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와
최순우
강진에 고려청자가
알려진 것은 1913년이었다. 대구면 주재소에 있던 일본인 나카지마
요시다케가 파편이 출토되었다고 보고를 한 거였다. 일본인 학자들은 여러 차례 대구를 찾아와
청자기와 등을 채집하려 했지만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도굴꾼들은 대구면
용운리, 계율리, 사당리, 수동리 일대의 가마터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1964년 5월, 중앙박물관 최순우와 정양모는 서울을 출발한
지 이틀 만에 강진 대구에 도착해 수동리 부근 산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그러자 대구 지서 순경이 공무원 출장증을
보자며 불심검문을 했고 조용하던 당전마을이 소란스러워졌다. 틀림없이 간첩일 것이라고 믿고 포상금이라도
타 볼 요량으로 신고를 하였는데 청자파편을 주우러 왔다는 사실이 우습기만 했다. 마을 사람들은 소쿠리에 청자파편을 담아가지고
나타났다. 그것을 보는 순간 최순우는 가슴이
뛰었다.
최순우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나라 국보이고
보물이라고.
그때 한 아주머니가 소쿠리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그렇게 찾아 헤매던 청자기와가
들어있는 게 아닌가? 아들 이용희(청자장 36호)가 절대 팔지 말라고 당부했는데도 모친은
애옥살이 살림살이 때문에 그만 가지고 나온 거였다.
“우리 집 마당에서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어라.”
최순우는 마당이며 부엌에서 조금만 파면
청자기와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밖에서 일하다가 돌아온 이용희가 집으로
들어서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순우는 이용희가 단순한 농군이 아니라
청자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해 9월 22일, 최순우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이용희 집
마당에 시굴갱(試掘坑)을 파기 시작했다. 땅을 파들어 갈수록
암키와, 암 수 막새기와가 등 각종 청자기와가
쏟아졌다. 이용희가 살던 집터는 개성 만월대 부근의
양이정을 덮은 청자기와를 만든 가마터였던 것이다.
10월 5일과 6일, 각 일간지는 청자가마와 가마터 발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고려청자 문화의 요람 강진군
대구면’이라는 제목으로 연일 보도 경쟁이
벌어졌고, 청자는 온 국민의 관심과 함께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이용희가 있었다.
고려청자 재현
이용희의 새로운 삶은 1차 발굴조사 때부터였다. 국립박물관 발굴조사팀의 중요한 연락원이 된
것이다. 그리고 고려시대 청자가마터를 새롭게 발견해
내는 한편 마을 청년들과 힘을 모아서 ‘고려청자 마을박물관’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그렇듯 청자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던
1977년 청자재현사업추진위원회가 결성되면서 간사로
선임되었고, 광주 무등요 조기정 씨와 함께 고려청자
재현의 실무를 맡게 된다. 600여 년 동안 단절되었던 고려청자를 재현하기
위해 그는 가마를 만들면서 가슴이 뛰었고, 드디어 1977년 6월 18일 청자재현 가마솥 기공식이
열렸다. 당시 김성진 문화공보부
장관, 최순우 국립박물관장 등이 참석해 청자재현의
성공을 기원했다.
1977년 12월 27일 오후 3시. 600여 년 동안 잠자던 강진고려청자 가마에 불이
당겨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78년 1월 6일 오전 10시 초벌구이 도기를 가마에서
꺼냈다. 초벌구이에 성공한 작품은 모두
150점이었다. 이용희는 반드시 청자재현에 성공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다시 연기와 화염과 싸웠다.
1978년 2월 3일 오후 1시.
청자재현추진위원회는 공개요출을 보도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시했다. 이용희가 가마 안으로 들어가
외쳤다.
“청자 나왔네!”
600여 년 동안 잠자던 강진고려청자가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음각국당초문화병(陰刻菊唐草文花甁)을 부둥켜안고 이용희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리하여 1986년 1월 7일 ‘강진군 고려청자사업소’가 문을 열게 되고 이용희는 지방공무원으로
연구실장직을 맡았다. 그리고 14년간 근무하다가 퇴임한 이후에도 다년간
청자전시관 연구개발실장으로 일했다.
최근 중국에서의 활동
이용희는 중국엘 곧잘 다녀오곤
한다. 초 중 고(기술대학 포함) 합쳐서 30만 명의 학생을
수용하고 있는
절강성 해양대학에서 그는 해양실크로드에 대한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는가 하면 향우 10년간 해양대학에서 전시회를 갖기로 계약을
해놓은 상태이다.
또한 중국의 최초 도자기 생산지인 절강성
항주시 양자에서는 중국의 무형문화재급 수십 사람이 전시회를 갖는 과정에서 전총기법우수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이 행사에는 시진핑 주석 다음으로 가는
2인자가 참여해 축사를
하였고, 54개국 국어로 방송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왜 해년마다 이용희를 찾는
것일까? 한국을 대표해서 강진고려청자를 알리는
이용희는 분명 이 시대의 청자장임에 틀림없다. 문화예술적으로 큰 족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현) 무형문화재 36호 청자장
한극무형문화재 총연합회
이사
전남 신지식인
강진 동흔요 대표
2016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작품전시회(일산 킨텍스)
중국 절강 해양대학교
초청전시회
중국 양주 전통디자인대회 우수작품상
수상
2015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작품전시회(전남 나주 천연염색
박물관)
중국 용천시 강진청자
전시회
2014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작품전시회(전남 장성 백양사 내)
2013년 김대중컨벤션센터 전시
판매전
중국 경덕진 대학교 초청
전시회
순천 정원박람회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작품전시회
2012년 한국 전통공예전
2010년 중국 항주 개인전
2009년 강진청자 유럽 순회전
2008년 강진청자 미국 순회전
2007년 강진청자 일본 순회전
2004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36호 청자장
1999 2001년 성화대학 도자기 공예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