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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수필의 문장(文章)
(1)수필의 문장(문장의 중요성과 좋은 문장을 쓰는 방법)
문장이란 한 줄거리의 사상이나 느낌, 또는 생각이나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글자로서 기록하여 나타내는 단어의 결합이다. 다시 말해 여러 개의 단어들을 흡사 염주알 꿰듯 적절히 엮어서 자신의 생각이나 말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해 놓은, 하나의 글월이 바로 문장인 것이다.
이러한 문장은 비단 수필이나, 소설, 희곡, 시 등과 같은 문학에서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모든 글들, 이를테면 편지나 일기, 메모, 안내문, 광고. 신문기사, 보고서나 기획서 같은 각종문서, 교과서나 잡지의 글들 심지어는 낙서에 이르기까지 그 글의 구성을 이루며 의미전달의 기본요소를 이루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문장이 없는 글이란 존재할 수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문학에 있어서의 문장의 가치와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모든 문학작품은 그 글 속에 담긴 문장의 표현 방법이나 가치, 문학성 등에 따라 작품으로서의 가치와 품위를 지니게 되고, 독자에게 보다 큰 감동이나 공감을 안겨 주며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를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다.
① 수필의 문장은 쉽고 친밀감이 들면서도 너무 흔한 표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 중에는 더러 어렵고 난해한 문장이나 단어, 또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문장, 어려운 한자어나 미사여구를 늘어놓은 글 등으로 수필을 써야만 수필로서의 가치와 품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학식이나 인격이 돋보이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은연중에 자기과시나 우월감을 나타내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수필문학의 특성과 수필에서의 문장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는 데에서 비롯된, 무지의 소치이다. 수필에서는 오히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친근감을 느끼며 편안히 읽을 수 있는 문장이 가치 있고 수필의 특성과도 잘 부합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늘어놓거나 누구나 흔히 쓰는 문장을 쓰는 것이 좋다는 뜻은 아니다.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친근감을 느끼며 편안히 읽을 수 있고, 또한 이해도 빨리 할 수 있는 쉬운 문장이면서도 그것이 너무 평범하거나 흔한 표현이 아닌, 독창성과 개성미, 그리고 문학성을 지닌 문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② 수필의 문장은 솔직하고도 꾸밈새 없이 소박해야 한다.
수필의 생명은 진실과 솔직함, 그리고 가식이나 꾸밈새가 없는 소박함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수필은 흔히 ‘자기 고백의 문학’이요 ‘진실의 고백’ 또는 ‘소박한 자기 표현’이라고 한다.
따라서 수필문장에 있어서도 솔직함과 꾸밈새 없는 소박함이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수필문장으로서의 가치가 없으며 거짓된 글이 되고 만다.
특히 수필을 읽는 사람들은 대개 그 수필 속에 담긴 내용이나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인 것으로 믿는 경향이 강하다. 왜냐하면 수필이란 원래 작가가 직접 체험한 일이나 갖고 있는 생각 따위를 사실 그대로 표현한 문학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 사실에 바탕을 두고 쓰여지는 것이 수필의 본질이며, 특성이다.
그러므로 수필의 문장이나 내용이 솔직하지 않고 거짓이나 꾸밈새가 있어도 독자들은 그것을 사실인 것으로 믿거나 착각하기 쉽다. 또 이렇게 되면 작가는 독자들을 속이거나 기만한 것이 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수필의 문장에 꾸밈새가 엿보이고 흡사 분칠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위장되어 있으면 독자들의 공감이나 감동을 얻기 어렵다. 오히려 거부감이나 실망감 같은 것만 안겨주기 쉽다. 반면에 ‘수수한 새색시’와 같은 소박하고 꾸밈새 없는 수필의 문장은 독자들에게 친밀감을 안겨 주고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③수필의 문장은 가급적 길지 않은 것이 좋고, 간결하고 선명해야 한다.
어떤 글의 문장이 길든 짧든, 그것은 그 글을 쓰는 사람의 자유권한에 속한다. 또 글을 쓰는 사람의 취향이나 성격, 또는 글의 종류나 글의 성격 등에 따라 문장의 길이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필의 문장이 너무 길거나 장황하면 수필의 본질적 특성이나 멋을 살리기 어렵다. 경쾌함과 산뜻함이 넘쳐 흐르는 것이 수필이 지닌 특성이자 멋인데, 수필의 분량이 너무 길거나 장황하면 이러한 특성과 멋을 살리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거움과 복잡함만 안겨주기 쉽다.
따라서 수필의 문장은 가급적 짧고 간결하면서도 그 뜻이나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선명한 것이 좋다. 더욱이 수필은 대개 그 분량이 짧기 때문에 이 짧은 분량 속에서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함축성이 있어야만 작품으로서의 성공을 거둘 수가 있다.
4 수필의 문장에는 작가의 인품과 지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어떤 사람이 쓴 글에는 그 글을 쓴 사람의 인품이나 인격, 사상이나 생각, 가치관이나 심리적 특성, 지성 등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특히 수필에 있어서는 이런 것들이 더욱 잘 나타난다.
그런 만큼 수필의 문장이 천박하거나 안이하고 지성미가 결여되어 있으면 그것은 곧 그 수필을 쓴 사람의 인품이나 인격, 사상이나 지성 등이 천박한 것으로 간주되기 쉽다. 흡사 천박한 말을 함부로 쓰는 사람의 인품이나 인격 등이 대개 부족하고 천박하게 보이는 것과 같다.
따라서 수필을 쓰는 사람은 스스로의 수양이나 각성, 또는 독서 등을 통해 자신의 인품이나 인격, 사상이나 지성 등을 높이고 그에 맞는 문장을 선택하고 잘 가다듬어 써야만 작품의 가치와 품위를 높일 수 있다. 특히 수필 초보자들은 부단한 문장 수련과 함께 자신의 인품과 인격 향상 및 사상이나 지성의 고취에 힘써야 할 것이다.
5 수필의 문장은 문법에 맞아야 하고,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며 논리적 모순이나 궤변이 없어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 문법을 알아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것은 총을 잘 다를 줄 아는 것이 군인으로서의 필수요건인 것과 같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수필을 쓰거나 쓰려고 하면서도 막상 문법에는 소홀한 경우가 많다. 또 그렇기 때문에 문법에도 맞지 않는 문장을 쓰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또한 문장 하나하나는 맞는 것 같아도 전체적으로 보면 조화를 이루지 못하거나 모순되는 글들도 보게 된다. 심지어 모순에 찬 자기 궤변만 늘어놓은 글도 있다.
이것 역시 문장이나 문법에 대한 수련 부족과 지성과 인품, 또는 논리성의 결여 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 완벽하고 가치 있는 수필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노력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 문맥과 문장의 조직
문장의 뜻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 문맥이다. 문맥이 끊어지면, 혈관이 끊어지거나 막힐 때 인체가 부자연스럽게 되는 것과 같다. 문맥은 한 단락(문단) 안에서도 이어져야 하고, 단락과 단락 사이에서도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문맥을 잇는 것은 반드시 앞의 말을 설명하듯 이어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설명하듯 하지 않아도 뜻으로 연결이 이루어지면 된다. 초심자의 경우는 설명을 붙여야 하는 것으로 알고, 문장에 군더더기를 붙여 놓는다.
문맥이 끊기거나 흐려지거나 부자연스럽고, 또는 정연하지 않은 경우는 다음과 같을 때다.
ㄱ. 앞의 문장에 이어댄 문장의 개념이 다르거나 필요가 없을 때. 논리성을 잃을 때.
ㄴ. 관련 지은 부분이 군더더기가 되고 있을 때.
ㄷ. 논조(論調)의 논리가 흐트러졌을 때.
ㄹ. 부드러워야 할 감정표현이 강한 표현이 됐을 때
ㅁ. 솔직하고 쉽게 표현해야 할 부분이 미화 분식됐을 때..
ㅂ. 앞 문장과 같은 뜻의 말이 되풀이 되었을 때.
ㅅ. 앞뒤 순서가 바뀌었을 때.
ㅇ. 추상적이거나 상징적인 말로 알 수 없게 썼을 때.
ㅈ. 문장의 음운유형(音韻類形)이 중복될 때 등이다
이상과 같이 여러 가지 형태로 문맥을 표현코자 하는 언어가 제자리에 놓여 있을 때라야 명쾌하게 통한다. 문단과 문단이 통하지 않을 땐 접속사로 이어야 할 경우가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 서로 통하도록 해야 한다. 초심자의 경우는 이것이 쉽지 않다. 문맥을 통하게 하는 일이 문장을 조직하는 일이다.
l 문맥에 대한 요소별 사례를 보자.
ㄱ. 앞 문장에 이어댄 문장 개념이 다르거나 필요가 없어, 논리성을 잃은 까닭에맥이 통하지 않는 경우
(예문) 사랑으로 살던 시절
대학 졸업을 한 달쯤 앞두고, 남쪽의 항도 여수의 조그만 2층 마루에서 목사님의 주례로 양가 식구 10여명이 모여, 냉수 한 잔 없이 초라하게 약혼식을 치르고, 한 달쯤 후에 졸업식에 약혼자가 참석해 주어서 나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주었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시골총각 티가 무척 역력했다. 그 후 졸업식을 하고 국가고시 보랴, 군입대 문제 등 산적된 인생의 중요한 결정기에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ㅡ (D 사보에서)
글의 시작이 이미 약혼식을 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문장을 끊지 않은 채 다른 말이 이어진 뒤, 다시 약혼자가 나타나는 것으로 되어있어 문맥이 통하지 않고 있다. 졸업 얘기가 앞이 나와 있는데, 또 졸업얘기가 나오고, 결혼식 얘기도 다시 나온다. 한마디로 어수선하게 논리성을 잃고 있어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l 문맥이 통하자면 다음과 같이 써야 한다.
대학 졸업을 한 달쯤 앞두고, 여수의 조그마한 2층집 마루에서 약혼식을 올렸다. 목사님의 주례로 냉수 한 그릇도 없이 치른 약혼식이었으나, 그 약혼녀가 졸업식에 참석해 줘서 무엇보다 고마웠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시골티가 역력해서 그 시절이 그리워 지기도 한다.
졸업 후로는 국가고시 준비를 해야 했고 군 입대도 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인생길은 첫출발을 한 셈이었다.
ㄴ. 앞 문장과 이어진 것이 군더더기가 되고 있을 때
(예문) 사보를 보면서
몇 년 전 겨울의 일이다. 눈이 수북이 쌓인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일이 있다. 처음에는 꺼꾸로 떨어지다가 나중에는 굴러버렸고 맨 밑바닥에선 눈으로 쌓인, 눈사람이 된 나를 발견했다. 나는 그 눈들을 헤치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보통 그런 사고를 당할 경우 죽는데 비해 나는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깨어보니 꿈이었다. (H 사보에서)
꿈 이야기를 순서대로 쓰고 있으나,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이 몇 갈래로 갈라져 있다. 180자가 넘는 글인데, 군더더기를 없애면 선명해진다. 문장은 되도록 간결해야 한다. 필요에 따라 세 마디로 할 것을 두 마디로 하고, 두 마디로 할 것은 한 마디로 해서 군더더기를 없애야 한다. 위 글을 고친다면 이렇게 써야 한다.
눈이 수북이 쌓인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밑으로 떨어졌을 때는 마치 눈사람이 된 것 같았다. 죽을 뻔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어 나왔으나, 이상하게도 실망감 같은 것을 느꼈다. 깨고 보니 꿈이었다.
ㄷ. 논조의 논리가 흐트러졌을 때(앞뒤가 맞지 않을 때)
(예문) 법과 사람의 마음
백범(白凡) 선생 암살범이 피습된 사건을 사설들이 일제히 다루고 나섰다. 그 논조가 한결같이 배후는 밝혀져야 한다고 하고, 이러한 현실을 규탄과 개탄의 목소리로 담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법이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라 해도 민족사와 정의 구현을 위해서, 범죄의 이면은 법 이전에 밝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도 의문을 금할 수가 없다. 어찌하여 애국지사를 암살한 범인이 호강을 하며 살아왔고, 배후가 가려지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인가.
암살인 안두희 씨는 이번이 두 번째의 봉변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는 법의 심판을 받고 지금까지 잘 지내온 사람이다. 이제 와서 또 피습을 당한 것은 한편으로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없지도 않다. 배후가 밝혀져야 된다고 했지만, 다 지나간 얘기가 아닌가. (회사원)
백범 선생 암살범에 대한 국민적 규탄에 동감하면서, 그런 감정이나 논리와는 다르게, 왜 그렇게까지 문제를 삼느냐는 식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글을 만들고 있다. 얼른 보기엔 작가의 도덕적 윤리관이 관대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대의와 명분을 내용으로 한 이상에는 문장으로써 일관성이 없다.
따라서 이 글은 작가의 생각이 이율배반적이어서 문맥이 통하지 않는 글이 되고 있다.
이런 글의 경우에는 강도 있는 표현으로 이어져야 한다. “법의 시효가 있고 일사부재리라는 원칙이 있다지만, 그대로 넘긴다면 민족정기라는 말도 필요 없고, 역사의 바른 길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쯤으로라도 정의감 표시가 따라야 한다. 이때의 표현은 물론 감정적이어서는 안되고 품위를 잃어서도 안 된다.
ㄹ. 부드럽게 이어져야 할 감정표현이 강한 표현으로 됐을 때
(예문) 서 리
a.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면 지난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서리라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서리란, 과수원이나 참외밭에 들어가 장난삼아 아이들이 몇 개 따먹는 것을 말한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그러했다. 불과 20십년 전의 일이 되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뿐, 도둑질로 생각되지 않는다. 어른들도 그렇게 생각해서 몇 마디 훈계로 그치고 말았다.
b. 그러나 지금은 나부터가 용서할 수 없다. 땀 흘려 가꾼 것을 훔친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 (회사원)
전원생활의 토속적 풍습을 아름다운 회상으로 시작한 글이다. 서리는 남의 것을 승낙 없이 손대는 것이지만, 작자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회상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성에 바탕을 둔 이런 추억이 a부분에서 갑자기 강한 감정표현으로 변하고 있다. B부분이 설사 오늘의 현실이라 해도, a에 이어지는 문맥이라면 승화가 되어, 사회를 보는 시각이 관조적 생활로 온건하게 나타나야 한다. “아무리 땀 흘려 가꾼 농작물이라 해도 어린 것들의 철모르는 짓을 도둑으로 몰 수는 없는 일이다”라든가 “차를 대 놓고 밤중에 도둑질을 해간다니, 서리를 하던 시절의 인심이 아쉽기만 하다” 따위로 앞 문장의 분위기와 맞아야 한다.
ㅁ. 솔직하고 쉽게 표현해야 할 것을 아름답게 쓰려고 해서 뜻을 흐리게 한 것
딸아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우리 내외는 배를 잡고 웃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전날의 일도 잊어버릴 때인데, 지난 여름의 일이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큰 충격으로 남아있으면 저럴까 싶다. (D 사보에서)
선거 유세 광경을 흉내 낸 딸아이의 행동을 쓴 글의 서두 부분이다. 시작을 솔직하게 쓰지 않고, 문장을 꾸미려고 해서 알 수 없는 서두가 되고 있다. 사실대로 쓴다면 다음과 같은 글이 될 것이다.
TV를 보다가 딸아이의 갑작스런 행동에 안사람과 배를 잡고 웃었다. 하루만 지나도 어제 일을 잊을 아이가, 지난 여름의 선거열기가 얼마나 인상적이었기에 그것을 잊지 않고 흉내를 내는 것일까.
ㅂ. 앞 문장과 같은 뜻의 내용이 되풀이 된 것
(예문) 아픈 마음
새로 맞춘 유니폼에 단발머리 나풀거리며, 언니들 꽁무니 따라다니던 신입사원 시절, 모든 게 낯설고 생소해서 어려운 친척집에 엄마 따라 놀러간 아이처럼 늘 언니들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신입사원 생활이 서툴러서 선배사원을 따라다녔다는 것으로 시작된 짤막한 문단 속에, ‘언니’를 따라다닌 얘기가 되풀이 되고 있다. 다음과 같이 써야 할 것이다.
새로 맞춘 유니폼에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언니들을 따라다니던 시절도 벌써 몇 달이 지났다. 또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렀으나, 지금은 손에 익고 몸에 배서 제법 자신감이 생겼다.
ㅅ. 앞뒤 문장의 순서가 바뀐 것
(예문) 어 머 니
올해도 어머니를 뵙고 집을 나설 때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몸조심하라고 하였다. 내가 태어난 마을은 바다가 보이는 작은 농가다. 고향을 떠난 이후, 농사일에 찌든 어머니를 뵐 때는 마음이 항상 무겁다. (회사원)
고교를 마치고 서울로 와 있는 시골 소녀가, 고향에 다녀와서 쓴 글이다. 얼른 보아서는 문맥이 통하지 않는 글이 아니다. 그러나 찬찬히 보면 처음 시작한 부분 ㅡ 서두에서 한 말이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자연스러움을 알 수 있다. 즉 밑줄 친 부분이 이 글의 끝으로 가서 붙어야 한다.
ㅇ.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말로 일관된 것
(예문) 밀알 같은 얘기
a. 친구야!
오늘도 쉼 없이 돌아가는 시계 바늘의 ‘똑딱똑딱’ 소리에 우리의 삶을 연결해 보고, 우리가 크고 작든 간에 한가지의 이상을 꿈꾸며 많이 웃고, 울고, 아파하면서 조금 더 성숙의 계단을 오르는 연습을 하지 않으련? 저녁 노을을 보니 우리들의 사랑으로 수놓은 감미로운 멜로디가 기억나는구나.
b. 교문 밖, 유난히도 마음 설레이게 했던 쥐포 냄새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충족되어야 한다며, 수업 시간에 열과 성의를 다해 눈치껏 쥐포를 뜯던 우리반 왈패들, 그리고 하나씩 떠오르는 얼굴들을 지울 수가 없구나. (D 사보에서)
편지형식으로 쓰고 있으나 첫마디에 느낌표를 쓴 것도 강한 표현이고, 추상적 상징적인 말로 장황하게 이어져 얼른 보아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b문단 속에 “계단을 오르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한 것이 글의 주제인 듯싶은데 이런 표현은 말장난이다.
b부분에서 쥐포얘기로 먹는 얘기가 튀어나와 앞의 문단과 연관이 없어 문맥이 끊어지고 있다. 문단과 문단과의 문맥이 끊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자기만이 알 수 있는 말을 쓰고 있어, 문맥이 확실치 않아 글 전체가 말장난이 되고 있다. 이러한 글들이 근래에 수필이라는 이름을 달고 마구잡이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수필 초심자는 솔직하게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상적인 말이나 상징적인 말로 꾸며 쓰는 글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아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위의 예문을 고쳐본다면 다음과 같은 글이 될 것이다.
친구야, 오늘도 하루가 흘렀구나. 우리들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노력이 그만큼 한 계단 오른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지.
저녁 노을을 보니 다시 지난날의 꿈의 환상 속으로 젖어 들어간다. 아직 미숙한 우리들이지만 이것도 하나의 성장 과정으로 치부해 두기로 하자.
하루 일을 마치고 나니 갑자기 군것질 생각이 나는구나. 우리들은 그럴 때마다 쥐포를 먹지 않았니.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미숙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 일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는구나.
ㅈ. 문장의 음운 유형이 중복될 때
(예문)
진달래 봉오리가 a터지기 시작했으니, 봄꿩 우는 소리가 들려오겠다. 뒷산에서 뻐꾸기 소리가 b들리겠으니 고향이 그리워진다.
A와 B의 표현은 이 글의 단락 속에서 같은 음운 ‘으니’가 중복이 돼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B부분은 “뒷산에선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려”쯤으로 앞의 것과 중복을 피해야 한다.
이밖에 문장의 한 단락 속에서 동질적인 접속사 ㅡ “그러나, 그런데, 하지만” 따위가 같은 말로 겹치는 것과, 어미에 붙는 ㅡ “한다, 이다, 것이다” 따위가 연달아 같은 형태로 말끝에 붙는 것은 변화를 주어야 한다. 이와 같이 같은 음운의 용어는 한 문단 안에서 피해야 좋고, 이런 용어가 자주 쓰이면 문맥은 통해도 문장이 유연하지 않다.
(3) 문장의 정감과 언어 조직
문장의 정감은 언어 조직에 따라 달라진다. 수필은 작가의 개성에 따라 형식이나 문체에 얽매이지 않고 쓰여지나, 다양한 글을 쓸 수 있다면 더 바람직한 일이다.
문장의 성격은 개성적 표현 기법에 의해 다르게 나타나나, 어떤 문장이건 언어 조직에 의해서 달라진다. 가령 ”세찬 비가 진종일 쏟아진다”를 “하루 종일 내리는 비가 아침부터 세차다” 하면 언어 조직에 의한 정감이 다르자.
이와 같이 문장은 표현기법 ㅡ 언어조직에 따라서 문장의 성격과 정감이 저마다 개성적으로 나타난다.
(예문 1) 살아가는 의미
사람은 누구나 먹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지구상의 사람들은 밤낮으로 뛰고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잘 살아보자는 욕망은 비록 그것이 채워졌다 해도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인간성을 읽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그것을 말해 준다. 이웃끼리 살면서도 교류가 없는 현실 ㅡ 이것이 곧 인간이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다.
(예문 2) 살아가는 의미
사람은 누구나 먹어야 하는 까닭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뛴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잘 살아보자는 욕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끈질기고 세차다. 물질적 풍요가 행복하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런 욕망이 채워진다 해도 과연 행복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인간성을 잃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까닭이다. 물질로만 치닫는 오늘의 인간성 부재의 현실 ㅡ 그 종착지는 과연 어디가 될 것인지……
예문은 다 ‘살아가는 의미’라는 제목으로 현실적 상황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앞의 조직된 언어가 강한 느낌을 주고, 뒤의 것은 같은 내용이면서도 조용하고 침착하다. 즉 두 편의 글이 언어의 조직에 따라 문장의 성격이 각각 다르게 나타난 예다.
(4) 문장의 호흡(리듬)
시조나 한시의 율시(律詩)처럼 구절의 글자 수가 일정한 형식을 갖춘 것을 정형시(定型詩)혹은 산문의 대칭으로 운문(韻文)이라 한다.
이러한 정형시는 외형률에 의한 음악적인 리듬이 있고, 외형적 리듬이 있으면서도 내재율이라는 리듬이 있다. 수필문장에 있어서는 이 외형률이 리듬 ㅡ 의 호흡이다.
문장은 둘 이상의 단어가 모여, 문장 조직이 되는 말의 토막 구(句)와 절(節)로 이루어 진다. 이 구절에 따르는 소리마디가 리듬이다. 이를테면 3 4/3 5/4 4/4 5조조 따위로 이루어지는 언어조직이 거침없게 읽어 나갈 수 있도록 외형적으로 짜는 것이 문장의 호흡이다. 따라서 호흡이 거칠면 구절의 조직 ㅡ 소리 마디를 줄여야 하기도 하고 늘리기도 해야 한다.
호흡이란 동물체가 숨을 쉬는 생리적 현상으로, 정상 상태에서는 반복하는 규칙이 일정하다. 그러나 문장의 호흡이란 이와 같이 일정한 반복적 리듬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불규칙성의 규칙을 말한다. 이것이 문장의 호흡이고, 이런 문장 호흡이 살아있지 않으면 유연성 탄력성이 없을 뿐 아니라 생동감이 없다.
수필문장의 호흡을 흐르는 물에 비교한다면, 잔잔히 흐르다가 여울이 되고 완만한 호흡이 되다가 굽이쳐 돌아가며, 격류가 되다가 다시 굽이쳐 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호흡이란 문장의 마디와 길이를 배열하는 데서 오는 외형적 리듬을 말한다.
(예문 1) 병원에서
간호원의 지시에 따라 겉옷을 벋었다. 의사가 없는 방안이 썰렁하다. 얼마를 기다려도 들어오지 않는다. 밖에는 환자들이 기다라고 있다. 종합병원은 어딜 가도 마찬가지다. 불평을 할 수 없어 참을 수밖에 없다. 얼마 후에야 의사가 돌아왔다.
문장마다 구절의 길이가 거의 같다. 동물의 호흡처럼 규칙성이 일정한 셈이다. 이런 글을 읽으면 자연히 가슴이 답답해진다. 유연성과 탄력성이 없으면 삭막하고, 정감이 없다. 따라서 구절의 길이를 조절해서 배열균형을 잡아야 한다. 앞을 글을 살리려면 이렇게 써야 한다.
(예문 2) 병원에서
간호원의 지시에 따라 겉옷을 벋었다. 썰렁한 방에서 특진의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으나 좀처럼 나타나지를 않는다. 밖에는 환자들이 구름처럼 기다리고 있으니 한기를 참으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종합병원은 어딜 가도 마찬가지다. 얼마를 기다린 후에야 수련의를 거느린 특진의가 나타났다.
<예문 1>보다 읽기에 훨씬 편안하다. 문장의 길이가 짧았다 길어졌다 해서 불규칙하게 배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문장의 호흡을 살리는 리듬이다.
(5) 문장의 단락(문단)
문장의 단락이란, 몇 개의 문장이 모여 한 무리로 단락을 짓는 것을 말한다. 작품을 이루는 구성에서 입체적 형태처럼 구분을 짓는 일이다.
작품이 이루어지는 데는 몇 가지 요소의 단락적 얘기들이 유기적 배열에 의해 엮어지면서 통일성을 이룬다. 그런데 근래의 수필문장 가운데는 이와 같은 문장의 단락을 소홀히 하여 토막글을 쓰는 경향이 있다. 단락적 기능에 의한 통일된 형식이 아니라 내용만을 늘어놓아 단락이 지니는 의미의 기능을 잃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 구절의 문장 얘기가 끝날 때마다 글 줄을 새로 잡아서 문단을 이루지 않아, 얘기만을 모아놓은 상태다.
앞에서 문단의 기능과 성격을 건물 구조로 비교해 보았지만, 한 건물의 내부 구조는 기능에 따라 형태별로 구분이 된다. 거실을 중심으로 내실 건넌방 공부방 서재 다목적실 화장실 주방 따위로 독자적 기능의 성격을 띠면서 유기적 배치에 의해, 하나의 건물로 통일을 이룬다.
수필문장의 단락도 그 구조적 형태가 이와 다를 바가 없다. 만일 수필문장에서 문단의 구조적 성격이 없다면, 내부 기능의 한계가 없는 겉껍데기뿐인 단순 외형의 건축물과 다를 것이 없다. 문단의 구분은 두 가지 요소로 볼 수 있다. 좁은 범위의 단순 개념에 의해 구분 짓는 경우와, 복합적 대단위의 넓은 범위로 묶는 경우다. 여하간 수필문장은 문단이 확실해야 한다.
이와 같은 문단을 소홀히 하여 토막글을 쓰는 것은, 단락의 의미와 문장의 기법을 모른다는 증거다. 따라서 이것으로도 독자의 문장 안목은 쉽게 가려진다.
(예문 1) 연탄난로
ㄱ. 단열제 시공을 하지 않은 집안인데다가 연탄을 때는 구들마저 덥지가 않아, 방 안에서도 손이 시리다. 책상 앞에 앉아 있기가 자못 힘겹다.
ㄴ. 올해는 추위가 오기 전에 아궁이 손질을 해야겠기에 아랫목 구들을 뜯었다. 가정 에네지상담소에서 천거한 기술자가 시공을 했는데도 덥질 않아 다시 뜯었다. 책임을 진다며 장담을 하길래, 남보다 세 배의 품삯을 달라는 대로 주었으나 그런데도 덥질 않다. 몇 번이고 뜯어 고쳐준다고 했기에 여러 차례 전화를 했다. 그랬으나 그때마다 그의 처가 거드름을 피우며 가로막고 나서는 바람에 딴사람을 대서 다시 손을 보았다. 그랬건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신통치가 않긴 마찬가지다. 이미 문턱을 넘어선 겨울이라서 하는 수 없이 연탄난로를 들여놓았다.
ㄷ. 연탄난로를 방안에 놓은 것은, 살림을 시작한 이래 근 30년만의 일이 된다. 석유 전기 가스 따위의 편리하고도 보기 좋은 난방기기가 흔해져서 널리 쓰이고 있으나 그 시절엔 연탄난로가 고작이었다.
세 문단으로 나누어진 위 글에서 ㄱ과 ㄴ은 굳이 단락을 짓지 않고 한데 묶어도 문맥상 부자유스럽지 않다. 그러나 ㄷ의 경우는 ㄴ에 이어지면 개념이 달라져 새로운 단락이 되지 않을 수 없다.
(6) 메모와 자료 수집
보다 좋은 수필, 보다 훌륭한 수필을 쓰기 위해선 언제나 메모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이와 함께 좋은 수필을 쓰는 데에 필요한 자료 수집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에 떠오르거나 스쳐 지나가기 마련이다. 또한 어떤 사물이나 모습, 언어 등을 보고 들으면서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오르거나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나 느낌들 중에는 누구나 흔히 가길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또 별로 가치가 없고 무의미하거나 불필요한 생각이나 느낌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생각이나 느낌 등은 번개처럼 떠올랐다가 번개처럼 사라지는 수가 많으며,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다. 불현듯 기발한 생각이나 멋진 문구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가 금세 머리 속에서 사라지거나 잊어버리는 수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인류는 문자를 발명해낸 이후 이러한 생각이나 느낌 등을 곧 기록해 놓음으로써 잊기 쉬운 것들이나 잊지 않으려는 것들을 붙잡아 두었다. 그리고 이것이 인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해 왔다.
그만큼 문자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 소중한 것이고, 기록은 우리의 삶에 있어 꼭 필요하고도 중요한 것이다. 더욱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 기록, 즉 작품 자체를 위한 기록뿐만이 아니라 작품을 쓰기 위한 메모도 더욱 필요한 것이다.
특히 수필을 쓰거나 쓰려는 사람은 수시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 사상이나 상념, 기발한 착상이나 구성, 멋진 문구나 멋진 표현, 쓰고자 하는 글에 아주 적합한 문장이나 단어, 소재나 주제 등을 그때그때 메모해 놓는 것이 꼭 필요하다. 때로는 글을 쓰는데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더라도 메모해 놓을 필요가 있다.
그날 그날의 일기나 겪었던 일들과 생각이나 느낌, 날씨, 만난사람의 이름이나 인상 등을 기록해 놓는 것도 훗날의 수필창작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 소재나 주제 등을 그때 즉시 메모해 놓는 수필가들도 적지 않다. 어떤 수필가는 불현듯 떠오르고 스쳐 지나가는 좋은 생각이나 기발한 착상, 멋진 문구나 표현 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지와 필기도구를 항상 휴대하고 다니다가 그러한 생각들이 떠올랐을 때, 그 자리가 지하철이나 버스 속이건 길거리이건, 가리지 않고 즉시 메모해 놓기도 한다. 심지어 잠을 자다가도 불현듯 깨어나서, 또는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다가도 갑자기 떠오른 생각들을 즉시 메모하는 수필가들도 있다.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이 수필가로서의 올바른 자세이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를 가져야만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다.
이를테면 수필가 김 학은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한 메모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인데, 그는 자신의 이러한 메모 습관과 수필 작법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수필의 소제를 내 생활 주변에서 찾는다. 놓쳐버리기 쉬운 사소한 일상일지라도 수필이라는 안경을 쓰고 살펴보면 좋은 소재가 되는 수가 많다.
소재가 발견된다고 바로 원고지에 옮기지는 않는다. 노트에 메모를 하고서 꾸준히 자료를 모은다. 여과를 시킨다……
반면에 이러한 수필창작을 위한 메모를 하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 심어는 이를 무시해 버리거나 필요 없는 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공연히 번거롭고 귀찮다거나 남들 보기에 창피하다는 생각에서, 또는 그것이 작품을 쓰는 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거나 불필요한 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태도이자 그릇된 생각이다. 수필을 아무렇게나 대충 쓰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정말로 좋은 수필, 훌륭한 수필을 쓸 생각이라면 이러한 태도나 생각은 단호히 버려야 한다.
불현듯 떠오르는 좋은 생각이나 느낌, 기발한 착상이나 멋진 문구 등을 그때그때 메모해 두었다가 수필 작품을 쓸 때 적절히 활용하는 자세는 흡사 훌륭한 건축물을 짓기 위해 여기저기에서 좋은 재료와 좋은 방법을 골라다 쓰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메모는 곧 좋은 수필을 쓰는데 꼭 필요한 ‘재료’인 셈이다.
메모하는 습관과 함께 좋은 수필을 쓰는 데에 필요한 또 한가지 ‘재료’는 충실하고도 풍부한 자료의 수집이다. 좋은 자료가 많이 있어야만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맛있고 훌륭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재료가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를테면 어떤 새나 곤충, 또는 어느 사찰이나 역사적 유물 등을 보고 느낀 것들을 수필 작품으로 쓸 생각이라면 우선 쓰고자 하는 대상이나 관련된 것들에 대해 풍부하고도 정확한 사전 지식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풍부하고도 정확한 사전 지식도 없이 막연히 알고 있는 지식이나 보편적인 지식만을 바탕으로 수필을 쓰게 되면 아무래도 안이하거나 평범한 내용의 수필밖에 될 수가 없다. 또 내용의 오류나 착각이 생길 수도 있다.
때로는 한 편의 수필을 쓰기 위해 그와 관련된 수많은 자료들을 모으고, 자세히 분석하며, 관련 대상에 대한 끈질긴 탐구와 세밀한 관찰을 할 필요도 있다. 특히 재료가 부족하면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없듯이 자료가 부족하면 좋은 수필을 빚기 어렵게 된다.
수필을 쓰는데 필요한 자료는 작품내용이나 관련대상에 대해 쓰여진 책뿐만이 아니라 갖가지 신문이나 잡지, 사보, 심지어 여러 가지 광고물이나 안내문 등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그야말로 수필을 쓰는데 필요한 자료는 얼마든지 널려 있는 것이다. 다만 그처럼 무수히 널려있는 자료들 중에서 어떤 것들을 찾아내고, 쓰고자 하는 글과 어떻게 적절히 결부시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두느냐 하는 것이 문제될 뿐이다.
또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분석하다 보면 그 속에서 뜻밖의 아주 좋은 소재나 주제, 기발한 착상이나 멋진 문구 등이 발견되는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속에서 인생의 새로운 진리나 의미, 깨달음, 올바른 삶의 자세 등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필 창작에 있어서의 자료 수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아예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메모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자료 수집의 필요성은 별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자료의 수집과 분석, 그리고 적극적인 활용은 좋은 수필을 쓰는데 필요한 밑거름이며, 자료와 메모는 곧 수필의 재료이자 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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