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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공 스님은 … 여섯 살 때 동진 출가한 스님은 1992년 군승법사 입대 전 가산당(伽山堂) 지관(智冠)큰스님을 은사로 정식 출가했다. 남원 대강면 약수암(현재는 약수정사로 명칭변경)에서 한글을 깨우치고 염불을 배웠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불교학과를 졸업했고, 대학원을 수료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어산작법학교’(전통 염불을 가르침) 본과 어산 전문반을 졸업했다. 고려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청소년학과를 졸업했으며, 사회복지사 1급, 보육교사 1급. 요양보호사 1급, 1종 대형면허, 방화관리자 2급을 소지했다. 함양경찰서, 남원경찰서 경승을 역임했고 남원 함양불교대학과 사암연합회 소임을 역임했다. | 30년 넘게 지장기도로 수행 정진 열악한 환경의 농촌 청소년 위해 2008년부터 ‘등용 청소년 공부방’ 운영 방학중 용맹정진 프로그램도 개설 공부방 출신 명문고 명문대 진학 절에 청소년 많아진 게 더 큰 보람 군장병도 미래 동량, 군부대도 지원 지리산댐 반대운동 등 시민활동도
전북 남원시 인월면 오봉산 가마봉 아래에는 지장도량이 하나 있다. 영선사다. 덕유산의 정기가 서려있고 정면으로 지리산의 전망대라 불리는 삼봉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그곳에서 수행에 매진하며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는 주지 월공 스님을 만났다.
월공 스님은 영선사를 지장성지로 가꾸기 위해 정진에 또 정진을 이어가고 있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리는 철야정진은 200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영선사는 철야정진에 동참하는 불자들을 지장행자라 부르며 올바른 지장신앙 선양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1998년 시작된 지장 철야정진은 2002년 태풍 ‘루사’로 큰 피해를 입었을 때와 스님이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서 생사를 헤맬 때를 제외하곤 거른 적이 없다. 지장행자들은 지장보살 〈본원경〉, 〈점찰선악업보경〉, 〈지장십륜경〉의 〈지장삼부경〉을 바탕으로 정진중이다.
월공 스님은 여섯 살 때 동진 출가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절에 맡겨진 것이 출가로 이어졌다. 어린나이에 무릎 꿇고 회초리 맞아 가면서 한글을 깨치고, 염불을 배워야했던 힘든 시절이었지만 스님은 오히려 그 시절을 큰 가피로 여기고 있다. 스님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군승법사로 입대하기 전, 총무원장을 지낸 가산당(伽山堂) 지관(智冠) 스님을 은사로 정식 출가했다.
진정한 지장신앙 의미 찾기
스님이 지장기도를 하게 된 것은 제대 후 세민 스님이 주석하고 있던 수안사에서 백중기도를 하면서 부터이다. 백중기도 기간 〈지장경〉을 의무적으로 독송하면서 지장신앙을 접하게 됐고 지금까지 30년 넘게 지장기도를 수행의 방편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스님은 1997년 말에서 1998년 초까지 진행했던 남원불교대학 강의 중에 계율에 관한 자료를 준비하다가 삼국유사의 ‘진표율사’에 대한 행장을 접하게 됐다.
“진표율사는 지장행자셨고 깨달음을 얻으시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제하시고 대불사를 이루셨습니다. 저는 그때를 진정한 출가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발심출가 이후 한 번도 변화를 생각해 본적도, 남을 부러워 해 본적도 없고 한 길만 걸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스님은 행장을 읽어 내려가던 중 진표율사께서 미륵불을 만나는 대목에 이르러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
월공 스님은 요즘 들어 지장신앙은 영가만을 위한 기도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가에 대한 대목은 지장신앙의 일부에 불과한데도 마치 지장신앙이 잘못 알려진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또한 스님은 지장신앙에 대한 의식문제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고 있다. 스님은 “미타신앙과 지장신앙이 혼용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사라지고 잊힌 지장의식을 살려내려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인재 양성 위해 ‘등용청소년 공부방’ 운영 그리고 스님은 미래 인재 국가사회 인재 양성 발원 지장행자 수행을 하면서 최근에 ‘등용청소년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영선사는 매일 올리는 사찰의 축원 속에 ‘국가사회 동량 양성불사 성취’라는 독특한 문구를 넣어 축원을 올리고 있다. 2009년부터 시작된 인재양성은 ‘지역아동센터’로 출발했다.
스님은 “당시 까다로운 행정 인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비인가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희망 학생이 두 달도 안 돼 160명에 이르게 되고 하루 최대 72명이 공부할 정도로 지역에서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고 말했다.
스님은 이후 행정적 요건을 갖추기 위해 청소년 공부방으로 전환하고 2010년에는 ‘사람과 희망’이라는 법인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2008년 경, 불사와 지장기도를 하던 중 부모의 이혼 등으로 가정이 해체되어 오갈 곳 없이 방황하는 아이들을 보고 아이들이 잠시나마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도 지장보살의 사상을 실천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작은 공부방을 마련하게 된 것이 지금의 청소년 공부방으로 발전하게 됐다.
월 3백~4백. 연간 4천 만 원에 육박하는 공부방의 운영비는 상당한 부담이지만 꾸준히 지원해주는 분들과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아 힘을 얻고 있다.
“인재의 양성에는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격적 수행을 통한 것이고, 둘째는 선거를 통한 것이고, 셋째는 학습을 통한 것입니다. 그 중 세 번째를 선택해 사찰이 위치한 인월에 무료 공부방을 마련하고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교육 여건은 대도시에 비해 농·산촌이 많이 뒤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도시의 청소년들이나 농·산촌의 청소년들이나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공정한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시골 마을인 남원시 인월면에는 변변한 학원이나 도서관 같은 시설이 없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방과 후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없고, 그로인해 여가 활동은 물론 도시 아이들과 학력의 차이가 점차 벌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스님은 그런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해 인월면에 50평 정도의 건물을 임대해 아이들을 위한 ‘등용 청소년 공부방(이하 공부방)’을 만들었다. 공부방은 청소년들이 공부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냉·난방시설을 갖추고 식사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또한 도서열람실과 집단 지도실, 휴게실을 갖췄고, CCTV, 고속 인쇄기, 컴퓨터와 노트북컴퓨터, 프린터 등을 갖췄으며,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 인터넷 강의도 들을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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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공 스님은 열악한 교육환경의 농촌 청소년을 위해 ‘등용 청소년 공부방’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직접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월공 스님(가운데). | “예전에는 열심히 공부만 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 자질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청소년들의 진로가 결정되는 시대입니다.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농·산촌 아이들도 얼마든지 공부만 열심히 한다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방 이름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의미의 ‘등용 청소년 공부방’으로 정했습니다.”
기성 학원들의 반발도 부담이 됐지만 스님이 낮에는 절에서 수행하고 저녁이면 공부방에서 밤 10시까지 아이들을 직접 지도하면서 이러한 문제들도 하나하나 개선됐다. 주말이면 20~30명의 청소년들이 공부방을 이용하고 시험기간에는 60명 정도가 공부방을 이용하고 있다.
스님의 이러한 노력은 청소년들의 학업성적 신장으로 나타났다. 작년까지만 해도 시골학교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외국어 고등학교와 명문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러자 지역 주민들의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료 공부방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공부방은 월 30만원의 임대료를 내야하는 임대 시설인데, 건물주인 인월새마을금고 측이 150만원의 후원금을 전해오기도 했다. 스님에게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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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공 스님은 군부대 지원의 공로로 군종교구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 2년 전부터는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하는 학생과 연세대에 입학한 학생도 배출했다. 이들 학생은 모두 학원은 가지 않고 오로지 공부방에서 스스로 공부하며 합격의 영광을 누렸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절에서 청소년을 많이 보게 됐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청소년들이 스스로 절을 찾아와 여가 시간을 보내거나 절일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자생적인 커뮤니티가 생성되어 절에 큰 행사가 있으면 각자가 스스로 자원봉사자가 되어 주고 있다.
스님은 학생들에게 불교를 강요하거나 불교색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불교색을 굳이 찾는다면 공부방 사무실의 지장보살상과 연등 몇 개가 걸려있는 게 전부일 뿐이다.
스님은 아이들에게 직접 학습지도도 하고 있다. 아이들의 학습지도를 하려면 스스로 아이들보다도 더 공부를 해야 한다. 기도와 수행 중에 공부를 하는 일이 보통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지만 스님은 아이들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아이들과 친구도 되고 때로는 선생님이 되기도 합니다. 휴대폰 문자로 아이들과 대화도 합니다.” 부모들과 대화가 부족한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스님은 미소를 짓는다.
방학 동안에 도시의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특별 용맹정진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절에서 숙식을 하면서 오전 9시부터 밤10시까지 공부방에서 함께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 도시의 청소년들은 산골생활을 느끼게 하고, 산골 청소년들은 도시의 청소년들의 공부하는 모습에서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공부하고, 그로 인해 교류하는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등용청소년 공부방을 운영하고 유지하는 데 월 300만 원 정도의 운영비가 필요합니다. 부담도 되지만 인재를 육성하는데 이 정도 투자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미래는 인재육성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대학생들 등록금 부담으로 부모들이 너무 힘들어 합니다. 대학생들이 등록금 반값 운동도 펼치고 있지만 서울 같은 대도시에 불자들을 위한 무료장학숙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많은 비용이 들고 힘든 일이지만 인재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투자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은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많은 보람을 얻는 동안 건강이 많이 상했다. 기도와 수행이 본분사인 스님이다. 게을리 할 수 없는 본분사를 이루고, 공부방을 오가며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이 육체적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은사 스님의 입적으로 인해 큰일을 치르다 보니 피로가 누적된 것이다.
스님은 결국 2012년 2월 뇌출혈의 일종인 ‘지주막하(뇌동맥)출혈’로 쓰러졌다. 스님은 골든타임을 훨씬 넘긴 뒤 6시간이 넘어서 전주의 큰 병원으로 이송돼 뇌수술을 받았다. 스님은 보름가까이 의식을 찾지 못하고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지만 스님은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약간의 시력 감퇴와 기억력 감퇴 현상을 겪고 있다. 그래도 스님은 이런 모든 일들이 지장보살님의 가피력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는 스님은 ‘등용청소년 공부방’이 국가 사회 동량의 심성과 자질, 불교적 정서 함양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고 있다.
군포교와 논산훈련소 ‘불교어머니회’지원
군승 출신이기도한 스님은 지역 향토연대 법당의 법회 지원을 요청 받고 매월 한차례 법회에 참석해 군 장병들을 만나고 있다. 남원 103연대 호국 홍제사 법당에서 장병들을 위해 법회를 열어온 것이 어느덧 10여 년째다.
스님은 군장병들 역시 미래의 국가 동량이라는 생각에 그들에게도 성심껏 마음을 쏟고 있는데, 논산 육군훈련소 호국연무사를 후원하고 있는 ‘불교어머니회’를 지원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논산훈련소를 지원하고 있지는 않지만 불교어머니회를 통해 간접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5년 전부터 사중에서의 지원뿐만 아니라 영선사의 중심 신도들이라 할 수 있는 지장철야기도회 회원들과 함께 월 50~60만원 정도를 후원하고 있다.
스님은 “군법사 출신으로 큰 힘이 되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정기적으로 후원해주는 여러 사찰 스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사회 위한 환경관련 시민활동 영선사 위치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 접경지역이라 사찰의 신도들 역시 전북과 경남의 신도들로 구성되어 있고, 스님의 고향이 경남 함양이라서 자연히 대사회활동도 어쩔 수 없이 양쪽을 오가며 활동하게 됐다. 스님은 남원 사암연합회와 남원불교대학, 경남 함양사암연합회와 함양불교대학에도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현재는 2000년에 결성돼 지금까지 이어져온 지리산 댐 반대운동에 역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한 동안 잠잠하던 지리산댐 건설이 최근 홍준표 경남지사의 발언으로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어 잠시 접었던 지리산 댐 반대 운동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스님은 함양시민연대 공동대표로 공명선거 실천운동, 지리산댐 반대 운동 등 지역사회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랜 활동으로 하나둘 떠난 활동가들의 빈자리를 스님은 묵묵히 지켜나가고 있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지역 특성상 농산물 파동이 발생하면 농민들은 엄청난 타격과 함께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배추파동이 발생하면 배추밭을 갈아엎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럴 때면 영선사 신도들을 동원해 농산물 팔아주기 운동을 전개해 농민들의 어려움을 덜어준다.
남원시 인월면은 고냉지라서 양질의 농산물이 많이 생산돼 고가에 판매되고 있지만 역시 파동은 피해 갈 수가 없다. 이럴 때면 스님은 영선사의 도시 신도들과 연계해 농민들을 돕고 있다. 평소에는 제철에 생산되는 고로쇠, 고추, 고사리, 오미자 등의 농산물을 도시 신도들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대부분 사보를 통해 공지하고 1천 여 명에 이르는 인터넷 카페 회원들에게 판매를 하고 있다. < 저작권자 © 현대불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첫댓글 스님의 열정적인 활동이 한 눈에 그려지네요~
스님~ 항상 건강도 챙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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