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상설교 08 마 5:9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 찬송: 251, 453장
우리가 평안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보통 ‘걱정이나 탈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평안을 얻기 위해서 단지 우리의 마음에 있는 불안감을 없애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주위에 나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들을 제거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외부의 조건을 변경시킴으로써 만족과 평안을 누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외적인 요소들은 지속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항상 변하기 때문이며, 개인마다 그 조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은 인간의 평안을 말할 때 항상 하나님과 관련하여 말하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평안, 즉 화평은 ‘일치의 상태’ 또는 ‘복지의 상태’를 뜻한다. 여기에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화친도 포함되며,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 속에서의 조화를 포함하기도 한다. 또는 구약의 ‘샬롬’과 같은 의미로 안녕이나 평안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화평이 의미하는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나 개인과 개인 사이의 평안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더 구체적인 의미에서의 화평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구원으로부터 주어지는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해방은 마음의 평안을 허락하는데, 그 평안은 개인의 평안을 넘어서서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릴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롬 5:1의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는 말씀의 의미는 우리에게 예수님으로부터 화평이 주어지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짐으로 해서 마음의 불안이 없어지고 평안함을 누리는 상태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화평하게 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 화평의 내용인 ‘평안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내는 자’라는 의미가 되며, 그 삶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허락하신 평안함 속에서 다른 사람과 서로 뜻을 맞추고 정답고 평온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천국 백성으로서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이처럼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가지고 화평하게 하는 자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우월의식이나 열등의식을 갖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받은 평안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며, 또한 우리가 받을 위치에 있지 않음에도 하나님의 강권하신 허락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아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이러한 우월의식이나 열등의식의 한계를 벗어나서 모두가 소중한 존재임을 생각하면서, 평안의 근본 원인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평하게 하는 자는 누구인가? 화평하게 하는 자는 바로 ‘마음속에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갖지 않고 주님께서 주신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타인을 대함으로 그에게 불안의 마음이 없는 평안한 삶을 보여주는 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러한 화평의 삶을 이미 소유한 자가 되었다. 즉 인간의 화평은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공로를 통하여 인간 안에 넣어두신 평안한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노력해보아야 이런 화평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자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모든 화평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다른 어떤 인간의 노력도 이러한 화평을 이루어낼 수 없으며, 하나님과의 화목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따라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공평하게 대하신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변화된 삶을 보여주는 자일 뿐이다. 여기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가는 평안이 존재한다.
이러한 평안은,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로부터 시작된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전혀 없는 존재가 바로 우리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아무리 노력해보아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만한 것이 전혀 없기에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은 애통하는 것뿐임을 알게 된다. 아무 것도 없기에 자랑할 수 없어 애통하는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월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겸손하고 낮아져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만 모든 것을 맡기는 온유를 베푸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이러한 온유를 통하여 항상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공의로우심이 나타나기만을 바라는 존재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은 자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달아 자기의 삶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돕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을 갖는 긍휼의 삶과, 하나님을 목표로 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청결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여러 삶들을 거쳐 화평의 삶에 이르게 되는데, 주님께서 주신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타인을 대함으로 평안한 마음을 소유한 자로서의 삶을 보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힘으로 이러한 평안을 누릴 수 없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아무리 많이 배웠다 할지라도, 아무리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항상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우리 안에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 48:22과 57:21에서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각고면려(刻苦勉勵, 모든 고생을 이겨 내며 부지런히 노력함)의 노력을 통하여 내가 없어지고, 신과 같이 되는 무아등신(無我等神)의 경지에 이른다 할지라도 우리의 평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도 없지만, 만약 이를 수 있다 할지라도 내가 없어지고, 신이 되는 것은 나의 인간적인 인격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 땅에서의 참된 평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결국 내가 없어지는 것은 참된 평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노력은 결국 거짓 평안을 약속할 뿐이요, 하나님이 없는 세상적인 인간의 방법이기 때문에 인간을 거짓에 속게 만들 뿐이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겔 13:10에서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어떤 사람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灰漆)을 하는도다”라는 말씀으로 인간의 잘못된 방법의 헛된 결과를 말씀하고 계신다. 즉, 인간적으로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에는 거짓으로 판명이 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한 평안을 약속하고 계신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우리를 옛 자아에서 벗어나게 하실 때, 바로 이때 우리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을 성경은 가르쳐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통하여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주셔야만 우리에게 평안이 있다는 것이다.
렘 29:11-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회복을 말씀하시는 장면이다. 지금은 재앙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평안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요, 포로로 잡혀갔던 곳에서 본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는 소망의 약속을 지금 주고 계신다. 이 약속은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시행이 되었다. 여기에 대해 역대기 기자는 대하 36:22-23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통한 평안의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선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예표 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큰 자비를 베푸셨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바울은 엡 2:13-14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인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시키셨다.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비하심으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은 막힌 담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없애 주셨다.
따라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결코 자기 자신의 삶에 집중을 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께 평안을 받은 자요, 또 그 평안을 자기 자신 안에만 갖고 있는 자가 아니라, 그 평안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주님께서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의 참된 뜻이다. 자기 안에 이 평안을 가두어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이 평안이 주는 참된 의미를 전달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인간과의 화평을 누릴 수 있도록 참된 평안의 근원을 소개하고, 이로써 다른 사람들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소개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화평하게 하는 자의 삶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당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더 큰 능력과 더 큰 지위를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요구하심을 따라 화평을 이루어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나서서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회복되었기 때문에 이 회복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화평을 이루어내는 자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들어간 자리에 다툼이 일어난다면 나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들어간 자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야 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화평의 결과가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화평을 이루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어떤 축복이 주어지는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이 주어진다. 이 복은 사실 우리가 천국에 가서야 완성될 복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에야 우리의 삶이 완성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국의 기업을 상속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놀라운 복을 지금 우리에게 내리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이것은 우리가 나중에 천국에서 누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복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지금 맛볼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는 뜻이다. 즉 이 약속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지금 여기에서 온 세상에 공포하시겠다는 놀라운 복인 것이다. 이 세상에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공포한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이는 내 아들이니 내가 지키고 있다. 그러니 너희들은 이 사람을 건들지 말라. 핍박하지 말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평안의 근거가 된다. 이 복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우리의 신분을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보장해 주신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이 아무리 발버둥 쳐 보아야 우리가 가진 이 놀랍고 존귀한 신분을 따라올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것이다.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 대해 롬 12:18에서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는 권면을 주고 있으며, 히 12:14에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는 귀한 권고를 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을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일 뿐이다. 어느 때는 유혹에 져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흔들리는 경우도 있으며, 좌절하여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하나님과 화목한 존재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과 나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또 다른 사람과 화목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화평을 우리의 삶에서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것 뿐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천국 백성의 마땅한 의무이다. 내가 들어간 자리마다 화평이 풍성하게 드러나서,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 세상에 공포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