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패션도 능력이다
무조건 비싼 옷보다 장소·상황에 맞는 패션감각 키워야
남훈 란스미어 팀장
계절이 바뀔 적마다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신문, 잡지,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 쏟아지는 정보는 참으로 다양하고 자주 바뀐다. 신기하게도 여성들은 그 정보 가운데서 본인에게 필요한 것을 수험생이 핵심 체크하듯 쏙쏙 뽑아내기에 능숙하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 것 같은데 모두들 말쑥한 옷차림으로 매일 직장에 출근한다.
예전에야 패션에 관심을 두지 않음이 남자의 미덕이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옷차림과 매너가 비즈니스맨의 필수 덕목으로 여겨져 회사 차원의 교육도 이루어지는 요즘 같은 시절에 그것은 과거의 유산일 뿐이다. 점점 옷차림은 기업이나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잣대로 의미가 수직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취직, 승진, 중요 미팅, 프로젝트 성공 등과 같은 비즈니스적 판단이 민첩하게 결정되는 요즘, 많은 비즈니스 구성원은 사람을 만난 지 2초 만에 상대방에 대해 판단해버린다.
장소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옷차림을 준수한다는 것은 사회와 비즈니스 파트너를 배려한다는 뜻이다. 또한 모든 비즈니스 관계를 글로벌 매너에 따라 올곧게 맺고 싶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찾을 수밖에 없는 남성복 브랜드들은 엄선된 원단, 최고의 품질, 세련된 디자인 등과 같은 추상적인 캐치프레이즈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들만의 고유한 특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투적인 내용이다. 어떤 브랜드에 적용해도 단어 그대로의 의미 전달은 되겠지만 각기 다른 개성과 취향을 가진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정보는 실제로 담고 있지 않다. 아이덴티티에 대한 언급 없이 그저 소리 높여 외치는 ‘최고의 엔진을 가진 고급 자동차’와 같은 의미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 백화점에 그토록 많은 남성복 브랜드의 라벨을 서로 바꿔버리더라도 별다른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어느 외국인 패션 CEO의 유머러스한 코멘트는 얼마나 정교한 지적인가. 옷이든 자동차든 정말 좋은 제품이란 “비싸 보이네”가 아니라 “잘 어울리네”와 같은 찬사를 수반하는 것이 옳다. 남자에게 필요한 물건은 결국 수(數)의 문제가 아니라 질(質)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직장을 다니는 남성에게 중요한 건 수시로 바뀌는 유행이나 쇼핑의 말초적 테크닉보다는 장소와 상황에 맞게 자신의 옷차림을 선택할 줄 아는 안목이라 하겠다.
무엇이 수트의 기본이고 수트를 언제 어떤 원칙에 따라 입어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되면 중요한 시점에 필요한 옷을 직접 판단할 수 있다. 또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들이 펼치는 화려한 상술에 현혹되지 않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수트와 재킷의 차이점을 안다면 최근에 화두로 부상한 비즈니스 캐주얼의 올바른 적용법을 이해하기도 쉬워진다. 유럽에서 속옷의 개념을 가진 셔츠를 미국에서는 겉옷으로 입는다는 문화적 차이를 발견하면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상의를 함부로 벗지 않는 글로벌 에티켓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수트는 상의와 하의의 기계적 코디네이션을 넘어 그 옷과 함께 매치되는 셔츠와 타이, 구두와 벨트, 양말과 시계에 이르는 세부 아이템들 간의 조화를 목표로 하는 복식이었다. 따라서 옷차림에 익숙해질수록 그의 안목과 교양도 더욱 깊어지게 된다. 이처럼 복장 속에 사상을 담고 있다는 점이 수백 년 전에 출현한 수트와 재킷이 우주를 왕복하는 현대에도 여전히 글로벌스탠더드로서 기능하는 이유다. 이제 시대를 넘어서 전세계 신사들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던 클래식한 가치를 가능한 깊고 넓게 이해해보는 탐험이 시작된다.
남훈 란스미어 팀장
첫댓글 잘 어울리네... 어울림은 클레식한 가치 같은 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