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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평화운동코디네이터 워크숍으로 15일간 영국의 여러 지역을 투어했습니다.
갈등분쟁지역인 북아일랜드의 여러 기관과 학교
공동체는 인상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코리밀라 공동체는 우리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코리밀라 공동체를 중심으로 평가와 함께
향후 한국YMCA에서 점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생명평화운동센터 준비를 위해
제 위치에서의 제언을 함께 정리했습니다.
너무나 미진한 내용이나 어디까지나 주관적 해석과 내용이 함께
있음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글에는 코리밀라 공동체의 환경과
차후 한국사회에서 갈등해결을 위한 공동체 또는
NGO 등이 함께 생각해볼 내용이 있는 듯 해서 일단은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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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내안의 길 찾기
(코리밀라 공동체에서)
정건희 (군산YMCA 부장)
평화의 희망
내 안의 평화를 찾기란 쉽지 않다. 나를 보건데 내 안의 내가 너무 커버렸고 커버린 내가 나를 다스리려 한다. 내 안의 내가 본질적 생명을 자꾸만 비껴가려 한다. 삶은 힘겹다며 피하려 한다. 꿈을 이야기하나 삶을 비교하며 현실론에 치여 버린다. 운동을 통한 이상을 이야기 하나 공허함 속에 아무것도 없음으로 치부해 날려 버리곤 한다.
하지만 우리 안의 평화는 선택이 아닌 필연적으로 가져야 하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우리는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평화를 이야기하면 꿈을 떠올린다. 다양성이 존중되고 차이가 인정되며 신이 생명을 만드신 그 목적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평화를 꿈꾼다. 그 표현 그대로 꿈일 수 있다. 꿈이어도 된다. 꿈이 없는 삶은 비참함에도 많은 이들이 그 꿈을 놓아 버린다.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것은 꿈을 꾸는 것”이란다. “희망을 노래하는 거”란다. 어느 노래 가사 속에 있는 이 몇 소절이 가슴을 울린다. 평화는 꿈이어야 한다.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 희망하는 본질은 생명임에 분명하다. 그 생명은 내안의 가장 깊은 곳에 숨 쉬고 있는 본질임을 고백한다. 그 꿈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우리는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 생명이 숨 쉬는 사회를 일구기 위해서 우리는 꿈을 꾸며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 꿈이 희망이 되면 그것은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현실이란 내 주변에 반드시 존재해야만 이루어진다고 믿는 유물론적 사고를 갖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내안의 현실은 실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존재감은 내안의 변화에 의해 추동되기 때문이다. 그 존재감 자체가 실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존재감 자체의 변화를 위해 이루어진 공동체를 만났다. 가치가 현실이 되었고 그 현실이 세상의 변화를 추동했다.
영국의 북아일랜드를 돌아보며 평화를 위한 민중의 순수한 공동체를 만났다. 코리밀라 공동체(Corrymeela Community)이다. 북아일랜드는 분쟁의 역사가 길다. 그 만큼 그 안에서 시민들의 해결을 위한 노력이 많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노력이 매우 중요한 결정체로서 코리밀라 공동체가 탄생했다. 실제적인 시민들의 자발적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보여준다. 평화란 살아가는 이들이 한올 한올 지어낸 옷감과도 같다고 한다. 그래서 분쟁 안에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현재의 평화는 너무나도 소중할 것만 같다.
내가 만난 코리밀라(Corrymeela)
코리밀라(Corrymeela)는 아이리쉬 말로 ‘화해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여정 중에 매우 중요한 공동체였음에도 제정상황과 예약 등의 문제로 인해 들르지 못할 번 했다. 최소한 공동체 안의 생활과 프로그램의 내용은 만나고 싶어 안에 머물지는 못해도 밖에서 식사와 잠자리는 해결하고 코리밀라를 접해보자는 의견으로 예약이 취소된 상황에서도 찾아가게 되었다. 코리밀라에 도착 후 정지석 박사님이 우리 일행의 일정과 목적을 잘 설명하였다. 코리밀라 측에서 의외로 매우 호의적으로 숙박비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예산으로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코리밀라의 뜻처럼 공동체 주변의 환경은 화해와 평화를 설명하고 있는 듯 아름다웠다. 바다와 인접해 있는 주변의 환경은 나의 서툰 글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의 안정감과 평화로움을 전해 준다. 우리가 꿈꾸는 생명평화센터의 자리 그 자체가 평화로운 환경에 입각한 공간이어야 하겠다. 퀘이커의 산실이라 이야기 하는 우드부룩에서의 경험 또한 어떠한 프로그램이나 내용보다도 자연환경에서 전해져 오는 영적 순수함이 평화 그 자체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데이빗과 마리안의 안내로 숙소에 여장을 푼 후 코리밀라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데이빗은 이 곳의 상근 활동가였고 마리안은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일년여간 이 곳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을 한다고 했다. 데이빗은 26세의 청년인데 코리밀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으며 특히 공동체의 창시자인 레이 데이빗 목사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해 보였다.
데이빗의 코리밀라에 대한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분쟁지역의 갈등해결 방법의 기본은 수용, 이해, 존중이다. 갈등해결의 핵심은 관계(relationship)에서 나온다. 따라서 그 관계 형성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적 접근은 매우 간단했지만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 내용은 많았다. 서로를 알게 해주는 것이다.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공포감이 있다고 여긴다. 알면 이해한다는 매우 단순한 명제였다. 그 관계형성은 기독교적 바탕이 깔려있다. 이 곳에서는 먹고, 자고, 예배하고 즐겁게 지내도록 이루어져 있다. 예배도 자유롭다. 대부분의 일정 자체가 선택할 수 있도록 이루어져 있다. 코리밀라의 제정상황은 정부에서 20%, 숙식과 프로그램으로 35%, 후원자들의 지원과 다양한 단체에서의 지원으로 이루어진다.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많은데 이들은 가족과 같은 서비스를 지원한다. 자원봉사자들이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코리밀라는 웨이 데이빗 목사께서 설립했다. 그는 1939년에 참전했으며 전쟁을 통한 많은 경험을 체험했다. 친구와 함께 참전했으나 친구가 죽는 모습을 보았고 전쟁포로로 갖혀 두려움 공포 등 많은 어려움을 경험했다. 전쟁이 사회, 가정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다. 전쟁포로시절 포로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었음에도 포로들과 함께 하며 선교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고 남아 있기까지 했다. 이 전쟁의 절망감 안에서 희망을 보게 되었다. 이 곳에서 복음(Gospel)의 중요성을 체험한다. 복음으로 표현하였으나 우리 안의 인식에서 소명, 또는 사명의 본질적 삶의 목적일거라 추정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 인성을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표현하고 상대를 알아가는 것이다. 사람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려 할 줄 아는 것은 내적 영성에 많은 부분좌우하게 된다고 보여진다.
전쟁 후 퀸스유니버스티의 교목으로 활동하며 젊은이들과 많은 교감을 갖게 된다. 이때부터 코리밀라의 비전이 구체화 되었다. 대학의 청년들에게 더 낳은 세상을 위한 비전을 심어주었다. 개신교 목사였으나 카톨릭의 미사도 보게 하고 다른 공동체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어떤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졌다. 함께 모여 이야기하며 상호 소통함으로 영향을 주고 복음이 하나 될 수 있는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고 싶어했다. 이러한 희망이 현실이 되었다. 공동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코리밀라 초창기 7에이커 정도에 통나무집을 지었다고 한다. 약 6천파운드가 들었다. 초기 비용이 없어 참여했던 학생들이 돈을 빌리고, 커피를 팔고, 구걸을 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돈을 모았다. 코리밀라의 3가지 의미가 있는데 지방언어로 언덕(화합의 언덕), 전환점, 두 곳이 만나는 지점의 의미가 있다. 코리밀라 공동체를 시작하며 가장 시급한 일은 현재 이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홍보 하는 것과 공동체가 기거할 집을 짓는 것이었다. 따라서 초창기 참여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침대를 자신이 만들어 잠을 잘 정도의 열정으로 참여했다. 이로 인한 초창기 환경에 의해 이 곳의 철학적 근거가 한부분 만들어 지게 됐다.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참여하며 과정을 통해 변화된다는 것이다. 일을 행하며 서로 대화했고 다양한 내용의 모습을 구상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홍보되어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여 한가지씩 만들어 나갔다. 이러한 뜻을 가지고 실제 움직이는 작은 긍정성의 발현이 코리밀라 갈등해결의 근간을 이룬다.
1969년부터 북아일랜드에 프로테스탄트(개신교-장로교)와 카톨릭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이 때부터 코리밀라는 갈등해결을 위한 중재를 하게 된다. 코리밀라에서 쉴 수 있도록 하였고 평화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했다. 1971년 폭행과 관련 있다고 생각되면 구속시킬 수 있는 테러리즘법이 통과되었다. 그 당시 대부분 카톨릭 가정 450가정이 폭행당했으며 한 지역에서 6~7명이 살해 당할 정도로 사회혼란이 커졌다. 이러한 혼란기의 사람들을 코리밀라로 실어 날랐다. 사회혼란기에 힘겨워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떠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보다는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기능을 수행했다. 즉, 공동체원들이 진행하는 것은 이타성을 가지고 자기탐색을 행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 자연스레 갈등해결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 가운데 제정의 어려움이 있었으나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으로 4,000파운드가 모여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지원되는 등 호응도 좋았다.
공동체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 모두가 코리밀라 본래의 정체성을 가지고 모두가 이타적이고 선하지는 않았다. 서로간 싸우는 등 갈등이 있었다. 그 갈등 또한 원인을 서로 이야기하며 나누는 가운데 해결해 갔다. 공동체가 궁극적으로 하는 역할은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며 “갈등이 일어나는 곳에 찾아가서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차이점을 알고 연결시켜 소통의 역할”까지도 행한다.
공동체에서는 파견한 사람들을 통해 서로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각 종교간의 대화를 하는 것과 서로 갈등을 하는 집단, 개인 간 소통할 수 있도록 중재역할을 하며 소통의 중간 역할을 하는게 중요하다. 특히 종교간의 대화를 통해 상대를 만나게 해 서로간의 공포가 무엇인지 알게 한다. 아일랜드의 갈등이 카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이 주였지만 현재는 개신교 지역간의 갈등도 심하다. 정파간 권력싸움이 있으며 경제적 문제로 인해 영국으로부터 북아일랜드가 마냥 독립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몇 가지 예 중에서 문제청소년과 경찰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 경우가 있었다. 경찰과 청소년간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고 편견과 가치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름 하나를 기억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서로를 존중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서로간 다툴 때도 있었으나 여러 모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모습으로 프로그램을 마쳤다. 그 후 지역에 문제가 발생해 경찰이 출동했는데 자신이 코리밀라에서 만났던 아이를 그 자리에서 보았다. 유혈사태 직전에 상사에게 자신을 믿어 달라며 말하고 총과 방패를 내리고 그 아이를 만나 문제가 무엇인지 서로간 이야기 하고 상황이 종결되었다. 이러한 예에서 보여지듯이 갈등대상자들이 서로를 알 수 있도록 소통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한 누가 옳고 그르고,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닌 그 문제 그 자체를 자신 안에서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둘째날 청소년담당실무자를 만났다. 우리가 머물 때에도 청소년프로그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진행한 다양한 활동에서 만난 아이들의 느낌과 비슷하다. 어느 나라의 청소년들이건 그 아이들의 순수함과 밝고 역동적인 모습은 같았다.
코리밀라 청소년운동의 아이디어는 70년대 초기 영국의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지원받으며 설계되었다. 70년대 초 폭동이 일어나자 사람들을 인위적으로 분리시켰다. 이로 인해 청소년들이 매우혼란스러웠다. 이 때에 청소년들의 소위 문제조직인 갱조직인 만들어졌다. 지역의 무장조직이나 정치조직들이 이러한 청소년 갱조직을 끌어들여 하부조직으로 활용했다. 이로 인해 14세에서 20세 사이의 청소년들이 감옥에도 가는 등 많은 부작용이 있었다. 갈등이 일어났던 청소년들은 이름만 들어도 서로 대치할 상대라는 것을 알았으며 병원, 학교 심지어 무덤도 갈라져 있던 양분화된 갈등 속에서의 서로간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갈등이 있는 청소년들을 코리밀라로 데려와서 함께 만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만나는 청소년들은 서로가 알아가면서 상대에게 느꼈던 공포를 줄여갈 수 있었다.
현재에는 가난한 지역의 개신교 사람들은 예전의 카톨릭주민들의 어려운 삶은 생각하지 않은채 카톨릭주민들에게 많은 혜택을 준다고 여기며 좋지 않은 감정들이 늘고 있다. 이와 함께 정치적인 정당간의 분열과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하지 않는 미묘한 감정들이 있으며 그렇다고 남아일랜드와 통합하는 것을 꼭 원하지도 않는다. 여러 복잡한 갈등상황이 전개되어 있다. 이와함께 지역민간의 갈등이 아닌 중국인, 폴란드인 등 외국인들과의 갈등도 존재하고 있다.
코리밀라 청소년담당실무자는 현재 몇 가지 영역에서 일하고 있었다. 우리와 같은 코리밀라에 참여하는 그룹과 지역의 공동체와 소통하는 것과 함께 청소년 프로그램을 코디네이팅(coordinating)해 주는 역할을 했다. 청소년을 직접 만나느냐는 질문에 청소년은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만난다며 자신은 나이와 현재 환경에서는 쉽지가 않다고 했다.
코리밀라 이해1)
코리밀라 공동체는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두고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대립과 분열, 폭력과 정쟁을 막고 치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북아일랜드 북쪽 해안 벨리캐슬(Ballycastle) 지역의 바닷가 언덕 위에 지어졌다. 교육관 관련된 코리밀라의 활동은
첫째 지역간 교류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한 학교사업, 둘째 청소년실무자(Youth Worker)들이 진행하는 청소년사업, 셋째 신․구교도 사이의 화해를 가르치기 위한 기독교 교육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특히 두 종교 집단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함께 먹고 자면서 서로 연대감과 이해를 높인다. 즉, 다른 관점과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 직접 만나 상대방의 경험을 나누고, 서로의 가치를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유대감, 소속감, 의사소통, 정치적인 문제, 갈등, 믿음 등과 같이 특정한 주제에 관해 토론을 하거나 게임과 모둠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러나 코리밀라 공동체가 지닌 힘은 교육프로그램의 우수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공동체 안의 어떤 분위기를 직접 느끼는 일이 더욱 가치 있다고 본다. “남을 강제하지 않고, 차이를 인정하며, 인간을 같은 인간의 눈으로 따뜻하게 바라보는 분위기”를 말한다. 분위기라는 말에 언듯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모르겠다. 이 분위기는 창시자인 웨이 데이빗 목사의 근본적 자기 정체성과도 연계될 수 있을 것 같다. 영성에 대한 확고한 자기 밑바탕에서 시작된 이 공동체의 기운일 수 있다. 우리가 평화운동센터를 접근할 때 매우 중요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대목임에 분명하다. 코리밀라에서는 여러 환경이 유연해 보였다. 하룻밤을 묵었음에도 방을 선택해 들어갈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했다. 혼자서 잘 수 있느냐는 말에 데이빗은 선듯 가능하다고 이야기 했다.
1979년 지어진 예배실(Croi)은 마음을 뜻한다. 이 곳에서 아침 저녁으로 두 번씩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있다.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며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기독교적 바탕에 의해 건설되었기에 당연시 유일신에게 예배드린다고 생각했으나 그것도 참여자들의 자율에 맡겨졌다. 저녁예배와 다음날 아침예배에 모두 참여하며 느낀점은 자유롭고 경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펜들힐과 우드부륵에서의 퀘이커 예배보다는 역동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 저녁예배에서는 우리 참여자들에게 노래를 권해서 ‘사랑으로’를 합창했다. 예배를 마친 후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를 설명해 주는 것으로 그 안의 소중한 소통은 모두 이루어졌다고 여겨진다.
복잡하게 얽힌 정치 마당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것 같으면서도 바로 그 한가운데서 버티고 있고,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도망 나온 듯하면서도 진정 현실 그 한가운데 있는 사회, 그것이 바로 이 공동체가 지닌 역설이자 매력이었다.
평화에 대한 여러 질문들을 한다. 그리고 논리적으로도 많이도 만들어 낸다. 하지만 평화는 논리적으로 만들어지기 보다는 삶에서 실천적 모습으로 배출되는 것인가 보다. 코리밀라에서 만난 몇 명의 사람들(특히 데이빗)의 역동적 모습과 얼굴에서 보여지는 밝은 이미지에서 평화를 정의해 본다.
“평화로운 환경이란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사람에 대한 시기와 증오가 없이 공동체 안의 믿음과 사랑이 논리나 말이 아닌 몸으로의 체화되어 발산되어지는 환경일 것”이다.
주요 시사점 및 제안
코리밀라에 1박 2일 동안의 짧은 참여의 경험으로 한국YMCA에서 고민하는 비전 중 하나인 생명평화운동센터의 모델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제안을 하기란 쉽지 않음을 먼저 고백한다. 하지만 내 위치에서의 시각이 작은 도움이 되기만을 바라면서 몇 가지 제안을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생명평화운동센터를 전반적으로 이끌고 갈 핵심적 지도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코리밀라 설립 초기 가장 중요한 핵심은 웨이 데이빗 목사였다. 자신의 꿈을 실제적으로 삶에서 녹여냈으며 그 삶의 발현이 코리밀라로 보여진다. 논리와 이론이 아닌 그 분 자체의 삶에서 녹아져 나오는 현실이었다. 이러한 웨이 데이빗 목사의 뜻을 가지고 실제 움직이는 긍정성의 발현이 코리밀라 공동체 운동의 근간을 이룬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시간동안 행하지 않고 혀로 많은 것을 이루려 한다. 몸으로 움직이는 것만이 모든 것은 아니다. 행한다는 것은 육체적인 근육의 모습에서 나오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행함이란 말뿐인 허울 좋은 명목이 아닌 실제적인 행함 즉, 가슴안의 목적과 말과 자신의 삶이 일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생명평화운동센터 안에 가장 소중한 가치는 기독교적 영성에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 보수주의 신앙의 꽉 막힌 부분이 아닌 우리 안의 에큐메니컬한 다양성의 일치, 모든 것을 수용하며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밑바탕이 중요하겠다. 이러한 고민을 내재한 지도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사람의 삶 자체가 우리의 본질적 사명과 맞추어진 사람이어야 한다.
코리밀라가 성장할 수 밖에 없는 역사적 맥락의 매우 중요한 배경은 민중의 자연스러운 요구가 있는 환경과 그 환경을 대비할 정도의 진정성을 갖춘 지도력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진실 되고 본질적인 그리스도의 사명을 실천하려 무던히도 노력한 웨이 데이빗 목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국에서 워크숍에 참여한 분들과 매일 밤 자주 이어진 논의에서 결국은 사명의 중간에서 누가 행하느냐 하는 부분에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깊은 고민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 부분이 가장 힘들게 다가왔다. 한국 사회에 YMCA의 본질적 사명을 위해 생명평화운동센터를 고민하는데 그 정점에 움직여야할 지도력의 고민을 참여한 사람들이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아쉬웠다. 절대적으로 먼저 필요한 것은 많은 재정과 프로그램 이전에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도력이 누구인가’이다. 그 생명평화운동센터의 많은 것을 좌지우지 하게 될 것이다.
둘째, 갈등 당사자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기관의 영향력을 위한 진취적 운동성과 홍보력이 있어야 한다.
코리밀라 공동체의 갈등해결 방법 중 매우 중요한 한 가지는 갈등 당사자들이 그 공동체에 함께 한다는 것이다. 코리밀라 공동체의 모델을 접근하기 위해서는 생명평화운동센터에 갈등의 당사자들이 모여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프로그램이나 다른 하드웨어적 구성보다는 단체내의 공신력과 홍보력이 매우 중요하겠다. 공동체의 프로그램은 차마시며 서로간 평화로운 소통을 하는데 있다. 따라서 코리밀라가 초반 진취적인 중재자로서 민중의 요구에 맞추어 가장 힘겨운 갈등의 중심에서 활약한 후 많은 이들에게 알려 졌듯이 우리 안의 평화운동센터 또한 현재의 국내 갈등분쟁의 가장 중심에 설 수 있는 진취적 운동성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따라서 준비과정 중 초반에 국가적 사안의 접근을 통해 홍보와 공신력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지역의 여러 분쟁들 예를 들면 현재에도 진행형인 새만금 문제 등 환경 문제와 경제발전을 통한 지역민간의 갈등 문제를 현실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실제적인 사안을 접근해 현실적인 갈등분쟁의 문제점을 찾아내 해결한다면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 영성이 내재화되어 일상화 되어야 한다.
코리밀라의 심장과도 역할을 하는 곳은 코리라는 예배실이다. 오전과 오후 한번 씩 예배가 이어지며 공동체에서 돌아가며 예배를 인도한다고 한다. 예배실은 다양성이 철저하게 보장된다. 기독교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였기에 당연히 유일신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신의 종류도 관계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예배의 성격은 기독교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는 듯 하다. 다양성이 존중되어지며 그 안의 소중한 내용의 중심에는 기독교적 영성이 자리 잡고 있다. 우드부륵의 경험도 이와 비슷했다. 사뭇 예배의 모습은 전혀 다르나 실천적 메시지는 유사했다. 퀘이커를 은둔자적 구도자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적 실천자로서의 혁명적 성향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재한 내용을 현실화하여 실천했기 때문이다. 코리밀라도 마찬가지였다. 내재화된 영성의 외부로의 발현이 분명했다. 우리가 꿈꾸는 생명평화운동센터에도 이러한 기독교적 영성의 실제화를 이룰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 시스템을 구동할 초기 실제적 영성을 소유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넷째, 온건하고 유하나 언제나 갈등의 중심에서 함께 한다. 코리밀라에서 공동체로의 유입을 통해서만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북아일랜드 초기 갈등이 심했을 때에도 분쟁지역의 중심에서 공동체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했다. 현재에도 공동체에서의 프로그램과 다양한 사업과 실제 갈등 지역에서의 상호 소통을 위한 다양한 사업이 함께 한다. 공동체 안에서의 프로그램과 내용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갈등 해결을 위한 분쟁지역의 중심에서 활동할 수 있는 내용을 고민해야 한다. 즉, 갈등이 일어나는 곳에 찾아가서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차이점을 알고 연결시켜 소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에도 코리밀라 공동체에서는 공동체 안의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갈등이 일어나는 곳에 찾아가 해결하려는 다양한 운동(Movement)을 펼치고 있다. 청소년운동담당실무자는 현재 청소년과 직접 만나는 일은 드물고 프로그램 등을 코디해 주며 실제 분쟁지역과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준다고 한다. 현재는 중국인 등 외국인과의 갈등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 준다고 했다. 우리가 평화운동센터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내부의 다양한 시스템도 중요하나 이와 함께 진행해야하는 매우 중요한 운동은 실제 갈등 분쟁 지역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지도력 성장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YMCA의 사명과도 통한다. 운동(movement)의 대상이 아닌 운동의 주체로서 사람을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의 본질적 우리 안에 녹아 있는 사명의 실천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선교를 한다며 입으로만 전달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그리스도는 말씀을 전하며 실제 공동체와 함께 했다. 창기, 세리, 어린이 등 가장 낮은 자들을 직접 찾아 가 함께 했으며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었다. 그리스도의 뒤를 따른다는 것은 입으로 하는게 아니다. 그 분의 뒤를 따른 다는 것은 약한 이들과 함께 하는데 있다. 입으로 그들의 힘겨움과 갈등을 안다고 아무리 이야기 해도 동력은 일어나지 않는다. 함께 참여하는 가운데 실제적인 변화는 일어나게 마련이다. 갈등 분쟁 지역을 국내와 국외 세계의 다른 나라에 함께 두며 실제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전문지도력 배양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국내의 연구뿐 아니라 외국의 갈등분쟁해결을 위한 연구를 전담하는 부서도 필요하겠다.
다섯째, 공동체에 참여하며 과정가운데 변화되어야 하며 문제를 수용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어떠한 프로그램적으로 접근해 알아가도록 이해시키기 보다는 환경 자체에서 자신이 알아 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의 정의를 내리며 프로그램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공동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자신을 들여다 보며 타인과 소통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소통의 과정을 자신이 깨달을 수 있도록 다양한 내용을 채워주어야 한다. 일단은 자연의 생태적 친환경적 요건이 구비 되어야 한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갈등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환경이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의 강요가 아닌 그 안에서 녹아나는 자연스러움이 필요하다. 읽을거리, 볼 거리, 독백, 침묵, 기도, 묵상, 소리 지를 수 있는 공간 까지도 필요하다.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일관성 있는 어떤한 집단의 프로그램으로 유도하는 것 보다는 사람 한명 한명에게 맞추어진 기본적인 고민과 성찰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자연스레 제공한다. 절대적 혼자만의 자기 평화, 신과 나와의 소통을 통한 가장 커다란 평화를 맛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문제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답만을 강요한다. 답을 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정확한 답을 내리기란 너무나 어렵다. 특히나 갈등이 첨예한 집단 개인에게서 명백한 답이란 그리 흔하지 않다. 문제를 수용하고 자기 자신을 수용하고 상대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판단해 정죄하는 것은 평화로운 해결책이 아니다. 아일랜드의 분쟁도 같은 십자가를 앞에 세우며 유혈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따라서 옳고 그름의 판단과 사리분별의 정확한 교육이 아닌 내적인 자기 정화와 수용의 자세를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있도록 추구하는 공동체였으면 좋겠다.
여섯째, 다유로움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종교성이 수반된다. 우드부룩에서도 경험했지만 강요하지 않으나 공동체 자체의 본질은 종교성에 있다. 특히 코리밀라 공동체의 기본 정체성은 기독성에서 연유된다. YMCA 또한 마찬가지다. 기독성의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회복해야 한다며 많은 논의가 분분하다. 특히 영성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어쨌거나 예배가 형식이라며 교회의 틀을 비판하나 정작 우리 안의 모습을 들여다 보면 쉽지 않은 가슴안의 모습을 보게 된다. 코리밀라의 코리(심장이라는 뜻의 예배당)에서의 예배는 자유롭지만 진정성이 배어 있고 신선했다. 자발성에 근거한 진지함과 본질적 정체성이 묻어 나오는 예배의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야 한다. 이와 함께 어떠한 종교적 강요가 있어서도 안된다. 여러 종교가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이 존재해야 한다.
일곱째 공동체의 일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을 코디네이션 하고 그 일정안에서 모든 것을 계획한데로 맞추기 보다는 참여자들이 선택하여 최대한의 자유와 자발성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코디네이션(coordination) 하는 게 중요하다.
어떤 공동체건 참여하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공동체의 근본이념과 목적에 충실한 사람도 있겠고 공동체를 활용하고자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조직적 관점에서 바라보건데 그 조직의 근본 목적에 따라 어쨌거나 흘러갈 수 밖에 없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한국YMCA의 생명평화운동센터의 근본이념과 목적에 부합한 목적성을 찾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 최상위의 구조적 접근과 함께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센터의 추진체를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추동할 지도력의 선정이 우선시되어진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마5:9]”
우리 안의 평화의 목적은 우리 이념(Mission Statement)에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잊지말자. 그 목적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