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5/29일) 마지막 날이다.
새벽 5:00 갈증으로 눈이 떠진다. 룸메 주이사는 코를 골면서 깊이 잠들어 있는것 같다.
창밖 풍경을 보니 우측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시야가 넓어서 그런지 일출과 일몰이 다 같은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시원한 물이 없다. 캔맥주가 남아 있길래 그걸 하나 까서 갈증을 달래본다. 어젯밤 기억이 흐리다. 과음하면 항시 아침에 불안하다. 뭘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뭔가 실수는 안했는지..... 우선 소지품을 확인해본다. 휴대폰도 있고 여권,지갑 들어있는 벨트색도 잘 있고, 음~ 카메라도 잘 가져왔구먼. 다행이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어제 전투식량이 대부분 남아있다. 캔맥주는 6개짜리 두 개나 사왔는데 그 중 2캔은 밤에 먹은것 같고 지금 내가 하나 먹는 중이다. 이거야 뭐 이동중에 버스 안에서 나눠주면 금방 없어질테고..... 사케 한 병과 일본소주 1병, 이건 어쩐다? 일단 가방에 쑤셔 넣어보자. 깨질지 모르니 티셔츠로 둘둘 잘 말아서 가능한 가운데 안쪽에 넣는다. 짐들을 정리하다보니 담배와 기념품 그리고 술 두병까지 늘어나니 가방이 비좁다. 커다란 이민용 트렁크를 당당하게 끌고 다니던 황사령관의 깊은 뜻을 이제야 알겠다.
녹차도 한 잔 타서 먹으며 쓰린 속을 달래본다. 6시가 넘으니 주이사도 잠에서 깨어난다. 같이 차를 한 잔 마시고 주이사는 7시쯤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향한다. 나는 방에서 어제 해결 못한 전투식량(과일안주/컵라면 등)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술은 더 안 먹었으니 오해들 마시라~ 라면에 물을 붓고 거의 익었을것 같은데, 앗! 젓가락이 안 보인다. 조잔케이에서 여러 사람들 오셨을때 다 쓴것 같다. 우~씨! 손가락으로 먹을 수도 없고......주이사에게 SOS를 보낸다. "주이사님~ 식당에서 올라오시면서 나무젓가락 하나만 가져다 주세요" 잠시후 들어오는 주이사의 손에 들려있는 나무젓가락이 그렇게 반가울수가~ ㅎㅎ 항시 범사에 감사하고 살 일이다.
오전 8시. 집결시간 10시까지 두 시간이나 남았다. 어제 차창으로만 스쳐 지나가며 보았던 오타루 운하를 보기위해 카메라와 지갑만 챙겨서 산책을 나선다. 해안가 선착장에 거대한 크루즈도 한 척 정박하고 있고, 공원처럼 꾸며진 곳에 선박용 닻을 조형물로 세워 놓았다. 조금 더 걸어가니 드디어 운하가 나오고 다리위에는 인력거꾼 젊은이가 일본 전통복장을 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운하에는 관광용 보트가 있고 그 위에 매표사무실이 있기에 들어가 봤다. 아침 첫 운항시간이 오전 9시다. 지금 마침 10분 전이니 이걸 타고 한바퀴 둘러보면 시간이 딱 맞는다. 물론 호텔로 돌아갈때는 택시를 타야 한다. 오면서 택시가 어디에서 대기하고 있는지도 봐 두었다. 오케이~ 1,500엔짜리 유람선 표를 사니 매표소 여직원이 묻는다. "Where are from?" 나는 짧게 대답한다. 코리아!
왜 묻는가 했더니 운하관람 안내문이 한글로 써 있는것을 골라주기 위해서였다. 안내문을 받아들고 선장이 나누어주는 구명벨트를 허리에 차고 보트에 승선한다. 관광을 나온 듯한 5~60대 일본인 아주머니들만 7~8명 탄다. 나는 사진을 찍을 요량으로 보트의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드디어 운하투어 시작이다. 40분이 걸리는 코스란다. 운하의 한쪽에는 거대한 창고들이 들어서 있다. 갈매기들이 운하 곳곳의 공터를 점령하고 먹이를 찾아내는 중이다. 중간중간 다리 밑을 통과하는데 일어서면 손이 닿을 높이다. 운하 중간부분은 항구로 이어져 있다. 항구로 빠져나가서 다시 운하로 되돌아오는 약 4km 정도의 운하투어를 마친다. 나 혼자서 이 멋진 관광을 즐기게 되어 다른 원우들에게 약간 미안하다. 사진 몇 장으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 전한다.
운하 주변 도로는 오타루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이 작은 작품들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나도 천 엔짜리 작은 그림 하나를 사왔다.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도 있고 사진을 찍어 액자로 만들어 판다. 귀걸이나 목걸이 같은 수공예품도 보이고 아무튼 나는 이곳을 오타루 예술의 거리로 기억하리라. 이제 20분밖에 안 남았으니 서둘러 호텔로 복귀해야 한다. 아까 오면서 봐 둔 지점에 이르니 택시가 두 대 서 있다. 다행이다. 그랜드호텔이라 이야기 하니 운전사가 "하이" 하면서 뒷문을 열어준다. 호텔까지 800엔 정도 나온다. 호텔에 도착하니 대부분의 원우님들이 모두 차량에 탑승하고 계신다. 나도 얼른 방으로 올라가서 트렁크를 가져온다. 아침에 미리 짐을 다 꾸려놓아서 다행이다. 그래도 혹시 잊고 나오는 물건이 없는지 방을 한 바퀴 둘러본다. OK! 이상없다!
오전 10시.
우리를 모두 태운 버스는 삿포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삿포로 시내 면세점에 잠깐 들러 30분정도 쇼핑시간을 갖는다. 등산용 보온병(써모스 보온병 품질이 좋다. 산 다니는 사람들은 안다)과 와이프 발뒷굼치를 보드랍게 해 줄 마유크림을 샀다. 남은 엔화를 다 쓰고 한화로 7만원인가 더 내야 했다. 이제 엔화는 동전만 남는다. 이건 공항 가서 써야쥐~
공항에는 12시쯤 도착했다. 밥은 안주냐고 물었더니 기내식이란다. 이~~런! 그때까지 어케 지둘려? 아무튼 줄을 서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면세점 잠깐 구경하고 2층에 있는 푸드코트로 가 본다. 나처럼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원우님들이 먼저 와 계신다. 허기만 속이고자 생맥주 한 잔과 감자튀김 하나를 주문한다. 나중에 오신 교장선생님, 김홍철회장님과 합석을 해서 라면과 튀김도 얻어 먹는다. 흡연실에서 담배도 하나 피우고 이젠 비행기 탑승만 남았다. 대기중에 카메라에 담은 사진을 살펴본다. 아침에 운하에서 찍은 사진 중 몇 개가 맘에 든다. 기록은 충실하게 잘 해놓은것 같다. 홋카이도 여행앨범을 하나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오후1시 45분. 드디어 탑승구가 열리고 비행기에 오른다.
한참을 날아가다 3시쯤엔가 기내식을 나눠준다. 지난번 못 먹은 닭고기 요리를 주문해서 먹어본다. 맛은 괜찮은데 공항에서 잔뜩 먹은탓에 절반쯤 남기고 만다. 과식은 좋을 게 없으니 말이다.
오후 5시경, 인천공항에 도착. 짐을 찾아 나오니 5시 30분쯤 되었나보다. 다들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마음은 벌써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광주까지 먼 거리를 또 이동해야 한다. 일단 지방행 리무진 타는곳에서 차표를 구해보자. 어라? 제일 빠른 시간이 저녁 8시라 한다. 큰일이다. 오늘 안으로 집에가기 글렀나보다. 잠시 잔머리를 굴려본다. 그래, 광명까지 택시를 타고가서 KTX로 가자. 우선 차시간이 어케되는지 코레일 앱으로 확인한다. 광명에서 7시 12분차, 광주도착 8시 52분이다. 좋다, 저걸 타야겠다.
구매한 리무진 버스표를 반환하고 열차표는 스마트폰으로 예매(이럴때는 스마트폰이 효자다)하고 택시를 기다린다. 10여분 기다려 택시에 타고 기사분에게 차시간 맞춰야 하니 급히 가 달라고 부탁을 한다. 다행히 별로 정체되는 구간이 없이 고속화도로를 시원하게 달린다. 시속 120~130km를 넘나들며 달려와 제시간에 맞춰주신 그 기사분께 감사드린다. 택시비는 거금 6만5천원이나 나왔지만 집에 빨리 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광주송정역에 도착하니 와이프가 마중나왔다. 이렇게 3박4일의 북해도 여행이 마무리된다.(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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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여행은 항상 즐겁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여행일수록 그렇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참 좋은 분들을 알게되어 기쁘다. 그간 수 개월동안 수업을 받으면서 한번도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주광원이사와 3일밤을 함께 보냈고, 많은 분들과 가까이 대화를 나눴고 음식을 같이 먹고 술잔을 주고받았다. 홀랑 벗은 몸으로 온천욕을 함께 했고, 비오는 오타루 거리를 함께 헤매기도 했다. 50여명이나 되는 많은 인원들이 모두 무사하게 여행을 마치고 올 수 있어서 우리는 복받은 사람들이 분명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수확은 몇몇 원우들과 내년에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함께 하자는 의기투합일 것이다. 이제부터 잘 조직해서 내년에 더욱 즐거운 봉사여행을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마지막 잔소리를 마친다.(白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