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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축복사역(20) / “꿈대로 되는 복을 받으라!”
+ 본 문 : 창 세 기 28장 10절 - 22절 (구약성경 40쪽)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아멘!
옆의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축복한대로 됩니다.” “기도한 대로 됩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사형수들의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소에, 사형수를 돕는 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날도 전기의자에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를 위해, 목사님은 축복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형수에게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얼굴이 새파래진 사형수가 떨리는 입술로 말했습니다.
“목사님! 죽음이 너무 두렵습니다. 그러니 내가 편히 죽을 수 있도록 목사님께서 제 손을 꼭 잡아 주세요.”
여러분! 도와 드릴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지, 전기충격으로 죽는 사형수의 손을 잡아 줄 수야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야곱은 동행자, 도와 줄 사람도 없이 도망자 신세가 되어, 광야 길을 홀로 걷고 있었습니다.
욕심 많고 간사한 사람 야곱은 어머니 몸에서 태어날 때부터 쌍둥이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발뒤꿈치를 붙잡는다. 빼앗는다.” 라는 뜻을 가진 야곱이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또한 언제나 기회를 엿보던 야곱은 형이 몹시도 시장한 틈을 이용해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빼앗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눈먼 아버지까지 속여, 아버지가 장자 에서에게 주어야 할 축복을 가로채 버리고 맙니다.
몇 번이고 야곱에게 속임을 당한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한을 품고, 죽일 기회를 엿보게 되었습니다.
에서의 분노로 인해 야곱은 정든 고향과 따뜻한 부모와 가정을 떠날 수밖에 없는 도망자의 신세가 됩니다.
그래서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망명길을 떠나는, 야곱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해가 저물자 야곱은 피곤한 몸을 잠시나마 누이기 위해, 루스 광야에서 맨땅을 침대 삼아 잠자리를 폅니다.
야곱은 하늘을 이불 삼아 몸을 덮고,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맹이 하나를 주어 베개하여 머리를 기댑니다.
남을 속이고 쫓기는 사람이 갖는 불안감, 죄책감, 가정을 떠난 외로움 - 만감이 교차하는 바로 그런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만감이 교차하는 그 밤, 절망의 끝자락에 내몰려있는 그 밤에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28장은, 벧엘에서 야곱이 베고 잤던 돌을 통해서 야곱에게 일어난 변화를 말해 줍니다.
야곱은 광야 길에 굴러다니는 돌맹이 하나를 취하여 베개로 삼고, 도망자의 피곤한 몸을 잠들게 합니다.
다음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야곱은, 베개로 삼았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어 기념비로 삼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자신이 세운 그 돌 기념비가 먼 훗날 하나님의 집,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되리라는 꿈을 꿉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바로 이렇게 돌맹이 하나가 변하여 성전모퉁이의 돌이 되는 변화를 보면서,
하찮은 돌맹이 속에서 “꿈대로 되는 복을 받으라! - 꿈대로 되는 복을 받는 나의 모습” 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 11절에 나오는 야곱이 베고 잔 돌베개는 절망의 돌입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을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아멘!
지금 야곱이 밤이 되어 돌베개를 하고 잠자려고 하는, 벧엘이라는 곳은 돌이 많기로 유명한 산지입니다.
또한 이곳에 있는 돌은 석회암 성분이 많기 때문에, 건축 자재로 사용될 정도로 돌의 강도가 매우 높습니다.
벧엘에서 야곱이 베개로 사용한 돌은 잘 다듬어진 돌맹이가 아니라, 제멋대로 생긴 자연 그대로의 돌맹이입니다.
결코 편안한 잠을 청하기에 적합한 돌맹이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돌침대 정도로 상상하시면 안 됩니다.
야곱이 머리를 그 돌맹이 위에 올려놓고 누웠지만, 울퉁불퉁한 돌은 오히려 야곱의 머리를 아프게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한 밤중의 냉기에 차가워진 돌맹이는, 여행으로 피곤한 야곱의 온 몸을 차갑게 만들었습니다.
한마디로 벧엘에서의 야곱의 돌베개는, 절망적 상황에 놓여 있는 야곱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도망자로서 첫날밤을 보내는, 벧엘 광야에서의 밤은 한마디로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더구나 하란으로 가는 그의 여행길은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가는 피난길이었고, 돌아올 기약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즐거운 여행길이 아니라, 미래가 불확실한 도피라는 불안감으로 인한 두려움이 몰려오는 여행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흘 길쯤 죽자 살자 100km를 달려왔지만, 앞으로 하란까지는 600km 더 남아 있는 먼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모든 상황을 딱딱하고 거친 돌이 대변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머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 돌은,
야곱이 처한 상황과 그 마음의 절망과 고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돌베개는 곧 야곱 자신이었습니다.
둘째로, 오늘 본문 18절에 나오는 야곱이 돌베개를 기둥으로 세운 기념비 돌입니다.
하나님은 몸과 마음이 지쳐 잠들어 버린 야곱을, 꿈속에서 찾아 주시고 만나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빈들에서 잠들어 버린 야곱을 찾아가신 하나님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돌을 베개하고 자던 그 밤, 야곱은 참으로 놀라운 꿈을 꿉니다. 깊은 밤 갑자기 온 땅이 환해집니다.
밝은 빛으로 인해 사닥다리 하나가 산을 지나고 구름을 뚫어 하늘까지 높이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 사닥다리 위로 하늘의 사자들이 미끄러지듯 오르락내리락 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것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우렁찬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오늘 본문 13절 - 15절 말씀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아멘!
야곱이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하던 그 바램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므로 이루어지는 꿈을 꾼 것입니다.
눈 먼 아버지, 못난 형을 속이고 도망가는 야곱을 만나 주신 하나님의 음성은 축복선포였습니다.
여기에 굳은 심령을 녹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깨달았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나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구나.
이 길이 고독한 도망자의 길 인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길이요, 여기가 바로 내 집이요.
여기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전이구나. 저주받은 나그네 길인 줄 알았는데 이 길조차 하나님의 섭리였구나.'
야곱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자 온 몸에 힘이 솟아오릅니다. 돌베개가 황금보다 귀하게 보입니다.
야곱은 넘치는 감격과 은혜로 인해 베고 자던 돌을 ‘하나님의 집’의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붓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세운 돌기둥 위에 감람유를 부은 것은, 세운 돌맹이를 거룩히 구별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와 동시에 아직까지 멀리 남아 있는 하란까지의 여행길을 하나님께 위탁하는 믿음의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운 ‘돌기둥’ 은 단순히 세워 놓은 돌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 제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야곱은 하나님께 구별된 제단을 쌓고 그곳에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성별된 예배를 드린 야곱은 루스라 불리던 광야의 땅을 하나님의 집 “벧엘” 이라 부릅니다.
“벧엘” 의 본래 이름은 루스입니다. 루스란 말은 분리라는 뜻입니다. 그곳 루스에서 야곱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나는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 분리된 존재였고, 내 부모 형제로부터도 분리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나 혼자 가는 길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고, 내가 있는 이곳이 하나님의 집 벧엘이었구나."
♪그래서 찬송이 흘러 나왔습니다. /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셋째로, 오늘 본문 22절의 야곱이 기둥으로 세운 기념비 돌은 성전의 기초가 될 서원과 비전의 돌입니다.
야곱의 절망적 상황을 대변해 주었던 볼품없던 돌베개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기도의 제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제 그의 신앙이 기념비적 제단을 쌓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결단하는 신앙으로 발전해 나갑니다.
야곱은 자신의 불확실한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서원의 기도를 드리면서 자신의 미래를 결단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그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서원 기도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이라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야곱이 결단하는 신앙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여호와께서 야곱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신앙고백이요.
둘째는 예배드리는 성전의 기둥으로 세운 이 기념비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라는 비전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축복해 주신 모든 것의 십분의 일 -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서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집 벧엘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을 보았던 야곱의 생애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통해서, 자신이 베고 있었던 돌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차가운 절망의 돌이 기도의 거룩한 제단이 되었고, 하나님의 위대한 성전을 이루게 될 비전의 돌로 바뀌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그래서 아무런 비전과 꿈도 없는 절망의 돌과 같았던 던 야곱 자신이,
이제는 위대한 미래의 소망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 위대한 신앙고백의 돌로 바뀌어 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도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쓸모없는 돌멩이처럼 버려진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돌멩이 같은 우리를 성전기둥으로 세우시고, 성령의 기름을 부어 교회로 세워 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이고, 자비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절망이 변하여 성전이 되는 이 엄청난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몸부림하던 그 꿈이 무엇인가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축복의 의미를 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절망의 돌을 성전기둥으로 바꾸는 힘이었습니다.
한편 야곱이 은혜를 받고 꿈을 꾸고 있는 그 시간에, 그의 형 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는 장자의 명분과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아 몰래 달아난 야곱을 생각하며, 증오에 떨며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에서! 그는 주어진 축복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은혜를 받는 것, 정말 중요합니다.
새로운 꿈을 꾸는 것, 또한 정말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귀한 것은, 받은 은혜를 감사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꿈과 비전을, 하나님의 뜻대로 소중히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현실주의자였던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오늘 사냥한 짐승을 잡아서,
맛있게 요리해서 포도주를 곁들여 먹고, 배를 두드리며 잠자리에 들었고, 또 잠에서 깨어나면 기계처럼,
사냥을 나갔습니다. 에서는 이것이 인생의 즐거움이요 인생의 전부라 생각했습니다. 그에겐 꿈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의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세상 모든 조건을 잃어 버렸다 해도 아직도 꿈꿀 수 있는 사람은, 아직도 많은 것을 간직한 사람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 비전이 있는 사람은 젊은이입니다. 꿈과 비전을 잃은 사람은 그가 누구든 늙은이입니다.
에서! 그는 신령한 꿈, 영적 비전이 전혀 없는 불신앙의 현대인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일만하고 돈 벌어 집을 사고 좋은 반찬에 밥 먹는 게 고작 꿈이요. 밤이면 텔레비전이나 보다가,
또 잠들고, 다시 일어나 먹고 자고 일하고 - 이것이 인생의 전부입니까? 그렇다면 얼마나 불쌍한 인생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이웃을 유익하게 하는 꿈이 있습니다.
에서를 보십시오. 그는 축복을 동생에게 다 빼앗긴 후, 아버지를 찾아가 찌꺼기 축복이라도 좋으니,
남은 것이 있으면 달라고 졸랐을 때, 아버지 이삭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을 좀 혹독하게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자기에게 준 것도 지키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식! 큰 것을 주었으나 소중한 그것을 소홀히 하는 미련한 자식!
이상도 꿈도 없이 오늘 만으로 만족하는 게으른 자식! 때가 지난 후에 후회하고 땅을 치는 쓸모없는 자식!
복수심을 이기지 못하는 졸장부 같은 자식! 너에게 나눠줄 축복이 뭐가 있겠느냐? 넌 이제부터 네 주먹이나,
믿고 살아라! 거친 땅 황무지나 파먹고 살아라! 이제부터 너는 평생 네 동생 야곱을 섬기며 살게 될 것이다!"
에서는 그때에야 빼앗긴 축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고, 대성통곡을 하며 아버지의 침상을 물러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를 잃지 마십시오. 은혜주실 때 은혜 받고, 축복주실 때 축복받아야 합니다.
회개해야 할 때에 회개해야 합니다. 충성해야 할 때에 충성해야 합니다. 천하만사에 모두 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주님 전에 나와서 큰 꿈을 꾸십시오. 지금이야 말로 크고 놀라운 꿈을 꿔야 할 때입니다.
보십시오. 야곱은 돌베개를 베고 자는 잠을 자다가 정말로 가슴 설레이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흔 넘은 노총각이 꿈을 품고 열심히 기도했더니, 천사가 나타나서 세 가지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첫째 좋은 직장을 주십시오. 둘째 가족과 살 수 있는 좋은 집을 주십시오.” 두 가지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세 번째 소원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노총각이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에 “인류역사상 최고의 여성을 주십시오.”
그런데 놀라웁게도 뿅 하고 한 여성이 나타났는데, 정말로 인류 역사상 위대한 여성인 테레사 수녀가 나타났습니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 줄 아십니까? 사람의 꿈과 하나님의 꿈은 다르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고 참된 꿈을 얻자, 길바닥 돌멩이가 기념비가 되고 성전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적으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꿈을 품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암탉이 달걀은 품지 않으면 병아리가 되지 못합니다. 오늘 꿈을 품지 않은 사람에게 내일의 성공은 없습니다.
우리는 한 인간의 위대성을, 그 사람의 꿈의 크기로 재어 볼 수 있습니다. 꿈이 작은 사람은 작은 사람입니다.
꿈이 큰 사람은 큰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땅의 세계만을 꿈꾸는 사람을, 우리는 속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영원과 종말과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을,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마지막 날에 성령을 받게 되면 젊은이들이 비전과 환상을 갖게 될 것이요.
늙은이도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면, 꿈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이라." 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지혜가 탁월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꿈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개인과 가정, 그리고 공동체나 교회나 민족을 축복하시려고 하실 때에 먼저 꿈을 주십니다.
영롱하고 찬란한 꿈을 가슴에 심어주시고 그 꿈을 가슴에 안고 기도할 때에, 그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해남중앙교회는 꿈을 파는 교회입니다. 이 강단은 꿈을 나눠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신학자 루돌프 보랜이라고 하는 사람은 "설교는 환상과 꿈을 주는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꿈을 꿀 수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설교를 듣고 꿈을 꾸세요.
이 성전에 예배드리러 올 때는 절망을 가득 안고 왔지만, 예배를 드리면서 꿈과 축복으로 가득 채우십시오.
실패한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왔지만, 축복의 말씀을 들으면서 성공하는 꿈을 안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직장에서 승진하는 꿈을 꾸시고, 사업장에 고객들로 가득 채워지는 번성과 형통의 잘 되는 꿈을 꾸십시오.
병든 사람은 건강한 꿈을 꾸십시오. 아들이 없는 사람은 사무엘 같은 아들을 낳는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짝 가정으로 믿는 분들은 온 가족이 구원받는 꿈을 꾸시고, 온 가문이 구원받는 영광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셀 목장이 부흥되고, 교회가 부흥되고, 이 나라와 이 민족이 하나님 잘 믿고 번영하는 꿈을 꾸며 기도하십시오.
이 성전에서 지금 예배드리고 설교를 들으면서, 여러분들이 바라는 대로 마음껏 큰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모든 분들을 향하여 지금 축복합니다. “꿈대로 될찌어다. 꿈대로 다 이루어질찌어다.” 아멘! 믿습니까?
미국의 월트 디즈니라고 하는 젊은이는, 지독하게도 가난한 이름 없는 무명의 만화가였습니다.
집도 없어 예배당에서 기도하다가, 사용하지 않고 버려진 교회당 지하실에 내려가 만화를 그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지하실에 쥐들이 얼마나 많은지. 득실거리는 쥐들과 함께 잠을 자는데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어렵게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습니다. 쥐들과 함께 친구가 되어 재미있게 노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잠에서 깨어, 그때부터 쥐를 소재로 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그는 오렌지 카운티의 허허벌판에 꿈의 동산을 세우기로 작정하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는 성전에서 기도하면서 꿈을 꾸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꿈대로 디즈니랜드를 세워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에게 꿈을 꾸게 했던 돌베개가 하늘 문을 열었습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난 후, 놀라운 축복선포를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곳이 아니라, 이곳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열린 축복의 하늘 문이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이 거룩한 성일에 하늘의 문, 구원의 문, 축복의 문은 모두 다 돌베개,
지금 예배가 드려지고 있는 우리 교회 안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서 열림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는 꿈을 주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선포되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예배시간을 통해 하늘의 문, 구원의 문, 축복의 문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이 이 성전에 와서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 문을 열고 응답하여 주고 계십니다.
실패했어도,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께 나아오신 여러분 앞에 용서와 사죄의 하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나는 안돼. 내 남편은 안돼. 내 가족은 안돼.' 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축복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기도의 문이 닫혀 있습니까? 지금 이곳에서 응답받는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 사업의 문이 닫혀 있고, 직장의 문이 닫혀 있습니까? 지금 여기서 축복의 문이 열리는 꿈을 꾸십시오.
몸이 아파 너무 고통스럽습니까? 지금 여러분을 어루만지시는 주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건강의 꿈을 꾸십시오.
히스기야는 죽음을 선고 받았으나 그만의 돌베개를 안고 기도하다가,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자녀들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 잘 되는 꿈을 꾸십시오.
행복의 문이 닫혀 슬퍼하며 울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과 가정이 행복해지는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태의 문이 닫혀 있습니까? 새 생명을 창조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 자녀를 선물로 주시는 꿈을 꾸십시오.
한나는 슬픔을 안고 돌베개에 엎드려 기도하다가 자식을 얻었습니다 태의 문이 열려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인생길이 캄캄하고 암담하여 절망하고 있습니까? 지금 이곳에서 주님이 주시는 소망의 꿈을 안고 돌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하는 지금 이 시간! 바로 여러분의 머리에 돌베개가 놓여 있습니다.
왜 돌베개의 꿈을 기대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의 소원을 실어 나르는 사닥다리의 꿈을 꾸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는 행복한 신앙생활을 꿈꾸는 교회입니다. 인생의 방황은 예수를 만나 꿈을 꾸면 끝납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 우리 해남중앙교회에 오셔서 마음을 열고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아, 여기가 내 교회이구나. 여기 나를 위한 축복이 예비 되어 있었구나.” 꿈꾸는 순간 모두 다 끝이 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부르는 찬송은 성도를 영광스럽게 하는 꿈입니다. 기도는 닫힌 하늘 문을 여는 꿈입니다.
말씀은 성경의 말씀과 약속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꿈입니다. 헌금은 금생과 내생에 복을 받는 씨앗입니다.
교회소식 알림은 성도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하는 꿈입니다. 축도는 나를 세상의 승리자로 파송하는 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나 역사는 꿈꾸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미래는 꿈꾸는 사람들의 손에 맡겨집니다.
우리교회는 이 땅의 모든 교회와 성도님들에게,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꿈을 주는 교회입니다.
우리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하늘 꿈을 알려주고, 우리의 유일한 꿈이 무엇인지를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자녀들과 우리교회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하늘 꿈을 한가득 심어주어야 합니다.
꿈꾸는 우리교회! 꿈꾸는 우리교회 모든 성도님들! 꿈꾸는 우리 자녀들과 교회학교 우리 아이들!
이 성전 안에 있고, 예배와 말씀을 통해 꿈대로 되는 복을 받으라. 꿈대로 되는 복을 받을찌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