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의 천리행군...그 마지막 날의 기록, 가슴이 찡한 글이다....

[요나단]

어느해 천리행군 그 마지막 날의 기억.

42.< 어느 해의 천리행군...그 마지막 날의 기록>




<1>
어물쩡거리는 행군속도에 대대장은 부화가 치밀었다. 선두가 문제였다. 000명 이상이 행군종대로의 행군이 정상 속도를 내려면 10분 이상 소요된다. 대대장은 P-77을 잡고 소리를 지른다.

" 야, 선두 어디야? 뛰란 말야. 어물쩡거리지 말구..명령이다. 현 시간 부로 구보!! 구보!! 산보 하냐? "
이 소리를 들은 병사들은 숨을 가른다. 선두가 구보면 후미는 100 메타 달리기가 된다. 천리행군 종료 하루 전. 00 고개 앞에서 여단장을 만난 다음 약간을 쉬고 아침가지 부대정문을 통과해서 도열을 받아야 한다. 그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대대원 모두가 급히 행군하고 있는 것이다.

병력은 행군으로 자주 다니던 길에 들어 자 피로한 기색이 역역했다. 한 달의 산 생활은 필수품으로부터 체력까지 완전히 고갈 시켜 버렸다. 길어져 버린 머리와 수염, 너덜거리는 군복과 복장, 그리고 말라버린 땀구멍에서는 최후의 남은 한 방울 한 방울이 짜내어 진다. 부대가 가까워 옴에 따라 모두 중국 동북군 시대의 산물인 개털모자나 스케이트 선수용 모자를 벗어버리고 계급장이 달린 위장모로 바꿔 쓰기 시작했다. 땀이 나자 개털모자를 길가에 휙 제껴서 던져서 버려 버리는 사람도 생겼다. 1월임에도 불구하고 햇볕이 따갑고 바람도 불지 않는다. 행군에는 약간의 추위가 적당하다. 적당히 몸을 식혀 주니까...

병력은 거의 무장구보에 가깝게 뛰기 시작한다. 조용한 한 낮의 야산이 철기들의 덜거럭 거리는 소리로 시끄럽다. 산은 조용하고 철기의 덜거덕거림만이 가득하다. 입술이 마르고 헛김이 나온다. 소리치는 사람도 없다. 거기다가 중령까지 찦 차를 버리고 뛰고 있다. 대대장은 그걸 즐긴다. 소위부터 0공수에 뼈를 박은 그는 이러한 야수적인 질주가 초급장교 시절의 육체적 곤역의 추억을 살리는 지도 모른다. 야산이 끝나고 개활지가 보인다. 00산업도로가 보인다. 선두는 군말 없이..8차선 도로로 무작정 진입하여 건너면서 차를 총으로 정지 킨다.

"걍 무리 지어 건너~~!"
라는 명령에 병력들은 대열 없이 건너기 시작한다..사방에서 " 끼~~~~이~~익~~!..하는 차량들의 급정거 소리가 들리고, 문명의 상징인 자동차와 비문명의 산실인 거지같은 병사들이 도로를 횡단하면서..문명과 非문명을 혼동시키는 것이다. 운전자들은 뭐라 하지도 못하고..멍하니 현 상황에 침묵한다. 다수의 공격적인 대열에 압도당해 창문을 내리고 뭐라 한 마듸 할 기색도 보이지 않고..조용히 운전대를 잡고있다. 어느 부대인가 자세히 보려는 사람도 있다.


" 떨어지지 마!! " 대오는 길을 건너서 00사거리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기뻤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아, 부대가 가까워 왔다. 그러나 당황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잠깐, 쾌감은 끝나고, 00 저수지로 향하는 일직선 콘크리트 도로가 우리의 발을 깍아 먹기 시작한다. 발의 물집들이 일제히 강력하게 쓰리도록, 찌르도록, 문데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사람들의 발걸음이 종종 걸음이 된다. 열에서 " 으~~허~~아~~!" 하는 소리가 배어 나온다. 00 고개까지 한 8킬로, 이를 악문다. 선두는 기가 막힌 속도로 빼고 있다. 00 저수지가 보인다. 대대장은 00 고개까지 휴식을 주지 않을 것 같다. 정상보행으로 가도 시간은 충분하나. 휴식을 하면 퍼지게 되고, 가까운 거리도 힘겹다. 빼는 김에 빼는 것이다. 고참들이 독려하기 시작한다..

" 다 왔다. 다 왔다. 으쌰. 으쌰. ....가자~~! 가자~~!"

소리 지르는 본인들도 괴롭다. 그는 일종의 단전호흡 5번의 방식으로 자신의 <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바람 한 점 없다. 릭샥이 출렁거린다. 마지막 휴식 때 조임끈을 느슨하게 조인 것이다..휴식하면 조여 야지. 휴식하면 조여 야지. 그러나 분명히 릭샥을 풀지 않으면 또 까먹고 투덜거리면서 걸을 것이다. 앞사람이 누군지 이제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내 시야에서 그의 발목이 멀어지지 않도록 바삐 따라갈 뿐이다. 00 저수지가 지나고 여단장과의 합류점인, 일종에 골인 지점에 가까워지자 발길이 난다. 이곳부터는 부대까지 거리 당 소요시간과 거리를 완벽히 알고 있다. 난 중사다. 한 두 번 이곳을 지난 것이 아니다. 어느 길로 가는지도 다 알고 있다. 최단거리도 알고 있다. 00 고개- 00저수지- 00 송신탑-공단-00산- 과수원 --부대 정문....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휴식할 곳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 낯익은 소나무 밭이 보이자 기운이 솟는다.



그런데 갑자기, 여단장은 안보이고, 누군가 외친다
" 선두 정지. 전 대대 정지. 군장 풀고 , 전체 석식 해 먹고, 박모 시까지 쉬고 다시 출발한다. "
이건 무슨 소리야? 여단장은? 대열이 웅성거린다. 알고 보니 여단장 순시가 취소 됐다. 여기저기서 0찌거리가 흘러나온다. 우리는 힘없이 소나무 밭에 허물어진다. " 2개 중대씩 합해서 취사해 " . 지역대장 0 소령이 풀섶에 주저앉으면서 소리친다. 그도 역역히 지쳤다. 모두 반합과 마지막 남은 쌀 봉지를 꺼낸다. 사병들은 취사준비를 하러 냇가로 반합을 모아 간다. 지친 병장이 지친 대위에게 묻는다..



병장: 국을 끓일 까요?
대위: (한숨) 국거리는 있냐?
병장: 아뇨 끓일 거면 밭에서 아무거나 좀 따다가 끓이죠.
대위: 한 겨울에 모가 있을까?..그만 둬..(한숨) 밑반찬은 뭐 있니?
병장: 한끼 먹을 만 해요. 어제 휴식 때 가게에서 춘장 두 봉지도 사 놔씀다.
대위: 춘장으로 국을 끓인 다구? 그런 국이 어딨냐? 그냥 밥만 해. 춘장에 비벼 먹자.
병장: 국물 없으면 다 목에서 걸릴텐데요.
대위: 걍 비벼 먹어. 그거 무지 맛있어.
병장: 예.(고마워요. 번거롭지 않게 해줘서) 그러죠. 좀 쉬세요.



모두가 군장을 벗자 허리가 휘청거린다. 모두가 디스크 환자처럼 걸어 다닌다. 허리가 따로 논다. 선임하사가 일어선다. 착한 선임하사는 취사용 화목과 반합걸이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한달 있다 보면 움직이기만 해도 뭘 하려는지 자연히 알 수가 있다). 나도 일어선다. 안 피곤한 척 하면서 선임하사 옆으로 가서 화목이 있을 만한 곳을 둘러본다.

" 저리 가자 "
선임하사가 어느 와지선을 가르쳤다. 나도 순간적으로 그 곳을 점찍었었다. 중위가 일어선다.
" 같이 갑시다. 선임하사"
하사 세 놈이 동시에 하보수를 들어가자 우리 팀은 화목을 위해 항상 해오던 일이다. 눈치를 살피던 팀장이 부시시 일어난다. 선임하사가 말한다.
" 중대장. 걍 쉬면서 반합걸이 하나만 만들어 놉시다. Y지가대랑.." 중대장은 어색해 한다.
" 그럼, 그럴까? "
선임하사가 웃는다. 다 이유가 있다.
" 앉아 푸욱 쉬어요 "
전쟁이 나면 우리는 같이 의지해서 싸우리라. 아싸, 빨리 가자, 빨리 해먹고 쉬어야 한다.



나무를 충분히 해오자, 사병들은 반합 물을 가지고 올라오고, 남은 반찬들을 꺼낸다.
" 어이, 반합 걸어~~!"
반합을 걸고 불을 피우자 우리는 청자 한 개피씩을 피워 문다. 깊숙히 빨아들여 내 뿜는다.
" 좆도 , 이렇게 해서 번 돈, 0입하구 술 먹다니..."
모두가 웃는다. 월급이라고 뭐 얼마나 되나? 맘 잡고 몇 일 술 먹으면 딸랑 딸랑. 중대장
"난 마누라하고 정기전 하기도 바쁜데, 선임하사는 아직도 외0 하쇼? "
선임하사가 나뭇가지를 던지고. 중대장은 껄껄 웃는다.



반합이 부글부글 끓어 반합뚜껑을 흔들자, 능숙하게 불가를 젖치고 알 불로 뜸을 들인다. 그리고 각자 숟갈을 들고 식사 준비를 한다. 반찬은 단무지, 콩장, 깻잎 조금, 그리고 춘장 두 봉지. 난 난생 처음 춘장에 밥을 비벼 먹는다. 상당히 꿀맛이다. 중국집에서 양파나 찍어 먹던 춘장, 고참들의 거의 동물적인 시선이 춘장 봉지에 꽃히고 있는 것을 느끼고, 분량을 인원수로 나눗셈 한 다음 그 분량만큼 정확히 자기 반합에 짜 넣는다. 2인 일개조의 밥이 조금씩 남는다. 맛은 있는데 너무 땀을 흘려서 인지 목구멍에서 모래를 씹어 넘기는 것 같다. 컬컬하다. 연신 물을 들이킨다. 물을 들이킬수록 더욱 식욕은 감퇴한다.


고참들의 머리 속은 <정비 대충 정리하고, 00 넘어가서 머리고기에 쐬주~~캭 한 깡 씩?>..남긴 밥에 졸병들의 시선이 교차한다. " 옛 다 먹어라." " 다 드셨습니까?" 이미 졸병의 손은 반합거리를 잡고 있다. 영외 거주자에 비해 영내 사병들은 역시 잘 먹는다. 나도 한 때는 그랬다는 표정들. 이미 간부들은 누울 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선임하사가 말한다...

" 괞찬으니까, 설겆이는 부대 들어가서 해 "
" 예.(속두 잘 아십니다. 우리 선임하사) "


난 깔판을 머리에 베고 군화를 벗어 양지녘에 놓아 밀린 다음, 발을 군장에 얹는다. 양말은 완전히 발에 붙어 있다. 물집도 그냥 놔둔다. 한 40km 남았다. 그리고 00 야시장의 포만감. 사바사바. 선임하사와 중대장은 그걸 주제로 말한다. " 씼고 나가서 머릿고기에 쐬주?" " 아니, 아니 곱창볶음, 거기다가 순대도 좀 넣고, 그게 와리지 " " 통닭은 어때? 시원한 맥주로 한 고푸"....



발에 몰린 피가 아래로 쏠리면서 쏴~아 하는 쾌감이 밀려온다. 숨을 몇 번 정도 길게 쉬자 벌써 잠과 현실의 중간 상태로 들어선다. 위장모로 가려지지 않은 얼굴 부분이 따사롭다. 긴장이 풀린다. 내일 아침이면 정문의 빵빠레를 듣는다. 졸린다. 짜장면은 맛있고, 세계에는 평화가 ...X이나 칭칭 나네~~!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멀어져가고, 나는 잔다. 해 질 때까지...그러나 선잠에서 헤멘다. 단편적인 꿈도 꾼다. 모든 것이 노랗다. 이곳은 해가 일찍 진다. 계곡 양 옆의 산이 너무 가파르게 붙어 있기 때문이다. 싸늘한 공기가 점점 밀려 온다. 난 무의식적으로 야상의 깃을 세우고, 발이 시려 옴을 느낀다. 땀으로 엉겨 붙었던 양말이 뽀송뽀송 해진다. 탄력 있게 발에서 '토옥'하고 떨어진다.





<2>
약 2~3 시간의 휴식. 코 고는 소리들이 들려 온다. 그러나 한동안의 고요에도 모두는 민감하게 그 시간의 경과를 주시하고 있다. 잠의 와중에도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됐음을 모두가 직감하고 만다. 이미 일어 난 사람도 있다. 앉아서 멍하니 담배를 피울 것이다.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가중되고....나 역시 눈을 뜬다. 시야가 낯설다. 시간이 낯선 것이다. 고요를 통해 잠시 내 자신으로 돌아온다. 욱신거리는 발도 약간은 좋아 졌다.


일어나 앉는다. 청자를 한대 땡긴다. 한 개피의 성냥을 사용한 것이다. 성냥의 알 수를 세어 본다. 총 휴식시간(한 시간당..부대까지)에 한 가피를 그어 피울려면 , 성냥의 알 수가 반도 되지 않는다. 시골 가게를 만나면 항상 보루로 릭샥에 쑤셔 밖던 청자, 백자, 부대에 가면 솔을 피우리라. 하사 때는 한산도와 은하수가 나왔었다. 고참들은 같은 220 원대에서 은하수를 선호 다. 그래서 난 항상 한산도만 피웠다. 청자를 너무 피워 댄 탓인지. 가슴이 답답하고 아파 온다..특히 아주 추운 날 지독히도 빨아 댔다. 그 뻑뻑한 청자를...그러나 솔 담배가 있어도 사서 피우기가 쉽지는 않다. 운현비가 없는 것이다. 훈련 전에 간부 위주로 내서 모았던 훈련비는 거의 바닥이 났다.



내 총 어딨지? 내 옆에 누워 있다. 난 야간 행군을 위하여 릭샥 오른쪽에 질끈 K1 을 동여맨다. 총끈으로 단단히 여민다. 부식을 모두 비워 버린 까닭에 릭샥을 많이 줄었다. 모포. 침낭. 반합. 세면도구. 여분의 군복. 그리고 내 애증이 교차하는 0-00 장거리 무전기. 무전기는 항상 내 어깨를 죄어 온다. 문득문득 버리고 싶다. 그러나 우리 팀의 최고가 장비이자 내 주특기 장비다. 이것은 내가 입대하기 전부터 팔도를 다닌 내 고참 격이다. 한번 정비대에서 내부를 뜯은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마치 전우의 내장을 본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점차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30분 정도 안에 출발할 것 같다. 얼굴에 핏기들이 없다. 사람이 있건 없건 앞만 보고 걸어 다닌다. 계급장이 하도 때가 묻어 신병들은 다른 지역대 중사들을 경례 없이 그냥 막 지나 친다. 그래도 신경 쓰지 않는다. 모두가 제 정신들이 아니다.


선임하사가 부시럭부시럭 하더니 일어났다. 나에게 묻는다.

" 벌써 일어났니?"
"예" 한숨을 쉰다.
"0또 하루 남았구나. 마누라랑, 아! 잘 지냈나? 모르것다."
" 전화 몇 번 하셨습니까?"
"0양서 사령부 측정할 때 빼구 못했어. 어디 틈이 나야지..젠장..니기미 18 전세방이라구 여름이면 물새서 온벽에 곰팡이, 겨울에는 한번 따뜻하기나 하나. 지겨워서 정말 . 빨리 전역하던가 해야지.."



곰팡이가 슨 선임하사의 전세방이 생각난다. 한켠에는 몇 살 안된 선임하사님의 딸이 울어 대고, 그래도 선임하사는 한 구석에 상을 놓고 삼겹살과 소주를 대접해 주었다. 싸모한테 미안했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선임하사는 우리 같은 팀 중사들에게 술 한잔 먹이고 싶은 것이다. 경북출신의 농사일꾼처럼 유순한 선임하사님. 나에게 그 흔한 욕을 농담으로 조차 한 적도 없다. 그도 똑 같이 짊어지고 걷는다. 맞은 적도 없다. 우리 선임하사에게는.... 오히려 전입 후 어떤 선임하사에게 <0중사임>이라고 했다가 좌우 40 메타쯤 쪼인트를 까졌다. 보병부대 어떤 보급관이라도 가면, 아마 칭찬 받으면서 근무할 만한 선임하사다. 짜웅 좀 해서 자리 좀 봐두면 좋으련만. 그런 것은 이미 머리 빠른 사람들에게 뺐기고, 그저 팀 선임하사다. 이 선임하사라면 난 적지에서 목숨을 하나로 결합해서 싸울만하다. 우리는 특전사다. 적어도 팀 내의 인원은 항상 단결해야 산다.



죽음이란 <단절의 공포>다. 그러나 믿는 사람이 가까이 있을 때 그 죽는 것은 종류가 틀리다. 그것은 위로가 된다. 사람은 여러 가지 세상의 한파와 모순 속에 갈등하면서 산다. 그러한 모순과 틀리게 좀 더 강력한 잇슈를 찾고 행동하는 것이 군대다. 적어도 직업 군인은 느낀다. 가족을 두고 적지에서 죽는 경우가 없으란 법은 없지만, 살아가는 길이 그것이고, 내 주변에 신뢰할만한 전우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죽음이 일상적인 공포로만은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널어놓은 군화를 끌어온다. 악취는 점차 첨가물이 더해 가는 듯 심각하다. 양말 쪼가리를 비롯한 여러 가지 등이 프레스기계로 압착한 듯이 군화 바닥에 늘어붙어 있다. 11문 3. 무거운 군화다. 그러나 이미 군화는 내 체중의 일부다. 이것이 발에 붙어야 비로서 내가 걸을 수 있다. 중대장 0대위는 총을 맞은 듯이 자고 있다. 그는 이번 천리행군과 처절하게 사투하고 있다. " 특공연대서는 산으로만 걷기는 하지만 고작해야 300 안짝인데. 아무리 평지지만. 니미 400을 어떻게 하라구. 젠장 OAC 끝나고 야전으로 바로 부임시켜 천리행군이라니...사람 살려다. 사람 살려야 .아 상무대 전셋방 생각난다."


그의 발도 발이지만, 그의 엉덩이의 항문이 심하게 쓸려서 걷기가 상당히 불편한 상태다. 0대위는 아주 유쾌한 성격이지만...(부임 첫날. 그러니까 천리행군 이틀 전. 우리는 취임기념으로 산을 넘어가서 경월소주 1.5리터 짜리 6병 정도를 사왔다. 그리고 유 대위는 술 마시기 시작한지. 한시간만에. 벌써 형. 동생 소리가 나오는 붙임성이 좋은 장교 였다)그 성격에 행군을 시작하면 아침까지 입을 다물었다. 엉덩이를 보고 웃을 수도 없었다. 본인의 고통은 어떠하랴? 군장을 좀 꺼내서 빼주자 고마워했었다. OAC 동안 너무 논 것이다. 우리는 중대장을 깨우지 않았다. 선임하사는 물집을 보고 있다.
" 심해요?"
" 아니 뭐 이 정도 가지구 . 꺼구로 매달아도 부대 까진 간다. " 우린 서로 웃는다.



정작장교가 행군 서열 및 대열을 수령하러 대대본부 쪽으로 간다. 대대본부 쪽이래야 대대본부 인원들이 널부러져 있는 풀밭일 뿐이다. 잠시 후, 본부 쪽서 소리 친다. " 대대...기상...기상..1시간 후 행군 시작...기상해서 대기 할 것~~~!" 남은 병사들이 여기저기서 꾸역 구역 일어난다. 산의 나무들이 누렇게 변색되어 있고. 위장복의 어눌한 색깔들이 맞물려 ....산의 이곳 저곳이 일어 나는 느낌이다.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일어들 난다. 0 대위는 일어나 앉기는 했으나 잠의 여력인지 , 홍수때 물에 집 잠긴 사람처럼 눈빛이 멍하고, 시선은 어느 곳을 보는지 모른다.



난 군화를 신고 끈을 조인다. 하루만 참아라, 내 구두약 듬뿍 발라서 칠해주마. 군화는 허옇게 들어 난 부분들이 너무 많다. 한 달을 여기저기 걸어 다니면서 긁히고 박힌 것이다. 몸이 노곤하고 여러 곳이 쑤신다. 특히 어깨가 뽀개지는 듯 아프다. 조금 쉬었다고 세포들이 반항하는 것이다. 계곡으로 드리워진 그늘이 병사들의 무거운 맘을 아는지 암울한 일색이다. 뚜렸하게 박모가 다가오고 있다. 옆 중대 하사는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고 씹어 먹는다. 진통제 잘 먹는 팀 선임하사에게 얻어서 먹는 듯 하다.<어휴....써> 나도 2박 3일 200km 행군 때 한 번 먹어는 봤는데, 고향이 시골이라선지 영 약발이 없었다.



일어서 본다. 발에서 꾸욱하는 아픔이 온다. 무릎관절이 오실오실 춥다. 야상 속도 식었다. 난 휘청거린다. 군장이 없어서 휘청거린다. 다시 담배를 문다. 청자가 뻑뻑 하다. <아 자고 일어나서 피우는 담배가 제일 안좋다던데>어느 시골에선 청자가 접대용이었다. 일상은 <새마을>이었다. 그 날은 초겨울로 그믐의 행사대로 단독군장으로 내려가서 민가의 밥을 돌면서 청년들과 함께 훔쳐먹었었다.



중대장들이 모인다. 지역대장을 만나고 온 0 대위의 표정은 밝다. 꺼구로 매달아도 하룻밤이면 들어가는 것이다. " 18시에 출발하고, 매 시간 휴식 있어, 그리고 정문까지 5시 도착, 지역대별 자유행군이야. 자유행군이라야 뭐 앞서거니뒷서거니겠지만..5시까지니까 널널 해. 우리 지역대는 00 저수지 마을 가는 길이 아니고, 00 뚝방 타고 간데..선임하사 알지? " 그는 이 길을 모른다. 초행길인 것이다. 뚝방을 타고 가면 엄청나게 지루하다. (사방이 논이라 속도 감각이 없어서 지루하다. 오직 00 송신탑만 보고 이제나저제나 하고 걸어야 한다)..그러나 현실적으로 한 30분이 절약된다. 여름에는 길이 빗물에 질 경우가 많지만, 겨울에는 시간을 위해서 도전해 볼 만 하다. 그리고 경. 사. 가. 없. 다. " 아싸, 빼자구..0 중사가 소리 친다. 아픈 사람 없지?" 그러나 중대 최대의 환자는 0 대위 였다. 쓸려버린 항문을 밤새도록 엉덩이로 비비며 갈짓 자로 걸어야 한다.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하자. 어느 정도 뒤섞인 병력들이 놈당을 주고 는다. "야 XX, 6주간이나 00도 못 하구 기분이 영 아니겠어. 넌 해야 전투력 나잔어"
"까는 소리 말구 수통에 남은 소주 상납 좀 해 봠 마!"
"어이 00 지역대 14기 김 중사 빨랑 빨랑 안 걸어? 군기 쫘악 빠져 가지구 말야"
"어떤 개새기가 깜깜하다구 반말까냐? 너 이 쉐이 00지역대 김팔봉이지?"
"아 모닥불 쪼이다 군화 타고 도루코 칼로 오렸더니 뒷 장단지에 그 모양대로 물집 잡혔다"



그러나 모두들 속으로 생각한다. 이 놈의 고개는 한 20분이면 오를 것 같은데, 올라가도 정상은 항상 그 자리야. 에에 젠장. 모두가 위를 보지 않고 아래만 보고 오르고있다. 이 놈의 좁은 산길을 풀도 나지 않는다. 수 개 여단이 수도 없이 지나다니니, 한번은 그 고개에서 텐트 치고 숙영 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아침에 광경 하나는 예술이었다. 선두가 고개를 넘자 <넘었다. 넘었다. 다 왔다. 다 왔다>발악하듯 소리를 지른다. <지는 넘었다 이거지?> 그 곳을 지나자 마자 대대는 굉장한 속보로 돌입했다. 그 곳에서는 항상 그렇다. 그 곳부터는 완만함으로 더욱 탄력을 받아 거의 뛰게 된다.



누군가 노래를 부른다. <싸아라앙~~~~으으으으으으르 팔고 사는......> 노래는 점차 대대전체로 퍼져 가고, 거대한 계곡의 합창이 된다. 이러한 합창이 피로를 잊게 해준다는 것을 알기에 사람들은 총을 두드려 가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바로 바로 신곡이 이어 진다. 신병이 선창할 경우 , 여기저기서 <0도 무신 노래야?...무신 노래야?> 고함 소리가 들린다. 그 노래를 아는 놈은 거의 없기에 거의 그의 독창이다. 누군가 말한다. " 드디어, 어느 자식이 돌았나봐 ". 신곡을 부르는 그 졸병은...이를테면 발악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단의 전술행군은 자대에 비해 장난에 불과하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놈의 부대는 계급에 상관없이 똑같이 자기 몫을 해야 하므로...졸병도 시세말로 얄짤없다..그러니 노래라도 누르게되니까 발악을 하는 것인데..그 발악의 내용은 모르지만...그 정도 분위기라면 고참들도 그냥 놔둔다..기래 소리소리 질러라. 여기는 영내생활이 아니다. 소리질러서 걸을 때 즐거우면 니 맘대로 해라..부대까지 군말 없이 걸으면 된다. 우린 후송차량도 없는 부대다. 닷지차 하나에...60보급트럭 하나. 그리고 대대장 찦차 밖에 없다. 어설프게 발 아프다고 닷지차 태워달라고 했다간...고참들이 네가 전역할 때까지 이해해 줄 수 없는 부대다. 걸어라. 걸어라. 과거에 다리 부러진 놈도 걸었다. 도착해서 후송 갔다.



한달 전은 아득히 먼 과거로 느껴진다. 아이들에게 천 원 짜리 한장 주고 개구리를 잡아오라고 해서 수십 마리를 싼값에(?) 구어 먹던 일. (강원도 산골의 아이들은 천 원 짜리 보라색을 보고 눈이 돌아서 순식간에 잡아 왔다). 00산 암벽에 매달려서 유격 받던 일. 수도 없는 이동과 비트 파기...몇 번인가를 기억할 수 없는 야밤에 습격..매복..도피 탈출...어느 산이 어느 산인지...경월소주 반합 따까리에 1홉식 딸아서 목구멍에 붓던 일. 아니 기억할 여유가 없다. 이제 몇 시간 후면 바람을 막아주는 식당에서 우리가 직접하지 않은 밥을 먹고 잘 수 있다. TV 가 있는 내무반으로 가는 것이다. 내무반을 생각하면 기분이 새롭다. 한파는 지겨울 만큼 맞았다. 산 능선에서, 비트 안에서, 냇가에서, 침낭 속의 열린 쟈크를 통해서, 한 달 동안 밀폐되어 매쾌한 냄새를 간직하고 있을 내무반과 내 BEQ의 방. 라지에이터의 스팀 쇠 때리는 소리가 들리는 내무반.



(누군가는 그 쇠 때리는 소리를 일컬어, 보일러 교미하는 소리라고도 했다. 처음에는 살살 그리고 천천히 때리다가...마지막에 맹렬히 마구 때리고는...나중에 소리가 사라지고 '푸욱' 하는 따뜻한 스팀이 나온다)



휴게실에선 때묻은 공으로 당구도 치고, 관리병 협박해서 <십오야>한병 사 마시고.(난 아직도 이 <십오야>라는 술이 양주인지 우리 나라 술인지 알 수가 없다. 하여간 췌기는 무지 잘췌는 술이다..난 아직도 고마워한다. 거의 소주 정도는 항상 사 먹을 수 있게 배려해준 부대에 대해서...소주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는 얘기에...전방서 군대 생활한 동네 친구들은 경악했었다)비이큐서 개때로 모여서 달걀 확 풀어서 라면 7개정도 끓여서 서울 산 진로로 한잔 때리고, 좀 정성을 들인다면 참치 훅 털어 넣는다. 영내병들은 이 BEQ 서 끓여 먹는 라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고의 맛이다. 그 맛으로 인 해. 영내병 들은 한번 안 불러 주나? 하고 내심 생각한다. 산에서의 한 달...아제 인간다운 걸 먹고 싶은 충동 억누를 수가 없다.




우리는 국도를 넘어 평지 길로 들어 다. 또 다시 콘크리트 도로다. 젠장. 다시 물집들이 콘크리트 바닥에 결합해서 마지막 발악을 한다. 바늘로 마구 쑤시는 것 같다. 뒤에서 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앞사람 릭샥들이 모두 출렁 인다. <킥!!!컥...헉...우홧> 앞에 보니 00 지역대가 길옆에 뻗어 휴식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천천히 가자구> <설마 우리랑 시합하려는 건 아니겠지? >..주로 고참들에 농담이다. 지역대장은 기여코 언덕배기 넘어서 쉴 작정인가보다. 선두는 언덕을 향한 90도로 꺽이는 길을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선두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가게의 불빛이 길가를 비추고 있는 것이다. 지역대장이 눈만 감아 준다면 초코파이라도 하나? 내 가슴도 술렁거린다. (한달 사이에 내가 왜 이렇게 됐나? 애도 아니고..) 난 시골의 가게를 공수부대 온 뒤로 사랑하게되었다. 어차피 시간은 남는다. 대대장도 저수지쯤 가 있을 것이다. 지역대장도 그 술렁임의 의미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휘관의 생각을 간파하는데 동물적인 감각을 지닌 우린 인사계는 눈빛만으로도 그것을 알아 차렸다. 어차피 몇 일 전부터 변변히 먹은 것도 없다. 사소한 시골 가게 방에도 미련이 생길 정도로, 우린 뚜겅 덮힌 우물처럼 갈증과 고갈에 면역이 되어 있지만, 유혹은 유혹인 것이다. 춘장으로 비벼 먹은 밥은 이미 고개 오를 때 날아가 버렸다. 위장은 한달 동안 오물어 들어 생각에 비해 음식을 이미 많은 량 먹지도 못한다. 넘어 가면 더부룩하고 힘이 든다. 혁띄는 이미 다시 조일 만큼 다 조였다.




FM을 강조하며 , 우직한 사고 방식의 0 소령. 지역대장. 찦차도 없고, 군장을 당번이 짊어져 주는 조력이 특전사에는 없다. 적지에서 자기가 쓸 만큼의 것을 직접 메고 걸어야 하는 철칙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대장은 자기 입으로 가게에 들러 뭐라도 잠깐 먹자고 말하지 못한다. 그것은 인사계의 몫인 것이다. 그는 신자이며 신뢰할만한 지휘관이다. 능력이 있다. 책임감도 누구 못지 않다. 그러나 자신도 걸어야 한다. 그러나 이 특전사에서는 일반부대와 다른 파격이 존재한다. 장교라도 분위기에 따라서는 술과 00를 적당히 밝힐줄도 알고 , 적당히 욕설도 내뱉을 줄 아는 정도의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물론 인간성 좋은 사람도 찦차 타고 지휘관 하다가 똑같이 메고 걸으면 욕이 나올 만도 하다. 물론 개인의 차이일 뿐이다. 지역대장은 고민하고 있다. 그도 천리행군은 어차피 처음이다. 자신도 괴롭다.




인사계는 말한다.
" 거리나 시간으로 볼 때, 많이 남았는데. 뭐 사기 진작 상 좀 먹고 가는 것이 어떨까요?"
구색은 갖췄다. 1분 정도.
" 그럽시다. 다 출출한데. 뭐 좀 먹고 갑시다. 시간은 5분. 그런데 돈들이 남아 있나?"
" 없어도 막거리 한 사발 정도씩만 불고 가면 되죠. 뭐 부대 다 왔는데"

그런데 지역대장은 막걸리란 말에 귀가 번쩍 뜨인다. 아 ! 막걸리. 막걸리는 행군 시 공복을 따뜻하게 해주고, 체온도 올려주고, 결정적으로 행군의 고통을 어느 정도 무디게 해준다. 막걸리에 귀가 번쩍 뜨인 것은 지역대장의 발도 말이 아니란 것을 말한다. 괴로운 것이다. 지역대장은 인사계의 어감을 알았다.
'한찬 걸치면, 좀 한동안 괞찬아질거요'
" 전달해. 팀당 막걸리 두통씩 사고, 빠른 시간 안에 서서 마시고 올라가 언덕에서 쉰다~~~!"
선임하사들이 분주하게 릭샥을 맨 채로 가게로 들어 간다.모두가 입을 다시고 있다. 그리고 막걸리 두통과 과자 봉지 두어 개를 들고 온 우리 선임하사


" 0 중대. 특식 대형으로 모여! 이제 한푼도 없다..18....다 썼다~~! 시이팔"



행사 순서에 의해 중대장과 선임하사가, 트위스트 시킨 후, 뚜겅을 따고 나발을 분다. 과자를 물어뜯는 졸병들의 눈은 말한다 <빨리 마시고 돌려 주십시요>..무언의 재촉. 선임하사가 나에게 병을 준다. 난 문득 내가 중대 서열 2위임을 알고는 놀랐다. 아이고 까마득한 하사 때는 입 한번 대기. 깜빡 잊고 날 안 주어도 말한 번 못했는데 . 중사 달긴 달었구만. 선임하사는 못하고 제대하리라. 겨울 공기에 히야시 된 막걸리가 달콤하게 목으로 넘어가고 이내 배가 따뜻해진다. 진짜로 성경에 나오는 <젖과 꿀>이란 문구에 버금 가는 맛이다. 과자도 너무 맛있다. 여기저기서 웃는 소리가 들린다. 주변을 돌아보니, 86년도에 행군 중 13기 0 중사 님이 손으로 집고 서서 졸던 전봇대가 보인다. (그는 187 정도의 거구에 배구선수 출신으로. 휴식하다가 일어 설 때가 지겨워서 그냥 서서 전봇대를 잡고 졸곤 했다)웃음이 나온다.










(3)
조용한 가운데, 가끔식 개 짓는 소리가 들린다. 항상 지나던 아마도 개장수의 집인 듯한 곳이었다. 그 놈 들은 내 지난 4년간 그래 왔듯이, 맹렬히 짖어 댄다. 그 소리는 이렇게 들린다. ' 3시간 남았어. 왈 왈. 부대까지 꼭 세시간이야. 왈 왈.' 막걸리 몇 통에 지역대는 잔치 분위기다.




" 남은 막걸리 빨리 마시고 행군대형으로~~~!..곧 쉰다. 담배는 언덕 올라가서 피워..파닥파닥 안 기어 올라가?.." 인사계가 소리 친다. 이 바닦의 쓰레기 조각들을 보면 00 지역대도 그냥은 못 지나 갈 것 같았다. 아니면 구테타가 일어 날 것이다. 몸은 따스하고 기분이 새롭다. 빨리 쉬려고 언덕으로 맹렬히 질주한다. 군복 상의 가슴에서 어떤 온기가 오르는 것 같다. 휴식도 휴식이지만 뭔가를 먹었으니 담배를 피워야 한다. 별 담배에 취미가 없던 나도 행군 때문에 담배가 늘었다. 모두가 휴식 시간에 피운 담배 니코틴의 기운으로 한시간을 걷는 듯 하다. 언덕을 오르는 발이 가볍다. 아니나 다를까?..공장 옆 개장수 집 개들이 죽어 라고 짖어대기 시작한다. " 올 여름에 보자. 저걸 그냥 된장 발라 버려? 으이고...개시키 X나게 시끄럽구만...밥 안 줬나?전 생이 공수부대한테 잡아 먹킨 갠가?..어이 시끄러 "..드디어 언덕..." 15분간 휴식...십 <오>분간 휴식" 지역대장도 막걸리로 조금 위안을 찾은 듯 하다. <오>자를 듣고 우리는 느낀다. 병력들이 강력한 파워로 길가에 푹푹 쳐 밖힌다. 테클처럼 무너진다.




구겨진 청자 갑에서 비틀어진 한 개피를 꺼내 최대한 원형으로 쓰다듬은 후, 불을 붙친다. 아. 이번 천리행군은 정말 교범 그대로 였다. 원더우먼도 거의 하지 않았다. 속리산을 넘던 4일 차가 제일 힘들었다. 약 80 km 를 지역대 행군으로 주파하면서 거이 오전 열 시가 되서 휴식이 주어 졌고, 네 시간 정도를 자고 난 후, 다시 대전 부근을 향해 주파해서 피0령을 넘었다.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우리는 그냥 화전 밭에 누워 판초위 덮고 잤다. 자는 중간에 큰소리를 듣고 잠깐 얼굴을 드니 참모장이 왔었다. 우리의 몰골을 보고 깨우지 말라고 한 것 같았다. 기상소리에 덮은 것을 젖치니, == 나. 자. 신. 이. 없. 었. 다.==....




여긴 어디고 난 누구인가? 감각을 어지럽히는 태양의 직사광선. 풀리다 말아버린 내 사지. 완전히 뜨기 힘든 내 두 눈. 멍한 머리. 가슴을 조여오는 니코틴 압박. 온 사지가 한자 <큰 댓자>의 그 중간 선이 모이는 곳으로 오무라든 듯 하다. 말하기도 힘들었다. 메말라 비틀어진 한겨울의 천지사방. 아침에 넘어온 속리산 정상이 보였다. 언젠가 어렸을 때 어머님이 가져온 <속리산 관광 기념>이란 타올을 본적이 있었다. 그 산이 이산인가가 횟깔렸다.



그 날이 최고 힘들었다. 다시 말해서 그날 부로 힘은 소진 됐지만...천리행군 영점이 잡힌 것이다. 그 뒤로는 귀신처럼 무미건조하게 길 따 라 걷는데 적응이 된 것이다. 그리고 충청도로 돌려서 온양쯤 올라와서 대대가 집결하기 시작했고, 삽교천의 지루한 도로를 가로질러 나오면서 시작된 대대 행군. 우리는 강원도 춘0 에서 시작하여. 거의 유턴 모양으로 천리행군을 해온 것이다. 유턴도 깊은 유턴이었다. 직선거리라면 아마 벌써 부대에 들어갔을 것이다. 지도를 보고 다시 남쪽으로 걸어야 하는 그 기간이 정말 고달 펐다. 담배 맛이 일품이다. 아닌게 아니라 취기가 온다. 기분이 좋다. 아싸




저수지가 지나고. 들어선 지루한 뚝방 길. 이곳으로 몇 개의 여단들이 항상 지나다닌다. 그리고 뚝방을 지나서 다시 부대로 향한 민가들이 약간씩 자리 잡은 길로 들어서자.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처럼 뽑았다. 일주일 째 걷는다는 것을 잊어버린 듯 했다. 한 마듸로 쌕쌕 날았다. 부대 들어가서 확 뻗어 버리자..뭐 이런 것 같았다. 저러다가 휴식하고 일어서면 다시 십분 이상 휘청거리면서 종종 걸음 치리라. 그냥 걷는다. 그냥 걷는다. 아무 생각 없다. 아무 생각 없다. 앞사람보고 걷는다. 나도 없다. 앞사람 뒷굼치만이 보인다. 시간이 가든. 지도상 어디에까지 왔는지..몰라. 몰라. 묻지마. 묻지마. 나한테 말 걸지마 .하여간 걷는다. 우리가 공수부대인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밤에 왜 걷는지도 모른다. 그냥 걷는다. 걷다 보면 쉬리라. 걷다 보면 쉬리라. 걷다 보면 부대리라.




최대 고비인 00산을 넘으면서 사람들은 말이 많아 졌다. 산 고개의 정상에 서자. 아직 취침에서 깨어나지 못한 부대 막사의 미세한 불빛들이 보이고, 우리는 흥분한다. 소나무 밭 내리막길에서 내려오는 군홧발들의 소리가 천지 사방을 깨웠다. 먼저 도착한 지역대가 불을 피우고 있다. 기상 시까지 (우습지만 우리는 기상한 여단 병력들이 도열 집합해 있을 때까지 기다려서 들어가야 한다)...기다리기 위해, 이것저것 가져다가 태우는 것이다. 해가 뜨려면 한시간은 있어야 하는가 싶다. 모두가 찬 땅바닦에 판초우의를 깔고 앉아 쓰러 졌다.



덮지 않아도 쉰다는 것 자체만으로 만족한다. 걷지 않는 상태만으로도 휴식, 엄청난 휴식이다. 어떤 이는 과감하게 뭔가를 꺼내서 뒤집어쓰고 있지만, 군장을 풀었다 꾸리는 것조차 힘겨운 병사들은 그냥 불가 근처라도 군장을 깔고 앉아 꾸벅꾸벅 존다. 가끔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고참들로부터 가슴을 몇 대 맞은 듯한 오그린 자세들로 걸어 다닌다. 나도 그렇다. 이제 1m 안에 돈이 떨어져있어도 집기를 결심하기 쉽지가 않다. 산을 넘으면서 흘린 마지막 몇 방울의 땀 때문에 한기가 몰려온다. 또 사늘히 식기 시작한다. 그러나 내 몸 안에는 다시 체온을 달굴 어떠한 칼로리도 남아 있지 않다. 온몸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 부대에서 기상 나팔 소리가 들린다. 이제 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병사들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라면 박스 에 타이어 조각까지 가져다 태운다. 난 깜빡 잠이 든다. 얼마나 졸았을까? 눈을 뜨니 주변이 푸른색이다. 타이어에 불이 확 싸질러지자 모두가 얼굴을 찌푸린다. 그러면서도 차지한 불가의 황금자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타올라도 모자로 툭툭 털고는 만다. 강원도의 계곡서 우리는 이런 불을 쪼이면서 버텨 왔다.



"모두지역대 별로...군장 꾸려서 정렬하도록...어서어서...신속하게"



난 일어선다. 모두가 비틀거리면서...윤활유 떨어진 기계를 펴듯이 몸을 추스린다. 비몽사몽이다. 진눈깨비가 갑자기 휫날린다. 군장을 오른팔로 잡아 걸고 시내루를 주어 마지막으로 어깨에 건다. 휘청하면서 마지막의 안간힘을 썼다. 제대 순 이므로 우리가 선두다. 맨 앞에 대대장, 다음 우리 지역대장, 그리고 중대장들이 선두에 서고, 우리 4각의 지역대, 지역대장의 얼굴도 감출 수 없는 희색이 돈다. 89년도 0공수, 00대대, 전술종합훈련의 그 최후가 가까워 온 것이다. 허탈하다. 새벽이 항상 허탈하다. 새벽까지 깨어 있다는 것, 철학적인 단어나 문장구조는 모르지만, 그 표현의 어딘가 즈음에 해당되는 공허감이 있다.




우리의 5 관은 열려 있다. 그리고 어떠한 순간에도 그 5 관을 통해서 인간에게 고통은 존재한다. 세상은 만족하지 못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인간의 뇌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고통스러워하는 근육의 육체가 뇌를 향해 sos 를 칠 때, 방법 없는 뇌는 허탈하다. 다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육체가 더 약해지기는 하나 적응력은 생긴다. 그것, 적응력으로 우리는 지탱해 가는 것이다.




우리는 꿈처럼 부대정문을 향해 발 맞추어 걸어간다. 마치 영화 의 마지막 부분에서 병사들이, 미키마우스 주제가를 부르면서 전진해가듯이.....정문에는 플랭카드가 걸려 있다.


<환영, 00 대대 천리행군 복귀. 00 시 요식업 협회 일동>


소조 군악대가 브라스와 팬을 때리면서 여단가를 힘차게 연주한다. 여단장에 대한 단체 경례. 여단장은 대대장에게 다가와서 악수하고는 손바닥으로 대대장 등을 퍽 하고 친다. 거수 경례가 내려지고, 난 걸어가면서 고개를 숙인다. 한줄기 차가운 눈물이 흐른다. 훈련이 힘겨워서 흘리는 눈물은 아니다. 지난 6주간이 고통스러워서 흐르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상황이 되면 다 할 것이다. 아마도 나란 존재 때문인 것 같다. 아직 알수 없는 나 자신..아직 무언가 확실히 정립되지 않은 내 자신..그리고 알 수 없으면서도 걸어서 통과한, 천리



갈라지는 길에 특전용사 상이 진눈깨비를 맞으면서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