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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동을 거처 차이나타운 그리고 월미도까지 (2부)
2012년 3월1일
우리는 11시40분에 제물포구락부를 나와 도로 건너편에 있는 인천시역사자료관으로 갔다. 놀랍게도 건물은 멋진 한옥이었다.
< 인천시역사자료관 앞마당 >
인천시역사자료관은 인천의 역사자료를 발굴, 수집, 정리, 발간하는 기관으로서 건물은 1966년 서구식 레스토랑의 동양장을 인천시가 사들여 1966년 한옥 건물로 개축하여 인천시장관사로 사용하다가 2001년부터 인천시역사자료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역사자료관을 공개를 하지 않고 있었다. 안내문에 의하면 일요일과 휴일에는 휴관을 하는 날이란다. 시민을 위한 자료관인가? 아니면 몇 사람의 근무자를 위한 자료관인지? 알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잘 가꾸어진 정원의 테이블에서 한 컷하고 그 아래쪽 경사진 돌계단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위쪽 문에서 아래쪽에 있는 문으로 나와 인천 차이나타운 거리로 갔다.
<차이나타운의 삼국지벽화거리에서 >
먼저 삼국지벽화거리가 나온다. 너무나 유명한 삼국지라 대충 보고 지나가는데 아니다 싶었다. 충실한 내용과 그림이 그려져 있는 벽화는 완전한 작품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고도 남음이 있는 삼국지의 완벽한 재현의 명소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잘 아시겠지만 벽화의 내용은 이렇다.
‘도원결의’(桃園結義)-유비, 관우, 장비가 봉숭아 밭에서 의형제 맺으면서 시작되는 삼국지 벽화는, 77장 마지막벽화 ‘삼국귀진’ (三國歸晉)- 위, 촉, 오, 삼국은 결국 ‘사마의’에 의하여 진(晉)나라로 통합되면서 끝을 맺는다.
< 72장,벽화 - 추풍오장원(秋風五丈原) >
그중에서 내가 관심 있게 본 것은 72장 째 벽화 ‘추풍오장원’이다.
오장원에 가을바람이 분다는 뜻이지만 , 위대한 인물도 하늘의 뜻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림내용은 이렇다.
- 위수 강가에 평지보다 5장이 높은 고원지대에서 수비 일변도로 나가는 ‘사마의’의 진영을 바라보는 제갈공명의 마음은 착찹했다. 벌써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감회가 어떠했을까? 북벌의 꿈을 접어야 하는 이 불세출의 전략가 제갈공명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으리라! - ( 퍼온글 )
벽화거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얼마안가 먹자거리가 나온다.
백수 면과 비슷한 실타래과자, 신포동에서 보았던 화덕에서 부풀려 꾸어서 나온 공갈빵( 원래 공갈빵 원조는 중국임)등 유명세를 탄 상점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붐비고 있었다.
우리들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12시가 가까워지자 배 고품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주위의 간판을 보니까 중식당‘자금성’이 보인다.
< 공갈빵을 사려는 행렬들 그 옆에서 포즈 >
사천 자장면이 일품이라는 자금성에는 1박2일에 나오는 은초딩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고 다녀갔다는 글씨도 선전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앞에는 조용하였다. 11시58분인데 다른 식당 앞에도 조용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홀 안은 벌써 손님이 꽉 차 있었다. 그리고 줄을 서 기다려야 했었다. 우리가 5번째다.
주문을 받으란다, 사천 자장면 4개와 사천 탕수욕을 시켰고 조금 있으니까 방에서 1팀이 식사를 끝내고 나온다. 그런데 앞줄에 서너 팀이 있는데도 우리를 먼저 들어가라고 한다. 이상하다 했는데 알고 보니까 앞에 팀들은 자장면만 시켰고 우리는 요리1개를 시켰더니 특별로 방을 먼저 할애했고, 자장면만 시킨 팀은 홀에서 자리가 비도록 기다리는 모양이다.
< 매콤한 사천탕수육에다 고량주 한잔 >
< 자금성에 들어가려고 많은 사람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
12시 54분 점심을 끝내고 나오는데 깜짝 놀랐다. 많은 사람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리는 맛나게 먹었다. 보통자장면보다 분위기가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더 맛이 있게 느껴졌으나 특별한 맛은 잘 모르겠다. 사천탕수육은 기존의 단 맛에 매콤한 맛이 더해져 괜찮았다.
< 태화원인데 이집이 아까 우리가 갔던 자금성의 분점이란다.>
우리는 먹자거리에서 아래쪽으로 한 단계 내려가 좌측으로 접어들었다.
유독 식당가가 즐비하다. 개그맨 정종철님 이 sbs에서 ‘고수를 찾아서’ 프로에 수타 자장면을 직접배운 음식점 ‘태화원’도 보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길은 인천차이나타운에서 유명한 자장면 거리였다.
거리를 벋어날 즈음에 ‘공화춘’(共和春) 그리고 ‘청관’(淸館) 간판의 중식당도 보인다. 그리고 이곳 청관 자리가 자장면의 원조라고 적힌 인천광역시에서 만든 안내문도 보였다. 이 거리를 위시하여 차이나타운에는 120가구의 5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단다. 그리고 공화춘과 청관이 자장면 원조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 인천차이나타운 자장면 거리 >
자장면거리가 끝나는(시작점)지점 청관에서 우측으로 내려오면 중국의 성서(聖書) 왕의지(王義之) 선생의 동상이 보이고 그 옆에 중국문화원이 있었다.
< 성서 ‘왕의지’ 동상 >
< 한중문화원에 용의 해에 옥으로 만든 황룡이 전시도고 있었다. >
< 상설 전시실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
< 한중 문화관 입구 >
황금색이 칠해져있는 현관의 용 기둥을 지나 안내데스크에서 정보를 입수하였다. 1층은 기획 전시실이고, 2층은 한,중 문화전시관이다. 주로 중국문화를 소개하는 의류, 도자기, 토기, 공예품, 명주(술) 등이 소개 되고 있었는데 특히 올해는 용의 해인데 황옥(黃玉)으로 만든 용(龍)의 모양 등 각종 옥 공예품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청자가 전시되었는데 청아하고 은은한 깊은 내면을 느끼게 하는 청자가 단연 돋보인다. 그리고 3층은 홍보관, 4층은 공연장으로 되어 있단다. 우리는 1,2층만 잠시 둘러보고 나왔다.
< 올림프스호텔 ( 지금은 파라다이스호텔)입구 >
한중문화원에서 인천역방향으로 걸어가는데 길옆에 눈에 익은 올림프스호텔이 숱한 야화를 간직한 채 초라하게 버티고 있었다.
자금은 파라다이스호텔로 바뀌었지만, 70~80년대만 해도 인천에서 유일한 최고의 호텔이었다.
그때는 cj 인천1공장 사람들이 1차 한 잔 걸치고는 2차로 가는 코오스가 올림프스 나이트클럽이었다.
조금 과장하면 손님 중 1/5은 cj 인천1공장 사원들이었다.
파라다이스 호텔을 지나 인천역으로 갔다.
인천 차이아타운 거리로 들어가는 입구가 3군데나 있다. 각 입구마다 패루(牌樓)가 세워져 있는데 인천역 쪽에서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중화가(中華街)’ 라고 쓰인 제1패루가 보였다.
제2패루는 한중문화원 앞에 ‘인화문(仁華門)’이라고 쓰인 폐루가 있고, 제3패루는 자장면조형물이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끝부분에 자유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선린문(善隣門)’이라고 쓰인 패루가 있다.
인천역에서 차이나타운 제1패루(牌樓)를 보면서 사진 한 컷하고 우리는 월미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인천역 경인선 종점철로가 보였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철도의 마지막 종점. 숱한 역사(歷史)를 간직한 채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시 월미도 방향으로 그 옛날 기억을 떠 올리면서 가는데 낯선 구조물이 보인다. ‘월미도은하철도’란다. 부대시설 등 완비된 상태인데 시운전과정에서 안전에 문제가 있어서 방치 하고 있다.
공사비 850억이든 ‘월미도은하철도’는 파라다이스(올림프스)호텔에서 월미도까지 고가(高架) 모노레일을 깔아 운행하려 했는데 설계미스로 곡선커브가 완만하지 않고 급격하게 커브가 되어 시운전 때 은하철이 레일을 벋어나는 결과를 초례했다. 이것이 안전에 문제가 되어 완공 된지 2년이 넘도록 방치하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철거하자고 한다. 철거비용이 250억이나 드는데도 말이다.
개인생각이지만 곡선부분만 재시공하고 기타 등은 조속히 보완하여 월미도 상권을 확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최근 월미도 도 군사시설을 철거하고 월미도를 공원화 하였고, 영종도와 월미도간의 뱃길도 재개되었는데 말이다.
대한제분과 선창산업, 그리고 대한제당을 지나는 월미도 길을 따라 월미도에 다다르니 월미도는 확연히 변하여 옛날 월미도가 아니었다. 예전에는 월미도가 바닷가 회집 일부는 제외하고 모두 군부대 동제를 받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개방되어 공원이 되어 있었다.
보행로를 지나 월미도방향에는 월미공원 이란 아치형 입간판문과 하늘을 가르는 은하철도의 모노레일이 보인다.
월미산 아래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원과 종가의 고택이 재현 축조되어 있었다. 궁궐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아름다운 궁(窮)으로 대표되는 창덕궁의 비원으로 불리는 부용정(芙蓉亭), 부용지(芙蓉池)을 애련정(愛蓮亭), 애련지(愛蓮池)와 서로 대칭 되도록 축조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전통정원으로는 함안의 ‘국담원’, 영양군에 있는 ‘서석지(瑞石池)’가 재현되어 있었다. 특히 ‘서석지’는 담양의 ‘소쇄원’과 보길도의 ‘부용원’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정원이라고 한다.
< 월미산으로 올라가는 계단>
서석지를 돌아서 나오며는 마지막으로 안동 하회마을의 양진당(養眞堂)이 나온다. 양진당은 류성룡(柳成龍)의 형인 류운룡(柳雲龍)의 당호 이며 종택(宗宅)으로 풍산 류씨의 종가(宗家)이다.
우리들은 양진당을 끝으로 이정표를 보고 월미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그러면 다시 평지길이 나오고 2단계 월미산 정상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 계단을 다시 오르면 기념비광장이 나온다.
< 2단계 월미산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 >
<2차계단을 다 올라온 끝 지점에서 , 이곳이 기념비 광장이다>
와! ~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제껏 자유공원에서나 인천항을 감상하던 것을 오늘처음 그 반대방향인 월미도에서 인천항을 보고 있는 것이다. 처음 보는 광경이 너무나 멋지고 감개가 무량하다.
< 포(砲)앞에서 >
< 성곽 같은 포대가 전망대 역할도 하고 있었다 >
인천에 살면서 월미산을 처음 올라와보고 인천시내 쪽을 바라보니, 내가 처음 자유공원에서 월미도 쪽을 바라보았을 때가 정확하게 41년 8개월이 흘렀다. 긴 세월이었다면 긴 세월이었지만 그 숱한 지나간 세월들이 나에겐 참으로 중요한 인생 역정의 시간들 이었다.
아!~ 앞으로의 살아가야 할 시간은, 후회하지 않는 시간을 만들어 나가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나의 온몸이 전율을 감돌게 한다.
옛날에는 해안을 향해야 했을 포(砲)들은 없고 관광객을 위한 포 한대가 포대(砲臺)였음을 알려준다.
우리는 다시 새로 만든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갔다. 전망대는 철 구조물에 투명유리로 만든 전망대로 인천항을 한눈에 훤히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세워져 있었다.
< 전망대 안에서 , 뒤에 멀리 자유공원이 보인다.>
전망대는 생각보다 내부에서도 밖을 잘 볼 수 있도록 잘되어 있었고 3층탑에서는 바깥에 나가서 볼 수 있도록 별도의 전망발판이 만들어져 있었다.
포대에서도 사방을 돌면서 사진을 촬영했지만 여기서 본 사진이 더 잘 나와서 인천항 모습 지금부터 보여 드리겠습니다.
<월미공원 조감도 >
사진을 보기 전에 월미공원 조감도를 보면 조감도 좌측상단에는 친수공간과 박물관 조성예정지 이고, 우측은 월미성이 옛 전통기법으로 축조되어있다. 그리고 좌측하단 그림은 현재 우리가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고, 우측하단에는 한국전통공원지구가 만들어져 있는 곳이다. 우리가 거쳐 온 창경궁 정원 부용정에서 풍산류씨의 종가 양진당 등이 재현된 곳이다.
전망대에서 본 사진의 인천항과 주변의 모습입니다.
< 제5부두 그리고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빌딩이 송도>
< 건너편 좌측이 제2부두, 가운데가 제3부두, 우측 컨테이너가 4부두 >
< 인천 내항의 모습, 건너편 좌측이 자유공원 그리고 중앙은 제1부두 >
< 바로아래가 제6부두,싸일로 옆이 제7부두, 건너편이 제8부두이다.>
< 인천항 독크, 외항에서 내항으로 입출입하는 독크(Dock)이다, 인천대교가 보인다. >
< 전망대 3층 탑에서 바깥으로 나오면 전망대 발판이 있다 >
전망대에서 인천항 전체를 둘러보았는데 인천항의 본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전망대를 내려와 다시 기념비광장을 지나서 월미산 정상에 도착한 시각은 14:53분이었다.
< 월미산 정상이 눈앞에 >
< 월미산 정상을 오르는 길 , 저 아래에 전망대가 있다 >
< 폼은 없지만 생각이 깊은(?)사람 >
월미산 정상에는 방위표시가 되어 있는 원 가운데 에는 108m 라고 표시 되어 있었다.
인천에 살면서도 개방한지 11년이 되었으나 오늘 처음 월미산에 올라온 터라 모두들 독사진으로 기념을 대신했다.
< 월미산에서 올라 올 때와 반대 방향인 테마파크로 내려오는 길 >
<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 있는 ‘이별의 인천항’ 비문 옆에서 >
< 월미도에서 바다를 접힐 수 있는 곳에서 멀리 영종도 신도시가 보인다. >
월미도문화의 거리에는 휴일을 맞이하여 바다를 접할 수 있는 구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봄날을 바다에서 만끽하고 있었다. 영종도 신도시가 바다에 떠 있는 신기루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 인천에서 상권이 활발한 곳 중 하나인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서 >
< 늦게 합류한 키다리 키다리 KS와 함께 바다와 영종도를 배경으로 >
15시25분 개인사정이 있어 늦게 합류한 키다리 KS와 ‘문화의거리’에서 만났다. 옛날 지금의 연안부두가 완공되기 전에는 이곳 월미도까지 와서 회를 먹곤 하는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작약도, 영종도 가는 선착장 주위가 횟집이 번창하던 때였으나 지금은 새로운 인테리어로 단장하고 ‘문화의거리’라하여 문화 산책길이 조성된 횟집에 상권이 밀리는 이곳에서 그 옛 횟집을 찾아 그때를 생각하며 회포를 나누었다. 그러나 다행이도 주변 놀이기구 터는 아직도 활발한 것 같았다.
< 옛 횟집에서 회포를 나누며 부라보! >
그때는 몇 개 안되는 놀이기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테마파크로 조성되면서 놀이기구가 새로운 것 들이 더 많이 설치되어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이용하고 있었다.
다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은하철도가 레일을 재 개조하여 기 완공된 인프라를 썩히지 않고 완공하여 월미도 상권에 더 보탬이 되길 바라면서 인근 정류소에서 버스를 타고 인천역에 도착 하니까 17시 50분이었다.
68년 입사동기 4명이 함께 모였고, 후배 C님까지 합세한 5명은 의기투합하여 인천역에서 동인천역까지는 걸어서 가기로 하였다.
인천시내의 밤거리 모습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신포동시장을 거처 우현로의 먹 거리 골목을 지나 동인천역 앞 지하도를 지나 동인천역까지 가기로 한 것이다.
< 오전에 보았던 신포시장 닭 강정 집을 다시 찾아보았다. >
우리는 오전에 갔었던 신포시장 닭 강정 집을 다시 찾았다. 인천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닭 강정을 사기 위해였다. 집에 있을 안사람을 위해 각자가 하나씩 사려고 했는데 오전과 같이 지금도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려면 족히 30분 이상 걸릴 것 같아 그만 포기하여야 했었다.
신포시장을 나와 우현대로를 따라 동인천역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길 건너편에 ‘용동큰우물먹거리’라고 쓴 아치형 입간판이 보인다.
< 우현로 이면 먹자골목길 사람이 없어 뜸한 거리 >
우현로 골목길을 따라가면 동인천역에서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길과 합류하는 길이다.
여기도 용동우물길과 같이 과거의 번창하고 많은 사람이 붐비는 거리가 아니다. 다른 도시(都市)도 마찬가지로, 외곽지역이 개발되면서 급성장하는 주안에 밀리고, 시청마저 구월동으로 옮겨간 구월동에 밀려 밤이면 사람이 넘쳐나던 동인천과 신포동거리가 쇄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덧 동인천 역사 앞까지 오게 되었다.
지하도를 통과하여 동인천 전철역 개찰구를 통과하면서 오늘의 인천 탐방을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이 닥아 온다.
매주 목요일마다 CJ슈가클럽 회원들에게 인천근교에 있는 산들을 무리하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출발한 ‘목요산행팀’은 오늘은 특이하게 인천 도심을 옛 기억과 함께 찾아보았다.
< 동행했던 3명과 바이바이 시간 >
< 너는 무엇을 생각하나?>
18시31분, 집으로 갈 방향이 다른 3명을 태운 전철은 출발하고 2명만 동인천역 풀랫트홈에 남는다. 그들의 입가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40여 년 전 그때를 회상하면서 묘한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2부 끝-
2012년 3월12일 염영호가 쓰고 마침.
-39-
첫댓글 목요 산행팀 정말 멋져요 인천 1,2부 탐방문과 추억의 사진들을 보니 cj 인천1공장 건설당시 추억의 기억들이 주마등 같이 지나가며 그립네요
내나이 벌서 희수 적지않은 나이인데 마음은 아직 청춘 그러나 몸이 따라주지 못하네요 목요 산행팀 후에없는 삶의 추억을 만들가를...
저도 시내를 탐방 하면서 지난날이 새롭고 그때가 그리워지더군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곳을 안내해 드릴께요. 건강 하십시요.
40년전과 엄청나게 달라진 지난날 발걸음 자취 지역을 활보해 보는것도 소중한 추억이 새로우며.특히 월미도 군인부대가 철수되고 훌륭한 공원 유원지로 조성된지가 오래지요.언젠가 가본적이 있는데 정상에서 인천시와 바다 전망을 바라보니 전경이 너무나 좋더군요.올려주신 글 빠잠없이 감의 있게 잘보았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감사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올리겠습니다. 건강 하세요.
오래전 틈 날때마다 자유공원 , 수봉공원 월미도 연안부두 송도유원지
참 많이 다녀었는데... 그곳도 많이 변했군요
결혼전 인천에서 4년정도 살았는데... 그곳이 고향처럼 느껴지네요 친정집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 언니들이 그곳에 있어 그러겠죠! )
옛추억을 떠 올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된것 같아 안심이네요, 보람도 있고요.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는 것은 앞으로도 행복을 가져다 줄것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