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졸문은 몇 년 전, 모 잡지에 스페인 음악에 대해 연재했던 원고의 일부를 재정리한 것이다.
스페인 고음악(단성음악에서
14세기의 초기다성음악까지)에 대한 주요 문헌을 소개하면서 말미에 음반도 소개하였으니 참고바란다.
스페인 고음악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16~7세기에 찬란한 꽃을 피웠던 비우엘라(기타의 전신) 음악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딱" 떨어진 것이 아니라 탄탄한
역사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재삼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다소간 학술적이고 딱딱한
글이라 그다지 흥미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스페인 음악의 가장 오랜 뿌리를 찾아본 데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 글을 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료들이 Youtube에 올라와 있어 링크를 추가하였다.
◆ 들어가는 말
스페인은 지리적으로 동서로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관문임과 동시에, 남북으로 유럽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예로부터 외부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
고대에는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가 지배했고, 5세기에는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비시코트족이, 8세기에는 아랍계인 무어족이 지배했으며, 15세기 말에 무어족을 몰아내고 기독교 세력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가 통일을 이루었다.
인종적으로도 복잡하여 아프리카 기원의 이베로족과 켈트족과의 혼혈인 이베로-켈트족이 대종을 이루고 있고, 아랍계인 무어족, 기원이 불분명한 바스크족, 유태인, 집시민족 등이 서로 뒤섞여 살고 있다.
언어도 매우 복잡한데 중부와 남부지방에는 까스띠야어, 동북부 지방에는 까딸루냐어, 서북부 지방에는 갈리시아어, 중북부 지방에는 바스크어를 사용하고 있다.
스페인의 이처럼 다양한 역사적 배경은 음악에 있어서도 대단히 다채로운 색채를 갖게 했는데 이러한 다양성이야말로 스페인 음악이 갖는 독특한 매력이라 하겠다.
지금부터 스페인 음악의 뿌리에 해당하는 단성음악(單聲音樂 Monophony)이 다성음악(多聲音樂 Polyphony)으로 발전해나가는 14세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겠다.
이 당시의 음악은 오늘날의 음악과 시간적으로 많은 거리가 있고, 오늘날 현대인들이 느끼고 있는 장, 단조 체계가 생겨나기 이전이라서 오늘날의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온전한 이해가 어렵다.
필자는 10여 년 전에 구입한 페로탱(Perotin 1183?∼1238?)의 음반을 듣고 이 시대의 음악이 단순하고 재미가 없을 것이란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깨어진 경험을 갖고 있다.
이 시대는 화음에 대한 개념이 오늘날과 다른데 페로탱의 음악에서 난데없이 나타나는 불협화음은 현대음악을 방불케 하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모사라베 성가 Mozarabic Chant》
BC 206년에 로마의 지배가 시작되었고, 2세기경에 기독교가 전래되었다.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415년에 비시코트족이 침입하여 3세기 동안 반도를 지배했으나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스페인에 동화되어 버렸다.
세비야의 대사제 레안델(549?~600?)과 성 이시드로(560?~636)는 비시고트족이 가져온 동방(비잔틴, 시리아)의 성가를 흡수하고 프랑스의 갈리아(Gallican)의 성가를 합하여 스페인의 독특한 성가를 확립하였다.
이 성가는 8세기 이후 아랍의 지배 하에서도 계속 사용되었는데 이를 《모사라베 성가 Mozarabic Chant》라고 한다.
‘거짓’을 의미하는 접두어 ‘Moz’에 ‘Arabic’이 합쳐져서 ‘거짓 아랍’이라는 의미인데 무어인들은 종교적으로 비교적 관대하여 이슬람교도의 지배 하에서도 기독교 전례가 허용되었다.
11세기로 들어서자 아라곤 지방에 로마의 성가가 도입되었으며, 1085년에 로마 교황청에서 전통적인 성가를 금지하고 로마의 성가를 사용하도록 함에 따라 모사라베 성가는 이후 점차 잊혀졌는데, 15세기 말에 똘레도의 대사제 시스네로스(1436~1517)가 옛 스페인 성가의 부흥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승된 네우마(Neuma) 악보에는 선이 그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음악의 복원이 어렵고, 불명확한 구전에 의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똘레도, 살라망까, 바야돌리드의 성당을 중심으로 불려지고 있는 복원된 성가도 지난날의 모습을 정확하게 전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음악 양식으로서는 매우 긴 멜리스마(Melisma 장식적인 선율)가 특징인데 알렐루야에서는 그 마지막 음절에 200~300개의 장식적인 선율이 붙어 있다.
스페인 음악의 특징 중의 하나인 장식적인 선율이 이 때에 벌써 나타나고 있음이 무척 흥미로운데 이는 아라비아 음악에 나타나는 장식적인 선율이 스페인 음악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제목 : Chant
Mozarabe - Cathedrale de Tolede (15th C.) 15세기 똘레도성당 판본
연주 : Marcel
Peres(dir.), Ensemble Organum
녹음 : Harmonia Mundi
HHMC901519
◆《칼릭스티누스 사본 Codex Calixtinus》
옛날,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서 한 목동이 숲 속에서 신비스럽게 빛을 발하는 별빛을 따라가본 즉 무덤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당시의 주교인 테오데미로(Teodemiro)가 예수의 제자인 성 야곱(산티아고)의 무덤임을 확인함으로써 그 자리에 지금의 성당이 건축되기 시작했다.
야곱은 생전에 세상의 끝에 가서 전도를 하겠다고 했는데 당시 지구는 네모난 것으로 생각했다고 볼 때 이베리아 반도의 서쪽 끝에 해당하는 갈리시아가 세상의 끝이 된다.
그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전도 활동 후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헤롯왕에게 붙잡혀 목이 잘려 죽었다.
그 후 2명의 제자들이 생전에 전도활동을 했던 갈리시아 지방으로 왔다고 하는데 그 후에는 소식을 모르다가 이 전설 같은 발견과 함께 순례의 길이 시작되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기독교의 3대 성지이며 이 순례의 길은 1985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괴테는 “유럽은 산티아고를 순례하면서 생겨났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유럽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년간 50만 명이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성행하였다고 한다.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다녀간 후 1993년에는 500만 명이나 다녀갔다고 한다.
《칼릭스티누스 사본》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서 발견되었는데 단성성가인 그레고리오 성가가 12세기에 이르러 다성음악으로 변해가는 초기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 음악사적인 가치가 높다.
이는 13세기 말의 노트르담 악파의 오르가눔보다는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1세기 이상이나 빠른 것이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모두 13종의 음반이 있는데 그 중 "Anonymous 4"라는 여성 4중창단이 연주한 《산티아고의 기적》이라는 음반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다.
이 중창단은 이 음반 외에도 여러 음반을 냈는데 바이브레이션이 없는 청아한 음색으로 격찬을 받은 바 있다.
수도승들이 노래하는 성가도 아름답지만 여성 4중창단의 이 노래는 마치 천사의 울림인 양 넋을 잃게 한다.
레스네가 이끄는 디스칸투스의 연주도 무척 좋은데 인원 수가 많아 다소 무겁게 느껴진다.
◆《성모 마리아 찬가집 Cantigas de Santa Maria》
제목 : Catigas de
Santa Maria - Santa Maria, strela do dia(CSM 100)
연주 : Antequera
녹음 :
ALPHA 3760014195013
711년부터 시작된 아랍의 스페인 지배는 모든 영역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데, 음악면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카톨릭 군주인 알폰소 10세(Alfonso X : 1221~1284)는 ‘현명한 군주 El Sabio’로 불리는데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쯤에 해당하는 왕이다.
그가 편찬한 《성모 마리아 찬가집》에서도 아랍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는데, 아랍식 복장을 하고 아랍의 악기를 든 연주자들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아랍에 의하여 많은 악기와 음악이론들이 스페인에 전해졌고 이들은 전 유럽에 확산되어 서양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정시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스페인 운문의 창시자라고도 불리는 알폰소 10세는 이 방대한 찬미가를 집대성했는데 갈리시아(스페인 북서부 지방) 언어로 쓰여졌다.
이는 까스띠야어 보다도 갈리시아어가 보다 음악적이며 시적이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알폰소 10세는 스스로를 ‘성모 마리아의 음유시인’라고 지칭한 것처럼 직접 작곡을 하고 가사를 썼다.
400여 곡의 찬미가는 여러 능력 있는 음악가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는데 당시 스페인뿐만 아니라 국외의 유명한 시인과 음악가들이 모두 협력하여 집대성한 것이다.
특이한 점은 당시 기독교와 대치상태에 있었던 아랍적인 요소도 많이 수용되었다는 점이다.
곡집의 도처에 나타나는 잔가락은 분명 아랍적인 요소이다.
각각의 찬미가는 나레이션 파트가 있으나 10, 20, 30번처럼 각 10의 단위로 나눠지는 곡들은 나레이션이 없고 알폰소 10세가 직접 작곡했으므로 ‘알폰소의 성가’라고 부른다.
이 방대한 찬미가들은 여러 개의 사본이 발견되어 오늘날 고증을 거쳐 연주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엘 에스꼬리알 성당 사본, 똘레도 대성당 사본, 그리고 이탈리아 피렌체 사본이 그것으로 각기 사본에는 13세기 당시의 상용악기와 연주형태 및 연주 방법 등을 알 수 있는 그림들이 상세히 그려져 있으며, 그 시대의 복식, 풍속 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로 평가되고 있다.
아래에 제 10곡 중 1절을 옮겨보았는데 갈리시아어가 얼마나 시에 적합한 언어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Rosa de beldad’
e de parecer
아름답고 고운 자태의 장미여
e Fror d’alegria e de prazer,
행복과 기쁨을 주는
꽃이여,
Dona en mui piadosa ser
비길 데 없이 자비로운 숙녀여
Sennor en toller coitas e
doores.
모든 슬픔과 근심으로부터 구원해주시는 이여.
(후렴구)
Rosa das rosas e
Fror das frores,
장미 중의 장미, 꽃 중의 꽃,
Dona das donas, Sennor das
sennores.
숙녀 중의 숙녀, 왕 중의 왕이시도다.
이 시대는 조성(調性
Tonality)이 확립되기 이전의 선법(旋法 Modality)에 기초한 음악이라 조성음악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독특한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제 100곡인 ‘Santa Maria, strela do dia’를 들어보면 이 때에 이미 선법의 교환(조바꿈)이 나타나며 선행 성부를 모방하는 캐논(Canon) 기법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의 노트르담 악파 - 단성음악(Monophony)이 다성음악(Polyphony)으로 발전해나가는 초기의 형태로 페로탱(Perotin 1238?~ )이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 의 오르가눔(Organum)보다 기법적으로 훨씬 발전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 시대의 스페인 음악이 얼마나 수준이 높았던가를 알 수 있다.
제 100곡은 가장 널리 알려진 음악인데 단순하면서도 친근감이 드는 선율이 무척 아름다워서 우리를 경건한 신앙의 세계로 인도한다.
과거 정치(精緻)한 기교로 무장된 음악에 매료된 적이 많았지만 사발이 이끄는 이 음반은 동양의 수묵화처럼 담백한 맛이 느껴진다.
제목 :
Catigas de Santa Maria(성모 마리아 찬가집)
연주 : Jordi Savall(dir.), La Capella Reial
de Catalunya Hesperion XX
녹음 : Astree E 8508
◆《칸티가스 데 아미고 Cantigas de Amigo》
1914년 마드리드의 고서점에서 12~3세기의 갈리시아의 음유시인 마틴 코다스(Martin Codax)가 남긴 《칸티가스 데 아미고 Cantigas de Amigo》가 발견되었는데 모두 7곡된 단성음악으로 아깝게 1곡은 찢겨나가고 나머지 6곡이 남아 있다.
이 중 제7곡 《아아, 파도여 너를 보러 온 것을》은 비고(Vigo)지방의 해변에서 사랑하는 연인(Amigo)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순진한 처녀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그 선율이 참으로 신선하다.
갈리시아 지방에는 음유시인(남성)이 여성이 된 기분으로 연인을 그리는 이런 형태의 노래가 유행하였다.
1분 30초 정도로 매우 짧은 음악이라서 아쉽게 느껴진다.
아래에 가사를 소개한다.
Ay ondas, que eu vin
veer,
아아 파도여, 너를 보러 온 것을
se me saberedes dizer
혹시나 들려주지 않겠는가
porque
tarda meu amigo
님은 왜 나를 잊고
sen min?
이렇게 늦을까?
Ay ondas, que eu vin
mirar,
아아 파도여, 너를 보러 온 것을
se me saberedes contar
혹시나 말해주지
않겠는가
porque tarda meu amigo
님은 왜 나를 잊고
sen min?
이리도
늦을까?
◆《라스 우엘가스 사본 Codex las Huelgas》
《라스 우엘가스 사본》은 스페인의 부르고스 지방의 라스 우엘가스 수도원에서 발견된 것으로 13세기의 다성음악의 발전과정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12~3세기에는 저음 성부(테너)를 성가의 선율을 사용하지 않고 새로이 작곡된 선율을 사용한 곡도 전례에 사용되었는데 이를 콘둑투스(conductus)라고 부른다.
이 형식의 두드러진 특징은 저음 성부인 테너 위의 여러 성부가 같은 리듬을 갖는 것, 리듬선법(Rhythmic Mode)을 사용하고 있는 것, 모든 성부가 동일한 가사를 갖는 것이 특징이다.
리듬선법이란 가사를 노래할 때 일정한 리듬에 의해 부르는 방식을 말하는데 영시(英詩)를 리듬에 맞추어 낭송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레스네의 감독 아래 연주하는 디스칸투스는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중창단인데 고음악 부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음악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도 충분히 아름다운 음악이지만 약간의 시간을 투자한다면 빛 바랜 옛 음악이 살아서 다가오는 새로운 기쁨을 맛보게 된다.
마치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비춰지는 영롱한 빛의 스펙트럼처럼 단순함 속에 다채로운 색채를 담고있는 디스칸투스의 연주를 깊은 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서 들었을 때의 잔잔한 기쁨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제목 : Codex
la Huelgas(라스 우엘가스 사본)
연주 : Brigitte Lesne(dir.), Discantus
녹음 : Opus 111
OPS 30-68
◆《몬뜨세라뜨의 붉은 책 Llibre Vermell de Montserrat》
11세기에 건립된 몬뜨세라뜨 수도원은 바르셀로나 북부의 험한 바위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예수회를 창설한 성인 이냐시오 로욜라(1491~1556)는 바스크 사람인데 이 수도원에 있는 《검은 성모상 La Moreneta》 앞에서 3일간의 긴 기도 끝에 영적으로 장님의 상태에서 영안이 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검은 성모상은 많은 기적을 행한 것으로 유명하며 대부분이 카톨릭 신자인 까딸루냐 사람들에게 이 수도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수도원은 프랑꼬 독재정권이 까스띠야어를 제외한 모든 언어를 공식행사에서 금지하는 억압 하에서도 까딸루냐어로 예배를 드렸을 만큼 까스띠야에 예속되지 않는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온 상징적인 장소이다.
몬뜨세라뜨 수도원은 세레롤스 신부, 솔레르 등을 중심으로 한 몬뜨세라뜨 악파를 낳은 음악적 전통과, 이 수도원이 자랑하는 에스꼴라니아(Escolania 성가학교)는 13세기부터 이어져 온 유구한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참고로 기타의 명인 소르(F. Sor 1778~1839)도 이 성가학교 출신이다.
이 수도원에서 14세기경의 필사본으로 알려진《몬뜨세라뜨의 붉은 책》이 발견되었는데 붉은 빌로드로 표지를 싼데서 이러한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겨우 10곡밖에 안되는 곡이지만 라틴어와 까딸루냐어로 된 단성, 2성, 3성의 곡이 섞여 있고 종교음악 외에도 카톨릭 신도들이 원을 이루어 춤을 추는 민요풍의 음악도 포함되어 있는데 근엄한 카톨릭 교회에서 이러한 춤을 추었다는 사실이 매우 스페인다운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이 음반에서 스페인 음악은 근저에 민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나의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이 춤곡은 까딸루냐를 대표하는 춤인 사르다나(Sardana)의 원형으로 추측되고 있다.
제목 : Llibre
Vermell(붉은 책)
연주 : Vladimir Ivanoff(dir.), Sarband
녹음 : Dorian 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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