다."
미송은 웃음을 터뜨렸다.
"송강인."
"언제쯤 안 부끄러울 거야?"
강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결혼하면."
미송의 걸음이 멈췄다.
"뭐?"
강인은 자기도 놀란 표정이었다.
"..."
"내가."
"방금."
"무슨 말 했지?"
미송은 한참 강인을 바라보다가 환하게 웃었다.
"좋아."
"기억해 둘게."
강인의 귀는 벚꽃보다 더 붉어졌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본 도윤이 현우를 툭 쳤다.
"봤냐?"
현우가 웃었다.
"졸업한 지 두 달 만에 저 정도면."
"빠른 거다."
세나가 웃으며 말했다.
"원래 사람이었어."
소희도 미소를 지었다.
"조만간 좋은 소식 있겠네."
도윤은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외쳤다.
"우리 의상디자인과!"
"만세!"
학생들도 함께 외쳤다.
"만세!"
웃음소리가 늦은 봄 하늘에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그날의 축제는
졸업한 지 두 달이 지난 청춘들에게,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시간처럼
모두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 제49회 끝 ―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