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46차 백두대간 출진 구간은 강원도 인재군 미시령에서 시작하여 1코스는 남겨진 대간구간만 등반하는 황철봉-저항령-마등령-비선대을 거쳐 속초시 설악동으로 하산하고, 2코스는 이왕 간 김에 설악산 전설의 공룡능선을 포함하여 황철봉-저항령-마등령-공룡능선-무너미고개-비선대을 거쳐 속초시 설악동으로 이어졌다. 출진 시간은 1코스가 총 15km로 10시간, 2코스가 총 22.1km로 13시간정도 예상하였고, 출진대원은 24명으로 오랫만에 신규회원이 와서 처음 출진하는 대원이 5명이나 되었다.
6월 7일 밤 10시 청사를 출발한 리무진 버스는 어둠을 뚫고 달려 2시경 오늘의 출발지인 미시령에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지난해 가을 미시령~마등령 구간에 도전을 했으나 출입통제 단속으로 눈물을 머금고 돌아선 기억이 생생하였다. 백두대간 완주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출입통제 구간을 반드시 통과해야만해서 이번에 다시 지난번보다 빠른 시간에 진입을 시도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재빨리 미시령 입구의 진입구간을 통과하기 위하여 버스에서 모든 등반장비를 갖추어 대기하고 있고, 버스는 진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모든 불빛을 소등하고 정차한 후 산악대장 둘이서 먼저 하차하여 동태를 살핀 후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출발 사인을 해 주었다. 2시 20분경 등반신호가 떨어지지마자 숨소리도 죽이며 일사불란하게 미시령 표지석 옆길의 철조망을 돌아 순식간에 미시령 입구를 통과하여 마등령으로 가는 등반로 들어섰다.
별빛도 없는 깜깜한 하늘아래 손전등과 헤드랜턴 불빛을 밝히며 한발 한발 전진했다. 설악의 새벽 공기는 상쾌했지만 달리는 버스에서 잠시 눈부친 새우잠과 통제구간을 무사히 지나기 위해 긴장한 탓인지 어느새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등줄기는 젖어왔다. 오르막길을 한참을 지나서 통제구간 감시를 벗어난 것을 확인한 후 안도의 숨을 쉬며 본격적인 숨겨진 비경인 설악의 북릉 탐험에 들어갔다.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요즘 유행인 흡혈 진드기를 막기 위하여 진드기 약을 배낭과 옷에 뿌려서 방재하였다.
3시 30분경부터 본격적인 너덜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딱히 등반로가 없어 조심 조심 너덜바위 틈 사이를 비집고 건너뛰며 한발 한발 내딛였다. 통제구간이었지만 가끔 보이는 등반로를 표시하는 형광봉과 얇은 로프가 있어 길나잡이가 되었고, 높은 바위에 고정되어 불빛이 깜박이는 엘이디 표시등은 태양광으로 충전되어 365일 너덜길의 등대 역할을 해 주었다. 오늘 처음 중2 아들과 함께 온 이기영님은 27년전 대학교 1학년때 이 너덜지대를 지난 기억이 멋져서 다시 왔다고 하였다. 아들인 이지환군도 총명하고 씩씩하게 산을 잘 타서 제2의 대간소년으로 칭하였다.
4시 30분경 첫번째 너덜지대를 지나 1318봉에 올라서니 희미하게 먼동이 터서 랜턴이 없어도 걸을 수 있었다.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너덜바위을 걷는 기분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길이 없기에 내가 딛이면 그곳이 내길이 되는 곳이란 생각이 들고 수만년동안 쪼개진 바위들이 널부러져 군락지를 이룬 모습이 어스름한 새벽 안개에 쌓여 장관이었다. 날씨가 좋아 일출도 볼 수 있기를 기원했으나, 아쉽게도 운해에 가려 보지 못하고 날이 밝았다.
5시 20분 황철봉을 코 앞에 두고 무박으로 잠도 못자고 난해한 너덜지대를 지나 잠시 막걸리 한잔하면서 땀을 식혔다. 그런데, 조용환님께서 장단지 근육이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하였다. 너덜지대를 걷다가 허공을 디뎌서 장단지 근육이 경련이 나 이상이 온듯하다고 하였다. 우선 비상약으로 장단지에 테이핑도하고 파스도 뿌려서 응급처치를 하니 견딜만 하다고 하여 계속 진행을 하였다. 땀 흘린 뒤의 막걸리 한잔에 힘을 얻어 단체 인증샷을 남기고 다시 힘차게 출발하였다. 출발한지 얼마가지 않아 삼각점위에 매직으로 황철봉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무리 통제구간이라고 하지만 주요 포스트인데 표지석 하나쯤은 세워 놓는 것이 어떨지 생각했다.
황철봉을 지나니 설악의 주변 조망이 트이기 시작했다. 발 아래 노니는 운해는 바다와 진배 없었다. 새벽 이슬 머금은 청조한 진달래, 철쭉과 야생화는 단아하기까지 했다. 저항령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오르니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마루금과 설악의 북쪽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언덕 너덜바위에 걸터앉아 설악의 북부능선을 감상하며 이상철수석총무님이 싸온 불고기와 열무김치를 안주삼아 막걸리 한잔하니 피로가 눈녹듯 사라졌다.
6시50분경 저항령에 도착해서 아침 밥상을 차렸다. 옹기종기 둘러 앉아 집에서 정성껏 싸준 반찬을 꺼내 놓고 나누어 먹으며 에너지를 충전했다. 아침밥을 다 먹고 한참을 지나서야 후미 그룹이 왔다. 부상당한 조용환님께서 점점 속도가 떨어져 어쩔 수 없었다. 다시 사혈침을 부상입은 장단지에 놓고 피를 내어 처치를 하고 다시 파스를 뿌렸다. 그러나 한번 뭉친 근육이 쉽게 풀리지 않아 쉬엄 쉬엄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용환님은 이상철수석총무님과 이기완부회장님이 에스코트하기로 하고 나머지 그룹들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갈길이 멀어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구조헬기라도 불렀으면 했지만 통제 구간이고 산속 깊은 곳이라 착륙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저항령을 지나고 다시 오르막길의 중간 너덜지대를 통과해서 1249봉을 넘어 다시 내리막길인 잡목 숲길을 지났다. 설악의 아침 숲속에서 들려오는 홀딱벗고새의 울음소리와 이름모를 새소리가 청아하게 울려퍼져 지루한 발길을 가볍게 해 주었다. 마등봉을 오르기전의 너덜길은 큰 자갈로 이루어져 오르는데 스릴감 없이 제법 긴 구간이었다.
9시30분경 마침내 마등봉(1326m)에 올랐는데, 이곳에는 삼각점 옆에 아담하게 마등봉 표지석을 만들어 놓아 정상임을 확인하였다. 마등봉에서 우리가 온 길을 뒤돌아 보니 장엄한 백두대간 등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등봉 표지석 뒤쪽으로는 중청봉과 대청봉이 멀리 우뚝솟아있고 공룡등의 형상이라는 웅장한 공룡능선의 자태도 드러났다.
마등봉에서 하산하여 마등령 삼거리(1320m)에서 잠시 휴식하고, 이곳에서 비선대로 하산할 1팀과 공룡능선을 탈 2팀으로 갈라졌다. 처음 출발할 때 확인시 공룡능선을 탄다는 대원들이 많았는데, 너덜지대 탐험이 너무 빡셨는지 바로 하산한다는 대원들이 늘어나서 실제 공룡능선으로 간 대원은 8명뿐이었다.
공룡능선은 2010년10월에 단풍이 절정일때 와서 환상의 설악 단풍을 만끽하였지만, 등반객들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에 밀려 느릿 느릿 걸었던 기억이 났다. 오늘은 여름철이어서 등반객이 가끔 보일뿐 한산하여 실록과 어울어진 기묘한 바위가 멋들어진 공룡능선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진행하였다. 날씨는 쾌청해서 햇살을 따가웠지만 시원하게 부는 산들바람에 땀이 금새 식었다.
아름다운 공룡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걷는 묘미는 너덜길과는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공룡능선에서 한가지 아따까웠던 것은 지난 10년 10월 출진때 샘터를 지나서 언덕위에 멋진 낙낙장송이 버터고 있어 그 소나무를 잡고 기념샷도 했는데, 이번에 보니 태풍에 넘어져 뿌리가 다 들어나 있었다. 다시한번 자연의 힘에 경의를 표한다.
13시경 '범선의 돛대처럼 우뚝 섰다'라는 범봉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 오르니, 깍아지는 암봉의 위용이 설악산의 주인공이라 할 만큼 수려하였다. 범봉의 좌측으로는 마등령, 세존봉이 우측으로는 유선대, 장군봉이 이어져 환상적인 전경이었다. 범봉 뒤쪽으로는 대청, 중청, 소청봉이 한눈에 보이고, 서북능선과 용아장성이 펼쳐졌다.
14시경 공룡능선의 끝자락인 무너미고개에 도착하였다. 공룡능선 완주 인증샷을 찍고, 곧바로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하였다. 무박으로 거의 12시간을 산행한 탓에 지치고 물도 떨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약폭대피소에 가면 물도 있고 잠시 휴식을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힘을 내어 걸었다. 그런데 양폭대피소에 도착하니 대피소가 사라지고 없었다.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어 빈터만 남아있었다. 목마름을 잠시 참고 다시 비선대까지 갈 수 밖에 없어 중간에 도저히 참지 못하고 계곡물에 목을 축였다. 시원한 계곡 물맛이 꿀맛이었다.
16시경 마침내 비선대에 도착하니 마등령에서 직접 하산한 팀이 먼저 자리를 잡고 막걸리를 먹고 있었다. 시원한 냉막걸리에 파전 한입을 입에 넣으니 타는 갈증이 가시었다. 비선대는 기암절벽 사이에 한 장의 넓은 바위가 못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계곡쪽에는 미륵봉(장군봉), 형제봉, 선녀봉이 보이며 미륵봉 등 허리에 금강굴이 보인다. 와선대에 누워서 주변경관을 감상하던 '마고'라는 신선이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갓다 하여 비선대라고 부른단다. 형제봉 옆 적벽에는 암벽 등반가들이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암벽등반을 즐기고 있었다.
15시경 소공원 전에 이해평, 김천희 대장님, 이충석님과 함께 설악 천붕동 계곡물에 입수, 알탕으로 온 종일 흘린 땀을 씻어냈다. 알탕은 진정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상쾌하고 시원한 대간 산행 후의 묘미이다. 15시30분 신흥사 부처님께 오늘 무사산행의 감사 합장을 올린 후에 곧바로 설악동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로 향했다.
부상을 입은 조용환님은 600m를 1시간에 걷는 투혼을 발휘하여 16시경 비선대 근처까지 이상철수석총무님의 에스코트를 받아 도착하였다고 연락이 되었다. 더이상 산행이 어렵다고 생각되어 설악산 국립공원관리소에 차량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모두 구조를 나가서 여력이 없다고 해서, 다시 119에 신고를 하니 속초소방서에서 즉각 출동하였다. 소방대원들이 부상을 입은 조용환님에게 가서 응급처치를 하고 비선대 밑에 대기한 119 차에 태워 모시고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버스로 왔다. 그 시간이 20시30분경이었다. 천만다행이고 하늘의 보살핌이 있어 큰 부상이 아니었던 것에 감사했다. 무사귀환을 모든 대원들이 박수와 환호로 맞이했다. 끝까지 부상 동료를 지켜준 이상철수석총무님과 이기완부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전장에서의 찐한 전우애 못지 않은 산행중 동료애를 보여 주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늦었지만, 저녁은 맛집인 강릉 할머니추어탕집에 가서 얼큰한 추어탕에 감자밥, 막걸리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조용환님은 콜택시를 불러 터미날에서 심야우등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고, 우리도 곧바로 버스에 올라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에 도착하니 9일 새벽 1시가 넘었다. 이번 산행은 장장 무박 3일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설악산 북릉인 미시령~마등령구간과 공룡능선을 거쳐 천불동 계곡으로 이어진 탐험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멋진 산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백두대간 산행은 설악의 숨겨진 비경인 너덜지대와 설악의 가장 절경으로 손꼽히는 공룡능선, 양폭, 비선대가 포함된 설악산 북릉과 내설악의 아름다움을 한번에 경험한 최상의 구간이었다. 이 모든 순간을 이룬 대원 모두에게 감사와 성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백두대간 종주팀 화이팅~~~
첫댓글 조용환님께서 월요일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오른발 종아리뼈 목부분이 부러졌다는 진단을 받아 곧바로 깁스를 하였답니다. 완치되려면 6주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발이 부러진 상황에서 어찌 그 험난한 너덜길과 설악의 암능길을 18시간이나 걸으셨는지, 그 불굴의 투혼이 경탄스럽고 가히 기적에 가깝습니다. 몸조리 잘하시어 하루 빨리 완쾌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