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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P / 자전거와 교장들
 
 
 
카페 게시글
역사이야기 스크랩 도봉산 자락의 유적지 탐방.
난계 추천 0 조회 143 18.02.04 09:13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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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2.04 21:33

    첫댓글 요즘 난계님 때문에 역사 탐방을 하게 되는 군요.
    날이 풀리면 개인 사찰인 능원사를 가보야겠군요.
    돈이 얼마나 많으면 이렇게 화려한 사찰을 지었을까요?

  • 작성자 18.02.05 08:30

    그렇죠?
    모든 장식은 다 갇다 붙였습니다
    아마 주체할수없는 돈으로 마음껏 장식한 모양입니다 ㅜㅜ

  • 18.02.05 13:50

    <아름다운 60대> 덕분에 [道峰洞門] 구역의 유적탐방 잘 하였소이다

    현재 [도봉서원]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자리는 본래 신라시대 고찰 <靈國寺> 폐사지로
    영조때 현재 <光輪寺> 절 뒤편에 위치했던 [도봉서원]을 이곳으로 옮겨 세운 것이오이다
    때문에 현 [광륜사] 사찰 앞 [도봉산국립공원 탐방센터]가 위치한 지역을 <서원마을> 이라 부르고 있소이다

    [광륜사]와 <조대비>와의 연을 맺게 된 것은 광릉내 근처 <풍양 조씨>선산에 묻힌 친정아버지 <조만영>의 묘소를 참배한 후 자주들려 천도시주를 하게 되면서 부터이오이다

  • 작성자 18.02.05 08:32

    도봉산쪽은 딱 한번 가본것 같습니다
    언제나 좋은 설명 감사드립니다^^
    내일 날씨도 많이 춥다니 국립박물관 이나 역사 박물관 탐방 번개 올려주세요~~

  • 18.02.05 13:48

    道峰산의 <天竺寺> <靈國寺> 와 함께 '道峰洞天'의 3대사찰이었던 <광륜사>는 본래 '萬丈寺'라 불렀으며
    <조대비>에 의해 커다란 불사가 이루어져 '光輪寺'라 고치고 별장처럼 이용하였다
    고종 초기에 <조대비>가 수렴첨정을 하면서 壯洞金門의 눈을 피해 이곳에서 <흥선대원군>과 정치적 遭遇를 하였을 뿐만아니라
    <흥선대원군>의 섭정기간에도 <대원군>이 이곳에서 측근들과 국정을 논의하던 역사의 현장이다

  • 18.02.05 11:29

    寧海君 <李塘>은 세종의 18남 중에 17번째 아들로서 후궁 <신빈김씨>와의 사이에 6남 중 5번째로 태어난 9번째 서자이다
    성품이 온화하고 형제간에 다투는 일이 없어 특히 세종 말년에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寧海君의 장남인 永春君 <仁> 역시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묘역을 도봉산 우이암 [보문능선]에서 발원한 [무수골 계곡] 명당에 조성하고
    이곳은 '모든 근심을 잊게하는 곳' 이라 하여 이후 이 골짜기를 '無愁谷 : 무수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무수골]은 [도봉산 둘레길]의 '도봉옛길' 구역에 인접한 골짜기로 곳곳에 권문세족들의 묘역이 자리한 명당이다

  • 18.02.05 11:35

    <전주이씨 영해군파> 묘역에는 宗山 임에도 불구하고 묘역에 <영해군>의 장남인 <영춘군>의 장인인 평산신씨 <申允童>의 묘소가 함께 할 뿐만 아니라
    집안의 家奴였던 忠奴 <金同伊>의 묘를 묘역에 함께 안장하여
    신분과 가문을 초월한 가족의 화목과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몸소 실천한 <영해군>가문의 가풍이 이어져 온 묘역이다

  • 작성자 18.02.05 11:38

    따뜻한날
    탐사하면서 명강의 듣고 싶습니다
    그런데 내일 번개를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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