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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한단고기의 오행성결집,오성취루현상
◇들어가면서(이 책의 대강)
백두산석마도진(白頭山石磨刀盡)
두만강파음마무(豆滿江波飮馬無)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
백두산 돌은 칼날을 갈아서 모두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들의 물로 모두 사용하리!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한다면
후세인들 누가 나를 대장부라 하겠는가!
<단군세기 단기고사 삼국사기의 천문 및 자연과학적 결론>
"BC 1733 제13세 흘달 단군 때 '오행성결집' 현상은 99% 정확하다"
(단군세기 단기고사의 기록이 사실임이 확인됨/ 서울대 박창범 교수)
"BC 935년 제29세 마휴 단군 때 '큰썰물' 현상은 96% 정확하다"
(단군세기 단기고사의 기록이 사실임이 확인됨/ 서울대 박창범 교수)
"205년 백제와 신라에서 동시에 기록된 '태백범월' 현상은 사실"
(삼국사기의 기록은 중국기록에 없는 독자기록으로 사실임이 확인)
"224년 백제 구수왕 때의 '태백주현' 현상은 사실이었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중국기록에 없는 독자기록으로 사실임이 확인)
"삼국사기의 일식실현율은 89%로 세계최고의 과학사서임이 증명됨"
(중국25사는 평균 63%였고 일본서기는 평균 35%였다)
"초기신라의 일식최적관측지는 양자강과 안휘성과 강소성으로 확인"
(후기신라는 한반도, 백제는 산동지방, 고구려는 몽고만주에 존재)
"신라의 홍수는 평균 음력 5월, 백제의 홍수는 평균 음력 6월이다)
(초기신라가 안휘성에 존재했고 백제가 산동성에 존재했기 때문)
"657년 신라의 토함산에 화산이 폭발하여 3년 동안 용암분출"
(한반도의 경주는 확정적 후대 경주/ 제주와 같은 용암흔적이 없음)
"신라와 백제는 가뭄 따로! 홍수 따로! 임이 확인되었다"
(천문과학상 도저히 불가능한 얘기: 초기신라 양자강/백제 산동성)
"신라와 백제는 눈과 서리도 다르게 오고 있음이 밝혀졌다"
(천문과학상 도저히 불가능한 얘기: 대륙신라/대륙백제 확인)
"백제와 신라의 들판을 황폐화 시키는 메뚜기떼는 대륙의 것이다"
(싹쓸이 메뚜기떼는 한반도의 온화한 기후대에는 해당사항이 없다)
<'환단고기'가 밝힌 동양의 고대사에 대한 증언>-연대표.
BC 7199 :환국(桓國) 개국, 7분의 환인 중 제1세 '안파견'환인 건국.
:3301년간 지속되며 제7세 지위리 환인 때 배달국으로 연결.
BC 3898 :배달국 개국, 18분의 환웅천왕 중 제1세 '거발환' 건국
:1565년간 지속되며 제18세 거불단 환웅 때 단군조선 연결.
BC 2333 :단군조선 개국, 47분의 단군 중 제1세 '왕검' 단군 건국.
:2096년간 지속되며 '삼한'과 '삼조선'으로 나누어 다스림.
BC 1286 :단군조선 제1차 쿠테타, 제21세 소태 단군 때 '색불루' 정변.
BC 1285 :단군조선 제22세 색불루 등극, 쿠테타 성공 후 권력승계.
:1048년간 지속(개국이후), 단군연세 '1048년'의 비밀이 풀림.
BC 426 :단군조선 제2차 쿠테타, 제43세 물리 단군 때 '우화충' 반란.
BC 425 :대부여단군조선으로 국호 개칭. 제 44세 '구물' 단군 등극.
:1908년간 지속(개국이후), 단군연세 '1908세'의 비밀이 풀림.
BC 239 :단군조선 제3차 쿠테타, 해모수의 북부여(고구려 모국)건국
BC 238 :제47세 고열가 단군 퇴위. 오가(五加)들의 6년 공화정.
BC 232 :북부여단군조선(고구려) 제1세 해모수 '4월초8일' 단군 등극
:단군조선 공식마감(2101년), 북부여(고구려)의 실질 개국 년대
BC 58 :북부여단군조선 제6세 고무서 단군사망. 고주몽 등극(22세).
:고구려 개국연대는 BC 37년이 아닌 것으로 판결(환단고기).
<'환단고기'가 밝힌 동양의 고대사에 대한 증언>-환국, 배달국.
"인류기원은 나반(아바이)과 아만(어마이)이 만난 아이사타(아사달)"
(환단고기의 삼성기에 이렇게 놀라운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다)
"환국은 7분의 환인과 3301년의 역년을 가진 역사국가"
(삼국유사에도 '석유환국'이라 하여 환국의 역사성을 말하고 있다)
"환국은 사백력(시베리아), 파내류산(파미르고원), 천해(바이칼호)에"
(환국이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하여 점차 동쪽으로 이동하였음을 기록)
"환국12국에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須密爾) 국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의 언어학적 고고학적 결론은 환단고기의 기록을 정확히 뒷받침)
"배달국은 18분의 환웅과 1565년의 역사를 가진 실체국가"
(단군조선시대 47세 2096년 동안의 모든 가사는 배달국찬양가 일색임)
"개천절의 주인공은 BC 3898년 배달국을 건국한 '거발환' 환웅이다"
(BC 1891년 제11세 도해 단군은 거발환 환웅상을 '대시전'에 모신다)
"배달국의 '환웅전'은 불교가 들어온 후 석가의 '대웅전'으로 바뀐다"
(대웅전에는 석가가 모셔지고 환웅전은 절간 뒷편의 삼성전으로 이동)
"우리민속 '고시레!'는 배달국의 주곡담당관 '고시례' 선생을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환단고기를 통해 그 역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서토의 3황5제 즉, 태호복희, 염제신농, 황제헌원, 소호금천은 동이족"
(중국사서들은 그렇게 말하는데 왜 우리사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가)
"BC 2707년 배달국의 치우와 서토의 황제와의 전쟁은 역사적 사실"
(중국사서들은 이것을 역사사실로 인정하고 있는데 우리는 뭔가)
"BC 2707년 배달국 제14세 치우 천왕은 우리민족사의 최대영웅이다"
(환단고기의 주인공은 치우천왕이다 할만큼 중요하게 다루어져 있다)
"치우천왕은 청동갑옷과 철갑투구를 개발한 동양사 최대영웅이다"
(쇠철자의 옛글자를 보면 쇠금 변에 '夷' 자가 붙어 있는데서도 증명)
"최근 서토는 치우의 묘를 발굴하였고 삼조당을 지어 중국사로 편입"
(매국사학자와 패륜사학자들이여! 이러고도 조상제사를 지내는가?)
<'환단고기'가 밝힌 동양의 고대사에 대한 증언>-단군조선.
"단군조선은 나라의 기원을 '배달국'으로 하였다"
(단군시대 10여 편의 가사는 모두 '배달국찬양가': 어아가 서효사 등)
"단군조선 제1세 왕검단군은 곰을 토템하던 곰족들의 지도자였다"
(47분의 단군과 2096년의 단군시대를 창업한 분을 곰의 아들이라니!)
"삼국유사의 곰과 호랑이 얘기는 곰족과 호랑이족의 얘기로 명백한 번역의 오류이다"
(월남 파병군 맹호부대, 야구단의 타이거스(호랑이), 라이온스(사자) 등을 생각해 보라)
"단군이 곰의 아들이었다면 우리 몸속에도 곰의 피가 흐른단 말인가"
(조상과 역사를 모독하는 매국사학자들의 패륜행위를 응징해야 한다)
"단군조선은 47분의 단군과 2096년의 역년을 가진 역사적 국가였다"
(하북성에서는 단군조선을 알려주는 '天子'명문 청동기가 발굴되었다)
"단군조선은 개국 때부터 삼한과 삼조선으로 다스려졌음이 밝혀졌다"
(요녕성에서 제후국 '번한番汗'의 실체가 '番干'이란 명문으로 발견됨)
"단군조선은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를 제후국으로 다스렸음이 명백"
(중국서경/중국후한서/중국설원에 너무나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다)
"서토나라에서 BC 221년까지 황제(천자)를 참칭한 제왕이 있었던가"
(진시황이 처음으로 황제를 참칭했다 해서 '시황'이라 부르는 것이다)
"BC 1767년 제13세 흘단 단군이 하나라를 응징한 것은 역사적 사실"
(중국후한서에는 동이족이 빈기(섬서성) 지방을 점거하였음을 기록)
"BC 1236년 제23세 아홀 단군이 은나라를 응징한 것은 역사적 사실"
(회대(양자강) 땅에 대한 동이족의 점거기록/중국사기/중국후한서)
"BC 997년 제27세 두밀 단군이 주나라를 응징한 것은 역사적 사실"
(중국후한서는 주나라 목왕이 단군조선에 36군을 점령당했다고 기록)
"기자조선은 단군조선의 역사를 뒤엎은 완벽한 조작임이 드러났다.
(기자 망명지는 하남성 서화, 기자 무덤은 안휘성 몽현으로 밝혀짐)
BC 1733년 제13세 흘달 단군 때의 '오행성결집현상'은 역사적 사실"
(컴퓨터로 역추적한 결과 실제적 천문현상/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
"BC 1291년 제21세 소태 단군 때의 '귀방정복' 기록은 역사적 사실"
(은나라 갑골문에서 '귀방'의 존재사실 확인/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
"단군조선은 BC 1286년 제1차 쿠테타가 발생하였음이 밝혀졌다"
(동국세년가 등은 단군의 연세를 1048세로 적었다⇒2333-1286=1048)
"단군조선은 BC 426년 제2차 쿠테타가 발생하였음이 밝혀졌다"
(삼국유사 등은 단군의 연세를 1908세로 적었다⇒2333-426=1908)
"단군조선은 BC 239년 제3차 쿠테타가 발생하였음이 밝혀졌다"
(제47세 고열가 단군 이후 7년의 '공화정'을 거쳐 북부여로 계승)
"단군조선은 공식적으로 BC 232년 '북부여단군조선'(고구려)으로 계승
(놀랍게도 '4월초8일'은 북부여 즉 고구려의 건국축제일로 밝혀졌다)
<'환단고기'가 밝힌 동양의 고대사에 대한 증언>-북부여단군조선.
"북부여단군조선이 곧 고구려(高句麗)이다"
(환단고기, 삼국유사, 광개토 비문, 모두루 묘지명, 중국25사가 증명)
"북부여단군조선(고구려)은 BC 239년 '해모수'에 의해 건국되었다"
(쿠데타였지만 7년 공화정 이후 BC 232년 합법적으로 계승하였다)
"북부여단군조선(고구려)은 단군조선을 계승한 '합법적' 정부였다"
(위만조선은 북부여단군조선의 영토 일부를 탈취한 비합법적 정부)
"북부여단군조선의 건국축제일 '4월초8일'은 석가탄신일로 바뀐다"
(서양에서 태양신 축제일인 12월 25일이 성탄절로 바뀌는 것과 같다)
"북부여는 제1세 해모수부터 제6세 고무서까지 181년간 존재하였다"
('북부여단군조선' 제6세 고무서의 사위가 바로 '고주몽'임이 밝혀짐)
"BC 194년 위만조선의 건국은 북부여단군조선의 일부 상실이다"
(북부여는 제후국 '번조선'을 탈취 당하고 위만의 축출을 위해 전쟁)
"위만조선은 단군조선의 합법적 후계정부가 아니다"
('북부여단군조선'은 위만을 '도둑떼'로 규정 대규모 전쟁을 벌인다)
"BC 108년 위만조선의 멸망은 '북부여단군조선'의 멸망이 아니다!"
(당시 북부여단군조선은 제4세 '고우루' 단군이 재위하고 있었다!)
"이른바 한사군을 다스린 사람들은 모두 조선인들(최, 참, 음, 협)"
(이는 한사군의 현장을 눈으로 보고 적은 사마천의 '사기'가 증언함)
"동명왕 고두막은 의병장으로 북부여단군조선 제5세 단군으로 등극"
(동명왕은 BC 86년 북부여의 5세 단군이고 고주몽은 고구려의 개국조)
"동명왕 고두막은 한나라 무제와 벌어지는 전쟁들을 승리로 이끈다"
(고구려의 진중가에 '무제는 망아지처럼 도망했네'라는 노래로 나온다)
"BC 58년 고주몽은 북부여단군조선 제6세 고무서 단군의 사위로 등극"
(고구려의 건국연대는 BC 37년이 아님을 환단고기는 정확히 고증)
<'삼국사기' '환단고기' '중국25사'의 역사적 진실>-삼한 78국
"삼한은 78국 사방 4000리를 가진 대륙국가이다"(▽중국삼국지)
(1국은 사방 100리다. 한반도에 삼한과 삼국이 동시에 있을 조건 안됨)
"삼한의 위치는 낙랑(하북성)과 대방(하남성)이다"(▽중국25사)
(삼국사기 중국25사에서 말하는 낙랑과 대방은 북경과 하북성이다)
"낙랑은 지금의 북경"(중국지명사전/중국대명일통지/평양덕흥리고분)
(평양덕흥리고분은 낙랑이 북경임을 고고학적으로 말해 준다)
"대방은 지금의 하북성임이 고고학적으로 밝혀짐"(▽평양덕흥리고분)
(평양덕흥리고분은 대방이 북경과 하북성에 있었음을 명확히 설명)
"삼한의 강역은 연나라(하북성) 제나라(산동성) 지역"(▽중국 삼국지)
(중국삼국지는 삼한 사람들이 연제지역에 존재하였다고 적고 있다)
"삼한은 위(魏)나라 관구검의 침공을 받았다/대륙삼한증거"(▽삼국지)
(위나라가 한반도의 전라도 경상도를 공격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위(魏)나라의 관구검은 말년에 신라 백제에 복속하였다"(▽중국수서)
(위나라의 관구검이 한반도의 신라 백제에 복속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진한(신라)은 진(秦)나라 망명객의 나라"(▽진서▽양서▽남사▽송서)
(진시황의 백성들이 백제땅을 두고 어찌 신라로 망명할 수 있겠는가)
"마한 진한 변한 등 삼한은 기주(하북성)의 도이(삼한족)를 말한다"
(중국'서경'과 중국'우공추지'라는 책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중국25사 진서는 삼한이 중화족과 섞여서 살고 있다고 적고 있다"
(중국 진서는 삼한 78국이 4세기까지 모두 진나라에 복속했다고 기록)
"중국진서는 삼한 78국이 각각 진나라에 복속되는 과정을 상세히 서술"
(한반도에 삼국이 있었다면 삼한이 어떻게 중국나라에 복속할 수 있나)
<'삼국사기' '환단고기' '중국25사'의 역사적 진실>-고구려(북부여)
"고구려는 BC 239년 개국한 북부여단군조선을 계승한 국가이다"
(환단고기, 삼국유사, 광개토 비문, 모두루 묘지명, 중국25사가 증명)
"고구려의 역년은 정확히 900년이다"(당나라 시어사 가언충의 증언)
(북부여단군조선의 공식적 개국 BC 232년+고구려멸망 668년=900년)
"동명왕과 고주몽은 완전히 다른 역사적 인물이다"(▽환단고기)
(동명왕은 BC 86년 북부여 제5세 단군, 고주몽은 고구려의 시조이다)
"고구려와 백제는 오(양자강)·월(절강성)을 침략하고, 유(북경)·
연(산서성)·제(산동성)·노(하남성)를 차지"(▽삼국사기▽환단고기)
고구려의 대륙경영 사실은 이정기가 세운 산동성의 '제나라'에서 증명"
(산동성이 고구려 강역이었기 때문에 고구려 장군이 나라를 세운 것)
"현대의 중국 지방 군현지에서 소개되고 있는 고구려의 대륙경영 사실"
(산동성의 청도, 즉묵, 봉래, 강소성의 양주, 비주, 금호, 염성, 숙천)
"평양덕흥리고분은 고구려의 북경 지배사실을 기록한 고고학적 승리"
(북경과 하북성의 13군 태수가 고구려의 유주자사에게 하례하고 있다)
"낙랑은 북경이고 대방은 하북성임이 밝혀 졌다"(▽평양덕흥리고분)
(매국사학자들은 '낙랑'이 평양이고 '대방'이 황해도라 말해 왔다)
"북경과 하북성은 고구려의 기본강역"(평양덕흥리고분/유주자사명문)
(북경에는 고구려 제2세 유리왕과 관계 있는 '유리묘''유리하'가 있다)
"고구려의 펑양성은 요녕성 요양임이 밝혀 졌다"(▽중국 요사지리지)
(중국요사지리지는 고구려 평양성이 요녕성 요양이라 정확히 기록)
"지금의 평양은 고구려 시대의 한성임이 평양성벽글씨에서 밝혀 졌다"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생의 묘비명에도 이 사실이 명백히 적혀 있다)
지금의 압록강은 동압록이고 지금의 요하가 압록강임이 밝혀졌다"
(중국요사지리지/중국고지도/삼국유사/환단고기의 증언이다)
"고구려의 '요서10성'은 모두 지금의 북경과 하북성에 있다"
(매국사학자들은 고구려의 요서10성을 모조리 요동에 표시하고 있다)
"고구려 초기지명과 고구려패망지명은 모두 '하북성'에서 발견됨"
(고구려 건국지명과 패망지명이 한반도에는 한 개도 발견되지 않는다)
<'삼국사기' '환단고기' '중국25사'의 역사적 진실>-대륙백제의 진실.
백제는 영(瀛)과 빈(濱)의 바다 남쪽에 있다"(▽중국당서, ▽중국위서)
(중국의 각종 고지도는 '영'과 '빈'을 모두 산동성 황하 일대에 표시)
"백제는 중국의 요서와 진평(하남성)을 경영함"(▽송서▽양서▽남사)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은 진평군 진평현이 하남성에 있음을 적고 있다)
"백제의 책계왕은 '성한'(成漢:사천성 성도)과의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한국과 중국의 사학자들은 천벌을 받을 거짓말을 해왔던 것이다)
"백제는 '후위'(북위)와도 전쟁을 벌인 대륙국가(▽삼국사기▽자치통감)
(백제는 대륙에 주요기반을 가졌고 한반도의 백제는 백제의 일부였다)
"중국25사 남제서의 백제7군 지명은 대륙지명이며 현재까지 남아 있다"
(광양은 하북성, 청하는 하북성, 성양은 산동성, 광릉은 강소성에 있다)
"백제 개로왕은 '하수'(황하)를 따라 '숭산'(하남성)까지 제방을 쌓았다"
(숭산崇山은 지금도 하남성에 그대로 살아 있는 지명이다)
"중국대륙의 동편에는 단군조선 삼한삼국 지명이 230개나 있다"
(삼국사기에서 '알 수 없는 지명'으로 분류된 30개도 대륙에서 발견)
"대륙의 '산동성' 일대에는 백제패망지명이 '20개'나 존재한다"
(대륙의 산동성에서 '백제패망지명' '신라전쟁지명'이 수 십개 발견됨)
"백제의 한성과 사비성은 산동성의 '한성'과 '(사)비성' 지역에 있다
(대륙의 산동성에는 황산, 백마하, 주류자, 항성(당항성) 등이 있다)
"멸망 당시의 백제성곽 수는 200개, 임진왜란 당시 성곽수는 10개"
(명나라의 장수 송경락의 증언/1666년 백제지역의 성곽수는 60개)
"멸망당시의 백제인구 400만/조선 세종 때 백제지역 인구 11만3천"
(중국25사가 증언/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군과 신라군사의 수 13만)
"백제의 사비성이라 부르는 충남 부여는 백제의 '내저성'이었다"
(매국사학자들은 충남 부여에서 발견된 '내저성' 비문을 숨기고 있다)
"백제 정벌군인 신라 태종무열왕의 관직명은 '우이도행군총관'이다"
(우이도가 지금의 산동반도임은 천하가 다 아는 역사상식)
<'삼국사기' '환단고기' '중국25사'의 역사적 진실>-2개의 신라.
"신라는 백제의 동남쪽 5000리에 있다"(중국양서/중국남사/중국주서)
(대륙백제와 대륙신라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2개의 신라)
"삼국사기와 중국25사는 분명히 2개의 신라를 적고 있다"
(대륙에는 사로신라가 있었고, 한반도에는 매금신라가 있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초기신라는 대륙신라로 '사로신라'라 기록하였다"
(광개토비문과 중원고구려비에 나오는 반도신라는 '매금신라'로 기록)
"삼국사기와 중국25사에 나오는 2개 신라는 천문학적으로도 증명된다"
(세계적인 천문학자 박창범 교수의 일식관측지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선도성모(박혁거세 모친)는 송나라 때까지 대륙에 사당이 있었다"
(송나라에 간 김부식 선생이 선도성모 사당에 참배하는 장면이 나옴)
"115년 신라 지마 이사금이 가야 정벌에 나서 '황산하'(黃山)를 건넜다"
(가야를 정벌하는데 황산(충남논산)이 왜 등장하는가/절강성 황산)
"300년 낙랑(평양)과 대방(황해도)이 망해 신라로 귀의한다"
(낙랑이 지금의 '평양'이 아니고 대방이 지금의 '황해도'가 아닌 이유)
330년 신라 흘해 이사금 21년 '벽골지'(전북김제)를 만들었다"
(신라임금이 백제 땅에 있는 벽골지를 만들었다니/2개의 신라와 관련)
"414년 신라 실성 이사금 12년 '평양주'에 큰 다리를 놓았다"
(신라임금이 고구려의 수도 평양에 다리를 놓다니!/절강성 평양)
"489년 신라 소지 마립간 10년 동양(東陽)에서 거북을 진상했다"
(동양이란 지명은 한국에 없고 절강성에 지금도 있는 지명이다)
"494년 소지 마립간 때 임해진(臨海鎭)을 설치해 왜적을 방비하였다
(임해라는 지명 역시 절강성에만 있을 뿐 한국에는 없는 지명이다)
"495년 신라 소지 마립간 때 고구려와 '살수'(청천강?)에서 싸웠다"
(매국사학자들이여! 이 살수가 어찌 청천강이 될 수 있겠는가?)
"555년 신라 진흥왕 때 '완산주'(전북전주)를 설치하였다
(신라 진흥왕이 완산주를 설치하였다니/대륙의 호북성 전주와 관련)
"657년 신라의 토함산에 화산이 폭발하여 3년 동안 용암분출"
(한반도의 경주는 확정적 후대 경주/제주와 같은 용암흔적이 없음)
"신라의 수도 경주는 인구가 18만호 였으니 1백만명이 모여 살았다"
(조선 세종 때의 인구는 6천명/현재의 경주인구는 월성포함 30만)
"659년 신라 태종무열왕 때 공주(백제수도)에서 큰물고기가 죽었다"
(망하지도 않은 백제 땅을 신라 임금이 관할하다니!/하남성의 공주)
"672년 신라와 당나라는 '석문'(하북성)에서 당나라와 8년전쟁 치름"
(석문石門은 지금도 하북성에 그대로 살아 있는 지명이다)
"816년 신라 헌덕왕 때 백성들이 굶주려 절강(절강성 절강)으로 갔다"
(굶주린 신라백성들이 어떻게 절강성까지 갔겠는가/대륙신라 관련)
<고려사에 나타난 대륙지명>-고려사의 진실.
"고려는 10여개의 '번국'(藩國:제후국)을 가진 황제국이었다"
(동여진 서여진 북여진 탐라 탁라 우산국 철리국 흑수국 개마국)
"고려는 '동번'(東藩:동여진)을 응징하였으나 내란으로 규정"
(고려는 군사 3만명을 동원한 거대 전쟁을 내란으로 규정한 황제국)
"고려는 '요하를 삼분하여 그 절반을 가지고' 창업하였다"(궁예)
(고려는 '요하遼河'(요녕성 요하)를 물고 나라가 창업되었다)
"고려는 '요수의 물결을 잠재우고 진한땅을 얻어' 통일했다"(최승로)
(고려는 '요수遼水'(요녕성 요하)를 물고 나라가 창업되었다)
"고려성종은 '요성'에 나아가 선대의 옛법을 행하였다"(고려성종)
(고려의 '요성遼城'은 요하 요수 요동 요서 요동반도에 있다)
"고려는 송으로부터 '현도군'(玄 郡) 도독이란 책명을 받았다"
(한서와 후한서의 현도군은 유주(북경), 자치통감은 노룡(하북성))
"지나의 하남성 '숭산'(嵩山:현재지명)은 고려의 영토임이 밝혀졌다"
(고려 문종은 소림사로 유명한 '북숭산' 신광사로 행차하고 있다)
"고려의 10도 지명에는 대륙지명이 섞여 있다(하남, 강남, 산남)"
(일반적으로 하남은 황하, 강남은 양자강, 산남은 산동성을 말한다)
"고려는 최사위란 공신에게 '청하현개국남'이란 관작을 내림"
(청하는 요녕성 요하유역과 황하의 지류에만 있는 지명이다)
"고려는 공신들에게 평량후, 태원공, 신안후 등의 작호를 내린다"
(평량은 섬서성, 태원은 산서성, 신안은 하북성에만 있는 지명이다)
"고려의 '철령위'(鐵嶺衛)는 요녕성 '철령시'를 말하는 것이다"
(고려의 철령위는 요녕성 철령시이지 강원도 철령이 아니다)
"고려의 '쌍성총관부'는 길림성 쌍성에 있다"(현재의 중국지도)
(매국사학자들의 매국행위가 천벌을 받을 수준임을 말해 준다)
"고려의 '동녕부(평양)'는 요녕성 '요양'을 말하는 것"(요사지리지)
(요사지리지는 요녕성 요양이 고구려의 평양성이라 적고 있다)
"고려의 행정구역수는 584개, 조선은 324개, 신라는 450개)
(매국사학자들이 고려강역을 얼마나 잘라 먹었는지가 증명된다)
"강화도에는 고려의 대형사찰인 선원사 흥국사 등의 유적은 없다"
(신라의 소형사찰인 전등사, 정수사, 보문사, 적석사 등은 있다)
"고려는 양자강 고우성으로 연경의 고려인 2만3천을 파견하였다"
(고려가 대륙에 영토가 없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위화도(압록강)와 위화진(평북운산)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역사조작의 흔적: 위화도와 위화진은 100km이상 떨어져 표시됨)
"1666년 김수홍의 '천하고금대총람'에는 경주가 안휘성에 표시됨"
(대륙의 안휘성 회원현과 안휘성 봉양현에는 많은 유적유물 있다)
"현재의 중국지도에도 고려의 영토는 만주까지로 나타나 있다"
(만주지도에 고려모, 고려령, 쌍성(쌍성총관부), 철령(철령위) 표시)
<12개의 평양과 4개의 평양>
"단군조선의 평양성은 길림성 개원이다"(환단고기)
"단군조선은 요녕성 해성에 별궁을 지었다"(환단고기)
"단군조선의 왕험성은 하북성 창려이다"(중국사기)
"단군조선의 왕험성은 요녕성 반산이다"(중국한서지리지)
"고구려의 평양성은 요녕성 요양이다"(중국요사지리지)
"조선성이 영평부(북경) 경내에 있다"(중국대명일통지)
"양주(한반도/절강성)를 평양이라고도 하였다"(삼국사기)
"춘주(한반도/하북성)는 맥국인데 평양이라고도 하였다"(삼국유사)
"현재의 평양: 한반도/감숙성/절강성/산서성(중국역사지도집)
<우리 것을 잃어버린 댓가>
우리 것을 잃어버린 댓가는 참으로 처절하였습니다.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 72세 6962년 민족의 대륙역사를 잃어버렸고
세계를 변화시킬 주도적 철학사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동족상잔 6.25도 모자라서 남북으로 갈라졌고 동서로도 갈라졌습니다.
시련의 역사는 길었고 영광의 역사는 짧았습니다.
고난의 역사는 길었고 자부심의 역사는 짧았습니다.
그러나 '환단'(桓檀) 역사 6962년을 알고 보니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환단고기'를 알고 보니 지나간 1000년의 역사는 백일몽이었습니다.
<짧았던 시련의 역사>-길었던 영광의 역사.
시련의 역사는 짧았고 영광의 역사는 길었습니다.
갈등의 역사는 짧았고 화합의 역사는 길었습니다.
대륙은 우리의 고향이었고 반도는 우리의 피난처였습니다.
반도의 역사는 우리역사의 일부분이었습니다.
대륙의 역사는 민족역사 9200년의 본향이었습니다.
우리는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영광의 역사를 잃어버린 우리민족은 '도토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갈매기의 꿈은 나는(飛) 데에 있었지 먹는(食) 데에 있지 않았습니다.
갈매기의 꿈은 그의 가슴에 새겨진 '대(大)갈매기'의 모상이었습니다.
미운 오리새끼는 그가 백조의 후손임을 자각하는 순간 창공을 향해
화려한 날개짓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백조의 후손>-'미운 오리 새끼'
이 땅의 사람들이 '백조의 후손'임이 밝혀졌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을 '미운오리새끼'로 조작한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이 백성을 장님으로 만든 '매국' 세력들이 우리를 농락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파렴치한 역사조작행위로 인해 이 나라와 이 겨레는
1000년의 역사후퇴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질곡과 파행의 역사가 가져다준 상처는 민족역사 9200년 만에
최초로 국권탈취(한일합방)라는 수모까지 겪게 하였습니다.
역사를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어떻게 이런 사기와 협잡이 통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어처구니없는 협잡>-요수, 석문, 숭산, 우이도, 양하도.
고려사에는 고려가 요하 요수 요성(요녕성/하북성)를 기준으로
건국되었음을 분명히 적고 있습니다.
하북성 '석문'에서 신라가 당나라와 8년 전쟁을 벌이는 장면이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데 신라를 한반도의 나라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백제 개로왕이 '하수'(황하)를 따라 하남성 '숭산'까지 제방을 쌓는 장면이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데 백제를 한반도국가라 속이고 있습니다.
신라의 태종무열왕은 '우이도'(산동성)행군총관이란 자격으로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산동성 일대에는 '백제패망지명'이 20개나 존재합니다.
'우이도'( 夷道)가 산동반도임은 역사상식입니다(중국역사지도집 등).
신라의 김유신은 '양하도'행군총관의 자격으로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며
안휘성 회원현에는 신라의 '월성'과 '(토)함산'이 지금도 존재합니다.
'양하도'(兩河道)란 황하를 상하로 가른 행정구역을 말합니다.
중국대륙의 동편에는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지명, 삼한삼국지명,
삼국의 전쟁지명, 김유신지명, 장보고지명, 등이 물경 230개나 존재합니다.
<반역사 반지성의 무리들>-주류사학계.
"역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E.H 카는 말했습니다.
이 대화를 근원적으로 끊어 놓는 반역사 반지성의 무리들이
무려 1000년의 세월 동안 이 땅의 역사학을 분탕질하고 있었습니다.
황탄한 무리들이 한국의 주류사학계를 완전히 주름잡고 민족을 팔고
나라를 팔고 민족의 정신까지 깡그리 팔아먹고 있었습니다.
'환단고기'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민족의 정사인 '삼국사기' '고려사'도
반도사관과 중화사관에 맞지 않으면 마음대로 짜맞추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명색이 한국인 사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지나인들과
왜인들의 입장에서 우리역사를 바라본 한국사를 적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매국사학자'들이라 규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패배주의를 조장하는 역사>-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
'곰의 아들'이 무슨 세계사적인 일을 해낼 수 있단 말입니까?
곰의 아들로 단군조선을 개국한 이후 기자조선(한족) 위만조선(한족)
한사군(한족)의 지배를 받아 한족들의 노리갯감으로 살아온 노예들의 후손들이
무슨 세계사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환단고기를 발견하고 보니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적반하장' '본말전도' '아전인수'의 극치였던 것이 드러났습니다.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의 역사와 동아시아의 고대사는 한족들에 의해
완전히 날조된 소설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착한 목자인가>-중화주의 마약환자인가.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한국의 대표적 지식인들이요 선비들인
역사학자들을 '절대적'으로 믿고 우리의 스승으로 존경해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민족의 정신을 수호하는 성직자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이야말로 동이배달 한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 영원한 약속이 땅으로 인도하는 참된 목자들인 줄 알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의 실상은 한국의 대표선수들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콤플렉스에 가득 찬 반역도당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지나(중국)에 대한 '그리움'과 '사모의 정'으로
애를 태우는 중화주의 마약환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기꾼들에게 교수 박사라는 칭호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국민들을 철저히 기만하여 한국 배달국 단군조선에 관해
한 줄도 가르치지 않고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만 가르쳤습니다.
<건곤일척의 한판승부>-유태인(미국)과 지나인(화교).
세계사의 패권을 놓고 미국 유태인들과 화교 지나인들이
건곤일척의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습니다.
목하(目下) 세계는 미국을 쥐고 있는 유태인들과 동남아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지나인들 사이에 용호상박의 투전판을 벌어지고 있습니다.
주류지식인들은 이 점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유태인들과 지나인들은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그리고 세계를 경영하기 위해
어제의 역사를 조작하고 오늘의 역사를 창작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경찰국가인 미국은 영국 계통인 '앵글로색슨'족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유태인'의 지배하에 있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의 세계통치>-노벨상, 석유, 식량, 금융기관, 언론기관.
유태인들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내세워 세계를 대리통치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10억 아랍인들의 당연한 권리를 묵살하고 한 줌도 되지 않는
유태인들에게 코가 꿰어있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유럽· 미국 등에 살고있는 1500만의 유태인들은 놀랍게도
전 세계 노벨상의 30%를 석권하고 있습니다.
유태인들은 전 세계 5대 '석유' 메이저의 대부분, 전 세계 5대 '식량' 메이저 대부분,
미국의 10대 '은행' 대부분, 미국의 10대 '증권사' 대부분, AP와 로이터 '통신'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 NBC 등 주요 공중파 '방송' 등을
모두 장악하고 있습니다.
<유태인들의 세계경영>-군수산업, 첨단산업, 다국적 기업.
전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언론 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유태인들은
그야말로 '세계경영'(世界經營)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유태인들은 오늘도 세계평화와 자유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중동의 이라크를 침공하도록 미국을 조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온의 칙서'라는 비밀문서로 무장하고 미국과 유럽의 경제를
거의 장악하고 있습니다.
군수산업(軍需産業)과 첨단산업(尖端産業)을 앞세운 유태인들의 다국적 기업(多國籍企業)
경영전략은 바야흐로「세계 단일 정부」구성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미국의대외정책론'(노암 촘스키 外), '그림자정부정치편'(이리유카바 최),
'그림자정부경제편'(이리유카바 최) 참조 >
<동남아를 점령한 지나 화교>-홍콩을 내리치는 유태인.
6천만 화교들과 13억의 본토 지나인들은 이미 동남아 경제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세계를 향해 진군의 나팔소리를 울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현금동원능력은 미국(유태인)을 놀라게 할 정도였습니다.
드디어 1990년대 후반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유태인들(미국)은
홍콩(중국)을 내리쳤고 그것이 이른바 '홍콩발' 아시아 금융위기였습니다.
홍콩을 쳐서 중국을 길들이기 위해서입니다.
억울하게도 한국을 비롯한 어리숙한
아시아의 몇 나라들만 IMF라는 유탄을 맞았던 것입니다.
노련한 지나인들이 유태인들의 의도를 모르고 그것에 당하고 있을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엄청난 외환보유고를 쌓아놓고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무서움은 한국의 경제관료(학자출신 아님) 출신을
북경대학의 강사로 채용하여 한국의 IMF 상황을 연구할 정도입니다.
<역사 뒤편의 역사>-'카쓰라(일)-테프트(미)' 밀약.
세계를 움직이는 behind story(숨은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이 나라 이 겨레가 겪어야 할 고난의 역사는 단절되지 못할 것입니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원리의 실상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한
동이배달 한민족이 지불해야할 고난의 세례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차하면 한국은 유태인들(미국)과 지나인들(화교) 간의
'고공점프 농구놀이'의 희생제물(미국의 북한공격 등)이 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지만 이들의 음모가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전개되느냐에 따라 럭비공의 방향처럼 결정될 것입니다.
한일합방을 사실상 타결했던 미국과 일본의 '카쓰라(일)-테프트(미)' 밀약처럼
미국과 지나 사이에는 한국의 통일과 관련해 분명히 어떤 모종의 거래가
진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간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구려사에 대한 음모>-흔들리는 중국연방.
이런 가운데서 지나는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음모를 벌이고 있고
미국에 대비해 중국민족의 단결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고구려사를 통해 대륙의 동편부분이 동이배달 강역이었음이 밝혀진다면
지나의 세계전략은 매우 타격을 입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국제정치학에서 보이지 않게 무대의 뒤편에서 실제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역사의 실상입니다.
지나인들이 공자 이래로 수 천년에 걸쳐서 동양사를 왜곡하고
고대사를 숨기려 그토록 애를 썼던 이유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고구려사까지 조작해 가며 발버둥을 치는 이유를
우리는 이제 더욱 정확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동양의 고대사가 밝혀져
중국대륙 동편이 수 천년 동안 동이배달 한민족의 강역이었음이 밝혀지는 일입니다.
그것이 들통나는 순간 중국연방은 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륙의 동편>-동이배달 한민족의 무대.
대륙의 동편은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배달동이 한민족의 무대였습니다.
이것은 고려사를 통해서도 명백히 증명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지나의 두려움은 고구려사의 탈취로 완전범죄 '반도사관'과
'중화사관'의 완성을 보려는 것으로 최근 드러나고 있습니다.
동이배달 한민족사를 반도사관 중화사관으로 주저앉히지 못하는 한
명나라 이후 '수호지' '삼국지연의' 등의 장난을 통해
고려의 후예들을 대륙에서 쫓아낸 600년 공덕은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환단고기 삼국사기 고려사가 있는 한 그 음모는 불가능합니다.
이 나라 사학자들은 북한의 경제특구장관 '양빈'이 지나당국으로부터
거세당한 이유를 한 치도 모르는 나약한 책상물림들일 뿐입니다.
환단고기라는 세계적인 희귀서가 발견되었는데도 그 가치의 의미를
도무지 모르는 문약한 글물림들일 뿐입니다.
<무자격자들>-대안 없는 집권.
이 나라는 정녕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이런 무자격자들이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한국의 족보학까지
장악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미래는 과연 있는 것입니까?
동이배달 한민족의 족보학을 책임지고 있는 역사학자들에게 묻노니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으며 우리는 어디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까?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우리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어느 방향으로 우리 아이들의 힘을 살리고 우리 학생들의 기를 살리고
우리 청년들의 에너지를 농축해서 어떻게 가자는 것입니까?
<철학을 상실한 지도자들>-민족의 성서 환단고기.
이 나라의 역사학자들이여!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여!
대안을 내어 보십시오! 대답을 해 보십시오!
아무런 대안도 목표도 없으면서 왜 우리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보존해 온
우리의 '역사서'요 '문학서'요 '철학서'인 저 위대한 민족의 성서 '환단고기'를
어떻게 위서니 참서니 하며 사갈시 하는 것입니까?
어찌하여, 책임 있는 당국자로서, 고매한 지식인으로서,
국가와 민족의 자존을 세우는 일에 그토록 '무심한' 국외자로 물러서 있는 것입니까?
<유위자 선생의 대예언>-조국문자와 역사의 상실.
"그때 국자랑(화랑)의 대스승 유위자는 아한 단제께 말하였다.
마마(단군조선 제12세 아한 단군)의 성자신손(단군후손)들은
문화가 점점 퇴보하여 조국문자(가림토문)는 돌보지 않고
모화사상이 날로 설쳐대는 통에
수 천년 뒤에는 서토(중국)의 문물을 사모하여 유학에 미친 자들이
나라 안에 가득할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조국문자는 다 없애고 한자만 전용할 것이며
한자로 우리나라 이름과 왕호 관명 지명 그리고 모든 물건의 이름까지 번역할 것입니다.
사람의 이름까지도 서토사람의 것과 같아 우리자신들이
서토사람으로 알게 되고 끝내는 자손들이 선조를 잃는 일까지 생길 것이옵니다.
장래를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고 원통한 일이옵니다"▽단기고사.
<유위자>-'성간 구름의 진화론' 위대한 천문학자.
BC 1834년 '국자랑'(國子郞:신라 화랑의 원형)의 대스승
유위자가 단군조선 제12세 아한 단제께 올린 말씀입니다.
그는 제13세 흘달 단제와의 대화 중에
"성운이 중력적으로 붕괴되어 별이 생성된다"는 참으로 놀랄만한 이론을 전개하는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습니다(서울대학교 박창범 교수의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
'성간 구름의 진화론'은 1644년 데카르트가 주장한 바 있고
1871년 헬름홀츠가 원시별의 생성에 관한 가설을 내놓은 바가 있는 이론입니다.
참으로 놀랄 만한 식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대의 아프리카에 구석기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옛날에도 놀랄만한 과학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환단고기나 단군세기 단기고사가 위서라는 논쟁은 있지만
이런 정도의 과학지식을 동원한 위조사서는 고금을 통털어 있을 수 없습니다.
<단기고사>-그 처절한 전승과정.
'단기고사'가 전해지는 과정을 보면
㉠가림토문(단군시대 한글의 원형)으로 전해지던 것을
㉡발해문자로 기록하였고(대야발) ㉢한문으로 번역하여(황조복)
㉣필사과정을 거치면서 ㉤현대 한국어로 번역됩니다.
번역과정과 필사과정에서 일부의 오역이나 오전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단기고사에 '모화사상' '한문' '유학' 등의 글자가 나오는 것은
상응하는 가림토문이나 발해문자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나 독자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변형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전해진 것입니다.
한국의 일부 엉터리 사학자들은 단기고사의 이런 점들을 문제삼아
'위서' '참서' 운운하며 조상과 민족사를 모독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못된 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성서와 같은 위대한 문서도
물경 6번의 편집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른 것입니다(J문서 E문서 P문서 등).
그렇다고 해서 성서의 내용과 권위가 훼손된 사실이 있습니까?
<공자의 '서경'은 위서(僞書)>-사마천의 '사기'는 사기(詐欺).
민족사서 단기고사 환단고기 등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일부 편저자의 개성이
묻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전해지는 과정의 일부 오류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환단고기의 전면적인 개작(改作)이나 위작(僞作)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이에 비해 공자의 '서경'(상서)은 틀림없는 위서(僞書:거짓사서)입니다.
사마천의 '사기' 역시 틀림없는 '사기'(詐欺)입니다.
공자의 서경과 사마천의 사기는 전편에 걸쳐 우리 민족을 지칭할 때
'개'와 '짐승'의 뉘앙스를 풍기는 산융, 융적, 만이, 동호, 북적 등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배달국 단군조선의 국호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비하적(멸시적) 명칭인 '부족단위'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조작>-단 한 번 사용된 '조선'이란 국호.
저 간악한 공자와 사마천은 배달국 단군조선을 수 백 번이나
'개'와 '짐승'으로 호칭하더니 단 한 번 '조선'이란 국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자를 조선왕으로 봉했다"(封箕子於朝鮮) 라는 대목입니다.
단 한 번 공자(서경/상서)와 사마천(사기)의 역사조작에 이용된 조선이란 국호는
그들의 저서에서 다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조선'이란 국호 대신 다시 개와 짐승인 '산융' '북융'으로 돌아갑니다.
이래도 그들의 저서가 조작된 사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의 변명>-'중화주의' 역사관을 확립하며.
"공자가 '요전'(요임금)이상의 역사를 끊는 것에 대해 '무이웅씨'를 비롯한
당시 사람들이 '상고 기록이 있는데도 그것을 끊어버림은 부당하다'고 항의하자
공자는 그들(동이/조선)의 역사를 뺀 것은 기록을 잃어버린 때문이라고 회피하였다"
(武夷熊氏曰孔子定書斷自唐禹以下堯典是第一編書以前更有之字
孔子曰吾猶及史之厥文也今亡矣)▽중국 서전.
공자가 동이배달 한민족사를 왜곡하는 과정에서 '무이웅씨'(武夷熊氏:동이족)를
비롯한 당시 사람들이 항의하는 장면들입니다.
공자가 허수에 불과한 '중화주의'(中華主義) 역사학을 확립하는 과정을
잘 서술하고 있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공자가 세운 중화주의 사학은 중국사학의 기본 골격이 되어
동양의 고대사는 돌이킬 수 없는 왜곡과 거짓말로 덧칠되어 갑니다.
특히 한나라 무제는 동이족에 대한 '쌓이고 쌓인 원한'(후한서 권85) 때문에
당시 사관들을 급박합니다.
바로 이 때 사마천은 이릉을 변호하다 궁형(성기를 썩이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공자가 만든 중화주의 역사관은 한나라 무제와 사마천에 의해
철저한 왜곡과정을 거쳐 동양의 고대사는 상당부분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배달의 역사>-3황5제의 역사는 배달족의 역사.
공자가 숨기고자 했던 요임금 이전의 역사란 '3황5제'의 역사입니다.
지나의 3황5제 역사란 바로 '배달국'의 역사를 말합니다.
지나의 고대사는 배달국을 모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자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요임금 이전의 역사를 자기의 사서에서 지워버렸던 것입니다.
배달족의 명칭인 구환 구려 구이 사이 동이족들로부터 문화를 전수 받아온
서토족의 부끄러운 역사를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때의 공자의 심경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대목은
공자 사후 제자들이 공자의 어록을 모아 편집한 '논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공자는 '구이'(단군조선)의 나라에서 살고 싶었다"(子欲居九夷)▽'논어'
공자라면 죽고 못사는 '중화병'을 앓고 있는 한국인들이여!
그대들이 취해있는 중화독의 감염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지어다!
<배달의 후손>-태호복희, 염제신농, 황제헌원.
지나의 3황5제 중 1번째 3황은 '태호복희'인데
그는 배달국의 '우사' 직책을 맡고 있던 배달국 제5세 '태우의' 환웅의 아들입니다.
지나의 3황5제 중 2번째 3황은 '염제신농'인데
배달국 제8세 '안부련' 환웅이 '기산'(섬서성)으로 파견한 지방행정관 '소전'의 아들입니다.
지나의 3황5제 중 3번째 3황은 '황제헌원'인데
배달국 제8세 안부련 환웅 때의 지방행정관 '소전'의 또 다른 후손입니다.
지나의 5제 중 1번째 5제는 '소호금천'인데 동이배달족입니다.
지나의 5제 중 2번째 5제는 '전욱고양'인데 소호금천의 아들입니다.
지나의 5제 중 3번째 5제는 '제곡고신'인데 소호금천의 손자입니다.
지나의 5제 중 4번째 5제는 '요임금'인데 제곡고신의 아들입니다.
지나의 5제 중 5번째 5제는 '순임금'인데 단군조선의 신하 '유호'의 아들입니다
(순임금이 동이족임은 기록상으로 가장 많이 남아 있음)
이것들은 전부 지나의 정사인 '25사'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들입니다.
<'오∼메!' 복잡한 소리!>-강박적 소아병적 심리상태.
특히 중국사학의 태두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오∼메! 복잡한 소리!'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아유! 무신 말씀을 그 따위로 하신다요!' 하며 손사래를 칠 것입니다.
그 정도로 우리민족의 심리상태는 '난장이' '도토리'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강박적 소아병적 정서불안적 심리상태를 가진 것이
오늘날 우리 한국인들의 심리상태입니다.
이어녕 교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에 나오는 일본인의 체질과 같은
'왜소증' '노예근성' '사대근성' '광장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민족의 기질변화>-빨리발리! 대충대충! 안절부절!
한국인들은 무엇이나 빨리빨리 대충대충 하는 불안한 심리상태입니다.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깜짝깜짝 놀라는 병약한 심리상태입니다.
반역도당들의 황탄스런 역사조작으로 이 이 민족의 대륙성(가마솥) 기질이
해양성(냄비) 기질로 체질변화가 일어나 버린 까닭입니다.
그리하여 채우지 못한 욕구불만 때문에 남북으로 갈라서 싸우며
피 튀기는 '동네축구' '도토리 키재기' 나 일삼는 기질로 변해 버렸습니다.
동서로 분열해서 '꼬시래기 제 살 뜯기' '봉사 제 닭 잡아먹기'나 일삼는
기질로 변해 버렸습니다.
<나쁜 사병들(국민)은 없다>-나쁜 장교들(지도자)만 있을 뿐.
정신차려야 할 사람들은 정치 경제 각 분야의 지도자 그룹들입니다.
"나쁜 사병들(국민)은 없는 것입니다!"(가톨릭 레지오 마리애 교본)
"나쁜 장교들(지도자)만 있을 뿐입니다!"(가톨릭 레지오 마리애 교본)
한 명의 똑똑한 장교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한 명의 영웅(치우천왕/을지문덕)이 나라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한 명의 간웅(히틀러/스탈린)이 인류를 결딴내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장교'(지도자/지식인/교육자)의 위치는 중요한 것입니다.
<삼국유사는 보물>-환단고기는 위서.
삼국유사를 적은 일연 스님 같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조차
우리민족을 얼마나 무시했으면 단군왕검을 곰의 생물학적 후손이라 했겠습니까?
한반도를 강점한 왜인들이 51종 20만권의 사서를 불태우면서도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만은 불태우지 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 것입니다.
식민사학의 빌미를 준 최악의 역사서는 '삼국유사' '제왕운기'입니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고대사, 동양의 고대사, 세계사를 아우를 수 있는
가장 심오한 철학사상이 담겨 있는 '환단고기'는 위서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의로운 조선남아 남이장군>-그 뜨거운 구국혼.
백두산석마도진(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서 다 없애고
두만강파음마무(豆滿江波飮馬無) 두만강 물은 말의 물로 모두 다하리!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 남아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 후세인들이 누가 대장부라 하겠는가.
조선왕조의 의로운 남아 '남이' 장군이 남긴 감동적인 시입니다.
그 의로운 남아는 못다 핀 꽃 한송이로 청운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남아 20세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할 때의 '평平'(평정하다) 자를 '득得'(취득하다) 자로 변조한
정적들에게 몰려 죽임을 당했습니다(남아 이십에 나라를 '취득하지' 못하면)
참으로 한심한 죽음이요 개죽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륙수복의 꿈을 안고 썩어빠진 조선왕조를 구원하려 했던 젊은 지도자 한 분은
그렇게 허무하게 잘려 나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한문선생님으로부터 이 구절을 배웠을 때의
뜨거운 감동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날의 뜨거웠던 가슴이 오늘까지 깊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나라의 오도된 역사교육이 가져다 주는 슬픈 자화상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독립군의 연설>-나라 독립의 참다운 가치.
초등학교를 다닐 때 '독립군' 할아버지의 연설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독립군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던 감동적인 연설 또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분의 외치던 민족사랑의 함성은 지금도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독립운동의 현장을 생생한 기억으로 되살리며 피를 토하듯 열강을 하며
가끔씩 목이 메이던 그 독립군 할아버지의 기억을 결코 지울 수 없습니다.
어린 나의 가슴도 그 독립군 할아버지와 함께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그 기억이 다시금 새롭습니다.
나라의 독립은 그토록 중요한 가치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는 그 독립군 할아버지의 뜻을 배신하여 배달의 역사를
왜인들에게 팔아먹고 있고 배달의 혼을 중화족 왕서방들에게 저당 잡히고 말았습니다.
<자랑스런 조국>-실망스런 조국.
초등학교 때 나는 행복했습니다.
독립군 할아버지가 가슴속에 질러준 뜨거운 애국혼과
한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벅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반만년의 역사, 단군의 자손, 세종대왕, 이순신, 독립군,
이런 얘기들로 인해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음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감동 속에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때 배운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정말로 실망스런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초등학교 알았던 대한민국과는 영 딴판이었기 때문입니다.
독립군 할아버지가 내 가슴에 질러 놓았던 뜨거운 애국혼은
실망과 한숨으로 가득 차고 말았습니다.
<한국사의 주인공>-곰의 아들, 중국인, 중국인, 중국인.
알고 보니 우리나라 대한민국 '단군' 할아버지는 곰의 아들이었습니다.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기자조선'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기자는
서토에서 온 '중국사람'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나라는 '위만조선'인데 위만조선을 세운 사람도
서토의 '연나라'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위만조선도 중국의 '한나라'에 '식민지'가 되어
한사군이 설치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 때 느꼈던 실망감은 어린 가슴에 큰 상처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내 가슴에는 '애국애족'이라는 뭉클한 단어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한국인의 정체성>-노예의 후손, 약소민족의 운명!
우리 대한민국은 나쁜 나라 일본에 잠시 나라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못나고 불행한 운명을 가진 나라였던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고조선이라는 나라를 시작할 때부터 중국에서 임금을 빌려오고
나라의 초기부터 식민지에서 출발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중국은 위대한 나라이고 우리나라는 중국의 신탁통치를 받아야만 하는
왜소한 약소민족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우리조상이 싫어졌고 역사를 배우는 것도 진저리가 났습니다.
한국은 아무리 잘해 봐야 중국나라 노예의 후손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이나 잘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주권국가의 역사 교육>-패배주의! 열등의식!
나쁜 사람들! 천하에 몹쓸 사람들!
어떻게 이런 소름끼치는 '패배주의'를 교육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이런 '열등의식'을 자극하는 교육을 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이것이 어찌 일개 국가의 역사교과서가 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어찌 주권국가의 민족교육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쓰레기 같은 역사를 가르치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대한민국 외 또 어디 있겠습니까?
쓰레기도 쓰레기 나름의 자존심이 있는 법!
제 나라 시조 할아버지가 곰의 생물학적 후손이었다니!
비단장사 왕서방 한족들(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을
한국사 교과서의 첫머리에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다니!
<엉터리 중의 엉터리>-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역사교육.
이런 '엉터리' 교과서를 아직도 우리 학생들의 국사책, 지리부도, 참고서에 새겨서
민족의 에너지를 근원적으로 뽑아 없애고 있는 것입니다.
천하에 못된 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여! 지성인들이여! 주류지식인들이여!
이런 쓰레기 교과서가 21세기가 다가온 지금까지 수거되지 않고
아직도 통용되고 있다니 과연 이 나라의 미래는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수 십년전 중학생 때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나라사랑에 환멸을 느꼈던
그 교과서가 아직도 우리 아이들의 교과서 참고서 지리부도 에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니!
이런 망국적이고 매국적이고 황탄스런 역사교육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패배주의 총독부 교과서>-중화주의 마약교과서.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패배주의 총독부교과서와
중화주의 마약교과서를 '복제양' '돌리'처럼 다시 복제하여 사용한단 말입니까?
최근 나는 이 사실을 우리 아이들의 역사교과서를 보고
너무도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것입니다.
47분의 단군과 2096년의 역사를 세운 단군조선 제1세 왕검단군을
아직도 '곰의 아들'이라 하였고 중국인들이 세운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이
여전히 우리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골탑 이야기>-못난 아버지와 잘난 아들.
존경하올 나의 가친께서 들려주던 얘기가 생각납니다.
옛날에 상아탑(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했습니다.
시골에서 자녀의 대학을 시키려면 소를 몇 마리나 팔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골 농부는 뭇된 표현으로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 자식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놓고 허리가 굽도록 뒷받침을 하였습니다.
그는 자식이 보고 싶어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로 갔습니다.
아들은 늙고 보잘것없는 아버지의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 아버지를 소개할 때 자기 집 허드렛일을 돌보는
하인이라고 소개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비유적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우골탑 이야기의 결론>-역사학자, 지도자, 지식인.
한국의 역사학자들 그리고 일부의 민족지도자들이 바로 이 꼴입니다.
치우천왕 을지문덕 연개소문 강감찬 이순신 김구 논개 유관순 김좌진 홍범도
이런 사람들이 몸바쳐서 나라를 찾아 주었더니
민족의 족보학을 관리한다는 사람들이 1000년 전부터 사용해왔던
중화주의 마약교과서와 조선총독부 노예교과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들은 47분의 단군과 2096년의 대제국을 세운
인류사상 가장 위대한 제왕 중의 한 분인 단군왕검마저
'곰의 아들'로 격하시켜버리는 역사적 패륜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파렴치한의 나라>-난장이, 도토리, 사팔뜨기.
이런 '파렴치한'(破廉恥漢)들이 나라의 족보를 관리하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인 것입니다.
이런 '매국노'들을 감독하지 못하는 것이 이 나라의 지도자들입니다.
한국의 '난장이' '도토리' '사팔뜨기'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이나 조장하여
'나라 팔아 내몫 챙기기' 전략이나 구사할 줄 알았지 이와 같이
'거국적' '거족적' '민족적' 사명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황해도 구월산에 '삼성사'(환인 환웅 치우 또는 단군왕검)가 있었고
역대제왕들이 여기서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엄연히 실려 있습니다.
<일본의 환단신사>-국사당과 삼성사의 파괴.
일본에는 지금도 '환단신사'(桓檀神社)라는 신사가 그대로 존재합니다.
종주국인 한국은 부끄러움도 모르고 단군상의 목을 자르고 있습니다.
단군조선이 신화가 아니라 실체의 국가였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일제는 이 나라를 강점하고 남산의 '국사당' 황해도 구월산의 '삼성사' 등을 비롯한
모든 단군관련 사적을 없애고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을 동원하여
단군조선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화'라는 사실을 주입하였습니다.
왜인들은 삼국유사 제왕운기를 철저히 식민사학에 이용했던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너무 쉽게 너무 멍청하게 세뇌 당하고 말았습니다.
<1945년 이후의 역사교육>-조선시대보다 후퇴.
해방공간에서 역사교육의 실상은 조선왕조보다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조선시대 때까지만 해도 국가적으로 모셔졌던 '국사당'도 없어졌고
'삼성사'도 없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삼성(三聖) 중의 한 분인 단군왕검은 '곰의 자식'으로 전락되어
일부의 기독교인들에 의해 우상숭배의 표적이 되어
단군동상의 목이 동강나고 있는 판국입니다.
그분은 '능지처참'(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보다 더한 형벌인
'부관참시'(시체를 꺼내 목을 치는 형벌)를 당하고 있습니다.
단군 동상의 목이 지금도 잘려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패륜의 나라>-조상을 '능지처참' '부관참시' 하다니!
이런 '패륜'(悖倫)의 나라가 어떻게 해서 올림픽을 유치하고
국민소득이 1만불이나 되고 세계무역 12위의 나라가 되었습니까?
잘못된 역사교육의 폐해가 이처럼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를 포함한 이 나라 지식인 그룹들은
그 어떤 분노의 함성하나 내지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나라 지식인들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나약한 책상물림들입니다.
<직신과 영신>-이치를 굽히느냐! 지키느냐!
"이치를 지켜 굽히지 않는 자는 '직신'(直臣)이라 하옵고
위세를 두려워하여 굽혀 복종하는 자는 '영신'( 臣)이라 하옵니다"▽단군세기.
BC 1115년 단군조선 제25세 솔나 단제에게 올린 홍운성의 말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를 망하게 하고 일신의 영달과
가문의 영화만을 꾀하는 문약한 기회주의자들!
그들은 보리바구니를 노리는 생쥐들처럼 한 줌도 되지 않는 권력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해바라기들일 뿐입니다.
선비적 기개와 사림적 자존심도 없는 망령된 영신들일 뿐입니다.
나약한 책상물림들인 이 나라 지식인 그룹들은 이 나라 국민들을
황폐한 정신의 죽음으로 내모는 망령된 '영신'들일 뿐입니다.
각 부문에서 종사하는 지식인 그룹들과 지도자 그룹들이시여!
망령된 영신들이 더 이상 이 나라를 지배할 수 없게 해야 합니다.
배달나라의 영광을 되찾을 직신이 이 나라를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민족성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곰나라에 무슨 미련.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여! 지성인들이여! 주류지식인들이여!
'패배주의' 총독부교과서는 민족사에 대한 범죄행위입니다.
'식민주의' 노예교과서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조상모독죄입니다.
'중화주의' 사대교과서는 민족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있습니다.
해외로 나간 한국인들이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곧 바로 동화되어 버리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대한민국에는 민족의 정체성을 찾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곰나라, 식민의 나라, 패배의 나라에 무슨 사랑이 있겠습니까?
열등의식만이 머리를 짓누르는 이 나라에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잡고기, 참새, 마당쇠>-'패배의식'을 품은 사람.
배달나라 후손들을 오리새끼라고 가르쳐 왜 스스로 무덤을 파십니까?
어찌하여 곰의 아들이라 가르쳐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입니까?
잡고기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도도히 흐르는 강물의 깊이를!
참새가 어찌 알겠습니까? 봉황의 뜻을!
마당쇠가 어찌 알겠습니까? 주인의 뜻을!
마음속에 '이상'과 '꿈'을 품은 사람과 마음속에 '패배의식'을 품은 사람은
인간이 다르고, 인격이 다르고, 인생이 다릅니다.
인생의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그 인생의 결과도 다른 것입니다.
역사학자들과 주류지식인들은 이점을 잊고 있습니다.
그들 자신이 '잡고기들'이요 '참새들'이요 '마당쇠들'이기 때문입니다.
후손들에게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 72세 6962년의 역사를 가르치지 못한다면
우리민족은 영원히 잡고기, 참새, 마당쇠가 되고 말 것입니다.
<'갈매기'와 '미운오리'>-'대갈매기'와 '백조'에 대한 꿈.
우리를 '난장이' '도토리'로 만들어 놓은 이 땅의 역사가들이여!
어찌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을 그토록 핍박하는 것입니까?
어찌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의 역사교육을 이토록 망쳐놓는 것입니까?
어찌하여 식민지의 후손이라 스스로 딱지를 붙여 민족의 에너지를
근원적으로 뽑아버리는 매국적 역사교육을 서슴치 않는 것입니까?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은 그의 가슴에 새겨진
'대(大)갈매기'의 모상이 있었기에 갈매기의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안데르센 동화집'에 나오는 미운 오리 새끼는 자신이 백조의 후손임을 깨닫는
그 순간 창공을 향해 거대한 날개짓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왕대밭에 왕대 나는 법>-쑥대밭에 쑥대 나는 법.
김부식 선생이나 일연 스님이 '환단고기'와 같은 사료를 가지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썼더라면 이 나라 역사와 동양사의 판도는
완전히 바뀌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백조의 인생관과 오리의 인생관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백조의 역사관과 오리의 역사관이 어떻게 같은 수가 있겠습니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입니다.
왕대밭에 왕대 나고 쑥대밭에 쑥대 나는 법입니다.
노예교육을 받아온 사람은 또 다른 노예만을 후손으로 남길 뿐입니다.
곰의 후손들은 또 다시 미련한 곰의 후손만을 생산할 뿐입니다.
결단코 이 모순된 역사의 고리는 끊어져야 합니다.
<곰 후손들의 패륜>-패륜의 책임은 국가에!
단군 동상의 목이 잘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곰 교육을 받은 곰의 후손들에게는 곰의 흉상이 필요한 것이지
단군의 동상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광신자들이 단군 동상의 목을 자른 것은 엄청난 잘못입니다.
그들의 행위는 참으로 잘못된 역사파괴 행위입니다.
그러나 보다 구조적인 잘못은 역사학자들과 국가에 있는 것입니다.
시조단군을 '곰'이라 가르친 것이 근본문제입니다.
이제는 '곰타령' 교과서 '총독부' 교과서는 끝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후세인의 동상이 바그다드에서 끌려내려 오듯 우리 교과서에서도
'난장이' '도토리'들이 조작한 거짓역사는 끌려내려 와야 합니다.
"마을 밖 '변한'이라는 곳에
홀로 뛰어난 돌 하나 있었네.
받침은 깨지고 철쭉만 붉었는데
글자는 보이지 않고 이끼만 푸르구나
다듬어져 처음 생겼을 때 그대로
흥망의 황혼에 우뚝 서 있으니
글에 보이는 증거는 없지만
이 어찌 단군의 자취가 아니겠는가?"
<창해역사 여홍성의 '단군비문송'>-창해는 발해만.
'박랑사'(하남성 박랑현)에서 한나라 사람 장량(장자방)과 함께
'진시왕'을 습격해 실패하여 부차만을 박살내었던 창해(蒼海:하북성 창해)의 조선인
'여홍성'이 남긴 장엄한 '단군비문송'입니다.
BC 221년 대륙을 통일한 진시황은 대륙의 동이 배달족들을 박해하여
유랑의 길로 내몬 장본인입니다.
창해역사 여홍성은 이런 진시황을 응징했던 것입니다.
'창해'는 오늘날의 발해만에 있었던 단군조선의 지명입니다(후한서 85)
지나의 고대지도 '화이도' '우적도' '지리도' 등 모든 고지도에는 그렇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얼빠진 한국인들은 우리조상들이 '번(발)조선'의 땅이라고 해서
'발해' 라고 이름 붙여 놓은 이 '발해'를 '보하이'라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정말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창해의 가림토문 단군비석>-발해는 단군조선의 강역.
창해역사 여홍성은 BC 1833년 단군조선 제12세 아한 단군이 남긴
'가림토문' 비석을 보고 이런 시를 남긴 것입니다.
바로 이 시대에 활동한 지식인이 '국자랑'의 대스승 '유위자'였습니다.
단군세기에는 이 비석을 세우게 된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후한서는 한나라가 BC 128년 단군조선의 제후국 '예국'의 남려라는
배신자를 회유하여 '창해'(발해만)를 점령하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자 연(하북성) 제(산동성) 지역에서 조선인들이
집단적 저항이 일어났다고 한서 '후한서'는 똑똑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해만을 끼고 있는 이 지역이 우리민족의 강역이었다는 증거입니다.
훗날 고구려는 이 땅을 건너 당나라의 장안을 점령(환단고기)하고
제·노·오·월의 땅을 차지(삼국사기)하였던 것입니다.
<발해는 '번조선'의 음값>-발해를 '보하이'라 하다니!
"제나라 환공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신하들에게 묻자 재상인
'관자'가 대답하였다.…조선(단군조선)에는 문피와 피복 등을 청하면서
그 댓가를 주는 조건으로 회유함이 어떠 하오리이까?…
또한 호랑이 가죽에 대한 댓가로 값을 후하게 쳐준 연후라야
8000리 강토의 '발조선'(번조선:단군조선의 제후국)과 화친할 수 있을 것입니다"
(…豹之皮容金而金也然後八千里之發朝鮮可得而朝也)▽중국 '관자'
BC 8세기 부국강병과 패도정치를 주장했던 제나라 관자의 '발조선'(번조선)과
단군조선에 대한 증언입니다(관자는 관포지교로 유명).
'발해'를 '보하이'라 적는 것은 우리역사의 일부를 잘라내는 일입니다.
'발'이란 단군조선시대에는 단군조선의 제후국 번조선의 '번'이란 뜻을
한자로 취음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번조선 즉 '번한'의 명문 발견).
'발'이란 '밝다'는 '밝'의 음값을 차용한 순수한 우리말인 것입니다.
이처럼 발해는 우리민족이 지은 이름이요 한민족의 바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륙에 있는 모든 지명은 한국식 발음으로 읽고 표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을 국수주의라 몰아 부치면 큰일납니다.
만주와 대륙의 동편지명은 우리민족이 붙인 한국어의 보고입니다.
언론인들을 비롯한 역사학자들은 이제 마약환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의 탄식>-봉황성 평양과 요동성 평양.
"우리나라 선비들은 '기자'가 평양에 도읍 했다면 지금의 평양에 도읍 했다고 믿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만주의 '봉황성'이 평양이었다면 크게 놀랄 것이다.
더구나 만주의 '요동땅'에 또다른 평양이 있었다고 하면 해괴망측한 소리라고 꾸짖을 것이다. 이것은 요동 숙신 예맥이 모두 조선에 소속된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후세 사람들은 이러한 경계를 밝힐 생각도 않고 청천강이나 대동강을 '패수'라고 한다.
조선의 땅덩어리는 싸움 한 번 하지않고 저절로 줄어들게 되었다"▽열하일기.
<소중화(小中華:작은 중국)>-'뻬이징' '따렌' '옌벤' '환런'
열하일기는 박지원 선생이 만주와 북경 등을 직접 방문하여 현장을 보고 적은
생생한 현장 얘기입니다.
그는 북경을 방문하여 단군조선의 제후국 고죽국의 '백이숙제' 사당에 들르기도 합니다.
매국사학자들은 백이숙제의 수양산이 황해도에 있다고 호들갑을 떨던었는데
백이숙제의 사당이 북경지방에 있었던 것입니다.
북경이 단군조선의 제후국 '고죽국'의 거점이었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어리석은 한국인들은 북경 대련 심양을 '뻬이징' '따렌' '센양'이라 적고 발음하여
'소중화'(작은 중국)를 아예 기정사실화하고 있습니다.
또 1965년 공식적으로 우리땅으로 돌아온 '연변'마저 '옌벤'이라 함으로써
민족사를 회복불능으로 동강내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요녕성 '환인'을 '환런'이라 발음하는 미치광이 짓을 합니다.
멍청한 한국인들은 이런 비판자들을 '국수주의자'라 몰아 부칩니다.
그런 사람들이 제법 지식인 것 같지만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휑 빈 '엉터리' '깡통'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똥과 된장을 구분하지 못하는 '가짜들'이라는 것이 금방 들통납니다.
그들은 지나인들이 고구려사를 갈취해 가는 것이
환국/배달국/단군조선 등 한국사 모두를 가져가는 것 인줄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의 직무유기>-선비란 조선의 비왕!
BC 2707년에 있었던 탁록전은 범동양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교과서에서는 이 역사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최근 배달국 제14세 환웅 치우가 우리역사로 편입되지 않자
지나에서는 치우의 역사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역사학자들의 직무유기가 얼마나 범죄적 수준인지 드러난 사례입니다.
'사료'가 없다 '전거'가 없다는 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지나의 사서에서 다루고 있는 역사의 반대편은 동이족의 역사입니다.
예를 들어 지나의 25사인 '삼국지'와 '진서'를 읽어보면 삼한삼국은
분명히 대륙국임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책의 이삭만 주어도 중화주의 마약교과서는 면할 수 있습니다.
'소중화'(小中華) '아류'(亞流)의 망령된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대사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옛날 대륙에는 중화족 외에는 나라가 없었고 주변의 조선족을 비롯한 미개 부족들만 있었다고 합니다.
동양사에 대한 모독이고 민족사에 대한 범죄행위일 뿐입니다.
순수한족이 대륙을 다스린 것은 '한나라' '송나라' '명나라' 뿐입니다.
'수나라' '당나라'조차도 조선족의 일파인 '선비족'이 세운 국가입니다.
'선비'(鮮卑)란 말조차 '조선'(朝鮮)의 '비왕'(卑王)이란 뜻입니다.
<개천(開天)의 주인공>-배달국 제1세 거발환 한웅.
이 얼빠진 나라는 자기 나라의 '국조'(國祖)도 바꾸어 버렸습니다.
BC 3898년 배달국 제1세 '거발환' 환웅천왕이 우리의 국조임에도 불구하고
1565년 뒤에 배달국으로부터 나라를 물려받은 BC 2333년 단군조선의 제1세 '왕검단군'이
우리의 국조라고 바꾸어 버렸습니다.
'개천'(開天)의 주인공을 왕검단군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소중화'(작은 중국)의 행진에 발맞추기 위해 저지른 반역행위입니다.
'중국님'보다 빠른 역사를 가진다는 것은 불경스런(?) 일이었습니다.
조선왕조는 아예 18세 1565년의 배달국 역사를 없애버렸습니다.
<대시전(大始殿)>-고구려 가요에 나타난 배달국과 환웅.
단군조선 2096년 동안 만들어진 가사들인 '어아가' '서효사' '도리가' 등은
모두 '배달국'을 찬양하는 가사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BC 1891년 11세 단군 도해는 '왕검단군'의 사당을 짓기 전에
배달국 제1세 '거발환' 환웅의 사당을 <대시전>이란 이름으로 지어 바칩니다.
BC 3898년의 배달국이 우리의 모국이요
배달국 제1세 '거발환' 환웅이 우리의 국조임을 증명해주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오호 어리석은 한나라 어린애들아
요동(평양성)을 향하지 마라 개죽음을 부른다
문무(文武) 고루 갖춘 우리 선조
'환웅'이라 불렀으니
자손들은 이어져서 영웅호걸도 많단다
주몽, 태조(태조대왕), 광개토님
위세는 세상에 울려 더할 나위 없고
유유, 일인, 양만춘님
나라 위해 스스로 몸 바꿔서 사라졌다
세상 문명은 우리가 가장 오래니
오랑캐 왜구 다 물리치고 평화를 지켰다
유철(한무제), 양광(수양제), 이세민(당태종)도
보기만 해도 무너져서 망아지처럼 도망갔다
영락기공비(광개토 대제의 비)는 1천척
만가지 깃발이 한 색으로 태백산은 높단다"
▽태백일사 고구려본기.
이 고구려 가요의 개국조도 역시 배달국 환웅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구려가 그처럼 강성할 수 있었던 요인이 바로 이 노래 한 곡에 모두 농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도 강렬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나라(중국)>-문명적 물리적으로 한 수 아래.
이 노래는 ㉠요동 땅이 고구려의 본거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평양성이 요동땅에 있었음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국이 단군조선을 넘어 배달국(환웅)이며 환웅이 우리의 국조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세상문명은 우리(환국/배달국/단군조선)가 중국에 비해 더 오래되었다고 말함으로써
'환단고기'의 역사기록이 사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철(한무제)이 망아지처럼 도망했다' 라고 노래함으로써 위만조선 외
북부여단군조선이 실재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북부여기).
<뜻 있는 자의 원한>-만주수복의 기회를 놓치는 고려왕조.
"윤3월 북원 '요양성'의 평장사 유익과 왕우승은 '요양'이 본래 고려의 땅이라는 뜻에서
고려에 투항하려고 사람을 보내 이를 청하였다.
이때의 고려의 의견은 통일되지 못하였고 국사는 다난했다.
임금은 정몽주를 명나라에 파견하여 촉지방을 평정함을 축하하도록 하였다.
요양성의 평장사 유익 등은 마침내 서만주에 있던
금주, 복주, 개평, 해성, 요양 등지를 가지고 명나라에 투항하였다"▽태백일사.
이 글을 전한 태백일사의 저자 이맥 선생은 이렇게 탄식하였습니다.
"오호! 청론(淸論)을 떠드는 자들의 무기력함이여!
스스로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마침내 옛 강토를 회수하지 못하였고나!
뜻있는 자의 원한 이렇게 깊은 것을!(志士之恨於斯爲深矣)"
호박이 넝쿨째 굴러왔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소중화(작은 중국)에 정신이 팔려있는 고려조정의 한심한 모습입니다.
우리 역사가 이렇게 망가진 것은 백제를 점령한 설인귀나,
고구려를 점령한 이세적이나, 일제가 저지른 분서에 1차원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왕조가 저지른 환국 3301년 '배달국' 1565년
단군조선 2096년의 역사 말살정책이 더 큰 원인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한국의 헛똑똑이 지식인>-구제될 수 없는 나병 환자.
"구제될 수 없는 나병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가톨릭 레지오 교본)
한국의 헛똑똑이 지식인들은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의 역사와 인물은 몰라도
서토사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해서는
껍데기까지 인물까지 연대까지 외워가면서 학문적 우월성을 과시합니다.
한국의 서양병 환자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는 줄줄이 외면서도
불후의 명작 단군세기를 비롯한 민족사서는 한 귀절도 인용할 줄 모릅니다.
<민족사를 파괴하는 조선왕조>-천인공노할 역사테러!
"세조(1455∼1468) 3년 '고조선비사' '대변설' '조대기' '지공기' '표훈삼성밀기'
'삼성비기' '삼성기' '도증기' '동천록' '통천록' '지화록' 등의 문서를
사사로운 곳에 두는 것은 마땅치 않으니 이를 보관하고 있는 자는
허락 하에 바쳐 올리도록 널리 공사가 및 사찰에 알리도록 하라"▽조선세조실록
"(1469년 9월)상기 '고대서적'을 집안에 간직하고 있는 자는 10월 그믐까지
승정원과 고을에 바치게 하라. 바친 자는 두 계급을 올려 주고
바치지 않는 자는 고발할 것이다.
고발한 자는 위의 조항에 의거해 상을 주고 숨긴 자는 '참형'에 처할 것이니
속히 안팎에 알리도록 하라"▽조선예종실록.
역사서적을 권장하기는커녕 소지한 사람조차 '참형'에 처하겠다니!
이것이 언론공화국 조선왕조의 역사테러의 진상입니다.
이렇게 하여 환국 3301년 배달국 18세 1565년 단군조선 47세 2096년의 역사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던 것입니다.
바보들의 행진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한국의 역사가들은 지나의 사가들이 엉터리로 적어 놓은 역사만을 믿고
정작 자신들이 '중화독'의 깊은 마술에 빠져 있는 줄을 모릅니다.
<태백일사>-'사문난적'과 '역사테러'를 피해 지하로 숨다.
"내가 국가 문서를 다루는 서운관의 찬수관으로 뽑혔기 때문에
내각의 여러 비밀 서적들을 얻을 수 있어 이를 열심히 읽고,
앞의 원고와 곁들여 편차하고 이름지어 '태백일사'라 하였다.
그렇지만 감히 세상에 내지 못하고 비장하였다. 때문에 이 글들은
문밖에 나서지 못했던 글들이다"▽'태백일사' 발문.
민족최대의 선물 태백일사를 남긴 이맥 선생의 태백일사 발문입니다.
세계적인 역사서 태백일사를 저술해 놓고 뻑적지근한 출판기념회는 못할망정
죄인처럼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문난적'이란 칼날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비통한 일이 어디 있을 수 있습니까?
이것이 조선시대의 현실이요 조선시대가 가지고 있었던 역사인식의 바탕입니다.
도대체 제나라 족보학인 역사학을 숨어서 공부해야 하고 숨어서 역사를 전해야 하다니!
조선왕조는 역성혁명을 정당화하고 잃어버린 대륙영토의 원죄를
영원히 덮고 싶었기 때문에 고대사를 무조건 숨겨야 했던 것입니다.
조선왕조의 천추에 씻지 못할 범죄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는 것입니다.
<테러 뒤의 진실>-삼한 삼국은 어디에 있었는가?
우리가 조선왕조의 역사테러 진상을 분명히 밝히려는 이유는 여기에
우리나라 역사의 비밀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고려는 대륙의 나라였던가?
그 비밀의 열쇠는 조선왕조가 쥐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고려는
대륙에 나라의 주요 기반을 둔 국가임이 확정적입니다.
한반도의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는 이들 나라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삼국사기는 가장 과학적인 사서>-일식실현율 80%.
이 나라 사학자들은 삼국사기가 위서임을 강조하는 왜인학자들의 의견을
신주단지 모시듯 존중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가 위서임을 강조하는 왜인사학자들의 불순한 의도를
조금도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천문학자 서울대학교 박창범 교수가 밝힌 바에 의하면
'삼국사기'는 지나의 '25사'와 일본의 '일본서기' 등과 비교했을 때
천문학적 신빙성이 최고로 높은 정밀한 사서였습니다.
일본의 사서에 기록된 천문학적 기록의 사실성을 검정한 결과
35%대 정도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지나의 25사를 기준으로 일식실현율을 조사한 결과 60%대였습니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80%대의 일식실현율이 조사되었던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박창범 교수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천문학자입니다.
그분의 연구보고서는 그 자체가 하나의 권위이기 때문에 의심할 수 없는
역사기록과 같은 것입니다.
<삼국사기는 공동저술서>-고려는 당대 최고의 문명국.
서울대학교 박창범 교수에 의해서 삼국사기가
얼마나 치밀하게 기록된 사서인지가 증명된 것입니다.
고려사에는 삼국사기가 당시의 고려석학 11명에 의해 공동으로 저술된
책임을 분명히 적고 있습니다.
김부식 선생은 집현전감수국장으로서 지금으로 말하면
국사편찬위원장의 자리에 앉아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삼국사기 공동저자 최산보 허홍재 등은 당시 고려의 최고 엘리트들이었습니다.
후에 그들이 가진 직책과 벼슬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고려는 당시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주조할 정도로 당시 동양뿐만 아니라
세계최고의 문화대국이었습니다.
<삼국사기에 대한 트집>-왜인들의 정략적 트집.
고려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나약한 그런 반도소국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 세계최고의 문화국에서 저술된 것이 삼국사기인 것입니다.
이런 삼국사기를 왜인들은 계속해서 위서 운운하였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너무도 간단합니다.
왜인들이 삼국사기를 연구해본 결과 삼한삼국의 존재위치가 대륙이었음이
확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철저히 감추기 위해
괜시리 삼국사기가 위서라고 트집을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선왜인들'은 그것도 모르고 삼국사기의 기록 중 일본서기나
지나의 25사에서 언급되고 있는 시기만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조선왜인들이란 표현은 '한민족의 뿌?/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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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다음 신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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