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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름나그네
작성일: 2002-10-17
이번에도 예외없이 일을 저질러 많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리고야 말았다.
착하고 부드럽게 살아볼려고 하였는데 그게 왜 잘 안되는 것일까?
내 생긴 꼬라지를 잘 아시는 분들은 인정을 하시것지만
어디로 보나 선량한 소시민의 푸근한 인상이고
때로는 시골핵교 도덕선상님같이 생긴 선량한 인상인데
산에만 들어가면 동해물과 백두산이 울릴 정도로 요란을 떠니
도대체 이해가 안가는 일이라고 절래절래 고개를 흔드실거여.
어떤 분인가는 일부러 사건을 만들기 위하여
위험과 무리를 자초하는 것은 아니냐고
의혹에 찬 눈초리로 명탐정 샬록 홈즈같은 말씸도 하신다는디
세상에 어떤 호랑말코가 저 디질 줄 모르고 위험을 자초한단 말인가?
에구!
그런데 내가 바로 영락없이 그런 인간이 되어버렸으니 이 일을 우얄꼬?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것슈!
에이! 사람이 미치면 화약을 지고 불속으로는 못들어가우.
그래! 나 미쳤수!
그렇지 않으면 내가 맨정신으로 어째 그런 일을 하겠냐구요.
전부터 불초 소생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하던 몇몇 분이 계셨느니라.
000000에서 장기복무를 하다가 알게된 분들로서
모두 형제와도 같은 애정으로 대해주시는 분들이지만
민폐 끼치는 일을 무엇보다도 죄악시하는 나로서는 뜻은 고맙지만
사양하는 게 내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전부였다.
그런 나를 지리산 성님이 파계의 길로 유혹을 하시는거여.
구나야!
진고개 촌구석까지 갈려면 얼마나 어려우냐?
너 이번에는 내 신세 한번 지거라!
요러시는 거 아니가서!
사실 그 문제로 은근히 속앓이를 하던 참이기는 했지.
대전에서 진고개까지 어프로치를 할려면 서둘러도 정오쯤은 되어야 하는데
정오쯤 진고개에 붙어서 23km나 떨어진 구룡령까지 갈려면
야간산행을 하여 자정쯤은 되어야 구룡령에 떨어진다는 얘기가 되니 왕고민 일 수밖에 더 있냐구.
한밤중에 도착하면 심이 다 빠질텐데 그 다음날은 어떡하지?.
나의 그런 왕고민을 선답자인 지리산 성님을 궤뚫어 보시고 그런 제안을 하신거여.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고 감히 청하지는 못해도 원하던 바인데 우째 반갑지 않으랴!
그렇지만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왕복할려면 그게 어디 보통 일인가?
더구나 평일에 만사를 제쳐놓고
그런 일을 해준다는 것은 여간한 정성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 파격적이고도 엄청난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야간산행을 하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어서 머리칼을 쥐어뜯고 있는데
몇몇 분이 또 다른 유혹의 바람을 넣는거여.
이왕 신세질려면 "홀딱 벗어주세유!" 하라고 부추기네!
그래서 얼굴에 철판깔고 지나친 사양은 비례라는 뻔뻔한 논리로 무장하고
휴가 전날밤 서울로 바로 쳐들어 가부럿시유.
밤11시가 넘어서 지리산 성님을 만났는데
영양보충을 해야한다며 무지하게 비싼 양고기를 사주시는데
목이 메어서 잘 안 넘어가네.(사실 나 양하고는 특별한 사이잖어!)
영양보충을 하고 자정이 넘어 숙소까지 지정해준 다음
새벽4시에 만나기로 하고 엉아는 귀가하였는데 보아하니
며칠동안 산행을 하여 아주 피로할텐데 잠시후에 또 강원도까지 차를 몰고 운행을 한다니
정말 내가 여러 사람 못할 짓 시키는 거 아닌지 모르것소이.
24시간 불가마 사우나라는 곳이 바웃돌밑이나 통수깐에서만 자던
촌사람인 나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한 곳이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들어가보니 이건 별천지가 따로 없더구만.
아직까지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속세로 눈을 돌리다보니
그렇게 좋은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야.
여관비보다 저렴하기도 하려니와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가족들과도 몇 시간씩 쉬어가기에 아주 좋더구만.
2002년 10월7일 월요일 맑음
4시10분에 지리산 성님을 만나 강원도로 향하는데 새벽이어서
그런지 길이 훤하게 뚫려있어 서울시내를 벗어나는 것도 아주 시원스러웠고
진짜 고속도로에 들어서서도 제대로 된 속도를 내가며 강원도를 향하여 달릴 수 있었어.
그렇잖아도 과속의 명수인 지리산 성님이 무인카메라에 단속되지나 않았나몰러!
아무튼 2시간30분만인 6시40분에 진고개 정상 휴게소에 도착하니
어둠이 완전히 물러가고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어.
지리산 성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이제 내가 선택한 고상길로 기꺼이 뛰어들었어.
6시50분. 해발 960m 진고개에서 급경사의 나무계단을 올라서니
주탐방로 안내판이 나오는데 현위치에서 동대산 정상까지 1.7km라고 되어 있더구만.
진고개에서 보기에는 엄청난 급경사의 오르막길 같더니
막상 올라보니 생각보다 그렇게 급경사는 아니네.
아직은 그 동안의 운기조식한 약빨이 안 떨어져서 그런지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
고도 1200이 조금 넘는 지점에 이르니 판판한 바위가 있기에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고상보따리의 무게를 체내로 이동하는 작업을 하였지.
질좋은 지름은 넣은 자동차처럼 심이 펄펄 나기에 가파른 오르막을 팍팍 차고
올라가니 동대산 정상(1433m)이구만.
안쉬고 빡시게 올라치면 40여분 정도 걸리겠지만
빚쟁이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는 없고 한시간 정도 잡으면 올라갈 것 같네요.
정상은 헬기장이 있고 오대산 주변의 웅장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확 트인 곳이어서
대자연의 신비로움이 꿈틀거리는 듯하고 호연지기를 기를려는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수양처가 되기에 족하겠더라.
8시10분 동대산에서 출발하여 두로봉쪽으로 가는데
마루금 주변의 숲은 울창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녀서 그런지 길상태는
아주 양호하고 고도차도 별로 없어 진도가 잘 나간다.
그런데 이 구간부터는 사람 피를 빨아먹는 공포의 흡혈충이 있다는디
그 이름하여 진드기라나 찐디기라나 그렇다지?
피부가죽이 얇고 약한 나로서는 당근 겁먹을 수밖에......
박달령 형님이 너무 겁을 주어서 눈을 화등잔처럼 부릅뜨고
수시로 가던 길을 멈추고 바짓가랑이와 어깨 등을 살펴보았지만 오대전선 이상없더라.
동대산에서 40여분 정도 가니 엄청나게 큰 하얀 바웃돌이 번쩍거리네.
차돌배기라는 곳으로 동대산에서 2.7km, 두로봉 3.9km가 남았다고 이정표에 쓰여있어.
20분쯤 가니 전망이 트이고 삼각점이 있는 헬기장이 나오고
이어서 안부로 뚝 떨어지니 구조위치표시 오대02-16이라고 표기된 넓은 야영장이 있더구만.
그곳에서 또 숨넘어 갈 정도로 한차례 오르막을 오르니
평탄한 마루금이 나오고 조금 더 진행하니 헬기장, 5분쯤 후에
왼쪽으로 북대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300m 진행하여 10시20분에 두로봉(1422m) 정상 도착.
10분쯤 쉬었다가 신배령쪽으로 가는데 수목이 울창한 원시림지역이고 잡목도 많다.
처음에는 공포의 드라큐라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갈수록 신경이 둔해지고
나중에 힘드니까 그때는 에라이 베라묵을 것들아 피를 빨아묵든 고름을 빨아묵든
니맘대로 하세유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아예 바짓가랭이 같은 것 쳐다보지도 않았어.
박달령 형님은 그놈들을 잡아서 10초당 얼만큼 움직이는가 관찰도 해보고
시간당 몇 마리씩 공격하는가도 살피고 했다지만 나는 그럴 여유가 없다.
빨리 구룡령으로 넘어가서 조금 쉬었다가
내일 꼭두새벽에 한계령까지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산행은 내일의 장거리 산행에 대비한 몸풀기 산행인 셈이다.
잡목의 저항은 다소 있지만 고도차가 별로 없는 평탄한 능선을 한시간여 가니
출입통제구간 두로봉-신배령이라는 안내판이 있는 것을 보니 이곳이 신배령인 모양이다.
11시45분에 신배령을 출발하고부터는 약간의 오름길이 나오기 시작하네.
응복산까지 3km 남았다는 우체국에서 만든 헝겊표지판을 지나서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는 봉우리 몇 개를 지나니 삼각점이 있는
잡초봉우리가 나오는데 응복산(1359.6m) 인 것 같아.
바람이 많이 불어 썰렁했지만 지름을 넣어달라는 신호를 무시할 수 없어서 순대를 채우고 가기로 했어.
고상보따리에서 체내로의 물체이동이 이루어진 후 1시20분 응복산 출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완만하게 올라가니
평탄한 능선이 나오다가 또 뚝 떨어지는데 그 앞에 무지막지한 봉우리가 버티고 서 있는거여.
사람 진을 뽑아먹기로 작정을 했나 왜 뚝 떨어졌다가 죽어라고 올라가야 하냐구?
안부로 뚝 떨어졌다가 눈앞에서 노란 별이 아롱거릴 정도로 목심걸고 올라가니
또 큼직한 놈들이 줄줄이 알사탕처럼 버티고 나 잡아~바라! 하고 솟아있는거여.
내일의 산행에 대비한 몸풀기 산행정도로 우습게 알았는데
이거 여기서 진이 다 뽑혀 내일 일어나지도 못하는 거 아닌지 모르것다.
신배령까지는 동네 뒷동산 오르내리듯 수월하게 지나왔는데
신배령에서 응복산까지 준비운동 좀 시키더니 응복산 넘어서부터는 아주 낙타등어리다.
응복산에서 약수산까지가 힘들다고 하더니 과연 만만치 않은 강적이구만.
이건 뭐 똥개 훈련시키는 수준이 아니라 스파르타 병사 양성 훈련장이라고나 할까!
그 빌어묵을 약수산은 곧 손에 잡힐 듯 한데 가도가도 메롱~메롱! 이구만.
그 부근에서 제일 높아보이는 봉우리가 약수산이겠거니 하고 쎄가 빠지게 오르면
그 뒤에 더 큰놈이 버티고 있고 그래서 또 죽어라하고 오르면 또 저만큼 뒤에서 메롱하고 있는거여.
우라질! 점잖은 입에서 거친 욕이 정화되지 않고 오토매틱으로 쏟아져 나온다.
평소에 전혀 써먹지 못하고 속에만 담고 있던 욕들을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구 쏟아낸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마음속의 정화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요것이 얼마나 후련한 일인지 안해본 사람은 절대로 모를끼다! ^^
훈련소 악질조교가 아무리 퉁수를 불고 거꾸로 매달아서
고롭혀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고 약수산이 지 아무리 메롱거려도 시간이 가면
지가 언젠가는 내 발아래 놓이게 되어있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가서?
3시25분. 죽어라 하고 오른 약수산은 우째 그 이름값 하나도 못하냐?
뭐 번듯한 표지석 하나도 없고 나뭇대가리에다 매직으로 써서
다 지워져 가는 것을 박달령 형님이 덧칠하고 짱돌로 땅에다 박아놓아
겨우 약수산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정도이다.
주변에는 잡초가 지맘대로 자라고 있고 못생긴 돌멩이 몇 개가 널부러져
약수산이라는 이름이 아깝구만.
급경사로 떨어지다가 조그만 봉우리 하나를 넘어 또 급경사 내리막으로 내리니
구룡령도로와 휴게소가 보이고 바로 휴게소 뒤 동물이동통로 옆을 지나게 되더구만.
3시50분. 드디어 구룡령휴게소 마당에 내려 먹이를 찾는 독수리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개눈에는 뭣만 보인다고 내가 현상금 붙은 범인을 찾는 것처럼
눈을 두리번거리며 찾는 것은 오늘밤을 안락하게 보낼 휴식처를 찾는거야.
여름같으면 아무데나 자리를 깔만한 곳이 널렸지만
영하에 육박하는 추위 속에서 쌩비박을 하다가는 강시하고 친구되기 딱 알맞다.
이미 사전정보를 입수하고 눈독을 들였지만 역시 통수깐보다 더 안락한 곳은 없는 듯하다.
휴게소 식당에서 갈비탕으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휴게소를 관리하는 분에게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넌지시 애원을 하니
장애인화장실을 이용해도 좋다는 거야.
단, 밤8시 이후에만 사용하되 동물들의 야간이동을 위하여
절대 불을 켜서는 안된다는 조건하에 숙박허가를 명받았습네다!
바람이 무지하게 불어서 몸에서 닭살같은 것이 막 돋아나더라구.
이럴 줄 알았으면 산에서 이렇게 일찍 내려올 필요가 없었는데
죽어라하고 내려와서 오뉴월 개떨 듯이 떨고 있으니 이게 무신 얼어죽을 통박이란 말인가?
두어시간을 오돌오돌 떨어가며 밖에서 서성거리다
정이나 추우면 통수깐으로 들어가니 그제야 좀 살 것 같다.
7시반이 넘어서 내 객실로 들어가 여장을 풀고 자리를 깐다음
침낭속으로 들어가 달팽이처럼 모가지만 내놓고 불을 꺼버렸다.
밖에서는 바람이 무지막지하게 불었지만 내 객실은 아늑함 그 자체이다.
코는 당분간 그 기능을 정지시키기로 하였어.
고 녀석 하나만 기능정지 시키면 만사가 다 형통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