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에 묶여
한범수
몇 날을 그러했다
우도에 묶여 헤어나지 못했다
몇 자 쓰다 지우곤 했다
성산은 침묵하고
갈매기는 날고
바람은 불고
조각배 너울대니
무슨 말을 더하랴
몇 날을 그러했다
우도에 묶여 마음 시려했다
성산이 울었다.
2014. 12. 15.
* 제주도 성산 앞바다에 우도가 있다. 그 모습이 누워 있는 소 같다고 해서 소우 자에 섬도를 붙여 우도입니다. 섬의 면적은 6.18㎢이며, 인구는 2014년 9월 말 기준 1,663명으로 제주도에 딸린 섬 중 가장 큰 섬입니다.
1989년 신혼여행으로 제주도를 찾았을 때 배를 타고 서귀포 앞바다의 범섬을 돌아보며 쪽빛 물에 가슴 설렌 적이 있습니다. 이후 가장 남쪽에 위치한 마라도를 두 번 갔고, 서귀포 서쪽에 자리 잡은 차귀도를 돌아보았습니다. 협재 해수욕장 앞의 비양도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이곳을 방문하는 것을 숙제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우도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우도에는 1698년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합니다. 에메랄드 빛 바닷물과 하얀 모래로 유명한 서빈백사 앞에 '서산용출'이란 작은 비석이 있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 제주목에 고려 묵종(1004년 5월 6일) 때 서산이 바다에서 솟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 조정은 대학박사 전공지를 탐라에 보내 조사를 했는데, 탐라인이 말하길 7일 동안 100장 높이로 용암이 솟구쳐서 사방 40여 리의 섬이 되는 동안 두려워서 접근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우도훼리'호를 타고 성산포구를 출발해 우도를 향하는 바다에서 바라본 성산 앞바다의 하늘에는 구름 사이로 빛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갈매기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며 1980년 봤던 조나단(갈매기의 꿈)을 떠올렸습니다. 성산이 멀어질수록 성산은 말을 잃고 수묵화가 되었습니다. 바다에는 일엽소선이 파도에 몸을 띄운 채 넘실대고 있었습니다.
성산이 멀어지면서 우도의 모습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소가 누워 있다는 모습을 상기하며 우도를 바라보았지만 누워 있는 소는 보이지 않고, 그저 기다랗게 자리 잡은 섬만 보였습니다. 우도에 도달하는 동안 멀어지는 성산과 가까워지는 우도, 그 사이에 보이는 세상을 쉴 새 없이 휴대폰으로 담았습니다.
바닷바람이 차가워 휴게소에 들러 목장갑을 찾았습니다.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해 보이는 젊은 주인이 어눌한 목소리로 목장갑의 가격을 말해주었습니다. 1,700원으로 알고 2,000원을 내밀었더니 1,000원을 먼저 돌려주고 300원을 힘겹게 거슬러주었습니다. 우도는 이렇게 가슴으로 들어왔습니다. 선한 사람이 사는 섬으로.
우도를 안내하는 16호 버스를 탔습니다. 기사 아저씨의 신바람 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미남 미녀들이 우도를 찾아주셔서 고맙다는 말에 우리 일행의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첫 도착지에서 허용된 시간은 30분이었습니다. 부지런히 탐방로를 따라 언덕의 중터에 이르자 성산 일출봉이 저 멀리서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소가 누워 있어서 우도라고 일컬어지지만, 언덕을 오르기 전에 본 언덕의 모습은 사람 얼굴이었고 언덕을 오르면서 본 모습은 사자였습니다.
배 위에서 봤던 성산 일출봉을 우도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그야 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시선을 떨구어 우도 풍경을 바라보니 이 또한 절경이었습니다. 남은 시간은 20여분, 우도에서 가장 높은 언덕을 뜀걸음으로 올랐습니다. 이곳은 우도팔경 중 하나인 청두지사라는 곳입니다. 바람부는 언덕에서 하늘과 바다를 품고 성산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출발지로 도착하니 그래도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 우도는 땅콩으로 유명합니다. 땅콩으로 만든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은 명물이 되었습니다. 우도 명물이라는 땅콩 아이스크림을 맛보려고 '아이스크림 연구소 Cafe'에 들어갔습니다. 오밀조밀한 안내판을 보며 땅콩 아이스크림을 주문해 게눈에 뭐 해치우듯 뚝딱 먹어치우고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기사 아저씨의 안내가 이어졌습니다. 우도는 신들이 제주도로 들어가는 길목이라고 합니다. 기사 아저씨가 이름 붙인 중앙 고속도로를 지나 마을 중심가에 이르자, "제주도는 3다 3무인데 우도는 4무라고 합니다. 집은 많이 보이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4무라고 합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허름한 이용원을 지날 때, "이곳 이용원 주인은 월남전에 참전했던 분입니다. 이분이 40여년간 우도 이발업계를 독점하다보니 우도 주민의 헤어스타일은 누구 할 것 없이 한가지로 통일되었습니다. 그 헤어스타일 이름은 깍두기입니다."라고 해서 모두 박장대소했습니다.
단란주점이라고 써 있는 가게 2곳을 지날 때에는 우도의 유흥가를 지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기사 아저씨의 재담은 이곳에서도 쉬지 않았습니다. 술을 팔며 접대하는 분의 나이를 맞춰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 다양하게 외치자, 가게 2곳에서 접대 하시는 분의 나이를 합하면 110살이라고 해서 우리 일행이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명동에 해당하는 금융가와 마트가 있는 백화점가를 벗어나, 우도의 유일한 아파트촌이라는 공무원 관사를 지났습니다. 우도관광버스의 운전 실력을 테스트하는 에스자코스를 벗어나는 동안에도 기사 아저씨의 지칠줄 모르는 안내가 이어졌고, 우리 일행의 얼굴은 달덩이처럼 환해졌습니다. 이분을 관광해설사의 전형으로 소개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버스가 서빈백사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홍조단괴해빈' 해수욕장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산호초가 부서져서 해수욕장이 하얗다고 알려졌지만, 바닷물에 서식하는 '홍조단괴'라는 홍조류가 탄산칼슘을 침전시켜서 산호와 조개껍질이 부서져서 만들어진 것처럼 하얀 해수욕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서빈백사는 에메랄드 빛 바닷물에 몸을 담구고 사랑을 속삭이고 싶은 그런 예쁜 해변이었습니다.
한때 이곳은 바닷물을 수조에 담아 염분을 가라 앉힌 물을 식수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상수도관을 바닷속으로 연결해 우도 주민 모두 한라산 삼다수를 먹고 있다고 합니다. 제주도에 사는 제자는, "옛날에는 우도에 가서 라면을 끓여 먹을 때에는 물이 짜서 스프를 조금만 넣었어요."라고 말하며, 이제 살기 좋은 우도가 되었다고 말을 덧붙였습니다.
우도를 떠나야하는 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우리들 가슴 속에 하나씩 가고 싶은 상상의 섬이 있습니다. 그 섬은 이어도 일 수 있고 동쪽 바다를 외롭게 지키는 독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해안에 산재한 수많은 섬 중 소중하지 않은 섬이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언제인가 기회가 되면 우도를 포함한, 이들 섬에서 며칠씩 묵으면서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섬안의 섬, 우도가 2014년 12월 11일 마음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느낌을 몇날을 두고 적지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이렇게 정리합니다. 청두지사에서 바라본 우도풍경은 채색화로, 바다 건너 성산 일출봉은 수묵화로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성산 일출봉에서 우도로 들어설 때 보았던 빨간 등대가 생각납니다. 혹여 이곳에서 사랑이 시려 울고간 사람은 없을지, 성산을 바라보며 그리움에 고개를 떨군 사람은 없을지. 이제 며칠 동안 우도에 묶여 있던 마음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 2'의 한 구절을 옮깁니다.
"(전략)
날짐승도 혼자 살면 외로운 것
바다도 혼자 살기 싫어 퍽퍽 넘어지며 운다
큰산이 밤이 싫어 산짐승 불러오듯
넓은 바다도 밤이 싫어 이부자리를 차내버린다
사슴이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밤을 피해가듯
넓은 바다도 물속으로 물속으로 밤을 피해간다
(이하 생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