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감독의 작품을 봐야 한다고 했을 때는 솔직히 난감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도 나를 당황하게 했지만 이 감독의 영화는 그야말로 '작품'이란느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상업영화에 익숙해 있는 나에게 국제 영화제 수상까지 한 감독의 영화를 보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상업영화는 그냥 보고 웃고 울고 즐기기만 하면 되니까..그러니 영화제 수상을 못하지만..) 이왕이면 좀 더 쉬운 영화를 본다고 나름대로 고른 '검은 비'를 봤지만 역시나 어려운 내용이었다.
'검은 비'의 내용은 히로시마 원자 폭탄 투하로 인해 시즈마 부부와 동네 사람들은 원자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시즈마 부부의 조카인 야스코는 원폭의 직접적 영향은 받지 않았지만 원폭 투하 당시 히로시마에 살았다는 이유로 계속 결혼에 실패하게 된다. 결국 그녀도 원폭을 생긴 검은 비를 맞아서 그런지 방사능으로 오염된 히로시마 시내를 걸어서 그런지 원자병이 발병하고(아마도 이 영화의 제목이 '검은 비'이니 비를 맞아서 그랬을 것이다.) 죽음을 앞 둔 듯한 상태에서 병원으로 실려가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내용은 암울하고 참...억울하다.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미국이 일본의 도쿄같은 중심도시도 아닌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여 도시는 어둠에 잠기고 그 곳 지역 인들은 원자병에 힘겨워 해야 했다. 영화 한 장면에서도 "왜 하필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했을까"라는 대사가 나온다. 야스코는 원자병에 관한 소문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그녀도 원자병 환자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말은 안 했지만 그녀도 억울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억울함을 가진 것이 그녀뿐이었을까. 하지만 시즈마의 집 라디오에서는 세계의 정치인들은 아직도 원폭 투하에 대해서 반성을 안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이 영화를 보고 세상을 두 부류로 나누라고 하면 나는 '피해준 자와 피해 받은 자'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피해준 자'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피해본 자'는 불특정 다수이고 그들이 피해 본다 한들 그 방법(원폭 투하)이 최선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풍성하고 까맣던 야스코의 머리카락이 한 주먹 가득 빠지는 장면을 볼 때 전쟁, 특히 원폭에 대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영화속 대사에서도 "정의의 전쟁보다 부정의 평화가 낫다"는 말이 있다.-정확한가??ㅜ.ㅜ-)
이 영화가 지극히 암울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야스코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다른 남자들 보다 전쟁 때문에 엔진 소리에 대한 정신 장애가 있는 이웃집 총각(이름은 어렴풋이 기억나서..)과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누는 야스코를 보면 원자병 때문에 좋은 혼처에 결혼은 못하지만 그리 슬픈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정신장애가 있지만 야스코를 사랑하고 그녀를 위해 조각하고 죽음을 향해 가는 그녀를 안고 함께 가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그녀가 가는 마지막 길이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나도 그런 남자가 있었으면...ㅜ.ㅜ)
흑백영화는 참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요즘은 다들 컬러를 사용하니까. 컬러 영화는 모든 일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다. 공포 영화에서는 선명한 붉은 피를 보여주면서 관객을 더욱 공포로 몰고 가는 효과처럼 말이다. 이에 반해 흑백영화는 색의 구분이 없으니 영화가 밋밋해 보인다. (그래서 감독들이 더욱 컬러를 선호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검은 비'를 흑백으로 찍은 건 다 이유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이마도 '쉰들러리스트'에서 모든 게 흑백으로 나오지만 붉은 색만이 컬러로 나왔던 것처럼, 원폭 투하 직후 야스코가 비를 맞을 때 주위는 옅은 색으로 나오고 잉크처럼 검은 비가 관객의 눈에 금방 드러나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