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엄일승법계도
2. 법계도란?
▣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 신라의 고승(高僧) 의상(義湘 625~702)스님이 44세때(668년 7월) 당(唐)나라 지상사(至相寺)에서 화엄사상(華嚴思想)의 요지(要旨)를 210자(字)의 간결한 시구(詩句)로 축약(縮約)한 글로, 54각(角)이 있는 도인(圖印)에 합쳐서 만든 것이다.
제명(題名)은 '가지가지의 꽃으로 장엄된 일승(一乘)의 진리로운 세계의 모습'이라는 뜻이다. 내용은 '절대평등한 법성(法性)은 유정(有情), 무정(無情) 등 일체를 초월하여 깨우친 사람이 아니면 알수 없을 뿐만 아니라, 법성 즉 진성(眞性)이 변하지 않으면서도 객관적인 조건, 즉 연(緣)을 따라서 일체 만유(萬有)를 창조한다. 따라서 개체와 전체에 서로 걸림이 없고, 크고 작은 것에 자재(自在)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법신(法身)이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방대한 분량의 화엄경(華嚴經)의 뜻을 간명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삼국유사에서는 '법계도서인(法界圖書印)'이라 하고, 이 밖에 '법성도(法性圖)', '해인도(海印圖)'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화엄일승법계도'에는 저자(著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이 책의 끝에 "인연으로 생겨나는 모든 것에는 주인이 따로 있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저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다" 라고 하여 그 이유를 설명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고려의 균여(均如)는 그의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에서 최치원이 지은 '의상전(義湘傳)'으로 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인용, 이것의 저자가 의상스님임을 밝히고 있다.
『의상스님이 스승 지엄(智儼;600~668)스님의 문하에서 화엄(華嚴)을 수학(修學)할 때이다. 꿈 속에 형상이 매우 기이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의상에게 "네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저술하여 사람들에게 베풀어 줌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또 꿈에 선재동자가 나타나 총명약(聰明藥) 10여제를 주었고 다시 청의동자가 나타나 세번이나 비결(秘訣)을 주었다. 스승 지엄스님이 이것을 듣고 "신인이 신령스러운 것을 줌이 나에게는 한번이었는데 너에게는 세번이구나. 널리 수행하여 그 통보(通報)를 곧 표현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와같은 지엄화상의 말씀을 듣고 공부를 계속하여, 마침내 부처님의 부사의(不思議)한 경계를 사무쳐 본 뒤로는 '화엄경'에 대한 의심이 다 풀어지고 중중무진(重重無盡)한 법계연기(法界緣起)의 도리(道理)가 거울속 그림자 모양 확연히 들어났다. 이에 이러한 경지를 게송으로 읊으니 7언(言) 30구(句)의 게송(偈頌)이 되었다. 다시 이것을 만다라(曼多羅)와 같은 그림으로 엮었으니, 바로 '화엄일승법계도'이다.
의상스님은 이것이 화엄경의 진리에 부합하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섶에 불을 지르고 그 옆에 서서 발원하였다. "이제 화엄의 깊은 뜻을 30구 210자의 게송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원컨대 이것이 부처님의 뜻에 계합(契合)함이 있다면 타는 불 속에 들어가서도 온전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나서 '법계도'를 맹렬한 불길 속에 집어 넣었으나 과연 타지 않았다.
의상스님이 이 법계도를 지엄화상에게 내보이니 지엄화상은 대단히 기뻐하며 "참으로 장하고 장하다. 이 30구 게송 속에 화엄경의 큰 뜻이 모두 담겼구나. 이 게송만 외어도 화엄경을 읽은 공덕과 같을 것이니 널리 세상에 알려 전하도록 하라" 하였다.』
3. 의상스님의 자문자답(自問自答)
(※의상스님은 법계도를 만들고 나서 스스로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을 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법계도'를 짓게 된 동기: 이(理)에 의하고 교(敎)에 근거하여 간략한 반시(槃詩)를 만들어 이름에만 집착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그 이름마저도 없는 참된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고자 함이다.
◈ '印'이라는 형식을 취하여 법계도를 짓게된 까닭? 해인삼매(海印三昧)에 들었을 때 나타나는 삼종(三種)의 세간(世間), 즉 기세간(器世間: 물질의 세계)과 중생세간(衆生世間:인간들의 세계) 그리고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정각에 의한 지혜의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특히, '법계도'는 흰 종이 위에 붉은 도인(圖印의 길(줄))과 검은 글자를 써서 만들었는데, 이는 '삼종세간'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적화(赤畵:붉은 길)는 지정각세간, 즉 불지(佛智)를 나타낸다. 그것은 마치 붉은 태양이 어두운 거리를 비추는 것과 같은 까닭에 적인(赤印)으로서 비유되었다. 흑자(黑字)는 중생세간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중생은 번뇌를 업(業)으로 삼아 무명(無明)으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흰 종이는 기세간을 비유하는데, 기계(器界)는 염업(染業) 중생이 거주(居住)한즉 더럽게 되고, 불보살(佛菩薩)과 같은 정업자(淨業者)가 거주한즉 깨끗하게 된다. 곧 지정각(智正覺)이 중생을 깨치게 하므로 적색(赤色)으로 비유되었고, 중생이 번뇌의 업보에 얽매어 무명(無明)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흑색(黑色)으로 나타냈다. 기계(器界)는 백색(白色)으로 표현되었는데, 백색은 모든 색의 근본으로서 받는 빛의 색에 따라 각기 다른 색으로 나타난다. 곧 기계(器界)는 그 안에 거주하는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 '법계도'의 인(印)은 사각형을 이루고 있고 중심의 법(法)자에서 시작하여 역시 같은 중심의 불(佛)자에 이르기까지 54개의 각(角)을 이루면서 210자의 게송(偈頌)이 한 줄로 연결되어 있다.
◈ 왜 '인문(印文)'이 하나의 길로 되어 있는가 ? 여래(如來)의 일음(一音)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 왜 그 길이 번거롭게 굴곡(屈曲)을 나타내고 있는가 ? 중생의 근기(根機)와 욕망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삼승교(三乘敎)가 이에 해당된다.
◈ 이 하나의 길에 시작과 끝이 없는 이유 ? 여래의 선교방편(善巧方便)에는 특정한 방법이 없고 대응하는 세계에 알맞게 융통성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원교(圓敎)가 이에 해당된다. ☞ 이 인문(印文)은 삼승(三乘)에 의하여 일승(一乘)을 드러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사면사각(四面四角)으로 되어 있는 것은 사섭사무량(四攝四無量)을 나타낸 것이다. ☞ ┌-사섭법(四攝法) : 1.보시(布施) 2.애어(愛語) 3.이행(利行) 4.동사(同事) └-사무량심(四無量心): 1. 자(慈) 2. 비(悲) 3. 희(喜) 4. 사(捨)
◈ 게송의 글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데 그것은 수행방편(修行方便)에는 원인과 결과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 왜 첫 글자와 끝 글자가 중심(中心)에 와 있는가 ? 인과(因果)의 원리(原理)는 중도(中道)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의상스님은 이 '법계도'를 제자(弟子)들에 대한 인가(認可)의 표시로 주기를 좋아하였다.
4. 법계도 해석
(※ 여기의 법계도 해석은 저의 견해에 입각하여 한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분들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법성원융무이상 法性圓融無二相 법[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성품은 원융하여 두 모습[주관과 객관]이 없으며 제법부동본래적 諸法不動本來寂 모든 법은 움직임이 없이 본래 고요하다. (모든 법은 분주함이 없이 본래대로 뚜렷하다) 무명무상절일체 無名無相絶一切 이름, 모양 할 것 없이 모든 것 다 끊어 졌으니 증지소지비여경 證智所知非餘境 지혜를 증득해야 알 바요, 그 외의 경지가 아니다 진성심심극미묘 眞性甚深極微妙 참된 성품은 매우 깊고 지극히 미묘해서 불수자성수연성 不守自性隨緣成 자신의 성품만을 고수(固守)하지 아니하고 연[조건]을 따라 이루어가니 일중일체다중일 一中一切多中一 하나 속에 모든 것이요, 많은 것 속에 하나다 일즉일체다즉일 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곧 모든 것이요, 많은 것이 곧 하나이다 일미진중함시방 一微塵中含十方 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머금어져 있고 일체진중역여시 一切塵中亦如是 모든 티끌 속이 또한 이와같다 무량원겁즉일념 無量遠劫卽一念 헤아릴 수 없이 먼 시간이 곧 한 생각이요 일념즉시무량겁 一念卽是無量劫 한 생각이 곧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다 구세십세호상즉 九世十世互相卽 구세[유한한 시간]와 십세[무한한 시간]가 서로서로 뒤엉켜 나아가나 잉불잡란격별성 仍不雜亂隔別成 (그 속에서) 어지러이 섞이지 아니 하고 떨어져 달리 이루어져 있구나 초발심시변정각 初發心時便正覺 처음 마음을 내었을 때가 바로 바른 깨달음일지니 (바른 깨달음을 이룰 가능성이 큰 때이니) 생사열반상공화 生死涅槃常共和 생사와 열반은 항상 함께 어울려 있다 이사명연무분별 理事冥然無分別 이[본체계]와 사[현상계]가 그윽하여 분별을 둘 수 없으니 십불보현대인경 十佛普賢大人境 (이는) 갖가지 이름의 부처님과 보현보살, 대인의 경계구나 능인해인삼매중 能人海印三昧中 부처님이 해인삼매 속에서 번출여의부사의 繁出如意不思議 여여(如如)한 뜻을 무수히 쏟아내시니, 불가사의 하구나. 우보익생만허공 雨寶益生滿虛空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보배로운 비가 허공에 가득 차 있는데 중생수기득이익 衆生隨器得利益 중생들은 (자기의 정신적) 그릇(마음) 크기만큼만 이익을 얻는구나 시고행자환본제 是故行者還本際 이러한 까닭에 수행자는 본마음(근본자리)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파식망상필부득 叵息妄想必不得 망상을 쉬지 않으면 반드시 얻을 수 없다. 무연선교착여의 無緣善巧捉如意 (불보살님들이 베풀어 놓은) 조건없는 훌륭한 방편으로 (그 분들의) 여여한 뜻을 잡으니 귀가수분득자량 歸家隨分得資糧 (중생들은 제 각각 자기) 분상에 따라서 집[本際;본마음]으로 돌아 갈 노자(路資)와 양식(糧食)을 얻는다. 이다라니무진보 以陀羅尼無盡寶 다함이 없는[한량이 없는] 다라니(부처님의 가르침, 불법) 보배로써 장엄법계실보전 莊嚴法界實寶殿 법계(法界)를 장엄하시니 참으로 보배로운 궁전이라 하겠구나. 궁좌실제중도상 窮坐實際中道床 마침내 실제[本際;본마음]인 중도(中道)의 자리에 앉으시어 구래부동명위불 舊來不動名爲佛 예로부터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아[진리의 자리에서 변치 않고 있으니] 이름을 부처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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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 타아불 관세음 보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