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이다.봄날씨는 늘 변화무쌍하다.하지만 4월중순이 가까운 이즘에 봄꽃산행을 떠났다가 눈꽃산행을 하기는 첨이다.
아마도 4월에 내리는 눈은 뭔가 할말이 많은것인가 보다.남녘은 이미 봇물처럼 터져버린 봄꽃들이 익어 가느라 분주하다.
그 까닭에 여기저기서 봄꽃 축제가 한창이라지만 4월에 만난 민주지산의 봄은어떤 화려한 색보다 비교할 수 없는 백설의 설원을 아낌없이 내주었다.색색이 화려하고 오색찬란함도 순백의 고결하고 고귀함 앞에서는 그 영롱한 빛을 잃는다.
순백이 주는 마지막 설원 그 순백의 속살이 주는 민주지산으로 떠나보자.태풍에 준하는 비바람을 동반한 강풍이
전국을 강타한다는 소식에 토요일 밤은 거칠고 황량함에 매섭다.
무릇 산행이 안겨주는 설레임에 잠못이루고 처음 밟는 민주지산에 대한 막연한 생각에 골똘해진 시각.밤새 거친 비바람은 나를 쉽게 잠을 재우지 않는다.얼마쯤 잤을까.알람소리에 벌써 날이 휑하니 밝아온다.
prologue 산 벗
민주지산..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태백산맥이 나은 소백산맥의 일부로 추풍령고개 남서쪽 15km지점에 위치한 산이다.행정구역상 충북 영동군 용화면,상춘면 전북 무주군 설천면,경북 김천시 부항면3도 4면을 경계로 한다.
주봉 (1242m)을 비롯,각호산(1176m),삼도봉(1176m),석기봉(1200m)과 더불어 1000m가 넘는 고산 준령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 까닭에 예로부터 첩첩산중의 험준한 계곡을 이룬 원시림에 가까운 산이라 일컬어 부른다.
민주지산의 뜻말은 삼도봉에서 각호산까지 산세가 밋밋하다 하여 "민두름"(밋밋하게 둘러있다)이라 불리어 지다 일제 강점기에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민주지산의 한자표기를 제각기 하는 바람에 음은 같으나 뜻을 달리 해석 하고 있다.
옛 문헌 "동국여지승람"(1481년 성종12년 노사신,강희맹,서거정 등이 지은 지리서.1432년 세종14년 처음 편찬뒤 개편됨)과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에도 민주지산의 위치에 백운산과 삼도봉이 표기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제가 왜 우리의 산하를 왜곡하고 말살시키려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까닭에 민주지산의 옛이름 백운산을 찾고자 하는 이 지역 주민들과 관계당국이 개명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그 노력과 뜻을 이루지못한 채 지금 현재의 이름으로 부르게 된 점을 알린다.
민주지산은 민주주의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이름으로 봐선 얼핏 민주화를 위한 피비린내 나는 상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름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그러나 민주지산은 우리의 아픈 현대사의 상처가 얼룩져 있고 근래 98년 4월1일 특전사 6명이 동사한 채 숨을 거둔 마의 악산 이기도 하다.
꽃다운 나이에 조국과 국가의 안녕을 위해 훈련중 숨을 거둔 고귀한 영령들의 영혼이 잠이 깃든 곳이다.
여기서 잠깐 현대사의 일부를 조명 해보자.한국전쟁이 한창인 1951년 남부군의 총사령관인 이현상은 한국전쟁전후인 1949년부터 1953년 9월까지 한강 이남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던중 1951년 5월 이곳에 들어와 일주일동안 군,경찰과 대처하며 총격전을 버린뒤 무주 덕유산을 거쳐 마지막 거점인 지리산에 들어가버린 역사의 한 무대이기도 하다.
이현상은 충남금산 태생이지만 이데올로기 사상에 사로잡혀 김일성의 사주를 받은 채 북의 밀명에 움직인 꼭두각시의 표본인 겪이다.전쟁중 가족의 대부분은 월북했고 그 자신은 1953년9월17일 지리산 쌍계사 빗점골에서 사살 되었다고 전한다.
그의 죽음마져도 부검 결과 자살인지 사살인지 역사속에 진실을 드러내지 못한채 섬진강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 화장 되었다.
굴곡진 현대사에서 그릇된 사상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여실히 귀감 할 수있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그걸 아는지 깊은산 물한계곡은 원시생태를 갖춘채 장장20km의 계곡을 말없이 흐르고 있다.
"물한계곡"의 뜻말은 한자로 "몸을 한가히 두지 말라"는 깊은 뜻이 베어있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물이 맑고 차다"라고 해석 한다.그런 역사속 오늘은 또한 우리의 숭고한 국군장병들이 숨을 거둔 아픈 과거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 그들의 흔적을 찾아가보자.1998년 4월1일 천리행군(400km)을 하던 육군 특수전사령부 흑룡부대원(제 5공수여단,경기 부평)들이 산악에서 갑자기 몰아친 추위속에 탈진해 6명이 숨지고 1명실종 6명 부상이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고는 나흘전 3월28일 칠갑산을 출발하여 4월6일까지 속리산,백운산,월악산,대마산에 이르는 9박10일간의 대대종합전술훈련에 나선 특수전 부대원들이 해발 1242m의 민주지산을 넘을때 일어났다.
행군 5일째 거리상177km를 군장40킬로에 쉼없이 걸어와 지쳐 있을 때다.사고부대는 1일 오후 1시 전북 무주를 출발 20km를 3시간동안 강행군한끝에 민주지산 정상부근에 도착해 야영에 들어갔다.
그러나 밤이되자 야영지에는 기후가 급변하면서 영하10도 이하의 추위가 닥치고 낮부터 내리던 비는 폭설로 변했다.
사고 당시 현장은 이미 30cm가량이 폭설이 내린데다 초속 40km의 강풍으로체감기온이 영하 20~30도이하로 급강하에 사실상 훈련이 불가능한 기상 상태였다.
출발때부터 계속 쏟아지는 빗속의 강행군으로 체력이 급격히 소모된데다 갑작스런 강추위로 탈진증상을 호소하는 장병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헬기조차 뜰 수 없는 악천후로 구조작업이 늦어지면서 결국 대위 1명을 포함해 6명의 사망하고 1명실종 6명 부상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던 것이다.
조사에 착수한 육군은 "16일부터 계속된 훈련으로 대원들의 피로가 누적 된데다 지옥훈련 과정인 천리행군도중 악천후로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저체온증을 유발,사고로 이어진것으로 보인다"며 "직접사인은 탈진으로 인해 피부와 근육이 갈라지는 열상과 간기능저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방한복과 야영준비 응급의약품 등 산지 야영에 대비한 충분한 대비없이 무리하게 훈련을 강행했던 지휘관의 과실도 드러났다.
기상악화로 첫 사상자가 발생 (저녁6시20분 최초로 이광암하사 사망)함에도 불구하고 산악훈련을 중단하지 않고 예정된 집견지로 모이도록 하는 훈련을 강행해 추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국방부는 사고의 지휘책임을 대대장을 보직 해임한데 이어 여단장과 여단정보참모에 대해 훈련감독부실 책임을 물어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순직한 특전사대원 6명의 합동영결식은 3일 특수전사령부장으로 거행되었으며 유해는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사고 현장아래 물한리계곡 (물한리 가정마을 )에는 안타깝게 숨져간 젊은 군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비가 서있다.
순직자는 충남대 ROTC출신 팀장 김광선 대위 (28)
오수남 하사 (19)
이수봉 중사 (24)
이광암 하사 (23)
한오환 하사 (22)
전해경 하사 (22)
고귀한 당신들의 숭고한 희생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고인들이여 편히 잠드소서.(_)
그들의 순직한지 15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다.이젠 사람들의 기억속에 그날의 악몽은 서서히 잊혀져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4월에 산행하는날 그날을 기억하고 되새겨라는 뜻인지 5부능선부터 한겨울에도 보기힘든 상고대가 피고 눈꽃산행이 주는 묘미를 즐감하는데 아깝지 않는 시간을 엮어내 주었다.
봄꽃산행에 뜻하지 않는 생뚱맞는 눈꽃산행이 되버렸다.아무렴 어째겠는가.봄꽃이든 눈꽃이든 산행이 주는 풍광은 너무나 소중한 시간일진데..간만에 나서는 산행이 조금은 벅차오른다.
아직 정상에는 서있기조차 힘든 강풍이 불어 장병들의 죽음을 숭고히 일깨워주는듯 여겨진다.아~민주지산이여!!
그런 숭고한 희생뒤에 민주지산 중심에는 삼도봉이 우뚝 서 있다.우리나라에는 삼도봉을 지칭하는 곳이 두곳 있다.
하나는 민주지산 이곳이고 또 하나는 지리산이다.전북 남원시 산내면과 전남 구례군 산동면 경남 하동군 화개면 3도가 맞물린 채 경계를 이룬 산높이 1550m지점에 3도경계석을 세웠다.
민주지산 삼도봉은 조선태종 14년 (1414)조선을 팔도로 나눌때 충청,전라,경상의 삼도 분리점을 이루게 되었다.옛날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가 서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곳이기도 한탓에 군사적,지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거점 지역이였는지 알 수가 있는 곳이다.
그래선지 삼도봉을 중심으로 매년 3도의 이 지역 주민들은 10.10일을 정해 동서화합의 날로 정하고 만남의 축제의 장을 열어 지역주민들의 무사안녕과 발전을 도모하며 화합과 소통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한다.
그 소통의 장이 동서를 비롯 백두에서 한라까지 삼천리(1200km)남북으로이어지길 기원하면서 민주지산의 산행후기를 여기서 마칠까 한다.봄햇살이 넘실대는 내일을 기대하며.
2013.4.8 민주지산을 다녀와서.
산 벗 황 홍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