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외과 창설 50주년에 붙여
오민석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외과 개설 5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앞으로도 일취월장하는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바이다. 이맘때쯤이면 학과를 창설하신 우정현 교수님이 맨 먼저 뇌리를 스쳐간다. 스승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엄격하면서도 매우 인자한 분이셨고 무엇보다 학과의 발전을 위해 지극히 헌신적이셨으니 지금 생존해 계시다면 남다른 감회가 서리셨을 것으로 보아 아쉬움이 절절하다. 특히 스승님은 나의 친구의 아버님이 되시니 그분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세월은 강산이 두 번 반이 변했을 만큼 흘렀지만, 나의 뇌리에서 지금도 잊히지 않는 추억 한 토막을 소개하는 것으로 스승님의 빈자리를 메우고 자 한다.
나는 전남대학교 병원에서 전공의를 수료하고, 1987년, 광주기독병원 신경외과를 개설하였다. 그 당시 기독병원의 규모나 지역 여건상 뇌혈관 질환의 미세수술이 절실히 필요했다. 나는 몇 차례 스승님을 찾아뵙고 이에 관한 조언을 요청했다. 때마침 일본의 저명한 신경외과 수지타 교수께서 전남대학병원에서 고난도 뇌동맥기형수술을 할 예정이라는 말씀을 전해 들었다.
1988년 2월, 마침내 수지타교수가 내한하여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저녁에는 ‘수지타교수 초청 축하회’가 한정식으로 마련되었다.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분은 수술의 피로 탓인지 한 30분 동안 거의 몸을 누운 자세로 있었다. 청아하고 은은한 국악의 연주가 시작되자 그분은 언제 피로했느냐는 듯, 아쟁의 소리에 호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 수지타 교수께서 좋아한다는 고토음악과 한국국악에 관한 화제로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나는 수지타 교수께 뇌혈관 질환과 미세수술의 연수를 부탁하여 허락을 받아냈고 5월에 일본의 신슈 대학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때 스승님께서 ‘수지타 선생이 이토록 아쟁의 소리를 좋아하니 그분께 아쟁악기를 선물하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하셨다. 그래서 나는 연수를 앞두고 아쟁을 구입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아쟁악기를 가져가는 가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EPS가 발달하지 않은 터라 고민 끝에 악기를 보호할 나무 케이스를 주문 제작하여 아쟁악기를 넣고 아쟁 테이프도 준비하여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맞춘 악기케이스는 누가 봐도 예사롭지 않은 관 크기였으니까. 예상했던 대로 일본 오사카공항 입국심사에서 정밀심사 대상으로 분류되어 통관이 지체되면서 마스모토행 연결 비행기는 이미 떠나 버린 상황이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오오사카에서 신칸센을 타고 마쓰모토까지 가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지금처럼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때도 아니었으니 큰 나무 괘짝 같은 아쟁 케이스와 여행 가방을 들고 그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평생 흘릴 땀을 다 흘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숱한 세월이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그때의 고생과 힘든 순간은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때 도움의 손을 내밀어준 일본의 그 청년과 아주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수지타 교수께서는 내가 힘들게 가지고 간 아쟁악기에 기쁨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 신슈대학 신경외과의들과 함께 환영파티를 열어 테이프로 아쟁연주를 들으며 진심어린 감사를 표하셨다. 그분의 감사와 배려와 두터운 신의가 마음속에 각인되어 모든 수고가 눈 녹듯 사라졌다. 누군가를 위한 진심과 수고는 진정성 있는 상대를 만났을 때 보람으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행복이 배가됨을 그때 경험하였다.
수지타 교수께서는 수술 관람과 수술 후 쥐 혈관 문합수술 등을 실험실에서 매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서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광주기독병원에 실험실을 갖추고 미세수술 연습에 매진하여 바로 그해부터 뇌동맥류수술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미진하나마 지역사회의 의료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고 기독병원에서 신경외과의 수련의 기틀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기독병원에서의 13년 족적을 뒤돌아 볼 때, 그리고 오늘의 기독병원 신경외과의 위치와 모든 성과들이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외과 교실에서 기초를 닦도록 이끌어 주신 여러 교수님들 덕택이니 고개 숙여 감사하는 마음이 그지없다.
올해 벌써 나이 육십, 내가 이제 그런 겁 없는 열정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과 지혜로 의사의 직업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겸손한 마음으로 성실히 살아가고 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