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속에 집 한 채
이원규
내 한 몸 덥히는 일이 만만치 않다
겨우내 장작을 구하고
아궁이 속에 야금야금 군불 지피며
이내 목숨 버티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
전남 나주의 한옥 목수 김민성 형이
지리산 폐가 한 채를 트럭에 싣고 왔다
섬진강 첫 매화 필 때까지
시커먼 서까래 각목 소나무 기둥
아궁이 속에 집 한 채가 다 들어갔다
한 삽 재에 문고리 꺾쇠 꼬부라진 대못
집이 집을 먹고도 겨우 아랫목만 따스하다니!
여차하면 겨우내 솔숲 하나
일생 동안 지리산을 다 삼키겠다
지구는 이미 오래된 불구덩이
가마솥에 물이 펄펄 끓어도
사람이 사람을 먹고 겨우 한 사람만 배부르듯
도시가 농촌을 먹고 겨우 한 끼 밥상을 차리듯
자본이 지구를 먹고 겨우 주식 상한가를 치다 말듯
블랙홀 그 사건의 지평선에서
결 다른 문짝이나 어깨를 건 실강처럼
나를 지펴 당신을 태우고 불태워도
사리는 고사하고 녹슨 나사못 하나 안 보이니
어느 날 문득 당신과 나는 아무 상관없겠다
아궁이 속에 다시 불타는 집 속에서
ㅡ시집 《달빛을 깨물다》천년의 시작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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