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에 살다보면 좋은 점도 많지만 오래된 집이라 곤란한 일도 종종 있게 마련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고양이가 안방 천정에 들어와서 새끼까지 낳아서 신경이 많이 쓰이고 불안하기도 했다. 쫓아낼 방법도 없어서 고작해야 천정을 두드리는 수밖에 없다. 나중에는 아무리 두드려도 오불관언이다. 별 뾰족한 수가 없던 차에 아들이 사자의 포효하는 소리를 다운 받아서 스피커로 확대 하여 천정을 두드리면서 한참을 틀어 댔더니 고양이들이 난리가 났다. 후다닥 소리와 함께 조용해진 것이다. 시원해서 좋아하던 것도 잠시, 새끼들이 문제였다. 제 어미를 잃고 가녀리게 울어대는데 만약 어미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꼼짝없이 굶어 죽을 판이다.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된 셈이다. 어찌할 거나. 고양이는 사자 굴로만 알고 있을 터인데 다시 돌아오겠는가 싶은 게 여간 고민이 아니다. 그러던 중에 다시 고양이가 천정에 들어와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새끼를 물고는 사라진 것이다.
어미 입장에선 사자 굴에 목숨을 걸고 들어와서 새끼를 구해 나간 것이다.
생각을 해 보니 참 감동이다. 어미 고양이는 얼마나 두렵고 또 갈등을 했을까. 그런데도 새끼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모든 두려움을 무릅쓰게 한 것이 아닌가.
지난 2월 말경 아직은 추위가 매서운 날 저녁에 일신여고 앞 시내버스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한 여고생이 책가방을 멘 채로 서서 사발면을 먹는 것을 본 일이 있다. 학교에서 보충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학원으로 가야 하는데 밥 먹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바라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측은해 보이던지. 무엇이 우리 학생들이 밥 한 끼 맘 편히 먹을 수 없게 만들었을까. 높으신 분들은 입만 열면 교육을 걱정하고 아이들을 생각한다는 말을 참 잘도 하던데.
말들은 많지만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일들은 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비롯해서 정치인, 교육관료, 교사와 학부모들까지도 아이들의 고통에는 관심이 적다. 그것은 절박함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살아간다는 되도 않는 생각이 지배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미 고양이 만큼만의 절박함이라도 있다면 우리 아이들을 저렇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구체적으로 고민을 하고 실제로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 주는 일에 적극 나설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첫댓글 시골 고구마밭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멧돼지의 피해를 막는 가장 지혜로운 퇴치법은 전기울타리도, 엽총도 아닌 호랑이 똥이라지요. 사자의 포효소리로 고양이를 퇴치할 생각을 해낸 오방님 아드님의 지혜에 탄복하면서... 가만히 보니 부전자전이시군요. 새끼를 구하려고 사자소굴로 다시 뛰어든 어미 고양이의 용기를 보아내는 눈도 보통은 아니시니... ^^ (역시나, 울 발전소의 정책위원장님 답지 않으신가효? 훃훃훃 ^0^ )
이제 좀 몸은 나아지셨나 보오. 반갑구려 대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