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사이펀신인상 - 김여여
설렘을 삭제하도록, 외 4편
저에 대한 공정을 부탁하려 합니다
방금은 놓쳤다 말했지만 그보다는
놓고 싶을 때가 많아지는 게 문제입니다
오래 겪어 잘 알겠지만
잔나비 띠인 저, 설렘을 건너다니며
아름다운 도착을 기다려왔습니다
동그라미 친 달력을 넘기며
상상놀이 했던 위치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기억을 돌이키면 일어나는 반점들
가려움으로 진화하는 반점을 긁다가
츄르 하나 챙겨 지하 주차장에 갔습니다
cctv가 말못하는 그날
나처럼 설렘에 문제 생긴 주인이
고양이를 놓고 떠난 자리
무성한 소문에 그늘이 움푹 패였습니다
주차하는 품속으로 뛰어드는 짐승에게
설렘 한 채 새로 지을까
지하를 다녀온 이후가 살짝 예민해졌을 때
화분이 저질러놓은 현장을 좀 보세요
구석 자리에 박혀 철모르는 화분이
지금 봄 맞지!
십이월 지상 위로 새싹 두어 장 보내놓고는
그 식구 지키느라 몸살을 합니다
중천에 뜬 해를 어찌 막으면 좋을까요?
몸살 난 설렘 식구만 빼고
나머지 설렘들 모두, 오늘은 조기 퇴근합니다
지금부터 내일 아침 출근 시간까지
모든 설렘을 삭제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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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지대
긴장과 설렘을 같이 쓰는 월요일
검정 뿔테 안경을 쓰고
검정 코트를 걸치고
예약도 없는 날에 그이가 찾아왔다
혼자라는 단서를 길게
주머니에 감춘 손을 끝까지 보인 적 없지만
달라진 온도가 말보다 무거울 때 있다
혼자 하는 외출이라니
익숙한 것에서 1도만 기울어져도
상상은 이동하려는 본색을 드러낸다
달맞이 504번길 언덕 어디에
돌풍이라도 한바탕 불고 지나갔던가
건장했던 가장이 무너졌던 날
한 가정이 모셔온 평화는 그날로 종결됐다
함박웃음을 소원했을 뿐인데
기도는 잘못된 해석으로 남아있고
웃을 기회를 빼앗긴 그이가
하루에 대여섯 번 주소를 지우는 것은
사북을 찾아가는 일
휘파람 소리가 끊어진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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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코드로 분류되다
게임을 하며 눈뜬 시간을 숨겼다
어쩌다 부탁받은 몇 건 외에
일을 통해 챙긴 보람은 오래전 일이다
정부 보조금으로 담배를 피우고
강아지를 쓰다듬을 수 있으며
갑자기 몰아치는 갈증은
편의점 소주 몇 홉으로 해결했다
항목 몇 개를 묻고 체크 하던 의사는
우울증(F32.0)을 선명하게 기록했다
스스로가 귀인이길 바랐지만,
절망했고 이후 벌어진 모든 일상은
F코드로 분류되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살아온 날들이
합리적 이유를 밝혀 더 자주 빈둥거렸고
외출않는 날이 반복되면서 잠을 없앤
밤과 맞서 일이 잦아졌다
직립 밖으로 몰아세우는
F코드, 흔들리지 않지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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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가 있는 집
어른이 되면 이루고자 한 집이다
구석이 환하고 창이 넓은 집
혼자 있는 아이를 관심밖에 세우지 않는
누구나 없지만 난 그 집을 믿었다
흙빛 마루가 차지하던 자리에
가죽 소파가 늠름한 거실
엄한 아버지는 다정한 아빠가 되고
시원한 물 콸콸 쏟아지는 마당에는
물봉숭아 수국 맨드라미 채송화 칸나
깔깔대는 꽃들에게 여름이 온다
밥 냄새가 수평으로 퍼지는 저녁
감사하는 마음 넉넉하고
마주 보는 시선이 은근하다
의자를 밀어 넣어 고요한 밤까지
주말 연속극 최종회처럼
흐린 시력에도 해피엔딩 자막이 오른다
해가 흩어지는 대문 밖에서
신발 소리에 귀를 활짝 열던 아이가
소파 있는 집으로 들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뒷이야기 정리하며 과거를 빼먹는 동안
소파가 놓인 자리 그쪽에서
가끔 집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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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라는 직업
모닝콜이 울린다.
이제는 무뎌진 시절인가 하면서도
잘 잤소?
안녕을 확인하는 인사에서 출발
매화 안부를 거쳐
하루 사용설명서를 가슴에 첨부한다
춤추는 마음이 닿은 지금까지
애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그들만 아는 세계에 빠져 흡족하다
세상 창들이 개방되는 오전
급하게 처리할 업무는 없지만
쏟아지는 땡볕에도
의지를 시험하는 따가운 눈총에도
출근 명부에 공란이란 없다
지팡이에 기대 걸음을 옮겨도
꽃을 기다리는,
그 사람 직업은 애인
온화함과 성실은 애인이 지녀야할 덕목
냉장고 층층마다 손맛을 저장하고
뽀송뽀송 빨래가 마른다
잘 숙성된 눈빛을 시급으로 받으며
봄물에 젖다 빠져나온 저녁,
애인은 얼굴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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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 김여여
매직에 빠져 보실래요?
사람이 좋다. 사람들과 어깨를 겯고 더불어 가는 삶이 더없이 행복하다. 오후의 따스한 이야기가 모이고, 의자를 놓고 앉아 쌓인 이야기를 글로 풀었다. 쉽게 흔들리고 잘 부서지는 나에게 끝없이 질문을 건네는 사람들, 옆에 있는 당신, 여전히 좋다
작년 겨울, 꽃다발을 들고 신인상을 축하하는 자리에 있었다. 사연은 저마다 달라도 그들이 감내해온 시간에 온 힘으로 박수를 보내는 중이었다. 축하 외에 다른 뜻을 품고 갔을까? 행사는 점점 깊어지고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스스로에게 들켰다. 준비해간 박수를 놓치며 든 기분이 목표로 이동했고. 그날 이후 시계는 몰입을 향해 흘렀다. 시 외에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몰입을 끄고 고개를 들었을 때, 봄은 반이나 지난 후였고 미뤄진 계절을 돌며 화해를 이어가던 날, 밤을 새며 기다려온 새 주소를 얻었다.
시인으로 좋은 어른으로 모델이 돼주신 권애숙 선생님! 너무 오래 기다리셨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노마드 선배님들 함께하니 행복합니다. 늘 그 자리에 성수씨, 낭만선비 현우군, 성실한 래퍼 1 ilchi, 이야기보따리 보은 샘, 짝꿍 민경이, 모두 고맙습니다. 저랑 함께 매직에 빠져봅시다 이제부터,
김여여 kimyeo0602@naver.com
-본명: 김영희.
-1969년 경남 하동 출생.
-노마드 문학회 회원.
-정신건강의학과 재직 중.
첫댓글 신인상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부산에 거주하셔서 더욱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