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사할린의 이모저모
(30) 사할린의 어느 하루(1996.9.19일)
어제 반팔 쌰츠를 입고 나왔다가 좀 추운 감이 있어서 힘들었던 기억을 되살려 오늘은 겨울용 셔츠에 잠바 외피를 꺼내 입으니 제대로 입은 기분이다. 아침 기온이 썰렁한 것이 꼭 한국의 10월 말 날씨 같다. 공기가 상큼한 게 꽤나 상쾌하다. 몇 주 전 깎아 준 길옆 풀은 어느새 덥수룩하게 자라 제키 무게를 못 이겨 옆으로 두텁게 누워있고 자운영 꽃이 하나둘 풀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어느덧 누런색으로 물들어 가는 나뭇잎들이 가을을 느끼게 한다. 1993년 12 얼 이곳에 처음 와서 하얀 눈 속에 빨간 열매가 너무나 고혹스러워 한참이나 들여다본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 마가목 비슷한 이 나무가 랴비나 나무라는 것을 알았고 올해도 벌써 새빨간 열매와 함께 열매 주위 잎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이미 온 나무가 빨갛게 변한 것도 있다.
교육원이 세 들어 있는 21학교가 멀리 보인다. 학교 입구로 가서 항상 애들이 드나들어 와작 지껄한 현관을 지나니 언제나처럼 검은 작업복 오버 코트 차림의 뚱뚱한 청소부 아주머니가 “즈뜨라스트 뷔이체”(안녕하세요) 하며 의레적인 인사를 한다. 나도 반사적으로 “쯔뜨라스트 뷔이체” 하며 답례를 하고는 우측으로 꺾어지는 복도를 지나 교육원으로 갔다. 성 선생과 비서 레나가 출근해 있다. 성 선생한테 분기별 보고서 작성을 지시하고 병원 가기 위해 문을 나섰다.
1992년 이곳에 오기전 보통 오십 견이라고 부르는 어깨 통증 때문에 고생을 했고 침 치료와 겸해 정형외과에서 주사까지 맞고 아주 완치되었나 싶었는데 요즘 와서 오십 견이 도졌는지 잠자기가 불편할 정도로 아프다. 며칠째 이곳 통증 치료소를 다니는데 아픈 부위에 안마를 하고 약을 발라 주는데 생각만큼 빨리 안 낳는 것 같다.
버스 정거장에서 16번 버스를 기다리다 1995년 불라디보스톡 교육원 개원일로 한때 블라디보스톡 총영사관에 드나들면서 안면이 있던 당시 영사관에서 통역으로 일 한적 있는 윤점조 씨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승용차가 오자 윤점조 씨가 차를 세우고 값을 흥정하는 사이 나는 버스가 와서 타고 떠났다. 이곳은 택시가 없어 지나가는 개인 승용차 룰 택시로 이용한다. 지나가는 승용차에 손을 들면 차를 세우고 그러면 운전수에게 목적지를 이야기하고 차비를 흥정해서 오케이 하면 이용한다.
내가 탈 때는 텅빈 버스가 다음 역부터 손님이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시 중앙에 있는 콤뮤니스키 프러스 팩트 미라 거리를 지나서 내릴 때에는 만원이 되어 여유가 없다. 11시가 다되어 가는데 고물이 다된 6~7대의 고물버스에 감자 캐러 가는 학생들이 가득 실려 가는 것이 보인다. 지금 가서 얼마나 캘 수 있을까. 도착해서 작업배치받고 점심 먹고 나서 작업하면 작업시간이 서너 시간은 될까. 공산주의 정권 시대에 습관적으로 해오던 농번기에 학생 동원하는 일을 체재가 바뀌었어도 그냥 습관적으로 하는 것 같았다.
요즘 같아서는 이곳 계절이 정말 살기 좋다. 조금 있으면 그 지랄 같은 겨울이 온다고 생각하니 진저리가 난다. 때로 눈보라 치는 모습이 환장적 일 때도 있지만 그 눈보라 속을 걸을 때는 어찌할 바를 모르던 순간이 떠오르면 오싹하다. 그런 겨울보다 더 안 좋은 것은 4-5월 봄이다. 겨울 내내 내린 눈이 그 많은 개똥과 함께 쌓이고 그 눈이 봄이 되어서 녹기 시작하면 온 길은 질척거리고 조금만 잘못 밟으면 깨 똥을 밟거나 미끄러져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 정말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떠나 오기 전 나이 50세면 의례 나타나는 50 견울 한의원, 정형외과 치료 등으로 다 낳은 줄 알았더니 최근 다시 도져 지난주부터 안마시술소에서 안마치료를 받았다. 오늘은 매번 치료해주던 우리 동포 김춘옥이 바쁘다고 해서 러시아인 보조 간호사에게 치료를 받고 나왔다. 치료라야 아픈 부위를 중심으로 누르고 당기고 하는 안마에다 끝낼 때 고약 한번 발라주는 게 전부다. 보조 간호사라 그런가 시원찮다. 나는 처음 안마치료를 해준다기에 우리나라 안마사로 생각하고 우습게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의대는 아니더라도 3년제 안마 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안마하는 게 한국 안마 집에서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돌아오다 교육원 앞에서 흘레브(딱딱한 러시아 빵)를 2800루블(1$-4600루블) 주고 사들고 교육원으로 돌아왔다.
조금 있다 포로나이스크 한글학교의 이순자 선생이 전화로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온 김에 교육원에 들르겠다고 하면서 4시경에 오겠다고 한다. 매년 교육부에서 한글학교 선생님들한테 보조금으로 1~2차례에 걸쳐 100$ 씩 지원하는 게 있는데 이순자 선생은 워낙 멀다 보니 아직 지원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고 100$를 준비했다.
오후 4시경에 온다던 사람이 1시도 안 되어 나타났다. 지난번 한인회 총회 때 평소 교육원에 조금 삐딱한 유즈노사할린스크시 한국어 교육 중심학교인 제9호 학교 공노원 선생이 한국교육원이 한국어 교육을 위해 도와주는 게 별로 없다고 발언하자 뽀로나이스크시 한인회 부회장울 겸하고 있는 이순자선생이 교육원에 자주가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만하면 무엇이던 도와준다고 우리 교육원을 옹호하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바 있어서 교육원을 위해서 바른말 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100$를 건내주고 필요한 것 있으면 무엇이던 이야기하라고 했더니 한국어 읽기 3-1 12권이 필요하다고 해서 찾아 주었다. 그외 한국어 3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마침 가지고 있는 게 없어서 뽀로나이스크 제8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안식일 교회 전도사가 많이 가져갔으니 필요한 것만큼 받어서 사용하라고 일러 주었다.
두 딸이(이레나 71.3.19일생으로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대 컴퓨터 공학과 재학. 둘째딸 이유라 75.7.8 기술대 회계학과 재학) 불라디보스톡 교육원에 다니며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길래 열심히 공부해서 국제교육진흥원에 보내 거기서 공부하고 한국에서의 취업의 길도 찾아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가급적 학생들을 많이 한국에 보내 공부하고 돌아와서 앞으로 연해주 많이 진출하는 한국계 회사에 취업할 수 있게 힘써 달라고 부탁했다. 아울러 이순자 선생이 뽀로나이스크 한인회 부회장이니 그곳 교포들에게 한국에 가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널리 알리고 한국어 공부를 마치면 한국에서의 취업은 물론 이곳이나 연해주에 진출하는 한국기업에도 취업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당시 러시아는 변혁기이다 보니 반반한 기업이 없어 취업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닌데 비하여 한국어 습득자는 러시아 지역에 진출하려는 기업이 제법 있어서 취업이 비교적 용이했다.
오후 3시 사범대 한국어과 3학년 학생들이 나에게 수업을 받으러 왔는데 숙제를 너무 안 해 와 속이 상했다. 어렵다고는 하지만 양이 겨우 4쪽 분량인데 성의가 너무 없어 보였다. 수업시간에 교과내용보다는 공부하는 자세와 공부에 대해서 영어를 섞어서 쉽게 설명해 주었다. 얼마나 알아 들었으려는지.....
저녁 한국 문화반 수업이 끝난 후 반원인 김성환 의사가 러시아 전체 내과의사 회의가 흑해 연안에서 있어 한주 다녀오는 동안 진도 대신 기초 한문 수업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집에 돌아오니 집 사람이 이곳 툭 산물인 블루베리 계통의 야생열매를 이용해 이곳 사람들이 많이 만들어 먹고 있는 소크(발효액) 20여 병을 만들어 놓고 아울러 잼도 만들어 놓은 것을 보니 퍽이나 반가웠다. 물 대신 물에 소크를 타서 마시는 게 정말 좋았고 아울러 흘레브에 열매 잼을 발라 소크 음료수와 먹는 게 별미였다.
첫댓글 한만희 교육원장님은 교육원 일 뿐만 아니라
고려인들의 진로 안내도 다 하였습니다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사할린에 한국과 관련된 단체가 여럿있습니다
처음 문호가 열리면서는 한국과 인연을 맺으려는 단체가 우후죽순
처럼 생겨나 문제가 많았는데 교육원이 개원될때는 많이 정리되어서
사할린한인협회 이산가족협회 사할린한인노인회 새고려신문사 한국어 방송국
등이 전부였습니다 모두 재정이 열악해서 모두 한국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신문사
같은 경우 한국정부에서 정기적으로 도와주는대신 아파트를 구입해서 거기서 나오는
임대료로 운영하는데 도움을 주었씁니다. 문제는 아파트를 신문사 명의로눈 안된다고 해서
신문사 사장명의로 구입을 하고 한국에서 나간 교육원의 교사가 임대하는것으로 해서 도움을
주다 왔는데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