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모두 오셔서 시월의 마지막 밤을 함께 노래 부르며 즐기실까요?>>
연주회명: 결식 학생 돕기 위한 2010 제10회 방윤석신부만돌린자선독주회.
일시: 2010. 10. 31(일) 저녁 7시.
장소: 천주교서산석림동성당. 무료 입장.
방윤석 신부의 주일 강론
연중 제29주일 다해. 2010.10.17. hor29c10과부생떼기도.hwp
* 지난 주일 강론을 보시려면 대전마르코니 카페를 참고하십시오. 이 강론은 주일이 지난 후 다시 정리하여 이 카페에 최종 저장됩니다. http://cafe.daum.net/DS0LB
* 원하시는 공소회장님들과 희망자에게 매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강론이 길면 줄여서 사용하십시오. 이번 주일은 말전과 강론의 내용이 다릅니다.
* 전화로 말씀의 전화 듣는 법: 152 누르고 기다림-신호음 울리고 안내말 나오면-사서함번호 3217번 누름. 듣는 시간 3분. 전국 어디서나 시내전화 1통화 요금. 공소예절 중 강론시간에 스피커폰으로 대신하실 수 있습니다. 들으시려면 아래 카페로 들어가세요.
* 말씀의 전화 카페에 음성 녹음이 있습니다. http://cafe.daum.net/malssmphone
* 제1독서 : 탈출기 17,8-13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우세하였다.>
*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3,13-4,2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 복음 : 루카 18,1-8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을 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신다.>
* 제 목 : 기도는 생떼 쓰는 과부처럼 해야
‘떼법’이란 것이 있습니다. 막말로 생떼를 쓰면 돈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요즘 지자체가 되다보니 참으로 몹쓸 버릇, 아주 나쁜 버릇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겼습니다. 동네에 쓰레기장, 장례식장 등 혐오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복지시설 등 혐오시설이 아니라도 현수막 걸고 꽹과리 치고 악을 써가며 반대합니다. 내 땅에 공장을 지으려 해도 못 짓게 가로막고 악을 써가며 반대합니다. 전국 어디서나 일어나는 아주 나쁜 버릇입니다. 왜 반대합니까? 돈 뜯어내려는 심산입니다. 말을 들으니 악을 많이 쓴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받는다네요. 우리 교구 산내 천주교 공원묘원도 우리 땅인데도 불구하고 동리 사람들이 악을 써서 시신을 못 들어오게 하여 사용을 못하고 있습니다. 밤에 몰래 묻다가 동리 청년들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성당은 성당을 짓는데 동리 사람들이 악을 써가며 반대해서 1억도 넘는 돈을 동리 사람들에게 주어 무마시켰답니다. 그 돈이 어떤 돈입니까? 가난한 신자들이 아주 어렵게 티끌 모아 태산 만든 성금 아닙니까? 엉뚱한 동리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니 내 땅에 집 짓는데 아깝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전에 있던 본당도 성당 지을 때의 얘기를 들어봤더니 이웃 사람 하나가 매일 시끄럽다고 칼 빼들고 사무실에 찾아와 사무장을 위협했다고 합니다. 밤에 일하고 낮에 잠자는데 철근 자르는 소리에 잠을 못 잔다고 그랬다네요. 알고 보니 밤낮없이 할 일 없어 놀고먹고 잠만 자는 놈팽이였습니다. 신자 중에 덩치 큰 사람시켜 겁을 줘서 결국 막았다네요. 그리고 성당 주변 사람들도 서로 짜고 성당에서 돈을 뜯어낸 모양입니다.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서... 그 사람들은 염치가 없어 하나도 성당에 안 나옵니다. 사람이 죽어서 동네 안의 선산에 묻으려 하면 동네 사람들이 상여를 못 들어오게 난리를 칩니다. 돈 내놓으라고 아우성입니다. 아주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럼 돈을 뜯어낸 사람들은 그 돈을 어디다 쓰는가? 자세히 알아봤더니 꽥꽥거린 사람들이 나눠 갖고 끝난다고 합니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그렇게 경우 없이 떼쓰는 사람들 모두 잡아다 유격 훈련이라도 보내어 크게 회개시키고 싶습니다. 관청에 호소하면 동리 사람들의 동의를 구해서 동의서를 가져와야 허가해 준답니다. 동의서를 받으려면 떼쓰는 대로 돈을 줘야 하는데 적은 돈이 아닙니다. 몇 천만 원, 억 대를 달라고 하니 이런 떡을 칠 일이 어디 있습니까? 관청은 잘 중재하여 법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옛날 관청은 원님이 사정을 들어보아 부당하다 싶으면 곤장을 쳐서 따끔하게 벌주었습니다. 지금 관청은 너무 허약합니다. 국민의 소리를 듣는 것은 좋지만 이런 식으로 어거지로 떼쓰는 것 하나도 해결 못하니 비통한 맘 금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세금을 먹고 사는 공무원들이 나 몰라라! 하면 누가 해결하겠습니까? 어느 본당에서 성당을 짓는데 반대편 아파트에서 그 동안 잘 보이던 산이 안 보인다고 조망권 침해라 하여 돈 달라고 우기는 것을 본당 회장님이 슬기롭게 간여하여 돈을 안 줬답니다.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보니 산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지역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가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나라 망칠 ‘떼법’입니다. 떼법은 없어져야 합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떼법’이라고 쳤더니 너무도 많은 떼법의 사악한 사례가 나왔습니다. “헌법위에 떼법,” 또는 "우리나라는 떼법과 '배째라법'이 제일 먼저," “떼법과 무법은 우리의 DNA에 들어 있는가? 한국의 미래가 우려된다.”라는 제목의 글이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배째라법과, 떼법은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만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떼를 쓰다시피 기도를 끊임없이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싸가지 없는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재판관님들은 혹시 오늘 성경에 나오는 ‘싸가지 없는 재판관’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 고을에 한 과부가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하고 졸랐습니다. 재판관은 속으로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십니다.
오늘 복음의 과부처럼 끊임없이 떼를 쓰다시피 기도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아들을 정성으로 가르쳤고, 누구보다 소중하게 키웠습니다. 그리고 깊은 신앙심을 심어 주려 노력하며 모든 사랑을 쏟아 부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들은 자라나며 이상한 종교에 빠져 하느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친척들이 아들을 손가락질하고 미워했지만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 모든 것을 들어주시리라고 믿었던 하느님께서는 오랜 시간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평생을 건 기도 덕분에 망나니라고 불리던 아들은 완전히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을 담은 '고백록'을 써냈고, 사제가 되어 나중에는 주교의 자리까지 오르는 등 존경받는 사람이 됩니다. 더디고 더딘 기도의 응답을 인내하지 못하고 기도를 멈춰버리는 우리와 달리 이 여인, 모니카 성녀는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해서 십 수년을 꾸준히 기도하셨습니다. 방황을 하다가 하느님을 만나 회심을 하기까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인생 여정에는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인고와 사랑이 담긴 기도가 늘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 복음의 과부처럼 모니카 성녀는 끊임없이 매달리고 조른 것입니다. 꾸준한 기도,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힘 있는 무기입니다.
오늘 제1독서 탈출기 말씀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 근처에서 아말렉 군대와 전쟁을 치를 때, 모세가 팔을 벌리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쳐부순 것은 자신들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켜 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하느님 힘이 아말렉을 쳐부순 것입니다. 기도하는 모세의 팔이 쳐지면 아말렉 군사에게 패했지만, 다시 팔을 쳐들고 기도를 하면 아말렉 군사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곧 기도는 하느님 권능이 드러나는 장소이며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에 대한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기도를 함에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두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는 고달프고 힘들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끝까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억울한 과부는 단념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고 기도하면서 끝끝내 재판관에게 매달립니다. 그렇게 매달린 덕에 재판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는 들어줄 만한 것을 달라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부의 경우는 아마도 억울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과부, 고아, 장애인 등은 언제나 멸시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무튼 결론은 이렇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로서 사람은 강해지고 하느님은 약해진다." 아멘. 감사합니다. *
<<웃음한마당>> 입장 차이(듣고 보니 싸가지 없는 소리네.)
* 질서에 관한 입장 차이 : 차에 타고 있을 때는 늦게 가는 행인을 욕하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빵빵대는 운전사를 욕한다. / 남이 천천히 차를 몰면 소심운전이고, 내가 천천히 몰면 안전운전이다. / 지하철에서 남은 조금만 양보해서 한자리 만들어 나를 앉게 해야 하고, 나는 한사람 더 끼면 불편하니까 계속 넓게 앉아가도 된다. /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 남은 내가 탈 때까지 열림 단추를 계속 누르고 기다려야 하고, 나는 남이 타건 말건 닫힘 단추를 눌러서 얼른 올라가야 한다.
* 부부에 관한 입장 차이 : 남의 남편이 설거지를 하면 공처가, 내 남편이 설거지를 하면 애처가 / 남의 아내가 못 생겼으면 '그 수준에서 여자를 골랐으니 당연하지.' 내 아내가 못생겼으면 '짜샤, 내가 여자 얼굴에는 워낙 초연하잖냐?' / 마누라가 죽으면 화장실에 가서 웃고, 남편이 죽으면 시집식구 몰래 조의금부터 헤아려본다.
* 자녀에 관한 입장 차이 : 며느리는 남편에게 쥐어 살아야 하고, 딸은 남편을 휘어잡고 살아야 한다. / 남의 자식이 어른에게 대드는 것은 버릇없이 키운 탓이고, 내 자식이 어른에게 대드는 것은 자기 주장이 뚜렷해서이다. / 사위가 처가에 자주 오는 일은 당연한 일이고, 내 아들이 처가에 자주 가는 일은 줏대 없는 일이다.
* 사람의 몸에 관한 입장 차이 : 남의 흰머리는 조기 노화의 탓, 내 흰머리는 지적 연륜의 탓. / 남이 민소매를 입으면 `그래 다 벗어라 벗어.` 내가 민소매를 입으면 `어때, 시원해 보이지?`
* 식생활에 관한 입장 차이 : 서구에서 개를 먹으면 야만인이고, 한국에서 개를 먹으면 마누라한테 칭찬 받는다. / 남이 각자 음식값을 내자고 제안하는 것은 이기적인 사고방식이고, 내가 각자 음식값을 내자고 제안하는 것은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다. / 남이 외국산 담배를 피우는 것은 기본적인 애국심조차 없는 파렴치한 행위이고, 내가 외국산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담배를 맛없게 만드는 전매청에 대한 근엄한 경고이다. / 남이 술자리에 자주 가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고, / 내가 술자리에 자주 가는 것은 인생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 남이 술잔을 돌리는 것은 위생관념이 전혀 없는 것이고, / 내가 술잔을 돌리는 것은 다정다감한 정을 나누자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