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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시인을 만나다|시집 리뷰
풍요로운 서정성과 현실의식
김용락(시인)
1.
강시현 시인을 생각하면 조선시대 ‘선비’가 먼저 떠오른다. 21세기 A.I시대에 무슨 복고풍이냐 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강 시인의 단정하고 매사 예의범절이 반듯한, 그러면서도 강직한 이미지가 천생 조선시대의 선비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선비 하면 예로부터 지조, 강직, 청련, 검박하면서 학문에 진심을 다하는,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지식인 이미지와 겹친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인데, 내가 보아온 강시현 시인의 이미지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강 시인에 대해 이런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내가 수년 전 대구경북작가회의 대표일 때 신입회원으로 가입해 지금까지 여러 해 만나오면서 요즘 사람 같지 않은 그런 인성과 기품을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기 그는 고향이 경북 선산으로 중학교까지는 고향에서 보내고 대구로 유학 와서 고등학교와 경북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시인에게는 보기 드문 대학 전공을 갖고 ‘불의 시대’ 80년대를 거쳐 왔다.
선산은 조선 성리학의 발원지에 해당한다. 여말선초의 야은 길재에서부터 점필재 김종직, 김굉필, 김일손, 정여창 등으로 이어진 영남 사림파의 학맥은 조선 초기의 한국사상사의 한 맥을 장식한 바 있다. 그 발원지가 바로 경상북도 선산이다. 그래서 일찍이 ‘조선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절반은 일선一善에 있다.’(조선 전기)거나 안동 예안 출신의 퇴계 이황(1501~1570)의 등장 이후에는 ‘조선 인재 절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절반이 안동安東에 있다.’(조선 후기)는 말이 횡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 ‘일선’은 경북 ‘선산’善山으로 1995년 1월 1일자로 경북 구미시로 통합되었다. 그 선산이 강시현 시인의 고향이다. 대구·경북지역 사람들은 선산이라는 지명에 대해 묘한 향수 같은 걸 갖고 있다. 지금은 없어져서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이때 사회는 시간과 공간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인간은 그 당대의 시간과 공간이 주는 영향력과 제약에 따라 정체성이 형성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시간, 즉 시대 개념은 변화무쌍하고 활력이 넘쳐 인간의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지만 상대적으로 공간의 개념은 별 변화가 없는, 다시 말해 지금까지는 죽은 공간 같은 개념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면서 공간의 중요성이 적극 부각 되었다. 인간은 그 시간적 배경 못지않게 공간적 배경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주의 지리학’ ‘공간정치 경제학’이다. 기존 물리적, 기하학적 공간개념에 기초한 것이 실증적 지리학인데 비해 공간이 주는 배경이나 철학적 영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본주의적 상품, 노동관계 영향을 중시하는 게 인간주의 지리학과 공간정치 경제학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한 유년의 고향은 그 사람의 정신의 기본적인 틀을 형성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촌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낸 사람과 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한 사람의 기본 정신적 멘탈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건 내가 나이 들어갈수록 더 크게 느끼는 어떤 경향이다. 가령 나의 경우, 안동문화권인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안동시에서 졸업한 후 지금까지 쭉 대구에서 살고 있는데, 실리보다는 명분에 집착하고 장유유서와 같은 위계의식, 남을 가르치려고 드는 꼰대정신 같은 유교적 잔재가 환갑을 지난 지금까지도 내 의식과 내면의 잔재로 남아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대학을 대구에서 졸업하고 40년을 쭉 대구에 살아오면서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획일화된 대구 특유의 어떤 분위기가 그에 순응하든 혹은 그에 저항하든 나를 어떤 폐쇄된 정신이나 행동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폭넓게 개방되고 자유로운 정신을 갖기보다 저항하고 정신을 극단으로 몰고 가면서 살았다는 자각 같은 게 최근에 많이 생긴다. 최근 서울에서 4년을 살고 난 후에는 이런 생각이 더 커졌다.
이런 의미로 강시현 시인에게 선산이라는 공간이 유·무형으로 그의 시 정신에 끼쳐온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가 태어나서 성장하면서 형성한 어떤 정신적 분위기, 부모님이 고향에서 생업에 종사하면서 체득한 풍속이나 전통정신이 강 시인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단순히 환경결정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강시현 시인은 경북대 재학 때 ‘복현문우반’이라는 문학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줄여서 ‘복문’이라고 부르는 이 대학 동아리는 8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시인인 배창환 시인과 정대호 시인을 비롯해 주목할 만한 많은 문인들을 배출했다. 그리고 경북대 정치외교학과에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 시민수석을 지낸 민주화운동가 이강철 선생을 비롯한 많은 민주주의자를 배출했다. 이런 주변 환경이 같은 공간을 공유했던 그의 문학에 과연 어떻게 스며들었고, 그의 내면적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의 작품에 드러날 것이다. 이제 그의 작품을 보자.
2.
강시현의 두 번째 시집 『대서 즈음』 원고를 읽고 좀 놀랐다. 밖으로 과묵하고 말이 없는 모습에 비해 시는 다변多辯이었다. 평소 강 시인의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 단아하고 절제된 데 비해 내면의 시적 에너지는 혼돈스럽고 뜨겁게 끓어 넘치듯 강렬했다. 이런 마음의 상태가 시로 고스란히 문면화 돼 있다. 어떻게 보면 잘 정제된 외양이 격렬한 혼돈의 내면을 불러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현상은 앞서 이야기 한 바 있지만 선산善山이라는 성리학의 도시가 무형으로 주는 예의범절과 외부의 그것에 억압받은 문학적 내면이 서로 다른 양태를 빚어낸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농사로 치자면 넓고 비옥한 대지에 여러 종류의 곡식이 제각기의 모습과 빛깔로 풍성하게 자라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활기차고 다양한 언어의 향연이 독자들의 입맛을 유혹했다. 이건 이 시집의 긍정적인 측면이다. 다른 면에서 보면 품종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필요한 곡식만 생산하는 게 아니라 많은 작물이 혼종 돼 있어서 이 문학적 대지의 주 재배 곡물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힘들게 했다. 이건 장점이자 단점일 수도 있겠다. 다양함은 장점이지만, 시집의 브랜드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을 듯하다.
70년대, 한때
경주로 부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면
니들 어데서 왔노?
고아국민학교요! 하면
고아원에서 온 줄 알고 초콜릿이며 사탕을 쥐어주던,
지상의 거대한 바퀴 굴러
내 사람이 처음 나서 맨 나중에 묻힌 곳
동무들이 약초처럼 늙어서 나부끼는 산마을 강마을
사람 좋은 김동화가 사는 이례부터
너른 들에 감자 살구가 맛있는 오로 예강 관심 원동 파산을 지나
산 너머 실바람 감겨오는 대망리까지
살가운 지붕들이 착하게 반짝이는 곳
-「선산 고아善山 高牙」 부분
시인의 고향인 선산군 고아면의 풍정이 따뜻하게 녹아있는 시이다. ‘고아’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음가音價로 인해 빚어진 촌극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그곳은 “내 사람이 처음 나서 맨 나중에 묻힌 곳/동무들이 약초처럼 늙어서 나부끼는 산마을 강마을”이며 ”살가운 지붕들이 착하게 반짝이는 곳”이다. 그게 시인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한없이 푸근하고 넉넉한 고향의 이미지다. 그런데 다음 시에 오면 그 정조가 사뭇 달라진다.
오로지 한 생애만을 위해 기도한다
정강이뼈가 부러진 생애를 기억한다,
튼튼한 자궁이 없는 생애는
더 이상 전도양양의 사립문에 금줄을 치지 않는다
가마솥 달구던 장작을 빼낸 솥처럼
내가 죽으면 나의 영혼은
쫒기듯 육신으로부터 한 생애를 마감할 것이다
부질없음과 무상함과,
덧없음과 어이없음을, 식탁 가득 요란하게 차려놓고서
혼자서 포크로 포클레인처럼 정리한다
이번 생애에는
설거지 마감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몇 번의 시도는
짓눌린 생애를 짜낸 묽은 여드름이었다
찍 하고 터져서 히죽거리며 나를 바라보던,
척하고 거울에 달라붙어 잡귀처럼 따라오던,
-「귀향」 부분
아름답게 따뜻하게 기억되던 고향에 돌아가는 ‘귀향’은 우울하고 불모적이다. “정강이뼈가 부러진 생애”이며 “튼튼한 자궁이 없는 생애”이기도 하며 “더 이상 전도양양의 사립문에 금줄을 치지 않는다”는 그런 귀향이다. 시적 화자(시인 자신)이 출세간하여 뭔가를 성취하여 귀향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한 데 대한 좌절과 절망감을 유추해볼 수 있는 그런 마음 상태가 드러난 작품이다. 좀 범박하게 말하면 공부 잘하는 시골 수재가 입신양명을 위해 도회지에 나왔지만 그 만족할만한 성취를 이루지 못했을 때 갖게 되는 심리상태가 아닐까 추측된다.
이런 마음 상태는 다음 몇 편의 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젊은 날은
금방 스러지고 마는 실바람같이
감시탑의 탐조등에 잘못 걸려든 암실의 빛과 같이
순간을 견디지 못한다
이번 생은 다 지나간 것일까
흰 목덜미를 감고 빛나던 여름의 바퀴가
바람 먼지에 그만, 뚝, 제 다리를 부러뜨린다
-여름날의 자전거」 부분
하루는 따개비로 살고
하루는 물총새로 살고
하루는 네가 돼서 살고
하루는 돼지가 돼서 살고
하루는 독사로 살고
하루는 냇물이 돼서 흐르고
하루는 승냥이로 살고
하루는 은초롱꽃으로 피어 살고
하루는 일개미가 돼서 살고
하루는 노랑나비로 펄럭이다가
또 하루는 하루살이로 원 없이 살고
하루는 일억 광 년 쯤 떨어진 별이 돼서 살고
그렇게 열이틀 살고 나서는
영원히 나는 내가 돼서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칠성님께 빌고 빌면서
날숨과 들숨이 균형을 잃어가면서
또렷하게 덮쳐오는 먹이를 채집하는 일상은
어딘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위안은
온 마음을 다하지 못하게 하고
궁극의 가장 무거운 중심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자연스런 가면극」 부분
시인 자신에게 “젊은 날은/금방 스러지고 마는 실바람 같”은 것이며 “이번 생은 다 지나간 것일까” 자문하는 가운데 “흰 목덜미를 감고 빛나던 여름의 바퀴가/바람 먼지에 그만, 뚝, 제 다리를 부러뜨린다”는 이 구절은 흰 목덜미가 아름답던 청년이 세속의 먼지 바람에 제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과 같은 좌절을 겪는 현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거친 세파에 다리를 부러뜨린 것 같이 절망하는 불모의 청춘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 청춘은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는 일탈을 감행하고, 하루는 돼지로, 하루는 독사로, 하루는 승냥이가 되어 살아가면서 칠성님께 빌기도 하고 균형을 잃기도 하지만 “또렷하게 덮쳐오는 먹이를 채집하는 일상은/ 어딘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위안은/온 마음을 다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고향에 기대고 부모님께 기대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궁극의 가장 무거운 중심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는 현실을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인식과 심리상태는 다음 시에서도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읽지 못하고 버려지는 책속의 글자들이 졸음 속으로 무너졌다
무너지는 것들은 아름다웠다
골목을 내려다보던 별은 흉기처럼 뾰족하여
젖은 황토 같던 사람들 가슴에 자주 생채기를 냈다
이웃이 다니던 골목은 별빛에 긁혀 사그라졌다가는
악몽처럼 벌떡 일어나 갱도 같은 큰길로 바삐 걸어가곤 했다
겸손하고 말수가 적던 골목 모퉁이에도
가임기의 제비꽃씨가 싹을 틔우고
가끔씩 두려운 풍문을 임신한 느린 그림자들이
배고픈 바람을 걸쳐 입고는
녹슨 대문 앞을 두리번거렸다
-「휘어진 골목을 위한 안경」 부분
‘버려지는’ ‘무너지는’ ‘흉기’ ‘생채기’ ‘긁혀’ ‘악몽’ ‘배고픈’ ‘녹슨’ 등으로 이어지는 언어들은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의 불모성과 절망이 극대화 되어 있다. 시인이 이렇게 절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절망의 끝에는 ‘귀향’이 있을까? 앞서 보았듯이 그의 귀향은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몇 번의 시도는/짓눌린 생애를 짜낸 묽은여드름이었다”는 고백처럼 처참한 것이었다. 이런 시인의 불모성의 시인의 마음이 가장 아름답게 표현된 시가 다음 시이다.
마음에 소중히 품었던 것들은 한여름 이슬 같았다
나의 세계는 세상의 모든 슬픔에게 빚을 진 것이라 여기고 슬픔의 벽돌로 집을 지었고,
뭇별이 큰 물길을 내고 바람이 잠든 지붕 위로 한세월이 흘렀다
아름다운 날에 오감의 숲에 갇힌 나를 훌쩍 떠나리라 마음먹었던 것도 그 때쯤이었다
풀이 곱게 자란 곳에는 모주꾼 같은 여름이 비틀거렸다
입술이 없는 것들은 구름의 즙을 받아먹지 못해 시들었고,
슬픔의 깊이를 뚫고 웃자란 수염은 까실했다
상주의 눈은 더러운 페인트를 쏟아놓은 듯 벌겋게 불어서 탁했다
질퍽대던 여름은 자신의 몸에서 뽑아낸 실로 단칸집을 짓고 사는 누에처럼
죽음의 예식에 하얗게 갇혔다
문상객들은 잘린 국화송이를 차례로 영정 아래 올려놓거나 매캐한 향을 피우고
머리를 조아렸다
조숙한 별들이 어둠의 천장에 가로누워 이별을 재촉했다
줄 늘어진 해금과 구멍 난 피리가 느린 박자로 상여를 끌고 가는 새벽
삼복더위의 하얀 글씨로 쓴 명정에 덮여 여름은 돌복숭보다 발갛게 익어갔다
날 이제 그만 좀 내버려 둬요,라고 벚나무 잎사귀를 찢으며 매미소리가 뛰쳐나왔다
차창으로 닥쳐오는 뜨거움들의 고요
-「대서 즈음」 부분
대서는 24절기 중 열두 번째에 속하는 절기로 일 년 중 가장 더위가 심할 때인데 보통 양력 7월 22~23일 경이다. 너무 더워서 ‘염소 뿔도 녹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이 시는 실제 절기로 가장 더운 대서 즈음에 대해 쓴 시일 수도 있고,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삶에 대한 반추의 의미로 쓴 시일 수도 있다. 아니면 문학적 열정이 가장 고조된 어떤 경지에 대해 쓴 것일 수도 있다. 죽음에 대한 명상을 이렇게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쓴 시를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이번 시집에서 가장 아름답고 깊이가 있는 최고의 작품이다.
“마음에 소중히 품었던 것들은 한여름 이슬 같았다/나의 세계는 세상의 모든 슬픔에게 빚을 진 것이라 여기고 슬픔의 벽돌로 집을 지었고,/뭇별이 큰 물길을 내고 바람이 잠든 지붕 위로 한세월이 흘렀다/아름다운 날에 오감의 숲에 갇힌 나를 훌쩍 떠나리라 마음먹었던 것도 그 때쯤이었다”
마음에 품었던 모든 꿈과 이상도 사실 죽음 앞에서는 ‘한여름 이슬’ 같은 게 맞을지 모른다. 슬픔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지상의 모든 인간은 사실 ‘슬픔의 벽돌’로 집을 짓는지도 모른다. 그 슬픔의 집 잠든 지붕 위로 한 세월이 흘러가고, 그런 어느 아름다운 날 우리는 이 지상을 훌쩍 떠나 영원의 세계로 이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죽음일 수 있다. 죽음을 이렇게 서정적이고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자야말로 진정 시인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자이다. 그래서 필부필부匹夫匹婦나 장삼이사張三李四나 모두 “일생이란 끊임없이 무덤을 만들어야 하는 운명의 엔진이었다”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불꽃은 어디 삽니까
졸음처럼 달콤한 세월은 이제 없으니
칼바람의 날로 눈물을 자르고
굶주린 얼음의 몸에서 불꽃을 피워냅니다
얼음의 몸에서 피워낸 불꽃은 자유의 증거로 남고
자유의 의지를 키웁니다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걷는 좁은 길들은 철저히 위장되었으니
새파란 싹들이 움틀 때
조심조심 발걸음 가누면서
가난이 희망의 싹을 밟지 말고
사람이 사람의 싹을 밟지 말고
기계가 눈물의 싹을 밟지 말고
자본이 인간의 싹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불꽃을 지고 스물셋 청년 전태일이 굴리던 바퀴
천년의 눈밭을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불꽃의 주소록」 부분
가시관을 쓰고 예수가 흘리던 피도 빨갱이다
당근도 좀 덜 물든 빨갱이요
홍등가를 지나던 행인의 옷자락도, 옷자락을 비추던 별빛도 빨갱이다
네거리 신호등도 멈춤이 되면 빨갱이고
하혈을 하면 빨갱이가 된다
태양도 석양에는 빨갱이가 되고
붉은 필기구는 백지 위에서 사상범의 증거가 된다
헌혈을 하면 빨갱이가 되고
수혈을 하면 더 위험한 빨갱이가 된다
-「붉음에 관하여」 부분
「불꽃의 주소록」은 전태일 정신에 대한 문학적 현현이다. 주지하다시피 전태일은 대구 출신으로 1970년 당시 열악하던 노동현실에 저항하면서 분신한 순교자적 죽음으로 뚜렷이 기억되는 노동운동가이다. 그가 50년 전에 죽음으로 항거했던 열악한 노동환경, 노동경시, 인간의 존엄 무시, 부의 불평등과 같은 문제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 이 시는 그런 현실에 대한 일종의 고발이자 시인의 양심적 자기 고백이라 할 수 있다.
「붉음에 관하여」는 정치적 반대자에 대해 ‘빨갱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탄압하는 현실, 일종의 매카시즘에 대한 풍자이다. 풍자는 조롱과 해학을 주무기로 하면서 계몽과 해방을 불러오는 시적 효과가 있는 기법이다. 이런 시대와 현실에 대한 고발과 비판은 다음과 같은 시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꽃은 어떤 꽃이든 다 아름답죠
꽃은 바람의 거대한 눈물이 응축되어 피어나는 사초(史草)죠
먼 바닷길을 돌아온 여행자들이 감탄하는 유럽의 문명과 아름다운 건축물들,
그들이 누리는 영화는 식민지의 고통과 눈물로 만들어진 꽃이죠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은 베를린협약으로 1885년 벨기에 레오폴드2세의 개인 식민지가 되는데요 1890년부터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고무 덕분에 브뤼셀의 현란한 도시를 만들었죠 고무생산으로 돈을 짜내기 위해 벨기에는 고무수액채취할당량을 높여갔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아이까지도 손목을 잘랐죠 그래도 안 되면 목을 베 죽이고 높은 곳에 걸어 두었죠 그렇게 십수년 동안 2천만명 중 1천1백5십만명이 죽어나갔죠 지구 반대편에서 더러운 학살이 있었죠
브뤼셀은 콩고민주공화국민들의 잘린 손목으로 만들어졌죠 여행자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는 사이, 브뤼셀의 수도꼭지를 틀면 아프리카 고무수액이 묻은 잘린 손목의 피가 쏟아져 나오죠
꽃은 어떤 꽃이든 다 아름답다고 생각하죠
-「꽃은 어떤 꽃이든 다 아름답죠」 부분
「불꽃의 주소록」과「붉음에 관하여」가 국내의 왜곡된 현실을 증언하는 것이라면 「꽃은 어떤 꽃이든 다 아름답죠」은 인류의 휴머니즘에 관한 보고서이다. 꽃은 어떤 꽃이든 다 아름다은 것은 아니라는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를 보내는 시이다. 문명국(선진국)이 누리는 영화는 다 식민지 민중들의 고혈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 시의 다음 연에는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인들을 죽여 그 머리를 소금에 절여오라 했는데 머리는 너무 무거워 대신 코를 모으게 되었다죠”라며 “일본 쿄토에 코무덤”에 관한 증언을 덧붙이고 있다.
시인의 따라 시의 본분을 각기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언어에 집착하거나, 이념이나 메시지에 집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 둘의 경계를 오가는 시를 쓸 수도 있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이 ‘불우국 비시야不憂國 非詩也’라는 명제로 시가 당대 현실과 민중의 핍진한 삶을 노래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라고 말 한 바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위의 시들은 시의 소임을 충분히 완수한 아름다운 시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강시현 시인에게 이런 아름다운 시를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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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락
1959년 경북 의성 출생
1984년 창비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 활동
시집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 『하염없이 낮은 지붕』 외 다수
비평집 『문학과 정치』 『민족문학논쟁사연구』 외 다수
시작문학상, 대구시인협회상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