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문 중 독
명문이라는 이름은 왠지 가슴을 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우리는 ‘명문’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자부심을 넘어 '자만심'때문에, 명문이라는 허울에 목을 메는 경우도 허다하지요.
영화 타짜라는 도박꾼들의 이야기에도 경찰에 잡혀가면서조차 "왜 이래? 나 00대 나온 여자야!"라며 한껏 자신의 허세 아닌 허세를 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씁쓸한 마음도 드는 대사지요. 나중에 개그 소재로 자주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명문대학, 명문고등학교 명문, 명문, 명문 학교. 보통 초, 중고에 명문이라고 이름을 붙일 때의 의미는 ‘명문 대학’에 많은 학생이 진학하는 것을 기준으로 합니다. 이때 명문 대학이라고 한다면 역시 ‘명문 기업’에 얼마나 많은 졸업생들이 진출하여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명문 기업은 ‘가장 많은 연봉을 주는 곳’이라는 의미가 가장 강합니다. 결국 우리 아이들을 명문에 보내려는 이유는 ‘가장 많은 돈을 벌게 하기’ 위해서 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긴 88만원 세대라고, 명문이 아닌 곳의 대학 졸업자는 눈앞에 서글픈 현실을 겪어야 하기에 명문이라는 이름에 더욱 목을 매는 것 같습니다. 따지고보면 명문졸업자 중에도 수많은 실업자가 있다고 하는데... 명문에 얽메이지 않고 행복하게 공부하고, 행복한 어른이 되어, 행복하게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요?
아직까지 이런 학교들은 시험성적이 뛰어나면 큰 어려움 없이 진학할 수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요소인 ‘심성’ ‘인간관계력’같은 요소들은 성적표에 한 줄 정도의 묘사되고 입시 등에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최근 대학들이 ‘입학사정관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있는데 매우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SKY라는 다소 낯설었던 이 단어는 이제 우리 사회 최고대학, 최고의 집단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기에 끼지 못하는 대학은 그 다음 그룹 정도에라도 위치하려고 온갖 몸부림을 치고, 그렇지 못한 대학의 학생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출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임시정류장 정도로 자신의 대학을 부끄러워하는 분위기이지요.
얼마 전부터 미국의 어느 언론사, 중국 어느 대학, 조금 지나니까 영국의 언론이 대학순위를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나라 어느 대학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이 많은 대학들이 2천 몇 년까지는 세계 100대 대학에 들겠노라는 청사진을 발표합니다. 요란스럽게 광고도 했구요. 물론 우리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SKY조차도 말이지요. 저도 상담을 하면서 학교를 선택할 때 어쩔 수 없이 참조는 하지만, 1등만이 살아남는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부쩍 이런 순위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대학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것은 이제까지 우리 대학들이 무풍지대처럼 너무 안일하게 자리하고 있었던 까닭도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소비자인 학생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이유도 있습니다. 아마 세계 100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학교발전을 위해 가장 쉬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뭔가 허전합니다.
교육이 이처럼 ‘우상’ 수준인 나라가 또 있을까요? 온 가족이 교육에 매달리다가 자녀가 고3이 되는 순간 그 가정은 1년간을 수도원에서 수양하듯 아니 매일 매일이 예배인 것처럼 모든 것을 수험생에게 쏟아 붇습니다. 크리스천인 저도 교회에서조차 그렇듯 경건한 모양새를 갖추는 것은 겨우 일요일 하루뿐입니다.
해외교육을 국내에 소개하고 이와 관련된 컨설팅과 플래닝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지만 어느 사이엔가 허전한 마음이 듭니다. 교육을 위해서 가족까지 포기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우리는 과연 누구입니까? 왜 교육을 받고, 교육을 할까요? 더구나 우리교육에서 가장 큰 가치로 삼는 것은 1등이며 최고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 붓도록 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요?
위에 이야기 했던 학교나 기업들은 그냥 인기 있는 학교, 인기 있는 기업으로 그 호칭을 바꾸었으면 좋겠습니다. 명문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돈’이 차지하는 비중이 심하니까요.
앞으로 명문이라는 이름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공헌을 하고, 진정으로 이웃과 사회 그리고 여러 나라의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해 애쓰면서, 아픔과 상처를 싸매고 보듬으며 위로하는지를 평가해서 진정한 ‘명문’이라는 칭호를 붙였으면 좋겠습니다. 또 어느 언론, 누군가는 이런 잣대를 가지고 학교와 기업을 평가하고 그렇게 우리 교육을 제자리로 돌려놓았으면 합니다. 그런 기준이 애매하다면 그냥 우리들 마음속에만 명문이라고 인정하여 남도록 그 평가자체를 없애는 것도 좋겠지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서 짐 콜린스가 지적한 ▶겸손하고 ▶부지런하며 ▶결단력 있는 CEO가 성공한다는 결론에서 유추해서 생각해 보자면 지적인 능력이 뛰어나다면 결국 어느 정도 인정받는 사람은 될 수 있겠지만 요즘처럼 높은 순위의 대학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거나 이제까지의 명문이라는 이름에 연연한다면 위대한 기업, 위대한 사람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진정한 명문다운 교육은 나를 나답게 하고, 서로에게 배우며, 이웃과 사회, 국가를 섬기기 위해 겸손한, 어떤 일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리더를 길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런 리더라면 '명문' 출신임이 틀림없을 겁니다
- 한승호 목사님/ 국제대학교수, 교목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