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옆 교회 정면에 붙은 커다란 글귀가 눈에 들어 왔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만 있습니다.” 아동 문제가 미성숙 된 부모로 부터 시작된다는 일갈이다. 최진석교수의 EBS대담을 들었다. 자녀를 '교육의 대상'으로만 겁박하여 키우니, 사랑 받은 기억이 전혀 없는 불행한 자녀들을 부모들이 양산한다는 메시지이다. 자녀는 '교육의 대상'이기에 앞서, '사랑의 대상'으로 품어 주어야 행복한 사회가 된다는 그의 외침이 가슴에 남는다.
이러한 양상은 직장에서도 반복된다. 협력보다는 경쟁의 셈법으로 엘리트 코스에서 살아 남은 리더들이 조직의 장이 되면서 발현되는 증상이다. 그들은 행동이 굼뜬 직원을 못참는다. 사내경쟁과 성과관리를 통해 끝임없이 조직 내에 긴장을 조장한다. 그리고, 뒤쳐진 직원들을 가차 없이 내보낼 궁리를 한다. 그들이 성장한 학교처럼, 옆의 동료는 “돌봄과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밟아야 하는 “제거의 대상”이다. 마치 영화 “헝거게임”의 전투장 같은 조직문화를 조장한다.
초반 100미터를 잘 뛰는 선수도 있고, 후반 스퍼트를 잘하는 장거리 선수도 있다. 뭍에서 보다 물에서 더 활기찬 선수도 있기 마련이다. 지향과 자질이 다른 여러 직원들을 아우르고, 협력해서 좋은 성과를 만드는 일은 성숙된 리더의 징표이다. 사내경쟁은 미친짓이다. 경쟁은 조직 밖에서 해야 하는 일이다.
10년 넘게 사귀어온 지인의 사무실에서 차를 나누었다. 새로운 사장에 대하여 물어보니, 그 회사 사장의 모토는 “물 셀 틈 없는 관리”라고 허탈해 한다. 대면하는 직원이 마음에 안들면 빨간 체크, 아주 잘하면 파란 체크. 빨간 체크 세개면 “보직해임”이다. 이래서야 사장이 두려워 직원들이 솔직히 의견을 말할 수 있을까?
평사원을 끝내고 팀장이 되는데는 8년의 시간이 걸렸다. 보고를 하는 생활을 하다가, 보고를 받는 위치에 놓이니, 리더십이라는 키워드가 무겁게 다가왔다. 평소 따르는 멘토님에게도 리더십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말씀하시는 키워드가 제 각각이다. 리더십의 모범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직한 리더십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출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상황이 각기 다르니 리더십의 본질도 틀에 가둘 수 없는 것은 당연할 것 같다. 그렇다면 리더십은 처한 상황과 엮어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환경이 서로 다르니, 리더십의 스토리도 백인 백색 수없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순신의 리더십을 현재의 상황에 적용하여 일반화하는 것도 적절치 않고,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을 자사의 현실에 도입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그래서, 내게 요구되는 리더십의 모델을 직접 답해 보기로 했다.
지난 이십년 간 관리자의 경험속에 내게 공명되었던 리더십을 세가지로 정의해 보았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라. 관용의 미덕을 체화하라. 궂은 일에 솔선수범하라.” 그동안 멘토로 부터 혹은 경험 속에서 체득한 리더십 원칙들이다.
첫째,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라.
징키스칸의 빌라크(명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예순 베이>는 참 훌륭한 용사다. 아무리 오래 싸워도 지치지 않고 피로한 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모든 병사들이 자기같은 줄 알고 성을 낸다. 그런 사람은 지휘자가 될 수 없다.” 인간 본성에 대한 '징키스 칸'의 깊은 통찰력이 드러나는 말이다. '병사들은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춥고 배고프고 지친 병사들의 본성을 이해하라. 그들을 아끼고 돌봐라. 그래야 전쟁에 나아가 지지 않는 장수가 된다.'는 지혜를 보여주는 말이다.
사람은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자신에게 위협을 주는 사람은 배척하는 것이 본성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리더는 직원들이 불안감 없이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나와 다르다고 배척해서는 안된다. 은사이신 소설가 박기동 선생님에 어느날 내게 말을 던졌다. “너는 왜 이렇게 다르니? ... 그러니 아름답지.” 다양성을 조장해야 한다. 자신을 돌봐주고 이해하여 주는 리더를 향한 부하의 신뢰만큼 조직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둘째, 관용의 미덕을 체화하라.
새로운 직원을 대면할 때, 항상 세가지 약속을 한다. “화내지 않겠다. 설명해 주겠다. 성장을 돕겠다.” 일이 그르쳤다고 언성을 높이고 불같이 화를 내는 리더는 상사로서의 자격이 없다. 화를 내면 직원들은 실수를 해도 보고를 하지 않는다. 발각되어도 거짓말을 하게 된다. 거짓 정보가 흐르는 조직에 미래는 없다.
또한, 일을 시킴에 있어서, 이해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기대하는 수준과 결과물을 잘 설명해 주어야 한다. 잘 이해했는지 다시 설명토록 확인하면 더욱 좋다. “나도 눈치 코치 곁눈질로 배웠다”고 알아서 깨우치기를 기대하는 상사는 제거해야 할 폭탄이다.
직원의 성장을 돕는 일은 숭고한 선배의 역할이다. 자기가 위로 부터 받은 은혜를 후배에게도 베푸는 정신을 미국에서는 “Pay it forward”라 부른다. 동명의 영화(한국명: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도 있다. 높은 급여 보다도 좋은 동료와 함께 일하는 즐거움, 직원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기업문화가 더욱 좋은 직원을 끌어들인다.
세째, 궂은 일에 솔선수범하라.
덜 떨어진 어떤 CEO가 쓴 글을 읽었다. “CXO는 시간당 수천불의 임금을 쓰는 사람이니, 하찮은 문서 복사는 부하직원에게 시키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밥먹고 잠자는 시간도 부하에게 시켜야 옳을 것이다. 나의 시간은 귀중하고, 부하의 시간은 덜 귀중하다는 생각 속에 신분사회를 조장하는 나쁜 바이러스가 숨어 있다. 직장일에 어느 것 하나 중요치 않은 일은 없다. 문서 복사일지언정 하지 않으면 업무가 종결되지 않는다. CEO는 경험이 많을 것이라는 이유로 의사결정과 자원배분의 주업무가 주어질 뿐이다.
직업윤리의 핵심 중 하나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부하에게도 시키지 않는 것”이다. 청나라 황제 옹정제는 이렇게 말했다. “천하가 다스려지고 않고는 나 하나의 책임이고, 이 한 몸을 위해 천하를 고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모름지기 리더라 한다면 이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한편, 리더는 부하들과 고락을 같이 해야 한다. 장수가 전쟁에 나가서는 병졸과 같이 식사하며, 울고 웃어야 한다. 어느 대기업에서 보니 임원들이 별도의 공간에서 일반 직원과 다른 메뉴를 먹는 것을 보았다. 임원이 식당과 화장실을 평직원과 따로 쓰는 조직 안에서, 직원의 충성을 기대하는 일은 부질없다.
귀하가 위의 세가지 리더십 모델을 잘 실행에 옮기더라도 훌륭한 리더십의 완성에는 한가지가 남아 있다. 진심 어린 귀하의 '돌봄 리더십'에 대하여, 직원들이 잘 알아주지도 않고 고마워하지 않더라도 초연해야 한다. 중동의 시인 '오마르 워싱턴'이 읊은 '나는 배웠다'라는 시에서 처럼, “해야할 일을 하면서 그결과에 대하여 마음을 비우는 자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웅”이다.
그러므로 항상 언제든지 “문제직원은 없고, 문제상사만 있습니다”라는 말을 기억하라. 그것이 옳은 말이다. 그만큼 리더의 업은 무거운 일이다.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리더 됨을 사양하는 것이 옳다. 위대함은 관계로 부터 나온다. 자아성찰이 부족한 저잘난 리더는 직원들의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다. <끝>
ZDNET 칼럼 전체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