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9월 1일 ~ 9월 3일.
농부 홍순영을 계속 촬영하고 대화하다.
9월 1일 화요일에 농부 홍순영을 다시 찾았다.
며칠 사이에 증축 중인 집은 모양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당분간 그는 이 집 짓는 일을 감리하고 자재를 공급하고 하는 일에 집중하는 듯 했다.
"그냥 돈 줘불고 맡겨불면 편한데, 쪼까 아껴 볼라고 하니 이리 힘드요.
인자 만들어지면 내 집 식구들도 와서 쉬고 여그 구경오는 분들도 쉬고."
첫 방문에서부터 농부 홍순영의 집과 그 많은 시설들이 들어 서 있는 주변의 창고동들을
보고 생각한 것이지만,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계속 집을 '이어 나간다'.
그러다보니 도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로망으로서의 집은 탄생하지 않는다.
그는 여성잡지 아이템에서 소개하는 '전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살림과 필요에 의해 인간은 자신의 삶의 조건을 변화시켜 나가지만 사실은 강제당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는 것 하나에 충실하다. 모든 것들은 '농사'를 중심으로
조직되고 배치된다. 그 과정에서 놓치는 것들이 발생한다.
원래는 화요일 방문에서 이른바 '순환제재' 라는 것에 대해 취재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평상에 앉자마자 그가 한 가지 문제에 대해 의견을 물어온다. 포장지 문제다.
곧 조기재배 쌀에 대한 출하를 앞두고 있으니 포장지에 대한 결정을 해야한다.
수십 장의 샘플 포장재들이 평상에 늘려 있었다. 하나 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것은 지속가능한 문제점이다. -,.-
"제가 사이트 뿐만 아니라 선생님 개인에 대한 브랜드 작업을 해야겠다고 말씀드렸지요?
이런 문제들 때문입니다. 이게(손으로 몇 개를 던지며) 마음에 드세요?"
"우리는 농사만 알지 이런 거는 모르지요."
"선생님, 앞으로 이런 거는 알아서 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결정이야 선생님이 하시겠지만
그 과정에서는 그래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 그거 권선생이 만들었다면서요."
"제가 만든게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이 만든 겁니다.
그리고 그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라는 문구를 만들었지 그 글씨를 디자인한 것은 아닙니다.
보십시요, 이 글씨, 로고타입이라고 합니다.
이거 마음에 안들어서 담당자하고 한바탕 했잖아요.
여기 있네요. 글씨 뒤의 이 산이 삼각산입니까, 뭔 산입니까?
이런 글씨가 만들어지면 명함, 포장지, 서류, 간판 전부 적용되거든요. 그래서 이런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사실적으루다가 이런거 잘 모린께."
농부 홍순영의 창고 한켠에 사용하고 남은 이천 장 정도의 쌀 포장 박스가 있다.
'너나드리' 라는 순환농업팀의 이름에 새겨진 포장재다.
작년에 처음으로 이렇게 박스 만들어서 읍내 나름 대형마트에 내어 놓았던 모양이다.
"요라고 한나를 보면 괘안한데, 진열된 걸로 보니께 나 것은 보이들 안하더라니까요."
중이 제 머리 못 깍는 문제와 고가의 제품이라 막상 이곳에서는 판매하지 않은 제품이다.
반발효차는 40g 2봉지에 8만원, 녹차는 40g 2봉지에 20만원을 받는다.
생산량도 40g 기준으로 각 100개를 넘어서지 못하는 소량이다.
이 포장재는 개당 2,000원 정도로 해결 가능하다.
무엇보다 가급이면 코팅류의 지질과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을 고민했다.
다른 고가 녹차의 경우 대부분은 포장재 제작에 투여되는 비용이 더 비싸다.
속포장인 나무 같은 경우 원목을 사용하면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포장에 많은 비용을 투여하는 것은
원래 원치 않았다. 완전할 수는 없지만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기 노력했다.
이를테면 기성품 샘플(제작비용이 저렴하다)이라는 바탕 위에 최대한 원하는 아이템을 적용해 넣은 것이다.
사진의 종이 포장지 이후에는 손잡이 끈도 종이 끈으로 교체했다.
주문자와 디자이너의 감각이 거의 동일하니 디자인은 최대한 장식을 제거했다.
5년이 지난 디자인이지만 자뻑人은 지금 봐도 흡족하다.
.
"이전에는 이렇게 농사지어 가꼬 그 머시냐 수입 자몽 박스에 쌀을 넣어서 보냈슴되.
그란께 사람들이 이 귀한 농사 지어가꼬 뭐 하는 짓이냐고 난리고...
이제 포장에도 돈을 아끼지 말아야겠지요."
(아니요. 혹시 이른바 '명품농산물포장'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일단 조기재배 쌀 출하 시기에 맞춰 포장지를 제작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도 남아 있는 2천 장 쌀박스를 사용하시라고 권고했다. 이런 종류의 것이 너무 많이 남아 돈다.
인쇄물은 특히나 그렇다. 정말 참을 수 없는 낭비다.
우리 주변에는 항상 나무의 사체가 늘려 있다.
생각지 못한 포장지 문제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점심 먹고 시설물들과 감농사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의 집에는 시설물이 많다.
대략 하나씩 살펴보자. 저온저장고를 우선 보았다.
지금은 감도, 쌀도 없다.
곳간이 텅 빈 시기인 것이다. 이제부터 곳간을 채울 것이다.
7도로 저장 온도를 맞춘다고 했다.
뭘 판매하려면 이 저온저장고는 필수적이다.
곡물 건조기 앞에 섰다. 이전부터 궁금했던 것에 대해 물었다.
"햇볕에 말리는 것 하고 건조기에서 말리는 것 하고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건조기는 40~45도 사이에서 건조합니다. 수분 함량 17% 정도가 제일 좋습니다.
이런 것이 조절 가능하고요...
햇볕에 말린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을 볕에 아스팔트 바닥의 지열이 50도 이상 올라갑니다.
"익는단 말씀이십니까?"
"그러지요. 건조율이 60% 정돕니다. 수분 함량도 똑같지 않습니다."
"고추는 어떤가요. 금년에 태양초가 힘들지 않았습니까."
"고추는 건조기로 말리면 85%까지 수분 함량을 뺍니다. 태양 건조는 60% 정도 건조시킵니다.
고추의 경우는 태양 건조가 더 좋긴 합니다. 그런데 손실율이 아무래도 좀 더 높지요.
건조기에 말린 고추도 사실 맛으로 별 차이는 없습니다.
저희들은 막상 그런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고추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건조 방식이 가격을 결정하는 것도 좀 그러지요."
"저건 뭡니까? 노란거."
"저울입니다."
"-,.- 저 멀리 있는 건 뭔 수집통입니까?"
"순환식 자연건조기라고 바람으로 건조시키고 저장하는 기계입니다.
앞의 건조기는 화력건조기지요."
농기계 또는 가공, 저장 시설에 드는 화석에너지 소비량이 너무 많다.
시골에서는 농업용 전기가 공급되는데 가정용이라면 당연히 전기세 만으로도 많은 농가들이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좋은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해 안전한 가공, 저장시설이 필요하고 그 시설들을 유지하기 위해 화석연료 소비량은 증가한다.
진정한 유기농은 생산에서 출하까지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농부 홍순영에게 이런 문제들까지 제기하면서 '무결점 농부가 됩시다'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농사 그 자체를 넘어서 농사를 중심으로 연관 맺는 이런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그와의 지속적인 만남에서 풀어 나가야 할 과제다.
창고에서 쌀을 말리고 있다.
저온저장고에 있던 쌀을 상온에 적응훈련 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저장과 도정, 포장 문제는 그가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비만 와도 전화 옵니다. 태풍 불어도 전화 옵니다.
쌀 많이 남냐고, 팔아 준다고."
그의 쌀을 사 먹는 소비자들 이야기다.
"바쁠 것은 없습니다. 감사받을 일도 없습니다.
제재건 뭐건 직접 만들고 뿌려서 소비자에게 팝니다.
요만큼 해왔으니 자신 있거든요. 하늘이 안된다면 하는 수 없구요."
그의 창고에는 여기 저기 소포장된 쌀들이 굴러 다닌다.
일종의 실험이다. 상온에서 진공포장, 그냥 비닐포장, 포장 열어 둔 상태 등
이런 저런 조건의 포장 상태로 1년 정도 던져 둔다고 한다.
역시 관건은 바구미라는 벌레가 어떤 조건에서 잘 발생하는지를 가늠하는 일이다.
직거래는 쉽지 않다. 생산뿐만 아니라 최종적인 납품까지를 책임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AS까지가 그의 몫이다.
전화가 온다. 마을의 누군가가 그에게 남은 쌀 수매를 부탁하는 전화인 듯 하다.
"마흔 개? 옆 집꺼정 그라믄 팔십 개?"
농협으로 전화를 해 본다. 지금 남은 쌀 수매를 받아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곡성으로 전화를 한다. 미곡상인 듯 하다.
오후 3시경에 가지러 오기로 했다.
"마을회관 앞으로 가면 보인디, 금 쫌 많이 쳐줘!"
"쌀은 아직까지 왜 둡니까?"
"안 둘래야 안 둘 수 없습니다. 재앙이 올 수도 있습니다."
아버님 때에도 쌀을 팔아 먹어도 비축미는 그대로 둡니다.
11월꺼정 묵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역시 농촌에서는 전통적으로 쌀은 최후의 보루다. 떨어지면 시키면 그만인 나의 생각과는 다르다.
'재앙이 올 수도 있다'는 그의 표현이 현재 대한민국 농업정책에서는 헛말이 아닐 것이다.
"FTA 반대한다고 그 난리를 떨고,
버스 두 대에 마누라가 밥해서 이고 지고 하이고...
그날 하루는 휴갑니다. 버스비에 밥값에, 데모도 마이 했습니다."
대화 중에 '폐농廢農' 이라는 나의 표현에 그는 얼핏 발끈한 듯 했다.
그를 주목하는 눈은 우리들만이 아니다. 지자체와 관련 부처에서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
나는 그는 살아 남아도 다른 농부들이 농부 홍순영처럼 될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들이댄 것이다.
"선생님은 한국 농업의 아이콘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소농은 폐농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대화는 다음으로 미루었지만 쌀농사에 대한 그의 의지는 성역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축사로 이동했다. 거세우 8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가 축사로 들어서자 소들이 앞으로 다가왔다.
"흐미, 이것들이 밥을 못 묵었나."
"사료만 먹입니까?"
지난 이틀 동안 EBS에서 방영하고 있는 '햄버거 커넥션'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인간들이 소고기를 얻기 위해 치루어야 할 피해가 너무 막심했다.
좀 지루한 면도 있지만 검색해서 한번 보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언젠가는 '소'가 아닌 '소고기' 문제를 다루긴 해야 할 것이다.
"볏짚하고 사료하고 같이 먹입니다.
볏짚의 2/3는 논으로 환원하고 나머지는 소 먹입니다."
소들은 내가 다가서면 물러났고 그가 다가가면 다가섰다.
생김새가 모두 뭐라고 해야할까, 깔끔하다? 잘 생겼다?
여튼 마을의 다른 소들 보다 상태가 좋아보였다.
"왜 거세를 시킵니까?"
"거세시키면 암소가 됩니다."
"예?"
"순해지고 그 머시냐 여성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요즘 소끔이 최곱니다."
그냥 넘어가려다가 스쳐가듯 그에게 물었다.
"사료는 수입이지요."
"그라지요. 사료는 전부 수입이지요."
"혹시 사료 성분이 대둡大豆니까?"
"글씨요. 성분은 잘 안보는데, 옥수수하고 대두겠지요. 왜요?"
"아, 아닙니다."
소의 눈만 몇 컷 찍어 두었다. 이후에 사용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소는 참 순하고 선한 동물이다.
그의 감농사는 그에게 두번째로 중요한 품목이다. 8천 평은 작은 면적이 아니다.
"감은 지금부터 큽니다. 찬바람 나고 큽니다."
"상처난 감은 어떻게 됩니까?"
"출하할 수 없지요. 감말랭이나 만들고.
금년에 무농약 감 실패하면 전량 폐기할 겁니다."
그는 이른바 'topfruit' 농민이다.
농촌진흥청에서 인증하는 대한민국의 탁월한 과실들을 생산하는 농민인 것이다.
구례에는 10명의 탑프루트가 있다. 모두가 감을 재배하는 농민들이다.
토양과 과실의 상태로 판단하는데, 농장의 6곳 흙을 시료로 채취해서 검사했다.
샘플 과실은 3회 제출했다.
그의 금년 감은 하나의 모험이다. 아마도 몇 년 더 실험을 할 것이다.
통상 과실은 무농약으로 재배하기 아주 힘들다고 한다.
탑프루트의 대부분은 저농약으로 재배한다. 홍순영은 2008년부터 무농약으로 감을 재배한다.
나는 곧 또 한 명의 탑프루트 농민의 1년을 기록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농약 감이다.
금년 감 수확이 끝나고 전지작업을 시작할 무렵부터 기록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1년 동안 그 과정을 비교하고 결과를 살펴볼 생각이다.
판단은 소비자들이 할 것이다. 물론 1년이라는 기다림이 남아 있다.
모두 탁월한 농부들이다.
"무농약 몇 년쨉니까?"
"2년째지요."
"3년은 넘어 봐야 안다던데요."
"그라지요. 지달려 봐야지요. 농사는 열심히 진 만큼 옵니다."
보기에도 잘 생기고 큰 감을 하나 따서 준다.
"배맛 나는 감 맛보셨소?"
정말 물이 많다. 아직 당도는 올라오지 않았는데 배처럼 시원한 감이다.
흰뿔각지벌레란다. 감의 잎을 하나 들추어 내자 벌레가 소복하다.
'약하지 않고' 벌레 잡는 일이 쉽지 않다.
한두 그루가 아니지 않은가.
낙엽병이 가장 문제다. 9월 15일 이후에 온다고 했다.
지금 약을 해도 소용없다. 늦어도 6월에는 방제를 해야한다.
그는 9월 15일 이후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그의 감나무밭은 풀이 무성하다. 그러나 그냥 무성한 것은 아니다.
땅을 밟아보면 바삭하다.
원래는 좋은 땅이 아니란다. 그러나 배수가 기가 막히다.
밟아보면 쌓여 있는 풀의 층이 느껴진다. 땅이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땅은 얼마나 해야 만들어집니까?"
"5년 정도는 작업을 해야 땅 본성을 찾습니다. 내년에는 감나무밭에 호밀을 뿌릴 생각입니다.
섬유질도 많고 호밀대가 다른 풀을 방지합니다. 미생물도 투여해야 하고."
"미생물은 어떻게 투여하는 겁니까?"
"이전에는 꼬드밥해 가꼬 산에 가서 놔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벌레들이랑 모이지요.
그 아들이 흙 속으로 들어가서 숨을 쉬고 같은 넘을 만듭니다."
사진으로 보는 것 처럼 나무와 나무 사이의 통로는 지금 풀이 베어진 상태다.
정확하게는 베고 난 이후 다시 자라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풀을 베는 것도 한꺼번에 베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벤다. 지금 낮은 풀 자리에 풀이
'요만큼' 올라오면 나무 아래 풀을 벤다. 그러면 벌레들이 반대편의 자라난 풀밭으로 이사를 한다.
"그럼 풀을 키우는 것이 벌레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겁니까?"
"그런 것도 있지만 땅이 숨쉬게 만들어 주는 겁니다."
"뽑고 뒤집는게 더 좋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풀을 하도 뽑으니까 땅도 습관이 생깁니다.
풀뿌리가 땅 깊숙하게 파고 들 정도 되어야 땅도 깊은 호흡을 합니다.
미생물도 더 깊숙하게 침투하고. 자꾸 뽑으니까 땅도 움직임이 없는 겁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 농장에 견학가면 나무는 안봅니다.
흙을 만져 봅니다. 그러면 답이 나옵니다."
"선생님, 좀 거시기하지만 흙 한 줌 퍼서 사진 한번 찍을까요?"
"요렇게요?"
"... 너무 깜찍한 척 하시는 것 같은데요... -,.-"
빠른 종류는 추석 전에 일부 감을 출하할 것이다.
쌀에 대해서는 확신이 있는데 감에 대해서는 그 역시 노심초사 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또는 금년 감에 대해 확신을 하면서도 '전량 폐기'라는 용어를 동원하면서 섣부른 기대를 차단하는 작전인지는 나 역시 알 수 없다.
일교차가 크고 한낮의 햇볕이 뜨겁다. 과실에는 좋다.
"딱 10일만 더 날씨가 이러면 좋겠는데."
제법 시간이 지났다.
"저녁 드시고 가세요."
농부 홍순영의 아내 서순자씨다.
오전 내내 고추를 따기 위해 인근 밭으로 나가 계셨다.
거의 하루 종일 노동과 세 끼니의 밥을 만드신다. 가족만 밥을 먹는 경우는 드문 듯 했다.
농부 홍순영은 '있는 김치에 같이 먹고 가면 된다' 라고 말했지만
이미 먹어 본 결과 '있는 김치'에 몇 가지 더 올라오는 듯 했다.
"사모님 사진을 찍어야는데."
"하이고 저는 뭐더러요."
"홍 선생님 혼자 하신 일이 아니잖아요."
농부 홍순영의 집까지 15분 정도 차로 이동한다.
광의 - 마산 - 토지로 이어지는 인근 면들의 들판을 지나쳐 온다.
바라보는 들판이 예사롭지 않다. 이곳에 살면서부터 그렇다.
이제 해 지는 들판이 경관으로 그냥 그렇게 편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저런 질문에 답하다가 이 들판에서 내가 보고 느낀 점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역시 기록이 중요하다. 또는 허망하거나.
9월 3일 목요일 새벽 6시 섬진강.
힘들게 5시에 기상했다. 요즘 아침 잠이 많다. 별 이유 없이 몸이 좀 무겁다.
6시에 문척면 화정리 오봉정사 앞에서 농부 홍순영이 속해 있는 '순환농업' 회원들의 제재 체취작업을 촬영하기로 했다.
긴바지와 외투를 준비했다. 일교차가 심하다.
나는 가능하면 9월 15일까지 그에게만 집중할 생각이다.
가는 길에 안개가 짙었다.
먹물은 제 시간에 갔는데 농부들은 대다수 도착하지 않았다.
먼저 오신 분이 전화를 건다.
"젊은 넘들은 일찍 왔는데, 늙은 넘들이 뭔 아침잠이 그렇게 많어!"
2대의 트럭이 더 도착하고 '젊은 넘'과 늙은 넘'이 잠시 '이런 싸가지 없는 거이' 라고 투닥거리다가
바로 작업할 예정인 수달관측소 바로 아래 강변으로 내려갔다.
역시 시골에서는 4륜 트럭이 최고다.
오늘은 환삼덩굴을 채취하기 위해 나왔다.
정기적으로 이렇게 회원들이 모여 제재를 채취한다고 한다.
의외로 30대가 추정되는 젊은 사람들이 3명이나 보인다.
강이 깨어나고 멀리 하동 너머에서 해가 올라올 모양이다.
작업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인근이 전부 환삼덩굴이다.
지난번에는 한산넝쿨로 들었는데'환삼'이 맞는 모양이다.
모두 그야말로 선수들이다.
"어이, 대사리 잡은거 있슴 이 키로만 내놔 봐. 저녁에 동서들 오는데."
홍순영씨가 묻는다. 대사리는 이곳 말이다. 다슬기다.
"대사리 한번 잡을란게 우리 잡을껀 없데. 엔진배들 밤에 와서 확 긁어불고."
"신고하면 뭐라는 줄 알어? '그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지요' 그래부러."
"하이고 밤 줍다가 풀 베다가. 끄응!"
"밤끔(가격)이 얼매여?"
"삼천 원 보고 왔네."
"농협은 천이백 원인디."
"어차피 우린 농협 거래 안한게."
"비가 많이 와서 밤이 좋데."
"돼지들 주서먹기 전에 좀 해야제."
"어 야! 좀 자근자근 볼바야제(밟다)."
좋았다.
사진만 찍고 있었지만 새벽을 같이 할 수 있어 좋았다.
지천으로 난 잡초를 베어 농사에 좋은 약을 만드는 일이다.
"어제 야구 어찌되었남?"
"야구가 너무나 잘 하니까 재미가 없더라."
"사진 찍히면 우리 모델비 줘야는디."
"연령별로 다릅니다이."
해태타이거즈. 기아라고 부르는 것은 어쩐지 원단스럽지 않다.
DJ의 죽음. 해태타이거즈의 부활. 무등경기장에 울려 퍼졌던 연호 '김대중'.
오래 전 지자체 선거 당시 부산에서 롯데 투수 최동원이 출마했고 낙마했다.
그리고 광주 회의에 참석했는데 선배들이 타박을 했다.
"선동렬이 광주에서 출마하면 떨어지것냐? 너 뭐했냐."
작업은 6시 37분에 끝이 났다. 30분 정도 땀을 흘렸다.
"3일 뒤에나 조릿대 한번 하세. 자, 다들 우리집으로 가세.
해 마이 짧아졌다."
농부 홍순영의 시설물 중에 가장 중요한 시설일 것이다.
그의 농사에서 핵심이 되는 '순환제재'를 만드는 공장이다.
채취해 온 환삼덩굴은 바로 여기로 직행하고 연이어 작업에 돌입한다.
7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짐작하건데 무수한 실패를 경험했을 것이다.
회원들의 움직임은 익숙하다.
정해진 동선을 따라 별 말 없이 제 각각의 역할을 수행한다.
절단기에서 채취해 온 풀을 바로 자른다.
박스에 담아서
바로 탄화기로 집어 넣는다.
탄화기에는 한번에 120kg 정도를 집어 넣는다.
일단 채워 넣고 제재에 따라 다르지만 5시간 30분에서 6시간 30분 정도 탄화한다.
중간 중간 각자의 농장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던 회원들이 교대로 나와서 기계를 살핀다.
"아침 먹고들 가. 밥 해놨슨게."
나도 평소 먹지 않는 아침밥을 먹었다.
좀 시장기가 돌기도 했다. 일 끝에 나누는 밥은 항상 훈훈하다.
TV에서는 죽은 여배우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금년에 이름 난 사람들 죽음에 관한 뉴스가 많은 듯 하다.
사람은 왜 사는 것이며 행복은 무엇인가?
"박스가 문제여? 감이 문제지."
맞다. 세상은 포장에 너무 열중하고 있다. 나도 그렇고.
오후에 다시 농부 홍순영의 집을 찾았다.
회원들은 제재를 나누어 가지만 전적으로 홍순영과 같은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한번 해 보겠다고 오는 사람은 문전박대 당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무농약과 유기농에 계획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의 연구실은 항상 열려 있다.
"자꾸 와서 죄송합니다. 20분만 시간 좀 내주세요."
"몇 가지만 설명 좀 해주세요."
환삼덩굴은 항균, 살균 작용을 한다. 칼슘 역할도 한다.
산죽 일명 조릿대, 역시 살균살충 작용을 하고 마그네슘을 공급한다.
담배. 잎이 아닌 대를 이용한다.
구례에는 없고 장수에서 가지고 온다.
니코틴 성분을 추출해서 충해를 방제하고 땅 속의 선충을 잡는다고 한다.
역시 담배는 인체에 이로운 것이 맞았던 것이다.
쇠비름. 질소 함량이 높고 전착제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감의 색을 곱게 만든다.
자리공. 독성이 강하다. 살충, 살균이다. 옛날에 '사약을 받아라!' 할 때 그 약재라고 한다.
그리고 은행, 녹차, 자소, 자귀... 끝이 없다.
그의 순환제재 가공 창고 한 구석에는 퇴비가 쌓여 있다.
냄새도 지독한 편이다.
"탄화하고 남은 재를 퇴비로 사용하시는 겁니까?"
아니다. 미강(쌀겨) 60%, 축분(소똥) 30%, 깻묵 3%, 돼지뼈 6%, 기타 등등이다.
미강은 미생물을 가지고 있고 자기 양분을 자기가 생산한다고 한다.
질소함량이 높다.
축분은 질소와 발효율이 높다.
깻묵은 영양제, 돼지뼈는 칼슘과 인을 보강한다.
그에게 뭔 질문을 하면 항상 구체적인 수치와 용어를 들고 나오기 일쑤다.
"이거는 뿌리고 며칠 뒤에 작물을 심습니까?"
"아뇨. 바로 파종해도 됩니다. 2년 묵은 놈들입니다."
배추를 심을 시기가 돌아왔다. 집 위 밭에 금년에는 퇴비도 하지 않았다.
농협이나 농약방에서 사는 퇴비를 믿지 못한 탓이다.
염도가 높다는 소리가 많다.
음식물찌꺼기를 사용한다는 소리도 있다. 확인할 길이 없다보니 퇴비를 포기했다.
갑자기 선생님이라는 호칭에서 돌변했다.
"형님, 저 이거 반 포대만 주세요."
"뭣하게."
"배추 심게요."
"반 포대 가꼬 뭣하려고."
"두 평 정돈데요. -,.-;"
"..."
농부 홍순영의 '순영 농장' 이다.
아내 서순자의 가운데 자 '순'과 자신의 '마지막 자 '영'을 더한 것이 농장 이름이라고 설명하자
옆에 있는 동료들 반발이 막심하다.
대부분의 농부들이 그러하듯이
그 역시 이 '본부'를 중심으로 주변의 경작지를 집중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2주일 전 즈음에 해그름에 길을 잘 못 들어 '순영 농장' 이란 큰 입석이 세워진 집 앞을 지나친 적이 있다.
자주 지나친 길이지만 그렇게 한발 먼저
우회전 했던 적이 없었던 익숙한 길이었다. 길을 찾고 있는 중이었지만 어느 집 앞의 입석이 유난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입석을 세운 집을 거의 매일 찾고 있다.
그의 '영농일지'다. 글씨가 또박하다.
친환경인증을 받은 농부들은 영농일지를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그렇기도 하지만 그의 일상은 온통 농사에만 집중되어 있다.
항상 기억하고 기록하고 실험하는 농부다.
교육 받고 교육 시키는 시간이 여간한 것이 아니라고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영농일지를 몇 컷 찍고 나는 사무실로, 그는 오후 2시부터 교육을 받으러 용방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아무리 안다고 해도 가서 듣다보면 한 가지라도 얻고 그라지요."
<2009년 9월 4일 금요일 오후 4시 30분.
조기재배 벼를 추수했다. 작황은 2008년과 비슷하다.
금년에는 벼를 베는데 빡빡이 찍사가 함께 했다. 구례에서는 첫 수도작 수확이다.>
사무실에 가서 사진을 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 멀리서 '약을 하는' 농부의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갈 수록 농부의 동작이 수상하다. 명백하게 비틀거린다.
경운기는 돌아가고,,, 농부는 호스를 집어 던지고 휘청거리며 도로 위로 필사적으로 올라서려는 중이었다.
천천히 지나치면 농부의 얼굴을 보았다.
차창을 넘어 휘발성 살충제 냄새가 확 끼쳐왔다.
그 지역은 친환경단지였다.
대한민국 농부는 지는 해 속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
첫댓글 친환경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너무 멀리 온 것 갔지?.....홍순영씨 힘내시라고 하고싶네....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복을 준다고 하였던가... 감사 드립니다.