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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자료국명: 폴란드 공화국(Republic of Poland) 지리 및 기후네모난 지형을 가진 폴란드는, 최대 길이가 동에서 서로 약680km, 남에서 북으로 650km에 달한다. 북서쪽은 발틱 해, 서쪽은 독일, 남쪽은 체코, 슬로바키아 공화국, 동쪽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리투아니아, 러시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폴란드 북부는 다채로우면서도 완만한 지형을 나타내는데 대부분이, 수천 개에 달하는 후빙기 빙하호와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평한 중앙 지대는 주로 농장지대로, 이곳은 폴란드에서 가장 긴 강인 비츠튜라(Vistula)강에서 농업용수를 공급받는다. 비츠튜라 강은 폴란드의 다른 강과 마찬가지로 발틱 해에서 흘러 나와 북쪽으로 흐른다. 남쪽으로 가면서 지형이 점차 높아진다. 서쪽에서는 수데텐 산맥(Sudeten Mountains)이 정점을 이루며, 동쪽은 남쪽의 국경지역을 따라 연결되어 있는 카르파티아 산맥(Carpathian Mountains)에서 정점을 이룬다. 폴란드의 최고봉은 카르파티아 산계인 타트라 산맥(Tatra Mountains)의 리시(Rysy)산이다.
숲이 폴란드 국토의 25%를 덮고 있는데, 그 숲 위를 야생 수퇘지, 사슴, 토끼가 이중으로 덮고 있다고 할 정도로 많다. 갈색 곰과 살쾡이는 산 속의 숲에 살며, 특히 고라니는 북동쪽 숲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금세기 초, 멸종 위기를 겪었던 수백 마리의 유럽 들소들이 비아로비에짜(Bialowieza) 국립공원에 살고 있다. 폴란드의 상공은 얼핏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수많은 조류들이, 도시화되고 오염된 다른 유럽지역에서보다 더 쾌활하게 살고 있다. 시골집의 굴뚝과 지붕에 둥지를 튼 황새는 정말 사랑스러워 보인다. 폴란드의 국립공원은 남동부 산악지대에 집중되어 있지만 대체로 전국에 골고루 퍼져 있는 편이다. 멋진 풍경의 공원들을 폴란드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경치가 아름다운 지역인데 반해 철저히 보호하는 것 같진 않다. 폴란드 기후는 동쪽 대륙성 기후와 서쪽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다. 그 결과, 일교차도 크고 연교차도 상당히 차이가 나서, 다양한 기상 변화를 볼 수 있다. 어떤 해에는 눈이 거의 안 오는 반면, 어떤 해에는 몇 일 동안에 눈이 아주 많이 내려 교통이 마비된다. 일반적으로 폴란드의 중부는 건조하지만, 산지는 비가 많이 내린다. 따라서 여름철은 주로 따뜻하고 여행하기에도 좋지만, 많은 햇빛이 폭우에 의해 차단된다. 역사"여기 좀 와서 보세요"라고 써 있는 폴란드의 국경에는 분명히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유럽제국의 위대한 건축가들 모두가, 폴라니인들이 정착한 10세기 이후, 이곳에서 번영되고 순화되었다. 꾸준한 문화의 유입은, 소비에트가 쇠퇴함에 따라 최근 점차 사라지고 있다.예전에는 곡창지대로써, 유럽 문화의 강력한 세력가 중 하나였던 폴란드는, 정력적이고 개화된 통치자들에 의해 번성했다. 유명한 군주 중 하나였던 카지미르 3세(Casimir III(1333-70))는 크라코프에 있는 최초 대학들 중 하나를 세웠고, 나라전역에 걸쳐 요새와 성의 다양한 연결망을 구축하기도 했다. 영토의 확장과 축소, 부와 빈곤이 다음 수세기에 걸쳐 계속되었지만, 카지미르가 구축한 확고한 기반시설로, 폴란드 대부분의 시련은 내부적인 문제보다는외부의 영향이 많았다. 내적 안정은 17세기에 와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법률도 의원 한 사람이 거부하면 인정될 수 없다는 조항으로 무능력해진 의회의 폴란드는 10년간 어떤 법도 통과되지 못하고 삐걱거리다가 좌절과 진통을 겪는다. 귀족들이 정치권을 강탈하고 방대한 토지의 실질적 종주권을 행사하면서 만사를 그들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는동안, 외국의 침입자들은 체계적으로 폴란드를 갉아먹어 갔다. 러시아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으나, 실질적인 전쟁은 타트라, 우크라이나, 코싹, 오토만, 스웨덴의 지휘하에 벌여졌다. 19세기 말까지 폴란드는 혼란과 분열 속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4백만 인구가 전쟁, 기근, 임파선종등의 전염병으로 죽어 갔고,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와 프러시아, 오스트리아는 다양한 방법으로 폴란드의 전리품을 찢어 나누어 갔다. 점진적인 경제회복에도 불구하고, 가난은 여전히 폴란드의 농촌을 휩쓸어 2천만 국민 중 5분의 1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폴란드란 나라가 '최악(worst)'이란 단어로 정의되던 시기에, 역사는 또, 1차 대전에 휘말려들게 했다. 전쟁에서, 폴란드를 지배하는 3개 강대국들의 지배적인 힘(러시아,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과 함께, 전투는 폴란드인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일어났고, 그들 대부분은 적군에 징집되어 서로간에 싸우도록 강요받았다. 인명과 생계 수단의 손실은 압도적이었다. 전후의 혼란 중, 특히 러시아의 10월 혁명에 의한 점령으로, 폴란드는 더럽혀진 국가를 위엄 있는 정체성을 가진 국가로 강화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상처를 계기로 실질적인 그 자체의 국가와 국민임을 내세우고자 노력했다. 기념비적인 이 엄청난 과제는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먹어 치우기 전인 2차 대전까지는 매우 잘 진행되었으나, 독일과 소련은 잔인하게 대부분의 폴란드인을 복종시켰고, 특히 나치는 유태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추방된 폴란드 정부는스탈린과 실질적으로 관계를 맺었으나, 이 굳건한 동맹은 폴란드인에게는 실상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소련이 나치 군수품을 빨아들이기 위해 무기가 불충분한 폴란드인들을 나치 소굴에 보내어 전투를 치르게 한 후, 다시 소련 붉은군(Red Army)에 보내진 그들을 소탕시켜, 전쟁의 영광과 폴란드 영토를 거머쥔 소련의 계략이다. 1945년까지 폴란드는 6백만명이상의 인구를 잃었고 그 중 절반은 유태인이었다.1945년 2월 알타회담에서, 루즈벨트, 처칠, 스탈린은 소련의 점령하에, 폴란드를 남겨두고 떠나기로 했는데, 그로 인해 폴란드는 스탈린식의 억압과 희생의 장소가 되었다. 스탈린 체제하에서 번영에 대한 희망이 줄어들자, 노동 단체가 늘어갔고 헌신적인 지식층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
1978년 교황 존 폴 2세 (John Paul II)의 성공적인 고향방문은 상당히 정치적 동요를 증가시켰다. 노동운동의 조직과 조합은 비도덕적인 공산주의 정부 조직보다 힘이 우세해져, 1980년경에 이르러서 정부는 더 이상 반대 세력에 대항할 힘을 사용할 위치가 아니었다. 임금 상승에 대한 초기의 요구는 이제 일반적인 정치적 경제적 함축으로 나타났다. 폴란드 노동자 대표단,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연대 조합의 깃발 하에 소집되었다. 자유 노조는 폴란드 사회전체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첫 달에 천만명의 회원이 모집되었는데, 그 중 백만 명은 공산 계급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억압의 한 세대가 지난 후, 폴란드인들은 민주주의의 자발과 혼돈에 빠진다.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단체조직의 권리와 파업의 권리를 양도했지만, 이 모든 것은 실험적인 것이었다. 군법이 1981년 도입된 것이다. 자유노조는 정지되었고 바웬사를 포함한 지도자들은 구금되었다. 군법의 잔인성은 점차 완화되었지만, 노조연대는 고르바초프가, 폴란드 전역에 걸친 페레스트로이카를 선동할 때까지 비밀 지하 조직으로써 활동해야만 했다.
1989년 반쪽 자유 선거에서 노조연대는 의회 상원에 선출되어 압도적인 지지를 얻게 된다. 바웬사는 1990년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그의 통치는 점점, 도취감에서 환멸감으로 바뀐다. 그의 통치 후 경제 기적도 정치적 안정도 없었고, 모든 정치 당과 선거민들은 바웬사의 대통령 자질과 과거의 업적을 다시 평가하고 의문시하게 되었다. 전 공산주의자 알렉산데르 크바스니예프스키( Aleksander Kwasniewski)와 브워지미에스 치모세비츠(Wlodzimierz Cimoszewicz )는 1995년 말 바웬사를 지위 해임 시켯다. 새 폴란드는, 그 물질적 장점을 바탕으로 자본주의화됨으로써 국제적인 신임도를 얻고 있고, 1990년에는 정식 나토 회원이 되었다. 부제크는 또한 EU회원국이 될 것임을 공약했다.
국내총생산(GDP) : US$ 2천 8백억7천만 문화폴란드의 첫 문화적 수확은 지그문트 1세(Sigismund I : 1506-48))에 의해서였다. 그의 문화적 결실로, 라틴어는 점점 폴란드어에 의해 밀려나게 되었고, 비로소 국문학이 탄생하고 건축기술이 꽃피우게 되었다. 또한 과학적 공헌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1543년, 인정된 정신 이상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저서(On the Revolutions of the Clestial Spheres)를 출간하였다. 폴란드의 다음 왕 지그문트 2세(Sigismund II Augustus)는 아버지의 업적을 이어, 예술과 문화를 진흥하는 후원을 계속했고, 이러한 2대 왕권이 폴란드문화의 황금시기였다.
폴란드의 조각과 회화는 다분히 종교적인데, 대부분의 교회에는 마리아와 예수 사건을 고딕과 르네상스풍으로 재현한 작품이 많다. 잘 꾸며진 무덤 장식에서는 폴란드 석공의 독특한 예술성을 볼 수 있고,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석공조각 솜씨는 많은 르네상스 저택의 얕은 돋의 외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비종교적인 작품들은 대부분 (현재까지도) 그냥 기록에 남아 있을 뿐이나, 예외적인 사람은, 1929년에 태어난 츠드치슬라프 베크진스키(Zdzislaw Beksinski)이다. 그는 충격적이고 신비한 꿈의 세계를 창조했는데, 폴란드가 낳은 최고의 예술가로 평가되고 있다. 오늘날 폴란드의 예술가들은, 스탈린 통치 하에 있었던 공산주의의 끔찍한 유산을 아직도 털어버리려 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건축, 문학, 음악, 시각 예술의 혐오스런 사체를 간직한 채,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폴란드는 순수 예술 작가를 무수히 배출했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자크 바쉐비즈 징에르(Isaac Bashevis Singer)처럼 다른 나라로 이민갔다. 이자크 바쉐비즈 징에르는, 이디쉬어로 폴란드 유태인의 사라져 가는 환경에 대해 저술했다. 현시대 폴란드문화를 대표하는 뛰어난 예술가로는, 리스자르트 카퓨신스키(Ryszard Kapuscinski)와 같은 작가들과, 몇년전 세 번째 심포니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작곡가 헨리크 고레키(Henryk Goreck)등이 있다.
폴란드 음식은 보편적으로, 걸쭉한 수프와 소스, 감자와 고기만두 등 정성 들인 속을 꽉 채운 음식들이 많다. 특이한 음식재료로는, 이논드, 마요라나, 캐러웨이 씨와 야생 버섯이고, 주로 좋아하는 음식은 비고스(bigos-소금에 절인 양배추와 고기))와 바르시치(barszcz-근대 수프))등이 있다. 폴란드는 네끼 식사를 한다. 이른 아침 식사, 간단한 간식으로 두 번째 아침식사, 일이 끝난 후 갖는 실질적인 점심, 그리고 자기 전의 간단한 저녁식사이다. 차와 보드카는 폴란드인이 선호하는 마실거리로, 마신 후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나지만 둘다 폭발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축제 및 행사많은 카톨릭인구로 인해, 이 나라의 기독교 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에 확실히 드러나지만, 일요일에도 폴란드 종교인들의 종교적 열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모든 교회가 일요일 미사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음악 축제 중 하이라이트로는, 매년 8월 크라코프(Krakow)에서 열리는 '옛 크라코프 음악페스티발'과, 브로클라프(Wroclaw)에서 9월에 열리는, 오라토리오와 칸타타가 넘치는 브라티슬라비아 칸탄스(Wratislavia Cantans)가 있다. 번성하는 문화의 중심지 바르샤바의 가을은, 10월말 재즈 페스티발을 포함해 최신 음악 전시장으로 변모한다. 1월에는, 지난 한해동안 가장 훌륭했던 연극의 공로를 치하하는 바르샤바 연극제가 열린다. 11월에 그다니아 (Gdynia )에서 열리는 폴란드 영화 축제는 영화에 관한 폴란드 최고의 볼거리이다. 폴란드 전역에서, 주로 초여름과 초가을에 걸쳐 많이 열리는 소규모 지방 축제 및 전시회, 경연대회는, 그 지방 민속문화를 홍보하며 나름대로의 흥겨움을 전한다. 여행자 정보비자: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비자없이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경비 및 환전통화: 즐로티 ZLOTY ( zl )
가격흥정이 일상화되어 있진 않지만, 폴란드는 아직도 관광객에게 물가가 싼 나라이다. 렌트카와 호화로운 호텔생활을 해야한다면, 걱정하지 말라. 서유럽에서와 거의 같은 수준을 누릴 수 있으니까. 저렴한 호텔, 일반 음식점, 버스나 기차여행, 맥주 한 잔, 박물관과 가끔씩 택시를 타게 된다면,하루 30달러 정도 예상된다. 돈을 지니고 다녀도 폴란드에서는 대체로 안전하다. 여행자수표는 어디서나 쉽게 환전할 수 있지만, 현금 환전률이 약간 더 좋다. 신용카드는 점점 더 유용해지고 있다. 신용카드로 고급 호텔과 음식점, 렌트카와 장거리 교통비를 지불할 수 있다. 또한 주요 카드로는 현금써비스도 받을 수 있다. 여행 시기관광시즌은 5월에서 9월이고, 그 중 7월과 8월이 성수기이다. 이 시기 발틱해는 인간에게 점령(?)당하고, 리조트와 스파는 관광객에게 침략받는 듯이 보인다. 마주리안(Masurian)호수는 수천 개의 항해배들로 꽉 차고, 산은 등반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거의 형태를 볼 수 가 없다. 그래서 아마도 관광하기 제일 좋은 때는 늦봄(5월중순-6월) 아니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시기(9월에서 10월 중순)일 것이다. 이 시기는 기분좋게 따뜻하며 많은 문화 행사도 볼 수 있다. (짐작하듯이) 겨울은 춥고 어두우며 캠핑지와 호스텔이 문을 닫긴 하지만, 폴란드 도시들을 구경하기에는 나쁘지 않다. 주요 여행지폴란드 역사상 늦게 발견되었지만(14세기 초반), 중앙에 위치한 바르샤바는 1611년이래로 폴란드의 수도가 되는 과정을 반복했다. 오랜 동안 문화와 산업의 중심지로서, 바르샤바는 중부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세련된 도시 중 하나였다. 가장 처참하게 파괴된 2차 세계대전의 전리품이 되기 전까진. 바르샤바는 기본적으로, 외관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전후의 산물이다. 소량의 역사적 생명줄은 꼼꼼히 재건되었지만, 대부분의 도시 풍경은 현대적이다. 바르샤바의 스탈린식 건물과 그저 평범한 조립식 가옥의 콘크리트 교외를 제외한다면, 바르샤바의 새로운 얼굴은 여행자들에게 인상적이다. 바르샤바는, 비스튜라(Vistula)강을 사이에 끼고 아주 색다른 두 지역으로 나뉘어진다. 서쪽 좌안구역은, 깔끔한 시 중심가와 북쪽으로 구시가가 있는 곳이다.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대부분의 볼거리와 편의 시설들은 이 곳에 있다. 프라가(Praga)의 근교인 바르샤바 우안에는, 특별히 볼거리가 없어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다.구시가는 전후, 돌 파편 무더기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초를 토대로 다시 세워졌다.
1949년과 1963년 사이에 있었던 기념할 만한 재건은, 17, 18세기 한창 때의 이 마을 모습을 다시 부흥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일단, 폐허 속에서 발견된 건축 조각들이 출처만 확실해지면 모두 복구작업에 사용되었다. 1945년, 구시가 광장은 파편이 불거져 나온 두 개의 집 벽이 고작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바로크, 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롭게 섞인 건축전시장이 되었다. 활기 있고 분위기 있는 광장에는, 야외 카페와 미술품 노점들이 많이 있다. 광장 북쪽편을 다 차지하고 있는 바르샤바 역사 박물관은, 매력적인, 바르샤바의 초기 역사 유물들을 전시할 뿐만 아니라, 시의 파괴와 재건에 대한 놀랄만한 기록영화도 상영해 준다. 바르샤바 북남쪽 대로는, 로얄 캐슬에서 왕족의 여름 별장인 라지엔키(Lazienki)궁으로 이어지는 왕실도로(Royal Way)이다. 이 대로는 유럽에서 가장 웅장한 도로 중 하나로, 교회와 궁전들, 갤러리, 박물관이 쭉 늘어서 있다.
이 곳에서 반쯤 내려가다 동쪽으로 향하면, 고대에서 현대까지, 예술의 보물창고에 들어서는 국립 박물관을 볼 수 있는데, 일단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미적감각을 떨어뜨리는 혐오스럽고 칙칙한 건물 외관에 한 번 호들갑을 떨게된다. 이 곳의 하이라이트는 인상적인 벽화 수집품으로, 수단 파로스(Pharos)에 있는 초기 기독교 성당에서 가져 온 것이다. 콥트 교회의 십자가 전시 또한 감탄할 만하다. 바르샤바에서는 또한, 다양한 민족의 음식을 맛볼 수 있고, 밤 늦게까지도 먹고 마실 수 있다 . 전통 폴란드 음식과 국제적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구시가 전 곳에 걸쳐 빠르고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로얄 웨이(Royal Way)남부를 따라 늘어 선 학생 클럽에서는, 리사이틀, 시, 영화, 연극 그리고, 락, 민속 음악, 재즈 콘서트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주말 밤에는 보통 디스코가마련된다.저렴한 숙박지들은 시 전역에 걸쳐 산재해 있는데, 시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있다.
그러나 이런 숙박지에 머물면서 분위기나 건축외양은 따지지 말자. 대학촌 부근에 좋은 호스텔이 몇 개 있지만, 별도의 방을 얻으려면 안내소를 통해야만 한다(Royal Castle 맞은 편에 있는 관광 안내소에 문의). 버스 터미널근처에는 작은 캠핑장도 있다. 폴란드의 수도로서, 바르샤바는 국내외적으로 버스, 기차, 비행기들이 다니는 분주한 교통의 터미널이다. 기차역은 시내 중심에 있고, 버스 정류장은 중심가 바로 서쪽에, 공항은 약 10km 떨어진 시 남쪽 외곽에 있다.
카르파티아 산맥에서 제일 높은 산인 타트라 산은, 높이 솟은 봉우리들과, 빙하 호수까지 수백미터를 돌진하는 급한 바위 절벽으로 된 지대이다. 겨울은 길고 여름은 짧으며, 눈이 모두 녹을 만큼 습하지는 않다. 늦은 봄과 초가을은, 날씨가 좋은 맑은 계곡과 관광객이 별로 없는 한가함을 즐길 수 있어 여행하기에 최상의 시간이다. 타트라 산기슭 북쪽에, 점 찍어 놓은 것 같은 몇 십개의 작은 마을로 된 포드하레(Podhale)지역이 있는데, 그 곳에서는 아직도 전통적인 고산지대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길이 있는데, 피크닉, 소풍, 산악등반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즈도 다양하다. 이들 중 가장 장관을 이루는 도보코스는, 동부에 이르는 짜브라트 파스(Zawrat Pass)로 가는 길이다. 그 곳은 카스프로비 비르히(Kasprowy Wierch)까지 가는 케이블 카로 갈 수도 있고, 아니면 산등성이를 따라 난 길도 많이 있다.자코파네(Zakopane)는 폴란드 타트라 산맥의 관광 핵심지이다. It's a pleasant town, especially out of the summer and winter holiday periods and is a good base for skiing or hiking in the mountains. 쾌적한 이 마을은, 특히 여름과 겨울 휴가철을 벗어나면 더할 나위 없다. 산에서 스키와 하이킹을 즐기기에도 정말 좋다. 바르샤바로 가는 버스는 매일 한 대 있고, 크라코프와 다른 주요 중심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몇 대 있다.
500년 동안 황실의 수도였던 크라코프는, 폴란드 역사의 산 증인이고 그 역사를 빨아들인 도시이다. 게다가 과거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손상되지 않아, 다양한 시대의 고전 건축물들을 풍부히 볼 수 있다. 크라코프 상공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마천루가 아니라, 20세기 산성비에 의해 흠집이 난 오래된 교회의 뾰족 첨탑들이다. 그러나 크라코프는 과거 사건들을 조용히 기념하는 역사의 도시가 아니라, 그 역사의 성격과 정신을 가지고 살아 있는 도시이다.공원에 둘러 쌓인 이 곳의 구시가는, 아담하고 아주 매력적이다. 광장 시장(Main Market Square)옆으로 역사적 건물들과 박물관, 교회가 있다.
10세기 성 아달베르트 교회(St Adalbert's Church)는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이다. 관대하고 열정적인 신부를 만난다면, 개종한 프란체스코 교회 건물에 있는 관을 열어줄 지도 모른다. 이 안의 미이라를 멍하니 보고 있으면, 계획한 점심메뉴를 바꾸게 될지도.. 가장 가 볼만한 박물관 중 하나는 크자르토리스키(Czartoryski)박물관으로, 아시아의 수공예품과 무기뿐만 아니라 인상적인 유럽 예술품도 전시되어 있다. 크라코프는 오스카 쉰들러가 늘 다니던 곳으로, 그의 이야기와 스필버그 영화 촬영 장소를 돌아보는 투어가 있다. 버스와 기차 정류장은 구시가 북동쪽 끝 부근에 나란히 위치해 있다. 500미터 반경 이내에 있는 호스텔과 식당들은, 숙박가격과 식당메뉴를 내 건 광고판 불빛에 덮여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주리아의 중심부는, 지형의 15%이상이 수중으로 덮인, 폴란드 최대의 호수군지역이다. 주요 호수, 스니아르드비(Sniardwy)와 맘리(Mamry)는 광범위한 수로 시스템을 형성하기 위해 강과 수로로 연결되어 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모든 지역은, 카누와 요트광들의 표적이 되었다. 지작코(Gizycko)와 미콜라이키(Mikolajki)같은 가장 큰 호수를 비롯해, 대부분 호수 주변에 마을들이 점점이 모여 있다. 미콜라이키는 숙박과 레스토랑 시설이 잘 되어 있으나, 대부분은 시즌이 끝나면 문을 닫는다. 호수지역을 자전거로 여행하는 것도 편리한 방법이다. 특히 지역 대중교통이 불안한 상태에서는. Gdansk에서 떠나 Gizycko까지 가는 밤기차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Bialystok와 Warsaw에서 출발해 남부 호수 마을인 루치아네-니다 (Ruciane-Nida)로 도착하는 방법도 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오스비에침은, 크라코프에서 서쪽으로 60km 떨어진 중소 산업도시이다. 이 마을의 폴란드어 명칭은 익숙하지 않을지라도, 비극을 상징하는 독일식 표현을 들으면 모두 '아!'하고 탄성을 자아낼 것이다. 그 이름도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1945년 퇴각하는 나치들은 그들의 가장 큰 수용소는 없애버렸지만, 이 조용한 도시지역의 죽음 공장은 남겨둠으로써, 대학살의 광대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4백만 피살자 중 2백50만이 유태인이었고, 그들은 모두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마우 근처 공장에서 죽임을 당했다. 두 곳 다 일반에게 개방되며, 나치가 버려두고 간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가스실과 화장터, 막사, 가시철망선 속에서 살던 이야기는, 이 곳을 무시무시하고 충격적인 곳으로 만든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그단스크에서 서쪽으로 200km에 있는 토룬은,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가 태어난 곳이다. 이 아름다운 마을의 역사는, 테오토닉 기사단이 그들의 초기 전초기지로 삼기 시작한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마을은 1280년대 한자 동맹의 항구가 되어 부를 축적해, 오늘날 볼 수 있는 웅대한 고딕양식의 건물들이 세워졌다. 이 지방의 생강빵을 먹으면서 돌아 다니며, 완벽한 그림엽서를 감상하는 것도 이 마을 여행의 매력 중 하나이다.
4백 년 전 디자인 그대로 남아 있는 자모스크는, 그 시대의 수상 자모이스키(Jan Zamoyski)의 명령으로 단숨에 지어졌다. 그는 문화와 무역의 중심지, 그리고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완벽한 도시를 건설하고자 했다. 시는 주요 무역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세워짐으로써 그의 실험은 성공했고, 이는 곧 자본과 이민자들을 끌어들여 활발히 그 지적 전통을 발전시켰다. 1656년, 스웨덴의 공격에 저항한 폴란드 3개 도시 중 하나로, 이 도시는 그 방어력을 입증했다. 일반 관광코스에선 꽤 벗어나 있지만, 저렴한 숙박시설, 꽤 괜찮은 바와 클럽이 어우러진, 오늘날 매력적인 여행지이다. 이곳으로 오는 교통편은, 북서쪽 120km거리의 루블린(Lublin)을 통해 대부분 연결된다.
수데텐(Sudeten)기슭에 숨어있는 글로고베크(Glogowek)는, 마을 광장과 교회, 오래된 집들로,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많은 소규모 중세 마을 중 하나이다. 이 곳의 이탈리아식 유골성당 안에는 아이와 함께 있는 검은 성모상이 있는데 많은 순례자들이 이를 보러 몰려온다. 이 곳의 작은 호텔과 호스텔은 여름동안에만 영업한다. 기차는 크라코프와 다른지역에서 니사(Nysa)를 거쳐 이곳으로 온다. 레저스포츠하이킹은 가장 인기있는 실외 레져스포츠로,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장 인기있는 하이킹 코스는 타트라(Tatra)산 코스이지만, 피에니니(Pieniny)산, 비에스츠크자디(Bieszczady)산, 카르코노즈제(Karkonosze)산에도 좋은 하이킹코스가 있다. 대부분의 수로에서 카누를 즐길 수 있지만, 주요 강들은 꽤 오염이 되었다. 마주리아(Mazuria)에 있는 크루티니아(Krutynia)와 크자르나 한크자(Czarna Hancza)강은 사람의 손이 거의 닿지 않은 곳으로, 폴란드에서 카약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를 가진다. 배를 타기에 더없이 좋은 마주리아 호수에는, 놀랄 일은 아니지만, 여름에 수백개의 보트가 모여든다. 지작코(Gizycko)와 미코라이키(Mikolajki), 다른 몇 군데의 마우리안 리조트에서는 항해용 보트를 대여해 준다. 폴란드에는 약 천여개의 동굴이 있는데, 그 대부분이 크라코프 부근 고지대와 타트라 산악지대에 있다. 좁은 미지의 암흑 속으로 뛰어들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몇 군데의 동굴은 공간적으로 이상적이다. 이 중 가장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은, 크로드즈코(Koldzko)부근 '곰의 동굴(Bear's Cave)과 키엘체(Kielce)부근의 파라다이스 동굴(Paradise Cave)이다. 스키지역은 대부분 카르파티아 산맥에 모여 있다. 베스키드 스라스키(Beskid Slaski)의 스츠크지르크(Szczyrk)와 함께, 타트라 산맥 기슭에 있는 자코파네(Zakopane)도 역시 의심할 여지 없는, 최고의 스키 토끼 사육장이다. 폴란드로가는 길유럽 주요도시에서 바르샤바로 오는 직항 비행기가 있고, 폴란드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욕과 시카고등의 미국도시에서도 직항편이 있다. 출국세는 없다. 열차나 버스 등 여행패스가 없는 경우, 다른 유럽지역에서 기차나 버스를 탄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할인된 비행기값과 맞먹을 것이다. 폴란드로 오는 도로연결 상태는 좋은 편이고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국경에서 오래 기다리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다른 동유럽국에서 오는 경우는 더하다. 체코 공화국과 독일에서 연결된 많은 국경들이, 1997년 7월 다리가 끊기는 지독한 홍수로 폐쇄되었다. 영국과 스칸디나비아에서는, 그단스크(Gdan나), 그다니아(Gdynia), 스비노우이스키(Swinoujscie)로 오는 배편이 있다. 대부분 선박에는 차량을 실을 수 있다.
국내교통편
돈 세탁을 하지 않는 한 폴란드 내에서 비행기 이동은 생각하지 말자. 기차편이 잘 되어잇고 기차가 가지 않는 곳은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꾸준히 운행하는 공영버스에 대해 개인 버스 회사들은 많은 국내구간에서 불법 가격경쟁을 벌인다. 자기 차량이 있다면 가장 편한 여행길이 될 것이다. 주유소를 지날 때마다 연료를 가득 채우고 여분의 래치트와 그 외 비상 장비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비상의 경우, 독일에서 부품을 가져올 때까지 몇 주를 허비해야 한다. 자전거여행은, 길이 대체로 평평하고 한적한 시골에서는 좇지만, 도로상태가 안좋고 호의적이지 않은 자동차운전자들로 인해 도시에서는 적합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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