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재현되는 너트크래커
(김익수고대교수, 서울경제신문 게재 자료)
중국에 진출한 적지 않은 수의 한국기업들이 퇴출 위기에 몰리고 있다. 기업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부가가치 제품은 다국적 기업에 밀리고 중저가품은 중국의 우수한 토종기업에 밀리는 소위 넛크랙커(nutcracker) 상황이 중국에서도 재현되는 것이다.
특히 지난 10월28일 중국 금융당국이 금리를 전격적으로 인상함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토종기업들과의 가격경쟁, 인건비, 토지 사용료의 상승 등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진출기업들은 현지 금융비용 상승부담까지 안게 됐다. 그 결과 연해도시 지역에 진출한 일부 중소기업들은 내륙으로의 공장이전을 검토하거나 중국에서의 철수를 준비 중에 있다.
대기업들은 그래도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다만 빠오산철강ㆍ롄샹ㆍ베이다팡쩡ㆍ하이얼ㆍ콩가ㆍTCLㆍ닝뽀버드 등 중국의 우수 토종기업들과의 브랜드 경쟁이 격화되면서 제품혁신, 판촉, 판매 후 서비스 등에 과거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면 이 같은 상황에서 과연 우리 기업의 살길은 무엇인가.
대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이 많다. 우선 포스코ㆍ삼성전자ㆍLG전자ㆍ현대자동차처럼 지주회사제를 도입, 중국 내 여러 법인을 통합경영함으로써 환경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우수 중국기업이나 다른 외자기업과 판매 제휴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영업망 확충에 소요되는 투자비를 절감하는 한편 연구개발(R&D)의 현지화를 통해 중국의 기술표준, 소비자의 수요에 부합되는 제품과 기술을 만들어 팔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ㆍLG전자ㆍ포스코 등은 베이징ㆍ톈진ㆍ상하이ㆍ쑤저우 등지에 R&D 센터를 설립, 운영함으로써 연구개발비를 크게 절감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입장에 이 같은 생존전략 대안은 그림의 떡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자재원 부족으로 인해 잦은 제품혁신이나 R&D 현지화를 도모할 수도 없고 기업규모와 협상력의 제약으로 제휴 파트너를 물색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자사의 경쟁력에 맞는 틈새시장에 들어가 개량된 제품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으며 수출지향형 중소기업의 경우 인적자원관리의 강화와 원ㆍ부자재 현지조달 비중 확대를 통해 제조원가를 낮추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간에 현 경제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 동향을 면밀히 관찰ㆍ분석하는 일이다.
특히 이번의 금리인상은 그 폭이 매우 작아 경기진정에 한계가 있을 것이므로 앞으로 6개월 이내에 추가적 금리인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과거에 그래왔던 것처럼 경제기술개발구의 정리, 부동산투기 단속 강화, 만기 대출자금의 회수 등의 행정조치를 취할 것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전망이 불확실한 사업을 새로 전개하기보다는 기존 사업의 내실화를 기하고 경쟁력이 있는 프로젝트에 투자와 경영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중국 상업은행이 신용관리를 강화할 경우에 대비해 현지 금융비중을 牡甄?동시에 거래선 신용과 재무상태 점검, 신용장 개설과 네고, 수출입 계약의 관리 등에 대해 평상시보다 배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제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존 전망이 희박할 경우에는 과감히 철수하거나 소유지분을 정리매각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날로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중국시장에서 제품 경쟁력이 없으면서도 무모하게 투자재원을 추가로 투입할 경우 늘어나는 것은 자만 적자일 뿐이며 이 같은 결과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현 시점에서 중국 진출 기업들이 추구할 경영목표는 투자규모의 확대나 매출액의 극대화가 아니라 투자규모의 적정화, 경영 내실화를 통한 리스크 관리이다.
서울경제 2004/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