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하나님을 만난 제 인생을 9회말 2아웃의 극적인 상황에 비유하지만 제 인생은 이제 5회말이 끝났을 뿐이에요.”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대표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 하일성 사무총장. 그는 요즘 하나님을 만나 야구보다 더 박진감 넘치고 행복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의 인생은 이제 중반에 접어들었다. 아니 이제 시작이다. 2군에 머물러 계시던 하나님을 새로운 삶의 감독으로 모시고 4번타자, 구원투수 자리도 모두 내어드렸다.
‘예측해설’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야구해설가 하일성씨(인천순복음교회:최성규목사)가 KBO 사무총장직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프로야구계의 부흥전도사라는 애칭까지 생길 정도로 야구팬 대부분이 ‘하일성 매니아’로 자리 잡고 있었으며, 해설자의 자리를 계속 지켜주기를 간절히 소망했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에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중대한 선택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하나님을 만나 구주로 고백하게 된 얘기다.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인생길에는 항상 그를 향한 하나님의 짝사랑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그의 방황은 시작됐다. 중고등학교 시절 폭력서클에 가입해 주먹을 휘두르고 다닐 때도 하나님께서는 함께 계셨다. 우연이었을까. 돌아보면 교회를 열심히 다니지 않았던 학창시절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셨다.
“제가 다녔던 대광중학교, 성동고등학교 모두 미션스쿨이었어요. 그래서 항상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을 수 있었어요. 신실하게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귀담아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신실하지 못했음에 부끄러운 마음이 조금 들지만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셨다는 것을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다. 학창시절 함께 폭력서클에 가입해 말썽을 부렸던 친구들이 지금은 세 명의 목사 친구와 다섯 명의 장로 친구로 거듭나 변화된 인생을 함께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모르고 방황할 당시의 삶들은 그에게 많은 교훈으로 남기도 한다. “주먹으로 반장까지 했었으니 학창시절의 얘기들은 무용담에 가깝죠. 하하하.” 공으로 하는 운동은 뭐든지 좋아하고 잘했던 하일성 사무총장의 사춘기는 야구로 인해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야구 특기생으로 입학한 대학. 군인으로 참전했던 월남전. 체육교사로 부임한 양곡고등학교와 환일고등학교.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하는 곳이었다.
이렇게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채취를 느낄 수 있는 그의 삶이었지만 그에게 하나님의 짝사랑이 축복으로 다가온 것은 이제 2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몇 년 전 심근경색과 위종양제거 수술로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길 때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기 시작했다. “병원에 있을 때 옆 침대에 저보다 더 위중한 환자가 있었는데 마음도 편하고 표정이 너무 밝더라고요. 궁금했죠. 이유는 하나님이었어요.”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병원 측의 얘기에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까지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병들어 있는 그의 육신을 어루만지시며 평안한 마음도 허락하셨다.
“60년이라는 세월동안 내 인생 곳곳에서 예배를 수도 없이 드려왔지만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았던 것 같아요.” 오랜 시간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했음을 아쉬워하는 하일성씨를 교회로 인도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한때 폭력조직 서방파의 두목이었던 김태촌집사였다.
“태촌이는 저에게 좋은 친구에요. 조폭 두목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절친한 친구이기에 수감 중일 때 자주 면회를 갔었어요. 그때마다 저한테 교회를 가라고 해서 ‘너 출소하면 그때 같이 갈께’라고 약속한 것이 교회에 가게 된 계기가 됐어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찾아간 교회에서 그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게 됐다고 고백한다.
“저는 나름 완벽주의자에요. 그런데 제 믿음은 아직 고교야구 수준이라 그런지 아직은 하나님 앞에서는 수줍은 것 같아요. 새벽에 교회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기도를 하고 싶을 땐 위선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 아직 믿음의 크기가 작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프로가 되고 싶다는 하사무총장의 꿈은 그의 삶이 진정 새롭게 시작됐음을 보여줬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제 곁에 계셨어요. 한 번도 저를 혼자 두신 적이 없으셨죠. 그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야구해설가로 수많은 경기를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인생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다는 그는 아직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고 다니기에도 창피하다며 “지금껏 나를 짝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는 수준”이라며 겸손의 말을 건낸다. 하지만 그의 수줍은 믿음의 고백 가운데는 하나님께 조금씩 더 가까이 나아가려는 의지가 보였다.
대화중에 핸드폰을 꺼낸 하일성 사무총장은 “마음의 평안을 찾고 싶을 땐 태촌이한테 전화를 해요. 그 친구한테 전화하면 찬송이 나오거든요.”라며 전화를 걸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흘러나오는 통화음을 살며시 높이며 “어때요? 좋죠?” 라고 묻는 하일성 사무총장의 얼굴은 정말 평안해보였다.
인간의 연약함을 절실히 느끼며 살게 됐다는 하일성사무총장. 방황하던 청년 하일성에게도, 죽음의 문턱에 섰던 노년의 하일성에게도 하나님께서는 한없는 사랑을 부어주셨다. 그는 이제 5회를 마치고 6회를 시작하는 새 삶을 하나님께 모두 맡겼다. 변화되어 하나님께 조금씩 다가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아이굿뉴스 정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