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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하는제자교회 창립2주년 축하예배 설교-주준석목사
10번째 파송교회 - 사상일하는제자교회
2008년 3월 1일 범일동 한 세일즈 사무실을 빌어 특별한 시작의 알림도 없이 하나님의 명하심에 순종하여 한 여인이 지인들 몇 분을 모시고 부산 일하는제자교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990년 39살 당시 불교신자였던 탑세일즈 우먼인 김금주 목사는 예수님을 만나 성경을 읽던 중 성경이 성공의 공식이었음을 발견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성경적 성공학을 정립하고 직장과 교회에서 직장선교사로서 성공학 강의와 간증을 통하여 직장 선교를 통한 복음화를 외치기 시작하였다.
2005년 4월 당시 기독뉴스 (샬롬! 오늘) 에 보도된 기사를 옮겨 본다.
■ 연봉 2억의 톱 세일즈 매니저 김 선교사의 이름 앞에는 몇 가지 수식어가 붙는다. ‘세일즈로 시작, 9년 만에 연봉 2억의 톱 세일즈 매니저가 된 여자’ ‘입사 4년 만에 웅진그룹 최단기 고속승진 기록’ ‘불꽃처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 등등. 이런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는 적극적이고 치열한 삶을 살았다. 1986년 아는 사람의 소개로 (주)헤임인터내셔널(현 웅진닷컴)에 들어간 그는 세일즈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입사 2년 뒤인 88년 1월에는 자신이 관리하던 지부를 통해 38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이것은 그해 3월 7800만원, 5월에는 1억 원으로 이어져 최우수 지부상을 받는다. 이어 89년에는 문봉경영대상을 수상하고 91년에는 입사 4년 만에 처장으로 승진, 웅진그룹 최단기 고속승진이란 신화를 만든다. 1994년 한불화장품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한불화장품에서 부산지사 직판사업부를 창립하고 99년말 부산지사장으로 퇴사하기까지 세일즈와 조직관리라는 측면에서 말 그대로 ‘탁월한’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한불화장품을 그만 둔 뒤에는 윈-윈세일즈아카데미를 만들어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왔다.
■ 체험으로 얻은 신앙
세일즈라는 ‘전투’와도 같은 삶의 한 가운데 놓여 있던 그가 신앙을 갖게 된 것은 90년 봄 무렵이었다. “갑자기 편두통에 걸렸습니다. 머리 반쪽이 쑤시는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어요. 미련한 성격이라 그냥 참으며 한 달을 보냈는데, 함께 근무하던 분이 ‘내가 기도해줄까? 아니, 자기가 기도해 봐 나을 거야’라고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아이고, 기도해서 나을 것 같으면 병원 다 문 닫고 의사 굶어죽겠네?’라고 대답했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밑져야 본전이다. 가르쳐준 기도나 해보자’라고 생각한 그는 걸어가면서 머리에 손을 얹고 가르쳐준 대로 기도했다. 그렇게 기도를 하고 손을 내렸더니 한 달간이나 계속되던 두통이 그 순간부터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그 이후로 몇 번의 비슷한 체험을 한 그는 교회에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91년 첫 주일, 마음이 안절부절 못하고 오늘은 꼭 교회를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견딜 수 없어 무조건 집을 나와 아파트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인근 교회에 들어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끝날 즈음 새신자는 일어서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이 ‘내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살았습니다. 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하는 말씀을 천천히 따라 읊기 시작했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 콧물이 줄줄 흘러 감당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그는 그 다음 날부터 새벽이면 목욕한다고 집을 나와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30일째 되던 주일 새벽, 기도 중에 터져 나온 방언과 통곡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린 그는 무려 4시간 동안이나 혼자 교회에서 통곡하며 몸부림치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 하나님의 위로
외부적으로는 화려한 경력의 시간이었지만, 세일즈라는 힘든 분야에서의 삶이 평탄할 수만은 없었다. “30대 초반에 세일즈를 시작해 20년 가까운 세월은 연단과 훈련의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갈등, 조직 속의 부조화, 환경과의 싸움, 나 자신과의 싸움 등등 돌아보면 한순간도 편안할 때가 없었습니다. 늘 아픔과 고통, 연단, 훈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고통은 특히 신앙적인 부분에서 심했다. “시어머니는 매일 밤 절에서 철야로 기도를 할만큼 불심이 깊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맏며느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불화가 계속되고 이혼의 위기까지 몰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난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이 너무 큰 위로였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내가 너를 마침내 백자로 쓰려 함이니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 직장선교의 비전 적극적인 성격만큼이나 그는 신앙에도 열심이었다. 곧바로 신학공부를 시작한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까지 받았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세일즈 경험을 되짚어본 그는 ‘직장선교’쪽으로 비전을 정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직업은 에덴동산 관리자였습니다. 그 뒤 에덴동산이 점점 넓어져 이 세상이 되고 각자는 세분화된 한 분야를 맡아 일터에서 일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직업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요, 하나님과 동업하는 놀라운 복입니다. 사람이 어디서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어디서 절망합니까? 바로 일터입니다.” 김 선교사는 성공에는 성공의 공식이 있다고 말한다. 그 공식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직업 현장에서 자신의 경험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출 때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두가 베드로처럼 직업을 때려치우고 목사나 전도사가 되기를 원하시는 건 아닙니다. 자신의 일터가 바로 선교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 낚는 어부, 직장 선교사로 파송된 것입니다.” 김 선교사는 이 땅의 모든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 명령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창 1:28)는 문화명령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전도와 선교의 사명이다. "직장 선교가 하나님의 명령이고 사명이 될 뿐만 아니라 침체되어 가는 한국 교회를 살리고 새로운 전도의 부흥을 가져오는 현실적 대안이며 답임을 확신합니다." 톱 세일즈 커리어 우먼에서 직장 선교사로 변신한 김금주 선교사, 그가 앞으로 어떤 ‘성공 공식’을 보여줄지 자못 기대된다.
■ 이후의 이야기 2005년 부산에서 직장선교훈련센타를 창립하고 전국으로 직장선교사 아카데미와 윈윈세일즈 아카데미를 통하여 성공학을 강의하며 복음을 전파하다가 2008년 3월 1일 하나님의 강력한 인도에 순종하여 부산 일하는제자교회를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하나님의 폭포수 같은 은혜로 2년 만에 서울, 대구, 분당, 중국상해, 언양, 안산, 대전, 마산, 중국 청도에 이어 2010년 3월 7일 사상 일하는제자교회를 10번째로 파송하게 되었다.
■ 주준석 목사와의 만남 2003년 남편 이상태 목사님(카리스선교회 이사장)과 양산감림산 기도원에서 TD로 만나 이후 선교헌금 후원을 계기로 교제를 나누다 대구 일하는제자교회 개척에 앞서 2009년 3월 대구 직장선교사 아카데미에서 김금주 목사님을 만나 공부하며 비전에 동참하여 7월 25일 대구일하는제자교회 담임목사로 파송받았다. 그리고 09년 5월과 7월에 부산 일하는제자교회에 MD전도사역 집회를 인도하고 8월 수양회와 11월 세계대회 때 MD사역 특강을 인도하여 직장선교사 아카데미와 MD정착사역을 통하여 교회성장을 진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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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창립 2주년을 축하드리며 올 한 해에도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부어주실지 큰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