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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트랙 :
□ 산행일시 : 2026년 1월 1일, 영하 15도, 북서풍 2m/s, 한파주의보
□ 산행코스 : 이북오도청 ~ 비봉 ~ 사모바위 ~ 구기동 탐방지원센터
□ 교 통 편 :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7212번 승차하여 이북오도청 하차하여 산행시작, 산행종료 후 승가사입구 정류장에서 7212번 승차
<비봉 일출>
작년에 일출산행을 하지 않고 신년 초하룻날을 허송세월로 보낸 것을 거울삼아, 이번에는 꼭 참석하기로 하고 아침 첫차로 이북오도청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 옛날 시끌벅적하던 이 곳이 아무도 없어 당황스럽다. 선두팀은 벌써 떠난지 10분이 지난 것 같은데 따라 잡기는 어려울 듯하다. 오르면서 안산을 바라보니 불빛이 총총하다.
서서히 먼동이 터오르며 렌턴을 끄고 비봉능선에 안착한다. 그런데 헬기 소리가 굉음처럼 들리며 비봉에 헬기가 머물고 있다. 비봉에서 어떤 조난자가 발생하여 구조중이었다. 조난자를 태우러 다시 헬기가 올때 헬기 날개에서 불어오는 강력한 돌풍으로 잘못하면 날아갈 뻔하였다. 헬기가 가자마자 유능한 산꾼들이 정상으로 향한다. 어찌할까를 고민하다가 스틱을 바위에 대충 꽂아놓고 정상을 밟아보기로 한다.
진흥왕 순수비 바로 아래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이들이 보인다. 동쪽으로 가느다란 금맥이 보이더니 점점 커지며 일출을 알린다. 어떤 이는 기도를 하고, 어떤 이는 뚫어지게 일출을 바라보고 있다. 계속 셔터를 누르며 비봉을 배경으로 인증을 한다. 류대장으로부터 사모바위로 오라는 연락이 온다. 헬기가 떠난 비봉을 주의깊게 내려오니 스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사모바위에 이르니 류대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새해인사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하는데 인원이 아주 적어 의아해한다. 승가사까지 내려가는 길에 많은 산꾼들로 인하여 시간이 지체된다. 승가사에서부터 계곡길에서 겨울 정서를 느낀다. 폭포도 얼고 계곡도 꽁꽁 얼고 있다. 그런 와중에 졸졸 흐르는 계곡물이 신기하기도 하다. 산행 후 회식자리에서 따뜻한 떡국을 맞이한다. 올 한해 산행하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고 즐겁게 산행하기를 바라며 산행을 정리한다.
<산행지도>
<산행요약>
<산행일정>
06:41 이북오도청(약124m), 예전에 일출산행지로 명성이 있어 아주 북적였었는데, 한명도 없는 쓸쓸한 신년 새벽이다.
06:51 비봉 들머리(약191m,0.7km, 0:10), 일출을 50분 남기고 비봉을 오르기 시작한다.
07:15 절터샘(약388m, 1.5km, 0:34), 불광동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나니 먼동이 트기 시작한다. 안산에는 등로에 가로등을 밝혀 놓은 것 같다.
07:26 비봉능선(약504m, 1.8km, 0:44), 영하 15도의 강추위와 세찬 바람속에서 비봉능선에 닿았다. 그런데 헬리콥터 소리가 아주 거세다. 비봉에서 어떤 사고가 있는 모양이다.
07:30 비봉 아래(약517m, 2.1km, 0:49), 비봉 아래에는 많은 일출객들이 해돋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07:45 비봉정상(560.3m, 2.2km, 0:52), 비봉 아래에서 헬기 구조 장면을 보고나서, 일출이 시작될 즈음에 정상으로 조심스럽게 올라온다. 동남쪽의 예봉산으로 방향을 잡아 일출을 기다린다.
08:04 사모바위(약525m, 2.6km, 1:00), 사모바위에서 회원들을 만나 기념촬영하고 내려간다.
08:22 승가사(약375m, 3.2km, 1:18), 옛날에 물맛좋고 수량 많기로 유명했던 북한산 샘터가 있던 자리이다. 구기동에서 승가사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어 구급차가 올라와 있다.
08:37 대남문 갈림(약248m, 3.9km, 1:34), 산길이 넓어지고 계단이 많아진다.
08:53 일출산행 종료(약151m, 4.7km, 1:49), 산행을 마치고 바로 아래에 있는 쉼터 산울림에서 회원들과 함께 식사를 즐기며 산행을 정리한다.
<산행앨범>
06:41 이북오도청(약124m), 예전에 일출산행지로 명성이 있어 아주 북적였었는데, 한명도 없는 쓸쓸한 신년 새벽이다.
06:51 비봉 들머리(약191m,0.7km, 0:10), 일출을 50분 남기고 비봉을 오르기 시작한다.
07:15 절터샘(약388m, 1.5km, 0:34), 불광동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나니 먼동이 트기 시작한다. 안산에는 등로에 가로등을 밝혀 놓은 것 같다.
07:26 비봉능선(약504m, 1.8km, 0:44), 영하 15도의 강추위와 세찬 바람속에서 비봉능선에 닿았다. 그런데 헬리콥터 소리가 아주 거세다. 비봉에서 어떤 사고가 있는 모양이다.
향로봉과 족두리봉을 바라본다. 당초에 이 방향으로 오고 싶었는데 오늘 너무 추워서 지름길을 택했다.
헬리콥터가 선회하는 비봉의 뒷길을 오랫만에 걸어본다.
07:30 비봉 아래(약517m, 2.1km, 0:49), 비봉 아래에는 많은 일출객들이 해돋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구조용 헬기에서 두분의 구조대원들이 내려서 구조작업을 마치고 한분이 오르고, 이어서 베드가 올라가고, 나머지 한분이 오른 다음에 헬기가 지나간다. 헬기가 지나가자마자 모두 정상 방향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대부분 정상 아래에서 자리잡고 있고 정상에는 7명 정도 올라와 있다.
문수봉과 보현봉, 그리고 사자능선에 아침햇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뒤에는 용마산과 아차산이 흐릿하다. 오늘 비봉 일출은 동쪽의 예봉산과 검단산 사이에서 이루어질 것 같다.
북쪽으로 노고산 뒤에 개명산이 보인다. 그 우측(북동쪽)에는 불국산이 희미하다.
07:45 비봉정상(560.3m, 2.2km, 0:52), 비봉 아래에서 헬기 구조 장면을 보고나서, 일출이 시작될 즈음에 정상으로 조심스럽게 올라온다. 동남쪽의 예봉산으로 방향을 잡아 일출을 기다린다.
남쪽으로 인왕산 방향으로는 한강 건너편에 관악산이요, 북악산 뒤로는 청계산이다. 안산 뒤로는 수리봉일 텐데 거리가 멀어져서 그런지 아주 희미하다.
진흥왕 순수비 바로 아래에서 일출을 맞이하고 있다.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신라 제24대 국왕인 진흥왕(재위 540~576)이 북한산에 세운 비로서, 국보(옛 지정번호 국보 제3호)이다. 이 비의 성격은 첫머리에 ‘순수(巡狩)’라는 표현이 있어,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순수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구기리(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구기동) 비봉(碑峰)에 있었으나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고대관 신라실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 비문 내용을 발견하고 진흥왕순수비라는 명칭을 얻어 비석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비 몸돌의 높이는 약 155.1cm, 폭은 약 71.5cm, 두께는 약 16.6cm이다. 왼쪽 아래로 약 25.1cm 되는 지점에서 오른쪽 아래로 약 45.4cm 되는 지점에 걸쳐 절단되어 있으나, 접합하였다. 비의 윗부분에는 비의 덮개돌이 들어갈 수 있도록 너비 약 69cm, 높이 약 6.7cm 정도를 돌출시키고 있다. 이 비의 덮개돌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받침돌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지금도 비봉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로 보아 이 비는 덮개돌, 몸돌, 받침돌의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비문은 12행으로 각 행 21자 혹은 22자이나, 읽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이 비는 이끼가 끼어 있어 정확한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학대사왕심비(無學大師枉尋碑) 또는 몰자비(沒字碑) 등으로 불리어 왔다. 그러던 중 조선 후기 서유구가 10여 자를 판독하여 진흥왕순수비라 이름 지었고, 조선 순조 16년(1816)에 김정희가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승가사에 갔다가 이 비를 발견하여 ‘진(眞)’자를 확인하여 신라진흥왕순수비로 확정하였다. 그는 이듬해 조인영과 더불어 새로이 68자를 확인하였다. 김정희가 조사한 내력은 이 비의 옆면에 실려 있다. 비의 옆면에는 오른편으로부터 “此新羅眞興大王巡狩之碑 丙子七月 金正喜 金敬淵來讀(이것은 신라진흥대왕 순수비이다. 병자년(1816년) 7월 김정희, 김경연이 와서 비문을 읽었다)”라고 새겨져 있고, 그 옆에 “己未八月二十日 李濟鉉 龍仁人(기미년(1859년) 8월 20일 용인사람 이제현)’이 새겨져 있으며, 다시 예서로 “丁丑六月八日 金正喜 趙寅永同來 審定殘字六十八字(정축년(1817년) 6월 8일 김정희, 조인영이 함께 남아있는 글자 68자를 심정하였다)”라고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정확한 연대를 알려주는 간지나 연호가 없느나, 대체적으로 진흥왕 16년(555)이나 진흥왕 29년(568) 무렵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전자는 진흥왕이 16년(555)에 북한산을 순수하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이 때에 비석을 세웠다는 것이고 후자는 북한산비의 내용이 568년에 세워진 마운령비, 황초령비와 비슷한 점과 비문 중의 ‘남천군주(南川軍主)’를 근거로 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보이는 “진흥왕 29년(568) 10월에 북한산주를 폐하고 남천주를 설치했다”는 내용과 연결하여 이 비는 568년 10월 이후에 세워졌다 한다. 진흥왕 대의 지방 및 군사제도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비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제목 2)순수배경과 경과 3)왕을 수행한 사람 등을 기록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글자가 많아 자세한 내용을 알기는 어렵지만, 내용 중에서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것이 있다.
동북쪽으로 사모바위, 승가봉, 문수봉, 보현봉을 바라본다.
사모바위에도 일출을 즐기는 이들이 아주 많다.
서남쪽으로 향로봉과 족두리봉을 바라본다. 멀리 계양산이 잡힌다.
고양시 행신동 방향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08:04 사모바위(약525m, 2.6km, 1:00), 사모바위에서 회원들을 만나 기념촬영하고 내려간다.
당초에 눈이 쌓였을 것이라고 예견하고 아이젠을 가져왔는데 눈은 전혀 없다.
08:22 승가사(약375m, 3.2km, 1:18), 옛날에 물맛좋고 수량 많기로 유명했던 북한산 샘터가 있던 자리이다. 구기동에서 승가사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어 구급차가 올라와 있다.
승가사에서 대남문 갈림길까지 아기자기한 계곡을 내려가고 있다.
08:37 대남문 갈림(약248m, 3.9km, 1:34), 산길이 넓어지고 계단이 많아진다.
구기동계곡 입구의 폭포가 얼어붙어있다.
08:53 일출산행 종료(약151m, 4.7km, 1:49), 산행을 마치고 바로 아래에 있는 쉼터 산울림에서 회원들과 함께 식사를 즐기며 산행을 정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