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화국 정권창출의 정당성과 전두환 대통령의 정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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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최규하 대통령 정부는 새 대통령, 즉, 제5공화국 대통령 선출을 위한 과도기 정부였다. 그런데 간악한 양김씨가 선거법을 직선제로 개정하지 못하게 온갖 방해를 놓았던 것이었다. 지금은 김영삼씨가 김대중이 광우사태 선동하는 것이 나쁜짓임을 안다. 그러나 1980년 봄에는 김영삼씨가 김대중에게 속아 이용당하고 있었다. 오늘날 "이명박 물러가라"보다 더 센 구호가 당시의 "최규하 물러가라"였다. 선거관리를 하여 새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과도기정부를 김대중은 전복시키려 했고, 머리 속이 텅 비어 있었던 김영삼씨는 김대중에게 속아 이용당하고 있었다. 김대중이 협박한대로 광주사태가 일어나자 최규하 대통령에게 더 이상 선거로 새 대통령을 선출할 방법이 없었으며, 그래서 제5공화국 대통령으로 전두환 장군을 지명하셨던 것이었다
최규하 대통령께서 5공화국 대통령으로 전두환 장군을 지명하셨으되 그 절차는 최규하 대통령의 5공화국안을 그대로 따르게 하셨다. 만약 사기꾼들과 미개인들과 치매환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제5공화국이 쿠데타로 창출된 정권이었더라면 5공화국 출발 시점이 1980년 9월 1일이어야 한다. 그러나 9월 1일 취임후 전두환 대통령은 최규하 전 대통령의 안을 그대로 따라 국민투표에 의한 헌법 개정부터 하셨다. 대통령 임기를 7년 단임제로 하는 5공화국 헌법안은 10월 22일 국민투표에 부쳐졌으며, 91%가 넘는 찬성으로 1980년 10월 27일 제 5공화국 헌법공포식이 있었다
이듬해 1981년 3월에 출발했던 제5공화국은 분명 1980년 10월 22일 국민투표에서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정통성을 부여받아 출발했던 정권이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12.12, 5.18사건 재판 당시에는 1980년 10월 22일의 국민투표를 모르던 미개인들과 모른체 했던 사기꾼들과 까맣게 잊었던 치매환자들의 목소리가 컸었다. 그리고, 사기꾼들의 목소리가 너무 클 때 우리는 그것을 민주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정치재판은 민주주의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었다. 1980년 10월 22일의 국민투표는 제5공화국 정권창출의 정당성을 부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두환 대통령의 정통성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제5공화국 헌법안을 통과시킬 때 국민은 12대 대선후보 전두환에게 7년 단임의 기회를 주자는 의미로 5공화국 헌법을 통과시켜 주었으며, 그 헌법이 정한 선거에 의해 전두환 정권이 창출되었던 까닭이다.
제 5공화국 출범시키는 12대 대통령 선거가 이듬해 2월 25일에 실시되었다. 그런데 그 선거가 미국식으로 대통령선거인에 의한 선거였기에 군사쿠데타였다고 주장하는 미개인이 있는가? 사실, 2월 25일의 선거는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던 요식 행사였을 것이다. 이미 그 전해 1980년 10월 22일의 국민투표가 사실상 국민이 전두환이란 인물을 그 시대의 지도자로 선택하고 5공화국 대통령감으로 지명하는 의미로서 5공화국 헌법안을 통과시켰던 까닭이다. 제5공화국 헌법은 일부 몰지각한 이들과 사기꾼들이 억지를 부리는 주장처럼 군사쿠데타로 제정된 헌법이 아니라 분명히 우리 국민들이 선택하고 우리 국민들의 손으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서 통과시킨 헌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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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 역사학도 날 짜 2008/08/01 (16:39)
출처 : 조갑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