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의 시모음
(가정조선 1986년 2월 具仲書 - 문학평론가· 수원대 교수)
베스트셀러로 도합 40만 부나 팔린 이해인 수녀의 3권의 시집은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것으로는 우리 나라시집 출판 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너무 단순하고 소박한 詩語들 이해인 수녀의 <민들레의 영토><내 혼(塊)에 불을 놓아><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등 세 권의 시집이 근래 서점 가에서 오래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시집들은 모두 가톨릭계 출판에서 간행되었다. 이 출판사들은 일반 서점가와 잘 소통되지 못한다. 이 시집들을 신문의 서적 광고란에 선전하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서점가에서 잘 팔리기 시작해 벌써 2년째인가 베스트셀러로 알려지고 있다. 이해인 수녀 자신은 '나의 시'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독백을 드러낸다. "제대로 옷을 못 입어 볼품없어 보이고, 써도 써도 끝까지 부끄러운 나의 시는 나를 닮아 언제나 혼자서 사는 게지. 맨몸으로 펄럭이는 제단 위의 촛불 같은 나의 언어, 나의 제물.('내 혼에 불을 놓아'에서)" 이렇게 외로이 혼자 읊조리는 언어라고 하는데 <민들레의 영토>가 가톨릭 출판사에서 19판, <내 혼에 불을 놓아><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가 분도 출판사에서 각각 15판을 발행해 세 가지 시집이 도합 40만 부나 팔렸다고 한다.
(<가톨릭 신문> 1986년 1월19일자 보도)
이 기록은 아마도 우리나라 시집 출판 사상 단기간을 기준으로 따지면 가장 많은 발행 기록일지도 모른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 일까. 박두진 씨는 <민들레의 영토> 머리말에서 '시인이 되기 위한 시로서가 아니고, 시인으로서의 시가 아닌 데에 그의 시의 일단의 순수성과 그 동기의 초월성이다'고 했다. 홍윤숙 씨는 <내 혼에 불올 놓아> 머리말에서 '대패질도 기름칠도 하지 않은 마구 깎아 낸 원목(原木) 같은 생명감'이라고 했다.
구상 씨는 '그녀의 영글어 가는 영혼의 모습이 너무도 장하고 아름다와서 눈시울을 적신다. 산속의 샘물 같은 그녀의 시편들이 고갈되고 혼탁한 오늘의 우리의 영혼을 축여 주고 씻어 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기를 합장 한다'고 했다. 필자의 견해로서는 위의 찬사들이 그것들대로 근거가 있다고 보면서도, 이해인 수녀의 시가 한국 시문학계에서 반드시 높은 수준으로 등급을 매겨 평가되어야 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해인 수녀의 시가 우주 삼라만상의 존재 근원인 하나님에 대한 궁극적인 사랑을 심오하게 노래하고 있지만, 그녀의 시에 동원되는 언어의 대부분은 너무 단순 소박한 상태의 것이다. '이 세상에 이해될 수 없는 진실은 없다'는 말로 난해시를 비판하는 관점도 있지만, 인간의 심성과 지성이 고도로 예민해져 있는 현대 사회 상황에서는 보다 고차원적으로 정련(精鍊)되고 밀도를 갖춘 시어(詩語)가 동원되어야 할 당위성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경우의 시는 물론 대중 독자에게 수용되는 면에서는 어느 정도의 한계를 느끼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못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시들이 한국 현대 시문학계의 질적 성취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의 노래
다만 이해인 수녀의 시는 그 나름대로 독특하게 소중한 것일 수 있다. 필자는 이해인 수녀의 시를 대하면서 라틴 아메리카 니카라과의 수도 신부이며 시인인 에르네스또 까르데날의 책 <침묵 속에 떠오르는 소리>를 연상하게 된다.
까르데날은 한 편으로 반독재 운동에 가담한 행동적인 인물로서 그의 시에 혁명적인 주제를 담은 것들이 있다. 그런데 동시에 그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영혼의 문제에 깊이 들어간 명상가이기도 하다. 이해인 수녀의 시가 하나님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데 그 발상은 사뭇 인간적인 형태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그녀의 시는 상투적이고 관념적이라거나 호교적(護敎的)인 종교시가 아니고, 신선한 인간의 육성으로 들리게 되는 것이며, 이 점이 그녀의 시를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인간적인 사랑을 동일시하는 까르데날의 다음과 같은 설명을 보자.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리고 사람도 또한 사랑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된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열 욕구 애정 본능 및 모든 인간적 갈망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불길을 북돋우게 하는 땔감이다. 실제로 사람의 전존재가 이런 땔감이다. 사람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다만 대상이 다를 뿐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세상 만물을 포기하는 것은 그것들을 나쁜 것으로 생각해서가 아니요 세상 만물의 아름다움이 하도 기가 막혀서 그것들을 만드신 창조주를 사랑하는 것이다. 성(性)을 만든 분도 하나님이고 부드러운 포옹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고, 관능과 정열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분에 대한 사랑만이 늙지 않는 사랑이며, 영원히 마음 변하지 않고 또 죽지 않는 연인은 오직 그분 뿐이다.'
내 생애가 한 번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여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 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내 불치의 병은
사랑
(이해인, '해바라기' 연가에서)
이해인 수녀의 이 사랑이 곧 뜨거운 신앙의 표현 방법이 된다. 그리고 사랑이 깊을수록 기쁨과 함께 고독과 목마름도 따른다. 또는 해바라기 나팔꽃 바닷가의 빈 배 나무 산, 삼라만상에서도 사랑과 의미를 발견한다. 이 의미들이 풍성한 동산에 결국 독자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이라고 보게 된다. 이것은 이상한 일도 염려할 일도 아니며, 관념적인 순수시나 사회적인 현실 의식의 시가 '
삶과 궁극의 구원(救援)'까지를 내다보게 하는 하나의 신선한 충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정조선 1986년 2월 具仲書 - 문학평론가·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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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꽃 멀 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 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
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 향기에 취해서 멀미가 나지.
살아 있는 것은 아픈 것, 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
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
나는 더욱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지.
사람들에게도 꽃처럼 향기가 있다는 걸 새롭게 배우기 시작하지.
[詩] 아름다운 순간들
마주한 친구의 얼굴 사이로,
빛나는 노을 사이로, 해 뜨는 아침 사이로..
바람은 우리들 세계의 공간이란 공간은 모두 메꾸며
빈자리에서 빈자리로 날아다닌다.
때로는 나뭇가지를 잡아흔들며,
때로는 텅빈 운동장을 돌며,
바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이 아름다운 바람을 볼 수 있으려면
오히려 눈을 감아야 함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
[詩] 아무래도 나는
누구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결국은 이렇듯 나 자신만을 챙겼음을
다시 알았을 때 나는 참 외롭다.
많은 이유로 아프고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 곁을
몸으로 뿐 아니라 마음으로 비켜가는
나 자신을 다시 발견했을 때,
나는 참 부끄럽다.
[詩] 황홀한 고백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 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 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詩] 바다새
이 땅의 어느 곳
누구에게도 마음 붙일 수 없어
바다로 온 거야
너무 많은 것 보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예까지 온 거야
너무 많은 말들을
하고 싶지 않아
혼자서 온 거야
아 어떻게 설명할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이 작은 가슴의 불길
물 위에 앉아
조용히 식히고 싶어
바다로 온 거야
미역처럼 싱싱한 슬픔
파도에 씻으며 살고 싶어
바다로 온 거야
[詩] 해바라기 연가
내 생애가 한번 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여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불치의 병은
사랑
이 가슴 안에서 올올이 뽑은 고운실로
당신의 비단옷을 짜겠습니다.
빛나는 얼굴 눈부시어
고개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은 까만 꽃씨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의 임금이여..
드릴 것은 상처 뿐이어도
어둠에 숨지지 않고
섬겨살기 원이옵니다.
[詩] 고독을 위한 의자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으므로,
여럿 속에 있을 땐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고독 속에 헤아려볼 수 있으므로
내가 해야 할 일
안 해야 할 일 분별하며
내밀한 양심의 소리에
더 깊이 귀기울일 수 있으므로,
그래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여럿 속의 삶을
더 잘 살아내가 위해
고독 속에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다.
[詩] 가을 편지
늦가을, 산 위에 올라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깊이 사랑할수록
죽음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하며 사라지는 나뭇잎들
춤추며 사라지는 무희들의
마지막 공연을 보듯이
조금은 서운한 마음으로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매일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지켜보듯이
[詩] 꽃밭에 서면
꽃밭에 서면 큰 소리로 꽈리를 불고 싶다.
피리를 불 듯이
순결한 마음으로
꽈리 속의 잘디잔 씨알처럼
내 가슴에 가득 찬 근심 걱정
후련히 쏟아 내며
꽈리를 불고 싶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동그란 마음으로
꽃밭에 서면
저녁노을 바라보며
지는 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고 싶다.
남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나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받고 싶다.
꽃들의 죄없는 웃음소리
붉게 타오르는 꽃밭에 서면
[詩] 제비꽃 연가
나를 받아 주십시오
헤프지 않은 나의 웃음
아껴 둔 나의 향기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웃을 수 있고
감추어진 향기도
향기인 것을 압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내 작은 가슴속엔
하늘이 출렁일 수 있고
내가 앉은 이 세상은
아름다운 집이 됩니다.
담담한 세월을
뜨겁게 안고 사는 나는
가장 작은 꽃이지만
가장 큰 기쁨을 키워 드리는
사랑꽃이 되겠습니다
당신의 삶을 온통 봄빛으로 채우기 위해
어둠 밑으로 뿌리내린 나
비오는 날에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작은 시인이 되겠습니다.
나를 받아 주십시오
[詩] 풀꽃의 노래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좋아
바람이 날 데려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
하고 싶은 모든 말들
아껴둘 때마다
씨앗으로 영그는 소리를 듣지
너무 작게 숨어 있다고
불완전한 것은 아니야
내게도 고운 이름이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만
서운하지 않아
기다리는 법을
노래하는 법을
오래전부터
바람에게 배웠기에
기쁘게 살 뿐이야
푸름에 물든 삶이기에
잊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詩] 다시 바다에서
열여섯 살에 처음으로
환희의 눈물 속에
내가 만났던 바다
짜디짠 소금물로
나의 부패를 막고
내가 잠든 밤에도
파도로 밀려와
작고 좁은 내 영혼의 그릇을
어머니로 채워주던 바다
침묵으로 출렁이는
그 속깊은 말
수평선으로 이어지는 기도를
오늘도 다시 듣네
낮게 누워서도
높은 하늘 가득 담아
하늘의 편지를 읽어주며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내게 영원을 약속하는
푸른 사제 푸른 시인을
나는 죽어서도
[詩] 별을 보며
고개가 아프도록
별을 올려다본 날은
꿈에도 별을 봅니다.
반짝이는 별을 보면
반짝이는 기쁨이
내 마음의 하늘에도
쏟아져 내립니다.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혼자일 줄 아는 별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으로
제 자리를 지키는 별
나도 별처럼 살고 싶습니다.
얼굴은 작게 보여도
마음은 크고 넉넉한 별
먼 제까지 많은 이를 비추어 주는
나의 하늘 친구 별
나도 날마다
별처럼 고운 마음
반짝이는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詩] 어머니의 섬
늘 잔걱정이 많아
아직도 뭍에서만 서성이는 나를
섬으로 불러주십시오, 어머니
세월과 함께 깊어가는
내 그리움의 바다에
가장 오랜 섬으로 떠있는 어머니
서른세 살 꿈속에
달과 선녀를 보시고
세상에 나를 낳아주신
당신의 그 쓸쓸한 기침소리는
천리 밖에 있어도
가까이 들립니다.
헤어져 사는 동안
쏟아놓지 못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바람과 파도가 대신해 주는
어머니의 섬에선
외로움도 눈부십니다.
안으로 흘린 인내의 눈물이 모여
바위가 된 어머니의 섬
하늘이 잘 보이는 어머니의 섬에서
나는 처음으로 기도를 배우며
높이 날아가는
한마리 새가 되는 꿈을 꿉니다, 어머니
[詩] 달듯
떨어진 단추를
제자리에 달고 있는
나의 손등위에
배시시 웃고 있는 고운 햇살
오늘이라는 새옷 위에
나는 어떤 모양의 단추를 달까
산다는 일은
끊임없이 새 옷을 갈아 입어도
떨어진 단추를 제자리에 달듯
평범한 일들의 연속이지
탄탄한 실을 바늘에 꿰어
하나의 단추를 달듯
제자리를 찾으며 살아야겠
네
보는 이 없어도
함부로 살아 버릴 수 없는
나의 삶을 확인하며
단추를 다는 이 시간
그리 낯설던 행복이
가까이 웃고 있네
[詩]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지어 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詩] 눈 물
새로 돋아난
내 사랑의 풀숲에
맺히는 눈물
나를 속일 수 없는
한 다발의 정직한 꽃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처럼
간절한 빛깔로
기쁠 때 슬플 때 피네
사무치도록 아파 와도
유순히 녹아 내리는
흰 꽃의 향기
눈물은 그대로
기도가 되네
뼛속으로 흐르는
음악이 되네
[詩] 우산이 되어
우산도 받지 않은
쓸쓸한 사랑이
문 밖에 울고 있다
누구의 설움이
비 되어 오나
피해도 젖어오는
무수한 빗방울
땅 위에 떨어지는
구름의 선물로 죄를 씻고 싶은
비오는 날은 젖은 사랑
수많은 나의 너와
젖은 손 악수하며
이 세상 큰 거리를
한없이 쏘다니리
우산을 펴주고 싶어
누구에게나
우산이 되리
모두를 위해
[詩] 너에게 띄우는 글
사랑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진정한 친구이고 싶다.
다정한 친구이기 보다는 진실이고 싶다.
내가 너에게 아무런 의미를 줄 수 없다 하더라도
너는 나에게 만남의 의미를 전해 주었다.
순간의 지나가는 우연이기 보다는 영원한 친구로 남고 싶었다.
언젠가는 헤어져야할 너와 나이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친구이고 싶다.
모든 만남이 그러하듯
너와 나의 만남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진실로 너를 만나고 싶다.
그래, 이제 더 나이기보다는 우리이고 싶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현실을 언제까지 변치 않는 마음으로 접어두자.
비는 싫지만 소나기는 좋고
인간은 싫지만 너만은 좋다.
내가 새라면 너에게 하늘을 주고
내가 꽃이라면 너에게 향기를 주겠지만
나는 인간이기에 너에게 사랑을 준다.
[詩] 사 랑
우정이라 하기에는 너무 오래고
사랑이라 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남이란 단어가 맴돌곤 합니다.
어처구니 없이
난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신을 좋아한다고는 하겠습니다.
외롭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
누구나 사랑할 때면
고독이 말없이 다가옵니다.
당신은 아십니까..
사랑할수록 더욱 외로와진다는 것을.
[詩] 친구에게
부를때마다 내 가슴에서 별이 되는 이름
존재 자체로 내게 기쁨을 주는 친구야
오늘은 산숲의 아침 향기를 뿜어내며
뚜벅뚜벅 걸어와서 내 안에 한 그루 나무로 서는
그리운 친구야 때로는 저녁노을 안고
조용히 흘러가는 강으로 내 안에 들어와서
나의 메마름을 적셔 주는 친구야
어쩌다 가끔은 할말을 감추어 둔 한 줄기 바람이 되어
내 안에서 기침을 계속하는 보고 싶은 친구야
보고 싶다는 말 속에 들어 있는 그리움과 설레임
파도로 출렁이는 내 푸른 기도를 선물로 받아 주겠니?
늘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때
빙긋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주던 따뜻한 친구야
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모였다가
어느 날은 한 편의 시가 되고 노래가 되나 보다
때로는 하찮은 일로 너를 오해하는
나의 터무니없는 옹졸함을
나의 이기심과 허영심과 약점들을
비난보다는 이해의 눈길로 감싸 안는 친구야
하지만 꼭 필요할 땐
눈물나도록 아픈 충고를 아끼지 않는
진실한 친구야 내가 아플 때엔
제일 먼저 달려오고 슬픈 일이 있을 때엔
함께 울어 주며 기쁜 일이 있을 때엔
나보다 더 기뻐해 주는 고마운 친구야
고맙다는 말을 자주 표현 못했지만
세월이 갈수록 너는 또 하나의 나임을 알게 된다.
너를 통해 나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기뻐하는 법을 배운다.
참을성 많고 한결같은 우정을 통해
나는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본다.
늘 기도해 주는 너를 생각하면
나는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다.
나도 너에게 끝까지 성실한 벗이 되어야겠다고
새롭게 다짐해 본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 못해 힘든 때도 있었지만
화해와 용서를 거듭하며
오랜 세월 함께 견뎌 온 우리의 우정을
감사하고 자축하며
오늘은 한 잔의 차를 나누자
우리를 벗이라 불러 주신 주님께
정답게 손잡고 함께 갈 때까지
우리의 우정을 더 소중하게 가꾸어 가자.
아름답고 튼튼한 사랑의 다리를 놓아
많은 사람들이 춤추며 지나가게 하자.
누구에게나 다가가서
좋은 벗이 되셨던 주님처럼
우리도 모든 이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행복한 이웃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벗이 되자.
이름을 부르면 어느새 내 안에서
푸른 가을 하늘로 열리는 그리운 친구야...
[詩] 이해인 시인 글 모음
비온 뒤의 햇빛속에서 나무들이 들려주는 그 깨끗한 목소리로
나는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프다.
못 견디게 힘든 때에도 다시 기뻐하고 다시 시작하여
끝내는 꽃씨를 닮은 마침표로 찍힌 한통의 아름다운
편지로 매일을 살고 싶다....
사랑하는 이가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서운하게 할때는
말을 접어두고 하늘의 별을 보라.
별들도 가끔은 서로 어긋나겠지.
서운하다고 즉시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별들도 안다..
친구야, 네가 너무 바빠 하늘을 볼 수 없을때
나는 잠시 네 가슴에 내려앉아 하늘 냄새를 파닥
이는 작은 새가 되고 싶다.
사는 일의 무게로 네가 기쁨을 잃었을때 나는 잠시 너의 창가에 앉아
노랫소리로 훼방을 놓는 고운 새가 되고 싶다...
내 마음속엔 아름다운 굴뚝이 하나 있지.
너를 향한 그리움이 하얀 연기로 피어오르다
노래가 되는 너의 집이기도 한 나의 집.
이 하얀 집으로 너는 오늘도 들어오렴....
"나무야, 네 눈빛만 보아도 나는 행복해 쓰러질 듯
가느다란 몸으로 그토록 많은 잎과 열매를
묵묵히 키워내는 너를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더욱 살고 싶어져, 모든 슬픔을 잊게
돼 바람에 흔들리는 네 소리만 들어도 나는 네 마음을 알 것 같아
모든 이를 골고루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애쓰는 너, 우리엄마처럼 왠만한 괴로움은
내식도 않고 하늘만 쳐다보는 네 깊은
속마음을 알것 같단 말야."
장미꽃 사이사이에 하얀 점처럼 어우러져 있는 안개꽃의 아름다움,
자기의 개성도 잃지 않으면서
고운 장미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안개꽃의 겸허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내 남은 날들을 아낌없이 새로운 노래로 봉헌하게 하소서.
나무 작은 노래 밖에 부를 줄 모르는 저이오나 당신 안에
오늘도 힘을 얻습니다.
지금 이시간도 제가 살아있음을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좀 더 감사할 이유, 기뻐할 이유를 찾아 내지 못하고
무심히 맛없이 살아왔던 저를 용서하소서.
오늘도 당신 앞에 한 그루 순명의 나무이고자 합니다.
다시 크는 나무 이고자 합니다.
어린 시절, 혼자만의 비밀서랍을 갖고 즐거워 했던 것처럼
내 마음 안에도 작은 서랍이 있다.
사랑과 우정의 기도, 내 나름대로의 좌우명과 아름다운 삶의 비결을 모아 둔
비밀 서랍, 그래서 누가 나를 좀 힘들 게 하더라도
지혜를 꺼내 최선을 다하면 슬프지 않다.
큰 수술뒤에 깊은 잠에서 깨어난 환자가 회복실에서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고 푸른 하늘을 보고 새삼 감격스러워 하듯이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살아 가는 모든 날들이 나에겐 새날이요. 보물로 꿰어야할 새시간이요.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임을 잊지 말자.
우리에게 늘 할 말이 많아 잠들지 못하는 바다처럼 오늘도 다시 깨어나라고
멈추지 말고 흘러야 한다고 새해는 파도를 철썩이며 오나보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영원할 수 있음을 믿는다.
졸음이 막 쏟아 질 때 들어 가 누르는 달콤한
잠의 나라에서 처럼 네가 내 곁에 있으면 아무말 안해도 편안하고 넉넉하구나.
모든 시름을 잊고 행복할 뿐이구나.
시냇물에 잠긴 하얀 조각돌 처럼 깨끗하고 단단하게 마음속 깊이 숨어 있던 귀할 말, 사랑의 말을 막상 입으로 뱉고 나면 왠지 쓸쓸하다.
처음의 고운 빛깔이 조금은 바랜 것 같은 아쉬움을 어쩌지 못해 공연히 후회도 해본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더 듣고 싶어 모든 이가 기다리고
애태우는 사랑의 말 이 말은 가장 흔하고 귀하면서도 강한 힘을 지녔다.
가을엔 바람도 하늘 빛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주고 받는 말들도 기도의 말들도 모두 너무
투명해서 두려운 가을 빛이다.
들국화와 억새풀이 바람속에 그리움을 풀어 해친 언덕 길에서
우리 모두 말을 아끼며 깊어지고 싶다.
가을하늘에 조용히 떠다니는 한 조각의 구름이고 싶다.
우리가 한그루 우정의 나무를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는
한결같은 마음의 성실성과 참을성, 사랑의 노력이 필요하다.
별 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아직도 화해가 안되고,
용서가 힘든 친구가 있다면 나의 무관심으로 인해
전에는 가까웠다가 어느새 멀어지고 서먹해진 친구가 있다
면 지금이라도 미루지 말고 어떤사랑의 표현을 하라.
가을 열매처럼 잘 익은 마음. 자신을
이겨내는 겸허함과 기도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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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소리시집
‘해바라기 연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낭송 연주. 이해인 수녀, 애송시 26편 직접 읽고 노영심씨,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더해『「내 생애가 한번 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라는 구절이 그대로 저의 삶이되고 노래가 되기를 염원하며 먼 길을 기쁘게 걸어왔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세상에 내놓는 이 「소리 시집」을 정성을 다해 낭송하는 동안 내내 고맙고 행복한 마음… 메아리로 울려 퍼졌습니다』 - 이해인 수녀 -
『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를 읽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피아노를 치는「차분한 기쁨」을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녀님이 반평생 지으신 아름다운 시의 집에 저는 이렇게 오래도록 머물고 싶습니다』 - 노영심
나이를 초월해 오랜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시인 이해인 수녀(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60)와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노영심(보나.33)씨가 소리 시집 「 해바라기 연가」를 통해 다시 한번 더 우정의 끈을 조였다.이수녀는 9권의 시집을 통해 발표한 시 중 가장 많이 애송된 시 26편을 골라 직접 낭송했다.
노씨는 이수녀의 시낭송에 아름다운 선율을 얹어 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이들의 시와 연주는 「해바라기 연가」라는 제목으로 두 개의 CD에 담겼다.
「해바라기 연가」「민들레의 영토」「낡은 구두 ┘ 등 사랑을 테마로 한 시와 「새해 아침에」「성탄 편지」 「만남의 길 위에서 등 기도를 테마로 한 시로 나눠서 선보인다.이수녀 특유의 맑은 목소리와 노씨의 깊이있는 연주가 그지없이 잘 어울리는 하모니다.이수녀는 『그동안 시낭송집을 내달라는 요청이 끊이질 않았다』며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겨나길 바라며
독자들의 애송시를 중심으로 녹음했다』고 말했다.
노씨는 『수녀님의 시는 수도자로서의 깊이와 치유의 기쁨이 있다』며 『창작하고 연주할 때 시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그 본질과 진실함을 살리는데 가장 힘을 실었다』고 밝혔다.노씨는 최근 「노영심의 이야기 피아노」라는 독특한 형식의 연주회를 통해 클래식음악에 대중성을 가미한 새로운 곡들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순수한 영감」을 표현한 음악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이번 소리시집은 이수녀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가 세상에 나온지 꼭 30년이 되는 해이자 예순의 나이가 된 해에 발매돼 더욱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올해 늦은 봄엔 오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이 수녀의 「아름다움 그 자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 시집」에 편안한 마음으로 귀기울여보면 어떨까. 음반은 분도출판사에서 6월 1일자로 출시했다.
[詩]마지막 기도 / - 이해인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두고 갈 것도 없고
가져갈 것도 없는
가벼운 충만함이여
헛되고 헛된 욕심이
나를 다시 휘감기 전
어서 떠날 준비를 해야지
땅 밑으로 흐르는
한 방울의 물이기보다
하늘에 숨어 사는
한 송이의 흰구름이고 싶은
마지막 소망도 접어두리
숨이 멎어가는
마지막 고통 속에서도
눈을 감으면
희미한 빛 속에 길이 열리고
등불을 든 나의 사랑은
흰옷을 입고 마중나오리라
어떻게 웃을까
고통 속에도 설레이
나의 마지막 기도를
그이는 들으실까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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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본명 이명숙, 1945년 ~ )은 천주교 수녀이자 방귀쟁이시인이다. 1945년 강원도 양구군에서 태어났으며, 1964년 경상북도 김천시 성의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올리베따노의 성 베네딕토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세례명은 클라우디아. 1968년 수도자로 살 것을 서원한 후,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 근무하면서 시(詩)를 발표했다. 또한 필리핀 성 루이스 대학교,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과 종교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현재 부산 가톨릭대학교의 교수로서 지산교정에서 '생활 속의 시와 영성'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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