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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로 옷 입자
성경: 요한계시록 16:15
[성탄전야 예배설교]
하나님은 의로우신 신(神)입니다.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 하늘이 창조되기 이전, 하나님께서 성령을 하늘의 신령한 영들에게 보여주시기 이전, 하나님께서 아들을 품에서 내보내시기 이전, 영원 전에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은 완전무결하시고 온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하늘에서 세우신 뜻은 자기 품 속에 계신 아들을 하나님과 같이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위하여 하늘을 창조하셔서 그의 나라로 확정하시고, 자신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나라와 함께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께로부터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다 받는 것이 아버지와 동등하게 되는 것임을 아셨고, 그것을 취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셨습니다. 그는 ‘오직 아버지만이 유일하신 분입니다. 비록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제게 주셨을지라도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모두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마 6:13). 아버지는 저보다 크십니다(요 14:28).’ 하시고 아버지와 동등함을 취하는 대신 자기를 낮추셔서 하늘의 천사들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 끝까지 아버지를 섬기고자 하시는 겸손한 마음과 진실한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그는 그러한 뜻을 아버지께 밝히셔서 아버지께서 주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잠시 유보하시고, 아버지를 영원히 섬기는 아들이 되셨습니다. 그것이 참 사람이십니다(빌 2:6~8).
오늘날 인본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보다 먼저 존재한 인간이 죄로 인하여 고통과 저주와 죽음을 당하자,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셔서 인간을 위해 그를 희생시키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기가 부모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먼저 존재하기 때문에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 따라 어떤 사람의 신앙이 신본주의인지 인본주의인지가 결정됩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무식하니까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야. 그저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길 바랄 뿐이야.’ 하고 생각하지만 사실 무식한 사람은 하늘에 갈 수도, 영생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도 결코 하늘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밖에 있을 때 너무 무식해서 창조주도 모르고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그를 부정하던 자들입니다. 너무 무식해서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우리가 멸망한다는 것도 모르고, 당장 오늘 죽으면 어떻게 되는 지도 깨닫지 못하던 자들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이지 무식한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요 15:16).
우리는 성경을 통해 태초 이전부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말씀이 온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것,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 그리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요 1:1~3). 우리는 하나님을 눈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이 곧 하나님이다.’(요 1:1)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을 알았고, 하늘나라를 알았고, 복음을 알았고, 성령을 받았고, 하나님 아버지를 알았습니다. 우리는 육안이 아닌 말씀으로 하나님을 뵈웠고, 그를 알았고, 그를 찾았고, 그를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시인하고, 영생을 믿으며, 성령을 의지하고,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지혜롭고 유식한 자들입니다.
세상에서는 학문이 높고 유식하더라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관하여는 무식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아는 세상의 지식으로 감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희석시키려 하는 교만하고도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말씀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자신들의 지식으로 복음을 희석시키려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복음이 가리웠다면 멸망하기로 작정된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고 했습니다(고후 4:3).
고린도후서 4장 4절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의 품속에서 독생하신 이시요, 만물보다 먼저 계신 이시요, 하늘보다 먼저 계신 이시요, 태초 이전에 아버지의 품 속에서 아버지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복음, 곧 말씀을 인하여 우리는 예수를 깨달았고, 그를 구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히 하나님을 모독하고, 말씀을 모독하고, 진리를 부정하여 자신들의 지식을 진리 위에 놓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희롱하는 이들이 얼마나 무서운 죄를 짓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신의 영혼뿐 아니라 모든 소유를 함께 가지고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불학무식하고 무가치한 인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안 이후부터는 누구 앞에서든 담대하고 강력하게 복음을 증거해왔습니다. 저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기 때문에 저는 한번도 제가 무식하다고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지식인 앞에서도 두려워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성령으로 하나님의 깊은 것을 깨달았고, 하나님의 사정을 알았고, 하나님의 의도를 알았기 때문입니다(고전 2:10~16). 그들이 갖은 노력을 다해 연구할지라도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의 만분의 일도 따라올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머리나 인간의 수고로는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식한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은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고, 호세아 6장 3절은 ‘하나님을 알자. 힘써 하나님을 알자.’라고 했으며, 4장 6절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입으로 예수를 시인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자기가 알고 믿는 바를 입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그것은 유구무언 하는 죄이며, 자기가 아는 지식을 의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하늘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마 22:2~14).
지난 30년 동안 베뢰아운동을 맹렬히 비난해온 자가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수백 페이지나 썼습니다. 그를 후원하는 교단은 그가 거짓으로 우리를 정죄하는 말들을 옳다고 인정하고 그를 보호해왔습니다. 그 교단은 1938년 일본 경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총회에서 ‘나 외에 다른 신은 없다.’(출 20:3)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한 채 일본 천왕을 신으로 인정하고, 자신들은 천왕의 백성임을 시인하여 예배 전에 일본 천황에게 절을 하는 ‘동방요배(東方遙拜)’를 하기로 결의한 바 있습니다. 그것이 시간이 흘러 변형된 것이 ‘묵도’입니다. 지구상에서 예배를 묵도로 시작하는 교회는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에만 있습니다. 그 외의 나라에는 묵도를 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서울성락교회도 묵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 교단의 지도자들은 당시 일본 고베에 있는 신사에까지 가서 죽은 천황의 귀신을 향해 참배를 하고 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이것은 죄악이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요! 회개하시오!” 하고 외친 주기철 목사는 그 총회에서 목사 직을 박탈당했고 일제에 의해 투옥되어 옥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모님은 해방 후에 공산당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결국 그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지만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서 주기철 목사를 모르는 자가 없습니다.
침례교는 당시 33명이 신사참배에 반대했다가 원산 감옥에 갇혀 그 중 19명이 순교하고 교단은 폐쇄령을 받았습니다. 당시 침례교는 ‘조선기독교’라 불리었습니다. 나중에 ‘동아 기독교’와 ‘조선 기독교’가 합하여 오늘날의 침례교가 되었습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이러한 역사를 알게 되었고 서울성락교회를 개척할 때 침례교를 선택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귀신을 자신들의 신이라고 섬기던 자들은 해방된 후 정부에서 친일파를 제거하려고 하자 급히 살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친일파라고 해서 다 제거하면 나라를 재건할 수 없다며 친일파에 대한 포용정책을 썼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신사참배를 받아들이며 생존을 도모했던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해방 후에도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베뢰아운동을 ‘귀신파’라고 비난하며 훼방해온 자를 비호하는 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저는 예수를 믿기 전에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고 나서 성경이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고 그 실상을 폭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랐습니다. 성경에는 귀신이라는 단어가 수십 번 등장하고, 간접적으로 귀신을 지칭하는 단어까지 합하면 수백 번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신을 쫓는다는 이유로 우리를 ‘귀신파’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고, 또 귀신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동방요배를 한 교단이 그 사람을 비호하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황당한 것은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앞장서서 베뢰아를 비난해온 그 사람의 신학 자체가 최근 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께서 신성뿐만 아니라 인성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그도 사람처럼 여자의 월경 주기에 맞추어 잉태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여기고,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주장이 그럴 듯하게 들릴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하나님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짐승이 먼저 지어졌고, 짐승이 태어나기 전에 우주가 먼저 지어졌고, 우주가 태어나기 전에 하늘이 먼저 있었고, 하늘이 있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기 품속에 계신 이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는 뜻을 세우셨습니다. ‘아들’이라는 말에는 ‘후사’, 곧 ‘상속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얻어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그는 기도하실 때에도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요 14:28, 마 6:13)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기도하든지 예수님을 위해서는 특별히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나이다.’라고 기도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신령한 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얻을지라도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다는 고백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내용대로 주님은 지금도 아버지 앞에서 밤낮 엎드려 간구하고 계십니다(롬 8:34).
재림의 날이 언제인지는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십니다(막 13:32). 아버지께서만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도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시고 하나님의 사정을 모두 아시지만 모든 권한을 아버지께 위임하셨습니다. 예수께서도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 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와 영원 전부터 함께 계신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것을 아실 수 있지만 그것을 행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버지의 권한을 존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영원 전에 아버지 앞에서 자신을 겸억하시고 낮추시되 천사보다 조금 못한 사람이 되기로 하셨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영적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육체라는 제한적인 물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문이 잠겨있어도 들어갈 수 있고, 아무리 먼 곳이라도 빛 보다 더 빠른 하나님의 영광으로 교통할 수 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 다음으로 초월적인 존재이지만, 천사는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러한 천사보다 잠깐 못한 ‘사람’이 되어 죽음을 맛보려 하셨습니다(히 2:9). 천사는 육체가 없기 때문에 죽을 수 없습니다. 천사가 죽는다는 것은 다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지옥 불에 들어가 영원히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왜 죽음을 맛 보려 하셨습니까? 그는 아버지 앞에 겸손한 자가 되어 아버지께서 시키시는 모든 것, 곧 죽는 것까지도 순종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명령대로, 아버지의 뜻대로 죽으시고자 하신 것이지 사람의 뜻대로, 사람의 운명대로 죽고자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자’는 지구가 생기기 전, 우주가 생기기 전, 하늘이 생기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아들이 택하신 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아직 사람이 있기 전에 사람이 되어 죽기까지 아버지 앞에 순종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결국 그는 이 땅에 오셔서 죽음을 당하시되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러한 아들을 매우 기뻐하셔서 그를 위하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곧 예수 이름을 그에게 기업으로 주셨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빌 2:7~11).
예수께서 이 땅에 인자로 나타나시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뜻하신 일입니다. 그가 전능한 하나님으로서 가장 낮아지는 방법은 하늘보다, 우주보다, 지구보다, 짐승들보다도 더 나중에 만들어진, 진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몸에 잉태하여 나타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인자로 오시는 것은 인간의 월경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인간은 그를 모시기 위해 지음 받은 존재이므로 만일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예수께서는 하와를 통해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을 나타내셨을지도 모릅니다. 하와가 마귀의 유혹을 받아 타락하자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쩔 수 없이 여자로서 마귀의 원수가 되어야 하고, 네피림처럼 잉태하는 고통과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겠다.’(창 3:15~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생령, 곧 영적 존재인 인간의 시간을 연장시키겠다는 예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람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은 969살까지 산 므두셀라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수명이 길면 하나님의 뜻이 어그러집니다. 사람의 딸들과 하나님의 아들들의 혈통이 섞여서 생령이 점점 줄어들어 하나님께서 계획했던 때까지 이 땅에 생령이 존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영이 없는 네피림들을 모두 쓸어버리시고 오직 생령의 후예인 노아와 그의 여덟 식구만 방주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수명을 120살로 제한하셨습니다.
길이가 1미터도 채 안 되는 짚으로 새끼를 꼬면 수백 미터가 넘는 새끼줄도 만들 수 있습니다. 짚은 짧지만 그것을 계속 꼬아서 잇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수명이 120년 밖에 되지 않지만 생산을 하면 그 시간을 연장시킬 수 있습니다. 여자가 자손을 생산할 수 있는 기간은 약 20년 가량 됩니다. 여자는 13살이 되면 월경을 시작하고 그때부터 배란을 하는데, 평생 배란하는 난자의 개수는 약 450개 정도입니다. 남자에게는 하루에 약 2억 개의 정자가 만들어집니다. 월경은 난자가 정자와 결합하여 인간의 시간을 연장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그리스도께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성경이 예언한 대로 처녀의 몸에 수태되셨습니다(사 7:14). 그런데 성경에서 언급된 ‘처녀’라는 말은 반드시 월경을 하는 여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여자의 몸에 잉태되어 여자의 아들로 태어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월경이란 것은 난자가 정자를 기다리는 것으로써 인자가 오실 날을 기다리는 인간의 짧은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도 육체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부활하시기 전에 주님은 시공간의 제한을 받으셨습니다. 그가 바다를 건널 때에는 배를 타셨고, 예루살렘에 죽으러 가실 때에는 나귀를 타고 가셨습니다. 그는 피곤하여 주무시기도 하셨고, 시장하여 음식을 드시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가 부활하신 후에는 문이 잠겨있던 마가의 다락방에 들어가 열한 제자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당시 건물 벽의 두께는 1미터 정도로 매우 두꺼웠습니다. 문의 두께도 약 15센티미터 가량 되었습니다. 그런 문에 빗장을 걸어놓으면 안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 아무도 밖에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계 3: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신 것입니다.
가끔 동시에 여러 사람이 환상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환상을 보더라도 내용은 서로 다릅니다. 당시 예수께서 문이 잠겨있는 마가 다락방에 들어오신 것을 본 것은 열 한 제자였습니다. 만약 어느 한 사람이 예수를 봤다면 그가 환상을 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열 한 명이 동시에 예수께서 들어오신 것을 봤기 때문에 그것은 환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너무 놀라서 예수를 영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7~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은 숨을 쉬지 않는데 예수께서는 숨을 내쉬시면서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0:22). 그가 우리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은 환상 중에 하신 말씀이 아니라 열한 제자가 귀로 똑똑히 듣는 가운데 육성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영은 음식을 먹지 않지만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준 음식을 제자들 앞에서 드셨습니다(눅 24:41~43). 디베랴 바다 앞에서도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조반을 드셨습니다(요 21:9~13).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시공을 초월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굳게 닫힌 문 안에 들어가실 수 있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사내를 알지 못하는 처녀의 몸 안에 들어가 잉태되신 사실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눅 1:34). 우리가 성령을 받을 때 문을 열어 드리지 않았지만 그가 우리의 심령 안에 들어오셨듯 그리스도도 성령으로 처녀의 몸에 잉태되셔서 열 달 동안 인자로 자라신 후에 출생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월경에 의해 수태되었다고 믿는 것은 그를 정자에 의해 잉태된 분으로 여기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죄, 곧 정욕이 없는 분이라고 했습니다(히 4:15). 그는 육체의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입니다(요 1:13~14). 그런데 우리를 귀신파라고 비난하던 바로 그 사람이 ‘예수 월경 잉태설’, 곧 예수께서 월경에 의해 잉태되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인간이 먼저 존재했고 예수께서 인간을 닮아 이 땅에 나타나신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미 태초 이전에 아버지께서 자신을 후사로 생각하실 때 인자가 되시겠다는 결심을 하셨습니다. 인간은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지고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으로 하나님을 알려 하지 않고 인간의 머리로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자는 결국 무식한 말을 하게 되고 자신은 씻을 수 없는 죄인이 되고 맙니다. 요한일서 4장 2~3절은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고 했습니다(마 1:18). 마리아가 천사에게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말하자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가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한 후에 그녀는 예수를 잉태했습니다(눅 1:34~38).
‘예수 월경 잉태설’을 주장한 자는 예수께서 사람의 몸에서 태어나셨고 사람의 피를 받았기 때문에 인성을 가지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무식한 사람입니다. 영원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 인자되실 것을 이미 작정하셨고, 그가 자신이 태어나실 거푸집으로써 창조하신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는 여자의 몸에 잉태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품속에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께서 여자의 월경에 의해 잉태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를 아담의 후손, 혹은 요셉의 아들로 보는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그를 사생아로 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자들을 적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내 피를 마시라.’(요 6:5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만약 월경에 의해 잉태되셨다면 이 말씀은 사람의 피를 받아 마시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람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피를 주셨습니다. 썩어질 사람의 피는 사람을 거룩하게 할 수도 없고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부활할 때 육체는 썩어 소멸되고 영만 몸으로 변화되어 하늘로 갑니다.
우리를 그렇게 맹렬히 비난해 오던 자의 사상이 알고 보니 적그리스도의 사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환언운동, 베뢰아운동을 그렇게 비난했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예수는 인간이 지어진 후에 인간을 따라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영원 전에 그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겸억한 고백을 아버지 앞에 하실 때 인자로 이 땅에 오실 것이 이미 정해졌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 6:53~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로마서 13장 14절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6장 15절은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살을 먹고 예수의 피를 마시고 예수로 옷 입는 자가 바로 성도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 전부터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을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생명이 피에 있다고 했습니다(레 17:11).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신령한 음료수를 마시고,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신령한 양식을 먹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신령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추위를 막기 위해 입고 있는 비싼 옷이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한 사치가 오히려 영혼에게는 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늘로서 온 것을 먹어야 하고, 하늘로서 온 것을 마셔야 하고, 하늘로서 온 것을 입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처녀의 몸에서 자기의 모습을 나타내신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십니다.
내 영혼아, 예수로 먹고, 예수로 마시고, 예수로 옷 입자!
내 영혼아, 예수로 먹고, 예수로 마시고, 예수로 옷 입자!
내 영혼아, 예수로 먹고, 예수로 마시고, 예수로 옷 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