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세상보기] ② 평택 사태 어떻게 봐야하나 http://news.kbs.co.kr/article/newstime_sun/200605/20060507/1147699.html | |||
<앵커 멘트> 지난 4일이었죠?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대추분교에 대한 강제철거와 이 일대 285만 평에 대한 철조망 설치가 물리적 충돌 끝에 완료됐습니다. 그런데, 그제(5일)하루만에 시민단체에 의해서 철조망이 뚫려 버렸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정치외교팀의 하준수 기자와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1) 우선, 그제 상황이죠? 밤새 쳐놓은 철조망이 뚫였단 말입니다? 당시 상황부터 살펴보죠? 답변 1) 네, 지난 5일 오후 5시쯤이었습니다. 미군기지 이전 예정 부지인 팽성읍 대추리, 도두리 일대 들판을 주민들은 <황새울> 이라고 부르는데요, 군 지휘본부 막사 근처에서 일부 시위대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대치하는 사이, 다른 시위대가 인근 철조망을 절단기로 자르고 들어가 버린 겁니다. 일단 철조망이 뚫리자 대학생, 시민단체 회원 백여명이 물밀듯이 밀고 들어가서 벌판을 휘젖고 다녀서 한동안 군과 민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시위대는 20여 분만에 철조망 밖으로 물러났는데, 나갈 때는 다른 곳의 철조망을 끊고 나가는 식으로 그날 밤까지 산발적으로 치고 빠지면서 20여 곳을 절단했습니다. 물론, 군이 잘린 곳을 원위치시키긴 했지만요, 시민단체는 이번 시위의 목적이 철조망 무력화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즉, 황새울 들녁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시민단체의 주장을 들어보시죠. <녹취> 박래군 (범대위 언론담당 활동가): "철조망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 절단하는 시위를 펼쳤다" 질문 2) 철조망이 왜 이렇게 무력하게 뚫리는 겁니까? 답변 2) 네, 일단 표면적으로 본다면 지키기엔 너무 땅이 넓은 거죠. 말이 285만 평이죠. 가서 보면 지평선이 보일만큼, 광활하다는 표현이 적격입니다. 철조망 길이도 29킬로에 달해, 군은 현재 500미터 간격으로 초소를 두고 경계근무를 펴고 있습니다. 현지 군 장교의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 김재을 (중령/ 수도군단 정훈공보참모): "군은 철조망 안에서 비무장으로 근무하고, 경찰이 철조망 밖에서 지킵니다." 군은 주민들과 직접 접촉을 피하기위해 철조망 바깥 경비를 경찰에 맡겼다는 말인데, 이게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죠. 285만평, 29키로에 걸쳐 줄을 죽 세우기 전에는 어딘가 허술한 틈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경찰도 지난 4일 대추분교 강제철거 과정에서 선봉에 나서는 악역을 맡는 바람에 과잉진압 논란에 휩싸이면서 이미지 관리를 하느라 몸을 사린다는 말도 들립니다. 일정에 쫓긴 국방부가 일단, 서둘러서 철조망은 쳐놓았지만 그걸 이제 어떻게 지켜내느냐 하는 또다른 고민에 빠진 겁니다. 질문 3) 군의 대응이 주목되는데요? 더욱 강경한 자세를 보이지 않을까요? 답변 3) 네, 국방부는 당일 밤과 어제 공식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시위대와 충돌해 부상한 장병이 속출함에 따라, 사태가 악화될 경우엔 장병들에게, 자위 수단을 강구하는 차원에서, 방패와 진압봉, 방독면 등 비살상 개인보호장구를 우선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암튼, 군으로서는 명색이 경계근무를 하면서, 비무장으로 나서는 것 자체가 곤혹스런 입장입니다. 이와관련해, 황규식 국방차관은 기지건설이 확실시돼 정말로 보호 가치가 있을때, 기존 경계 지침에 따라야 한다며, 군사시설이 들어설 경우 군의 무장 가능성을 내비쳤습니다. ====== ENG 4 끝! ======== 질문 4) 지난 4일이었죠? 대추분교가 강제철거됐는데, 과정이 아주 격렬했죠. 그 이튿날 대추리에 가보셨다고요? 마을 분위기는 어떻던가요? 답4) 네, 지난 4일 운명의 강제철거날.. 근 10년 이래 최대 규모의 공권력이 투입됐죠. 경찰이 만천여명, 군이 3천여명 등 거기에 주민 2백여명, 시민단체 9백명, 그많은 인원이 격렬하게 부딪히니 부상자가 없는게 오히려 이상하죠. 범대위, 주민측 부상만 105명, 경찰 부상자 138명입니다. 34명은 수술을 받아야할만큼 중상입니다. 그런데, 주민들 얘기는 보도 안된 학생, 청년 부상자가 그리 많다는 군요. 그래서, 그런지 그 다음날 대추리를 찾았을 때, 마을 분위기가 아주 흉흉했습니다. 취재나온 기자들에게도 날이 선 말들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녹취> 대추리 주민: "학생, 주민 모두 그렇게 얻어맞았는데, 실질적으로 보도가 안됐잖아요.." <녹취> 대추리 주민 : "눈 뜨면 철조망이 보이고, 군인들이 나다니고, 나가보면 경찰들이 맨 돌아다니고, 이게 뭔놈의 민주주의여? 농사짓는데 철망이 왜 필요해??" 질문 5) 이쯤해서 궁금한게 평택 기지이전 사업이 ‘왜 꼭 물리적 충돌로 끝났는가’ 입니다. 다른 해결책은 없었을 까요? 답 5) 네, 한마디로 상호 신뢰가 부족했고, 따라서 진솔한 대화가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여기서, 그동안의 추진 일지를 보면 지금 화면에 보이죠. 그래픽으로.. 지난 2004년 10월 한미 양국은 용산기지 이전 협정에 최종 합의했습니다. 평택 지역이 대체부지로 확정됐고, 국방부는 지난해 토지매수에 나섰습니다. 지난 1월까지 75%을 매수하고, 나머지 25%는 강제수용 방식으로 소유권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러나, 대추리와 도두리의 상당수 주민들은, 정든 땅을 떠나기 싫다며, 죽어도 농사를 계속 짓겟다고 한 겁니다. 급기야, 논갈이를 하고, 볍씨까지 뿌리자, 정부는 2차레나 영농차단 작전을 벌였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간 제도권 언론에서 크게 부각이 안된 부분이긴 하지만, 끝까지 반대하던 주민들은, 그만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일제와, 미군에 연달아 땅을 뺏긴 뒤, 간척지를 피땀으로 개간해 지금의 옥토를 만든 애절한 한의 역사가 그 것 입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유별나게 한스런 주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달래고 아우르지 못했고, 그 공간을 시민, 사회단체가 비집고 들어서면서, 해결이 더욱 복잡하게 됐던 겁니다. 군 이전과 관련해 성공적인 해결 사례가 있는데, 기무사의 과천 이전 건입니다. 당초 기무사가 과천으로 이전할때 22만평을 게획했다가 주민들 반대에 부딪히자 <다자간 협의체>를 구성해서 논의 끝에 5만평으로 줄여서 이전에 성공한 사례.. 결국 서로가 조금씩 양보해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걸 방지한 것. 그런데, 평택에선 기지이전 강행이다, 이전 반대다 라고하는 원칙론만 팽팽이 맞서다가 결국 물리적 충돌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질문 6) 대추리 주민들의 그 <빼앗긴 땅의 100년 역사> 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답변 6) 네, 팽성읍 일대 주민들의 땅 수탈의 역사는 100년 넘게 거슬러 올라갑니다. 평택에 외국군대가 들어온 것은 1894년 청일전쟁 때 부터입니다. 팽성읍 인근 성환이란 곳에서 일본군이 대승을 거뒀죠. 1905년 러일전쟁까지 이긴 일본이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팽성읍 안정리 일대에 군사 기지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기지 건설에 동원된 사람이 숱하게 많았다고 합니다. 해방이 되자, 이젠 미군이 들어와 불도저로 논밭, 야산을 밀어 활주로로 바꾸고 기지를 넓히는 바람에 온 동네 사람이 쫓겨났습니다. 현재 대추리와 도두리 일대 수백만 평의 농지는 모두 미군 부대 땅에서 쫓겨난 주민들이 피와 땀으로 개간한 땅입니다. 73살 방승률 할아버지 말. <녹취> 방승률 (대추리 주민): "우리는 일제때 땅을 징발당했고, 6.25때 또 철거를 당했고, 겨우 간척지라고 해서 힘들게 막아 가지고.. 지금 옥토가 된 것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가 고생한 그 땅을 어떻게 버리느냐고,, 어떻게.." 그렇게 넓힌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의 현 면적은 166만 평에 이릅니다. 질문 7) 캠프 험프리스라면 대추리 바로 담장 건너에 있는 미군기지를 말하죠? 그런데, 미군기지 안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요?? 답변 7) 네, 담장 밖에선 그 난리인데요, 기지 안쪽에선 그들 계획대로 모든 게 착착 진행중이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2008년 12월까지, 용산기지와 미 2사단이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하도록 돼 있습니다. 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오산.평택 그리고 부산이 각각 한반도의 허브기지 즉, 중심기지가 되는 겁니다. 요즘 캠프 험프리스는 속속 이전해오는 인원과 장비를 맞아들이느라 분주합니다. 2년 전 통폐합된 천 여명의 2사단 병력과 아파치 공격용 헬기 대대가 이미 이곳으로 재배치됐습니다. 요즘 기지 곳곳에서 군인.가족 막사를 짓는 등 건설 공사가 한창입니다. 용산기지만 해도 가족과 함께 오는 군인들에게 가족 숙소가 절대 부족해서 어려움이 많았는데, 평택에 기지를 확장하면서, 쾌적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방침입니다. 기지 사령관의 말입니다. <녹취> 마이크 텔리엔토 주니어 (기지사령관): "기지 이전을 준비하는 작업으로, 현재 6억 5천만 달러의 대규모 건설이 진행중입니다." 미군은 향후 4~5년내에 50억 달러, 5조 6천억원을 건축 비용으로 더 투자할 계획입니다. 질문 8) 그럼, 미군은 앞으로 추가 매입지, 285만 평을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계획입니까? 답변 8) 네,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을 보시면서... 설명드리죠.. 현재 캠프 험프리스가 166만 평 규모인데,대추리,도두리 일대 285만평을 추가 매입하면, 451만 평으로 확대됩니다. 여기엔 주한미군사령부와 유엔사, 한미연합사,미 8군, 미 2사단 등 주한미군의 핵심 지휘부가 집결하게 됩니다. 미군 만 4천여 명, 미군가족 만천여명, 한국군 800명 등이 이전하면서 기지에서 활동하는 인원도 현재 9천여명에서 4만 5천여 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미군은 크게 5개 구역으로 나눠 운영할 계획인데, 남쪽엔 주로 가족주거단지와 초중고교, 호텔, 골프장 등 여가시설을 짓고, 중간 지역에 군인 막사를 지은 뒤, 수송대나 소총, 기관총 등 소화기 사격장 등 소음 발생 시설은 강쪽 후미진 곳으로 몰았습니다. 기지 이전 사업을 담당한 책임자의 말입니다. <녹취> 래리 모나코 (주한미군사 본부 선발대 차장): "기지 이전 사업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첫째, 소음을 줄이는 것이고, 그 다음이 중장비를 도로가 아닌 철도로 수송한다는 점 입니다." 질문 9) 끝으로 남은 과제들은 뭔지 정리해주시죠.. 답변 9) 네, 우선 당장 끝까지 기지이전에 반대하던 주민들과 이주단지 조성, 대체농지 제공 문제 등을 계속 협의해야 합니다. 또 성토, 즉 땅을 돋우는 작업도 문제.. 미군은 기지이전 지역이 지대가 낮기 때문에, 100년만에 한번 올지도 모르는 홍수에 대비해서, 안성천 주변에는 3.5미터 둑을 쌓고, 285만 평 전부에 3미터 높이로 흙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비용을 누가 대느냐 하는 문제는 한미간에 아직 합의가 안된 상태입니다. 또 하나는, 반환되는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을 치유하는 문제.. 지난 2002년 한미가 합의한 LPP, 즉 연합토지관리계획에 따라 오는 2011년까지 반환될 예정인 미군 기지는 모두 62곳 입니다. 한미 양국은 27개 기지에 대한 환경오염 실태 조사를 마쳤으며, 이 가운데 15개 기지에 대한 정밀 조사 결과가 최근 공개됐습니다. 이 중 14개 기지에서 토양 오염이 국내 환경 기준치를 크게 넘어선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최소한 5천억 원 이상이 들 것으로 추정되는 치유 비용을 누가 대느냐를 놓고 현재 한미 양국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말씀 드리자면, 평택 사태는 정부가 보는 것처럼, 저항의 상징이었던 대추분교를 부수고, 들판에 철조망을 다 쳐놓았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제 대추리에서 만난 한 시민단체 활동가도 같은 말을 하더군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